미술과 친해지기

이 도자기가 100억원인 이유 2008/03/19

딸기21 2018. 8. 24. 16:50



공식 도록에 써있기를 "편병/청화자기/하회 장식/중국 징더전/원(元), 1300~1368".

무슨 소리인지 감이 오시나요?


바로 이 도자기입니다. 100억원 짜리 도자기가. 

6월13일까지 서울 중구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세계명품도자전'에서 전시중인 도자기입니다.

영국 국립박물관인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이 소장한 도자기 가운데 100여점이 한국으로 나들이를 왔는데, 이 중에서 가장 비싼 도자기가 바로 이 용무늬 납작병이라고 합니다.


문화재나 미술품 가격이 비싼 것은 알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도대체 왜 비싼거야?'란 의문이 들 법 합니다. 저 도자기만해도 높이 37센티미터 짜리에 술병 크기 정도이고 금테도 안둘렀는데 무려 100억원이랍니다. 

저 허연 바탕에 퍼렁 그림 디자인은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보던 것 아닌가요? 그러나 모든 것엔 이유가 있지요. 저 병이 100억 씩이나 나가게 된 이유를 알아보면 도자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청화백자, 그리고 징더전

 

일단 이 도자기는 오래됐습니다.

1300년대, 중국 원나라때 것입니다. 700년 된 도자기라면, 당연히 일단 비싸지겠죠.

그러나 700년 된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도자기가 청화백자이기 때문입니다.


청화백자는 비싼 도자기들 중에서도 비쌉니다. 그 이유는 청화백자란 도자기가 태생이 고급인 탓입니다. 도자기의 귀족, 종자가 다른 도자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에게 어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란 말이 있는데, 맞는 말이죠. 

그런데 도자기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습니다. 청화백자처럼요.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도자기도 청화백자입니다. 
얼마였냐면, 무려 284억원이었습니다.


최고가 도자기로는 청화백자 말고도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중국의 또다른 명품 도자기 정요 백자도 있습니다. 이 백자가 청화백자보다도 더 높이 치는 백자인데, 나오는 물건이 없어 값이 잘 매겨지지조차 않아 정확한 가격 추산이 잘 안됩니다.


저 병이 비싼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징더전'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징더전은 중국 최고의 도자기 생산지입니다. 1만년이 넘는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유명사입니다. 시험과목에 도자기가 있다면 반드시 외워야 할 이름, 징더전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우리식 한자 발음 `경덕진'(景德鎭)으로 더 많이 부릅니다.

징더전은 일찌감치 도자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다가 송나라 경덕제 때 왕실에 도자기를 공납하게 되면서 경덕제 이름을 따서 경덕진, 징더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도자기의 나라 중국에서도 가장 비싼 왕실용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 징더전이었습니다. 이 징더전 제품이라면 일단 도자기로선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 공식 밥그릇이 백자가 된 까닭은?


왜 청화백자는 비싼 것일까요? 
가장 단순한 경제 법칙만 아시면 됩니다. 드물어서 비쌉니다. 700년전 옛날 것에, 원래부터 비싼 왕실 납품하던 명품 브랜드에, 재료가 드물고 비쌌으니 지금은 더욱 비싸진 겁니다.

 

청화백자는 왜 드무냐, 백자는 많지만 청화백자가 되게 만들어주는 파란 물감이 비쌌습니다. 그 파란 물감이 코발트입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코발트가 안났습니다. 그래서 아라비아에서 사왔습니다. 아라비아를 한자로 `회회(回回)라고 하므로, 아라비아에서 온 파란색 안료인 코발트를 `회회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더럽게 비싼 코발트를 사다가 최고 장인들이 아끼고 아끼느라 손떨어가며 만들다가 드디어 1600년대 후반, 중국은 드디어 자기네 나라에서 코발트 광산을 찾았습니다. 청화백자는 그 때부터 확 늘어납니다. 그 이전 것들은 아주 드뭅니다. 100억에는 그런 가치가 들어있습니다.

 

당시 중국 다음으로 도자기가 셌던 세계 2위 도자기 나라 조선도 청화백자에 강하게 꽂혔습니다. 예쁜 것은 누가 봐도 예쁩니다. 조선 임금님들은 당시 최고 럭셔리 명품 도자기인 청화백자에 폭 빠집니다. 그래서 원래 조선 초반에 왕실에 납품하는 자기는 분청사기(분청자)였는데, 백자로 바뀝니다. 백자에 산화코발트로 그림을 그린 그릇, 바로 청화백자입니다. 조선왕실은 궁에서만 청화백자를 쓰도록 정해버렸습니다. 일반인들은, 쓰면 큰일났습니다.

