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93년생 여배우에 반하다 2007/12/10

딸기21 2018. 7. 4. 14:42

제게는 연말에 혼자 재미로 즐기는 놀이가 있습니다. 저만의 ‘올해 즐길거리 베스트 뽑기’ 입니다. 한 해 동안 제가 얼마나 문화생활을 했나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지요. 제가 본 올해의 최고의  영화, 올해 최고의 책, 뭐 이런 식으로 뽑으면 됩니다. 혹시 안해보셨던 분들은 한번 해보세요.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올 한해 제 문화생활을 돌아보니, 문화부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예년보다 빈곤했던 한 해였습니다. 보직 업무를 맡는 바람에 안에 붙잡혀 있다보니 생긴 현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문화부 기자에게 온갖 문화 작품들을 많이 보는 것만큼 내공을 쌓는 일도 없으니 어찌됐든 반성해야 할 노릇입니다.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래서 먼저 올해 제가 본 영화들을 한번 돌아봤습니다.


해마다  극장과 디브이디 등을 합쳐 70~80편은 보아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한 40편쯤으로 줄어들었네요. 옛날만큼 영화가 ‘당기지 않는 탓‘도 컸습니다. 겨우 40편 보아놓고선 ’가장 뛰어난 작품‘을 꼽기는 좀 그렇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만 하나 꼽아봤습니다. 물론 무지하게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정입니다. 2007년 제가 기억하고픈 작품은 바로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이하 <테라비시아>)입니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가버 추보 감독.

이 영화는 ’어린이 영화’ 그리고 ‘팬터지 영화’로 알려져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아보니 이 영화의 실제는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업체들이 장삿속으로 영화를 실제와 다르게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테라비시아>도 그랬습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 같은 전형적인 어린이용 팬터지로 홍보를 했기에 그런 줄 알았던 겁니다.


올해 또다른 영화 <판의 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의 미로>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잔혹 엽기 동화에 가까운 이 영화를 귀여운 팬터지로 홍보한 것은 정말 영화사쪽에게 불만스러운 대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귀여운 팬터지인 줄 알고 온 관객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이 이 좋은 영화가 ‘관객 속인 영화’로 입소문이 날 수 있으니까요.


두 영화 모두 그런 식으로 홍보했던 바람에 귀여운 팬터지를 바라고 보신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이 영화들이 진정 맘에 든 관객들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불쾌함을, 그리고 영화 자체에는 잘못된 정보를 더해주었습니다. 영화사들, 돈벌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홍보는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안해도 얼마든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독특한 영화 <판의 미로>

 

제가 <테라비시아>를 꼽은 것은 이 영화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성장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어린이들은 오히려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할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어른들이 과거를 돌아보면서 공감할만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워낙 성장영화를 좋아하기에 이 영화를 올해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게 된 것입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 중에 성장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꼭 권하고 싶습니다.


<테라비시아>에서 두 주인공이 자신들만의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다리 장면.


또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문화 작품에서 어른용 아이용으로 나누는 기준에 관해서 입니다.


예전에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었는데, 주로 책쪽 문화 이야기를 제가 종합해서 들려주는 코너였습니다. 그 때 진행자분이 “어린이책과 어른책을 나누는 기준이 뭐냐”고 물어보셨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들려드린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책은 다 어른용입니다. 어른들은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니까요. 이 어른책 중에서 청소년도 읽을 수 있으면 청소년책, 아이들도 읽을 수 있으면 어린이책입니다.”


고전적인 정의를 대신 들려드린 것인데, 저 역시 이 정의가 맞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어린이책, 어린이영화란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보기에도 충분한 것이 기본 전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테라비시아>는 좋은 어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팬터지는 아주 적은 부분만을 차지할 뿐이었습니다. 아주 정통 드라마성이 강한 영화, 밝고 예쁘기만한 어린이 영화가 아니라 슬픔과 인생, 즐거움과 성장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맘에 들었던 것은 영화를 이끌어간 ‘어린 배우’들의 연기력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불만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영화에 늘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아무리 거지같고 시덥잖아 보이는 영화에서도 할리우드 배우들의 연기력은 항상 놀라울 정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시한 단역도 꼭 그 이미지에 알맞은 배우를 찾아내 꼭 그 역할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점이 저는 늘 놀라웠습니다. 