 

청화백자는 앞서 말씀 드렸듯 만들고 싶어도 쉽게 못만듭니다. 코발트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명나라가 이 코발트를 쉽게 안 나눠 줍니다. 속으로 문익점 사건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나라에 열받은 조선은 청화백자를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잘 안됩니다. 기존 백자에 그림을 그려 구워보니 예쁜 파란색이 아니라 거무튀튀한 색깔이 나와버립니다. 그 비싼 코발트 그림발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바탕이 되는 백자가 먼저 좋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하면서도 새하얀 경질 백자를 만들기 위해 백토를 좋은 것으로 찾아 전국을 뒤졌고, 좋은 백자 만들기부터 열심히 도전합니다. 

이 바탕이 되는 백자를 열심히 만드는 과정에서 조선 백자는 점점 개량되고 발전했습니다. 왕실 도자기가 백자가 된 뒤에는 그런 까닭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화백자는 결국 많이 만들기는 불가능했고, 조선은 아쉽지만 `상감백자'로 방향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화백자, 알고보면 참 대단치도 않아보이는 것이 별 영향을 다 미쳤습니다.

 

1000년을 사로잡은 디자인-청화백자, 1000년 동안 도자기를 굽는 가마-징더전

 

저 청화백자를 보면 누구나 ‘하얀 바탕에 파란 그림 그릇은 우리집 코렐 밥그릇도 마찬가지인데'라고 생각하시게 될겁니다.


맞습니다. 청화백자는 색을 현란하게 쓰지 않고 청색과  백색 두 색 만 대비하는데도 단순하면서도 예쁘고 쉽게 안질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진짜 청화백자는 아니어도 그 청백 대비 디자인 미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공예품들 가운데 1000년전 디자인 모티브나 양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널리 인기를 끄는 청화백자같은 디자인은 더욱 드뭅니다.

 
중국 도자기 넘버1 가마인 징더전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게 도자기는 최고의 효자입니다. 1천년 가까이 중국은 도자기 하나로 떼돈을 벌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도기를 만드는 나라는 많았지만 자기를 만드는 나라는 18세기 이전까지 중국과 한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뿐이었습니다. 중국은 다른 이웃나라인 우리와 일본보다 헐씬 앞선 도자기 강국이었습니다.

 

도자기를 수출하는 나라는 그 중에서도 중국 뿐이었습니다. 요즘 반도체보다도 훨씬 더 희소성이 강하고 가격이 비싼 당시 세계 최고의 첨단 럭셔리 수출품이 도자기였습니다.

오죽하면 중국 영어 이름 ‘china’가 도자기란 일반 명사가 되었겠습니까?

무지하게 팔아먹은 결과입니다. 그 최고 수출품 고급 도자기는 늘 징더전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은 세계 모든 나라가 자기를 만들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도자기의 위상은 크게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징더전도 여전히 버티며 중국 내수용, 외국 수출용 도자기를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1000년 동안 가마에 불이꺼지지 않은 도자기 공장은 징더전뿐일겁니다. 그래서 징더전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 도자상은 제목이 뭘까요?


딱딱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러면 부담없이 전시회에 나온 다른 도자기들을 보시죠. 모두 도자기계의 스타급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저 도자기는 영국 런던에 있는 첼시 자기공장에서 1765년 만든 연질자기입니다. 
제목은 <음악수업>입니다. 
어째 자세를 보니 음악수업이 아니라 연애수업 같군요.

 

유럽 나라들은 도자기로 인물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 당시 영국 인물상들은 독일에서 만든  자기인물상처럼 표면이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의 도자기 흙 탓입니다. 

반짝거리지 않는 대신 부드러운 맛이 오히려 영국 인물 도자상의 매력이 됩니다. 지금 첼시라고 하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텐데, 첼시는 영국 도자사에서도 중요한 이름입니다.

당시 영국 도자상들은 꽃장식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부분 확대해서 한컷 더.


영국 것을 보셨으니 이번에는 프랑스 인물상입니다. 1750년대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피로스와 플로라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이 인물상은 프랑스 뱅센에서 만든 것입니다. 프랑스 도자사에서 알아두면 좋을 두 곳이 뱅센, 그리고 세브르입니다. 둘다 왕실 자기 공장입니다. 앞서 보신 영국 인물상처럼 이 인물상도 `연질자기'입니다. 물러서 잘 깨진다는 이야깁니다.