이런 연기력은 아역 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여운 역, 얄미운 역, 못난이 역, 불쌍한 역 그 어떤 어린이 역할에도 꼭 알맞은 아역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 <테라비시아>도 꼭 그랬습니다. 주인공 제시 역으로 나온 조시 허처슨이란 꼬마의 연기는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오른쪽이 주인공역을 맡은 조시 허처슨. 꼬마지만 연기는 어른 뺨친다.


여리고 상처받은 영혼을 혼자 보듬으면서 줏대있게 삶과 맞서는 꼬마를 연기하는데 정말 잘 했습니다. 표정이나 눈빛 연기가 어른 배우들 못잖아 앞으로 과연 어떤 배우로 성장할까 눈여겨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더욱 제 눈에 들어온 꼬마 배우는 여주인공 ‘레슬리’로 나온 요 친구였습니다.


<테라비시아>의 히로인 안나소피아 롭. 93년생 여자아이지만 개성 만점이다.

 

이름은 안나소피아 롭. 당차고 꿈많은 씩씩한 소녀로 나오는데 이미지와 역할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 캐스팅이었습니다. 외모를 보면 좀 강해보이는데 자꾸 보다보면 정이 든다고 할까요, 볼수록 귀여운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좀 낯이 익었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생각해보니 2년쯤 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왔던 그 금발 여자 꼬마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주 ‘4가지’가 없는 정떨어지는 꼬마애로 나왔는데, 풍선껌 불어대며 건방떠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서 시건방진 여자애로 나온 안나소피아 롭. 2년 전이라 훨씬 어린 모습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그 어렸던 꼬마가 그 사이 이렇게 커서 어엿한 여자 어린이로 자랐더군요. 얼굴은 깜찍함이 사라지고 성장기 아이다워졌습니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세상에! 93년 생이더군요.


93년생 여배우에게 반해보기는 처음입니다. 똘망똘망한 저 모습을 보면서 ‘저런 딸 하나 낳을 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귀여운 아들도 좋지만 씩씩한 딸이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잠시 공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당찬 연기에 따른 당연한 결과겠지만 안나소피아 롭은 주목받은 어린이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잡아가는 모양입니다. 올해에도 영화 <리핑-10개의 재앙>에 신비로운 소녀로 나왔고, 발 킬머가 나오는 <웨스트 텍사스 칠드런 스토리> 셜리즈 시어런이 나오는 <페리스 휠> 등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테라비시아의 숲>에서 안나소피아 롭에 반한 것은 그 나이 또래의 애같은 맛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연기를 잘해 애가 아니라 작은 어른 같은 다코타 패닝은 오히려 정이 안간다고 할까요? 나이는 안나소피아 롭이 다코타 패닝보다 한 살 위인데 아이같은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뒤져보니, 그사이에 벌써 또 자라 처녀같은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야 워낙 잘 자라는데 여자애들은 특히 빨리 자라나 봅니다. 귀여운 꼬마 상태로 조금 더 있어주면 좋을텐데, 금새 화려한 여배우가 되겠죠?


안나소피아 롭 최근 모습. 그새 또 자라 처녀티가 나기 시작한다.

좋은 아역 배우를 보는 것은, 어른 관객들에겐 늘 깨지기 쉬운 불안한 존재를 바라보는 애처로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인기 스타가 되면 자라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꼬마 때 스타였다가 자라면서 비뚤어지거나 불행해진 배우들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도 않을 정도니까요. 제가 부모가 되고 나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지더군요.


그렇지만 동시에 자식같은 어린 배우들을 오히려 더 눈여겨 보게 되기도 합니다.

앞서 안나소피아 롭이 나왔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볼 때도 그랬습니다. 주연 찰리로 나온 프레디 하이모어에겐 정말 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해도 꿈을 잃지 않는 착한 어린이 찰리 역을 어찌나 자연스럽게 해내는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찰리역을 한 프레디 하이모어.


대부분의 아역 배우들이 배우의 자녀들인데 하이모어도 아버지가 배우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요녀석 참 잘하네’ 그랬는데, 역시나 배우로 쭉쭉 잘 커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선 어린 나이에도 주연으로 나왔습니다. 조만간 개봉하는 <황금나침반>에도 나온다고하니 차세대 배우로 착착 크고 있군요.