왜 약해빠졌냐, 역시 단단한 자기를 만들수 있었던 한국이 도자기는 최고야, 라고 일방적으로 우쭐해하시면 안됩니다. 흙이 약해서니까요.


프랑스는 그래서 저렇게 잘깨지는 것만 만들어 속상해하다가 1770년부터 단단한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자기를 만드는 흙, 그 이름도 친숙한 고령토(우리나라 고령에서는 안나옵니다)라고 부르는 카올린을 리모주란 동네에서 발견한 덕분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그토록 찾던 카올린이 발견된 것은 우연, 그리고 그 우연한 발견을 놓치지 않은 관찰력의 덕분이었습니다. 1768년 리모주 근처에 살던 외과의사의 부인이 외출했다가 돌아 올때 우산 꼭지에 가끔 하얀 흙이 묻어오곤 했습니다. 그 흙을 세탁용으로 쓸 수 있을까 해서 가져와봤는데, 알고보니 카올린이었던 겁니다.

 

한국 도자기가 자랑스런 이유-그러나 잘난척은 맙시다

 

유럽 도자기 역사를 연 나라는 독일, 독일에서도 작센, 작센주에서도 마이센입니다.

왜 마이센이냐면, 마이센에서 처음 자기를 만들었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전까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만 만들었습니다. 그 자기를 못만들어 낑낑대던 유럽이 드디어! 자기를 만든 게 1700년대입니다. 도자기가 대단한 이유가 보기엔 간단해도 이렇게 유럽도 만드는데 오래 걸린 첨단 기술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이센 자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뵈트거란 양반입니다. 저 염소는 당시 작센 선제후가 궁전에 장식할 동물들을 만들라고 해서 만든 것입니다. 당시만해도 마이센 가마 기술이 약해서 구워내면 금이 쩍쩍 갈라졌던 시절입니다. 저 염소, 자세히 보면 금이 많이 가있습니다.


그렇게 온갖 고생끝에 마이센에서 자기가 나왔으니 당시 마이센의 지배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원천기술' 보유국이 된 것이죠. 그래서 마이센은 자기 만드는 기술을 특급 비밀로 지정해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숨기고 또 숨겼지만 마이센의 자기 기술은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퍼집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히 산업스파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되는 것에 관한한 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결국 도자기의 역사는 도기에서 더 나아간 자기로 넘어가고, 중국 등에서만 만들던 자기에 매혹된 유럽이 자기네도 자기를 만들어보겠다고 낑낑대다가 마이센에서 만들어 퍼져나간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게 못만든 자기를 우리는 훨씬 더 전에 만들었으니 자부심을 가질만 한 거죠. 그래서 박물관에 그렇게 자랑스럽게 도자기를 전시하는 것이구요.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도자기의 꽃 자기를 만든 우리는 잘나고 똑똑했고, 한참 뒤인 몇백년 뒤에야 자기를 만든 유럽은 우리보다 멍청했다고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앞서 프랑스 도자기 말할 때 잠깐 언급했듯이 자기를 만드는 흙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자기를 나중에 만든 것은 자기 만드는 흙, 카올린을 못찾았던 탓입니다. 그걸 찾자마자 유럽은 도자기에서 오히려 훨씬 더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도자기에 소뼈를 갈아넣으니 더 좋다는 것을 알고 본차이나를 만들어낸 것이 대표적이죠. 그러니 우리도 무턱대고 뻐길 것은 못됩니다.


도대체 카올린이 뭐길래


이 수백년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은 자기가 결국 그 재료인 카올린의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카올린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도자기에서 도기보다 자기가 더 만들기 힘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보통 도기는 더 낮은 온도에서, 자기는 더 높은 온도에서 만든다고 구분합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수분흡수율'로 많이 나눕니다. 쉽게 말해 도기는 물이 스며들지만 자기는 물이 절대 안스며듭니다. 이 자기에서도 청자는 1250도에 굽지만 백자는 130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서 "백자는 자기의 결정판"이라고들 많이 합니다.


이 도기와 자기는 결국 만드는 흙의 차이에서 옵니다. 도기는 도토로, 자기는 자토로 굽습니다. 쉽게 말해 도기는 진흙으로 굽고, 자기는 고령토로 굽는다는 말입니다.