최신작 <어거스트 러쉬>에서 주연으로 나온 프레디 하이모어.


<테라비시아>의 주연 조시 허처슨과는 92년생 동갑내기이니, 두 꼬마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앞으로 제게 또 하나의 흥미거리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안나소피아 롭까지. 이 세 꼬마가 아역 배우들이 빠지기 쉬운 위기를 잘 피해가며 영화팬들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작은 아씨들>과 <주만지>의 그 꼬마, 커스틴 던스트가 지금 최고 배우가 된 것처럼 말이죠.


1995년 <쥬만지>에 출연한 커스틴 던스트의 모습(가운데). 이후 커스틴 던스트는 <브링 잇 온>을 거쳐 <스파이더맨>에서 메리 제인 역으로 톱스타로 성장했다.


# 뱀다리 하나

 

<...테라비시아>에선 낯익은 배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로버트 패트릭, 바로 이 양반입니다.


<테라비시아>에서 주인공 제시 아빠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

 

로버트 패트릭은 본명보다도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액체 로봇 T-1000 역을 맡은 배우라고 말하는게 더 빠르겠지요. 미국 드라마 <X-파일>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겐 후반부에 멀더 요원 대신 투입된 ‘도겟 요원’이라고 하는게 더 확실하겠구요.


이 영화에선 무뚝뚝한 아빠로 나오는데 그새 나이가 많이 들어보여 왠지 제가 안타까웠습니다. 


91년작 <터미네이터2>에서 변신하는 액체로봇으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


# 기억에 남는 아역들

 

영화팬들에게 유명한 아역배우로는 역시 <챔프>의 리키 슈로더(어른이 된 다음에는 릭 슈로더란 이름으로 활동중)일 겁니다.


아역배우의 대명사였던 리키 슈로더.


저 역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아역 배우가 리키 슈로더입니다. <실버 스푼> 등으로도 워낙 사랑받았기에, 그가 대배우가 못된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매컬리 컬킨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죠?

 

여자 아역으로는 역시 드류 배리모어와 알리사 밀라노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 귀여운 막내 드류 베리모어.

 

대배우 가문 출신답게 어려서부터 타고난 연기력을 보여준 드류 배리모어는 성장 과정에선 온갖 사고를 쳐대더니 그래도 스타로 자리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고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교해보면 그래도 드류 배리모어가 더 중심을 잘 잡았다고 해야겠지요.

 

<코만도>(1985)에서 그토록 귀엽던 알리사 밀라노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활동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가수로도 활동했고 아주 귀여웠는데 이젠 성숙한 매력으로 무장한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그 꼬마가 의외로 노출을 즐기는 여배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알리사 밀라노의 청소년기.


제 기억에 남는 여자 꼬마 배우로는 단연 제니퍼 코넬리입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아메리카>에서 춤추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배우죠. 지금은, ...음, 많이 나이든 티가 역력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배우로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아역배우들이 떠오르시나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제니퍼 코넬리. 주인공 누들스를 사로잡은 바로 그 모습. 반면 코넬리의 어른역은 지금껏 영화사의 ‘미스 캐스팅’사례로 꼽힌다. 천하의 세르지오 감독님이 왜 그러셨을까?


# 아역배우들에 대한 영화도 있다?


예,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소재로 삼는 할리우드답게 아역배우 이야기 영화도 만들어냈습니다. 2003년 미국에서 개봉한 <디키 로버츠>란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인기를 누린 왕년의 아역배우가 커서 인기를 잃고 겪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고 합니다. 재주꾼 배우이자 제작자인 아담 샌들러가 기획한 영화입니다.


주제에 맞게 실제 영화에도 왕년의 유명 아역 출신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70년대 오빠부대를 거느렸던 청춘스타 레이프 가렛, 그리고 알리사 밀라노도 나왔다네요. <구니스>의 코리 펠드만 등도 출연했습니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아역 출신 배우들이 모두 모여 <위 아 더 월드>를 부르기까지 한답니다. 세상엔 정말 벼라별 영화가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