이 고령토는 자기 굽는데 가장 좋은 흙입니다. 중국 강서성 고령(카올링)산에서 많이 나와 고령토, 중국어로 카올링, 영어로 카올린이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돌가루 흙입니다. 그래서 성질이 다릅니다. 불에 구우면 반투명 재질이 됩니다. 이 고령토에 다른 흙을 섞어 자기를 만듭니다. 이 고령토는 아무데나 있는 흔한 흙이 아닙니다. 유럽이 이걸 못찾아서 고생했던 겁니다.

우리나라 도공들이 임진왜란 때 많이 잡혀가서 일본 도자기를 일으켰다는 것, 다들 아시죠?

그 잡혀간 인물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심수관과 이삼평이죠.

 이삼평은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습니다. 그 이유가 그가 아리타란 곳에서 고령토를 찾아내 백자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616년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때부터 비로소 자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령토는 정말 중요한 흙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500년전, 고려시대였던 12세기부터 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올린은 꼭 자기에만 쓰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 생활속에서도 여기저기 생각보다 많이 쓰입니다.

시멘트 공업에도 쓰고, 가장 흔하게는 종이에 많이씁니다. 각종 화보나 도록은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여야 인쇄가 선명하고 정교하게 찍힙니다. 이런 종이를 흔히 아트지라고 하지요. 이 아트지가 바로 카올린을 종이 표면에 얇게 바른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화장품 미립자에도 들어갑니다. 매끌매끌한 것과 관련이 많은 흙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 자기 하나 더.


위의 자기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청화 자기고, 아까 말했던 그 유명한 징더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엄청 비싸겠지요? 명나라 때 것으로 16세기 주전잡니다.

이 주전자는 중국이 유럽에 수출하던 초기 주전잡니다. 워낙 유럽이 중국 도자기를 좋아해 각종 왕실 물품을 주문해서 사갔습니다. 저 위에 붙어있는 은장식은 수출 경로였던 이란에서 만들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좌우지간 중국은 이렇게 세계 각국의 쏟아지는 주문을 받으며 도자기를 만들어 팔았는데, 중국이 독점하던 이 시장에 일본도 뛰어들어 나눠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서양과 일찍부터 교류했으면 아마 돈 좀 만졌을텐데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던 것이죠.


일본은 어떻게 중국에 이어 도자기 수출국가가 되었을까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면서 무척 중국이 혼란했던 적이 있엇습니다. 그 바람에 징더전 도자기도 생산이 멈췄습니다. 당시 중국 도자기를 떼어다가 유럽에 팔던 회사가 장사꾼의 나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였습니다. 물건이 바닥난 동인도회사는 부랴부랴 다른 공급자를 찾았는데, 그게 네덜란드와 교류가 많았던 일본 도자기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붙잡혀간 이삼평이 만든 일본 자기는 이때부터 유럽에 수출됐고, 일본은 문화강국 수출강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도자기 덕분에요.

우리 도공을 붙잡아간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만큼 도자기의 경제적 가치가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 도자기계의 슈퍼스타 웨지우드 등장

 


설명이 필요없을 듯한 웨지우드입니다. 웨지우드에서도 가장 유명한 재스퍼입니다.

웨지우드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그릇에 관심 많은 주변 주부들께 먼저 물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웨지우드는 주부들의 로망입니다. 한번 사면 평생쓴다는 명품 그릇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회사는 유달리 단단함을 강조하는데, 찻잔 네 개 위에 롤스로이스를 올려놓는 광고로도 유명합니다. 그 커다란 롤스로이스 차를 올려놓아도 안깨진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아까 말한 본차이나 기법도 웨지우드가 만들어냈습니다.

 

이 명품 브랜드 웨지우드를 만든 사람이 조사이어 웨지우드입니다. 그의 최고 히트상품이 저 짙은 바탕에 하얀 부조가 인상적인 재스퍼 그릇입니다. 위의 도자기처럼 짙은 바탕에 하얀 부조처럼 이미지를 입히는 재스퍼는 도자기계에서 혁명을 일으키며 빅 히트상품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웨지우드는 영국 왕실 납품에다 수출로 떼돈을 벌었지요. 지금까지 명품으로 떵떵거리고 있는데 지난해 매출액이 9900억원.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해 일본에서만 1000억원을 팔아치웠습니다.

 

현대 도자기인데, 누구 것 같으십니까? 그림 못잖게 도자기를 팔아먹은 피카소의 도자깁니다. 1954년 작인데, 자세히 보시면 그림이 이젤을 세워놓고 모델을 그리는 예술가입니다. 당시 피카소는 이를 도자 시리즈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대 도자 하나 더. 미국 에이드리안 삭스란 작가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