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롯데월드, 촌놈을 겁주려나 2006/03/21

딸기21 2018. 6. 5. 16:58


① 에펠탑안=서울을 대표하는 건물의 디자인으로는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으며 서울시 도시건축위원회가 퇴짜놓은 디자인. 롯데쪽은 제2롯데월드 단지 전체의 디자인 컨셉트인 유럽풍에 맞추고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형태로서 파리의 에펠탑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RTKL 설계.

② 첨성대안=롯데쪽이 채택되기 바라고 있는 디자인.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한국적 상징성과 아름다움, 과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주 첨성대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 첨성대의 사각형 기단과 원형 몸체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정사각형에서 시작하여 고층부로 올라가면서 원형으로 변한다. 미국 SOM 설계.

③ 장미꽃안=지상면에서 장미꽃처럼 여러 면을 가진 형태로 시작하해 맨꼭대기가 정팔각형으로 변형되는 디자인. 위로 올라가면서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역동적 효과를 줬다. 이런 유동적 움직임은 꽃이나 새 등 자연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으며, 한국 전통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우아하게 돌아가는 모습과도 관련이 있다고 롯데쪽은 설명했다. 미국 KPF사 설계.


“일단 너무 웃겼어요. 사진이 나온 신문을 들고 가서 ‘다들 모여봐’라고 불러 모아서 다같이 보면서 다시 한번 더 웃었어요. 웃기는 했지만 속은 안좋았어요. 설마 이렇게야 짓게 되겠냐고 했지요.”

한 건축전문지 기자는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그를 웃긴 것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한 건물의 조감도였다. 그러나 보통 건물은 아니다. 높이 555m. 112층짜리란 표현으로 바꾸면 실감이 난다. 들어서면 바로 한국 최고층 빌딩, 한국 대표 건
물이 될 ‘제2 롯데월드’다. 그런데 롯데가 서울시도시건축위원회에 낸 건물의 디자인(그림1)이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건축지 기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 롯데월드 빌딩 건축계획은 결국 지난달 22일 마침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건축심의와 허가 절차가 남았지만 이변이 없는한 국내 최고층 빌딩이 잠실벌에 들어서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언론의 관심은 이 거대빌딩이 공군과 항공기 운항 문제로 마찰을 빚는 점, 또는 이 건물이 장차 빚게 될 교통·환경상의 부작용 논란에 맞춰졌다. 이 과정에서 또다른 논란거리 하나는 비교적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갔다. 건축기자들을 웃기고 말았던 ‘디자인 문제’다. 

건축기자들이 예견한대로 이번 건립계획을 통과시키기 2주 전인 지난달 8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롯데쪽이 제출한 안을 되돌려 보냈다. 건물형태가 파리의 에펠탑과 비슷해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주위 경관보다 두드러지는 표지물)가 될 건물로서는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자 롯데는 바로 지난달 22일 새 디자인 시안을 내놨다. 전통건축물 ‘첨성대’를 본뜬 디자인(그림2)과 ‘장미꽃’ 모양(그림3) 두가지로, 롯데는 내심 첨성대안을 밀고 있다. 건립계획이 통과돼 이 두 가지 디자인 가운데 하나가 채택되면, 건물은 7~8월께 착공에 들어간다. 

제2 롯데월드가 지어지면 서울을 찾는 내외국인 모두가 들러보는 최고의 명소가 될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도 이 건물의 디자인 측면은 건축지 기자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건축계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써 논의대상에서 제외가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제2 롯데월드 건물의 등장과 그 디자인에는 지금 우리시대 건축과 건물, 건축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다.

 

“웬 에펠탑? 첨성대는 또 뭐냐”


제2 롯데월드 디자인은 상식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우선 아무리 상업용 빌딩이라고해도 한 나라를 대표할 건물을 ‘에펠탑’ 디자인으로 꾸며 건축심의를 받으려한 점이다. 또 하나는 에펠탑이 거부당하자 불과 보름여만에 새로운 디자인을, 그것도 2가지나 한꺼번에 낸 것, 그리고 에펠탑이 안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번엔 한국적 디자인인 ‘첨성대’를 본땄다”고 내놓는 태도다. 국가대표가 될 100몇층 짜리 건물을 짓는다면서 건물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관념은 실종됬다고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 두가지 모두가 한국의 상업자본 건축주, 그것도 대재벌인 건축주의 ‘마인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대다수 건축전문가들은 이번 롯데월드의 디자인에 대해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 

일단 에펠탑 디자인은 한마디로 ‘시대착오’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에펠탑을 그대로 ‘베낀’ 전례로는 일본의 ‘도쿄타워’가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이 지난 1960년대였는데, 지금 21세기에 “우리도 에펠탑이 있다”며 모조품을 들여놓았던 60년대 일본의 수준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되풀이하는 꼴이란 비판이다. 


한 건축과 교수는 “에펠탑을 본뜬 모양새는 건축디자인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게 무도한 미의식은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럴리야 없지만 이 디자인이 통과됐다면 나라망신”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는데, 최소한의 미학적 책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가 이한종씨는 “이 디자인을 보는 순간 건축가로서 슬펐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라.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를 찍기로 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영화를, 오리지널 스토리가 아니라 외국 유명영화를 살짝 바꿔 짝퉁으로 찍는다면 어떻겠는가. 건축가로서 황당하고, 슬펐다.” 

“롯데답다” 

동시에 건축계는 이번 디자인에 대해 “롯데답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비아냥이 먼저 담겨있지만 한편으로는 롯데의 철저한 상업주의가 보여주는 냉혹함을 다시 한번 느꼈기에 하는 말이다. 


한 중진 건축가는 “롯데는 그동안 철저하게 ‘촌놈 겁주기’ 전략으로 건물을 지어왔는데 이번 롯데월드의 디자인들 역시 그런 연장선에 있다”고 평했다. 한마디로 상업적 공간으로서 냉정하게 우리 국민들의 수준과 미의식의 평균치를 채택한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 수준에서는 굳이 높은 건축적·미학적 수준을 구현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유치한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롯데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테이션’이건 ‘유치찬란한 짬뽕’이건 보는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해지게 만드는 디자인이 상업공간으로는 최고라는 철학이 반영돼있다.” 

또다른 건축평론가는 “정말로 에펠탑 디자인으로 건물이 지어졌어도 아마 많은 이들은 좋아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형태의 꼴이 우습지만, ‘롯데가 그 수준에 정확하게 맞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의 대중적 건축마인드를 아주 적나라하게 꼬집어낸 디자인 아닌가? 에펠탑 모양으로 지어졌어도 아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미학적 논쟁이 어떻든 결국 이 과정에서 승자는 롯데다. 상업자본이 가장 노리는 것은 자기네 공간을 미리 이슈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초고층건물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제2 롯데월드의 높이만으로는 이슈가 되기 부족했고, 그런 현실에서 디자인이 새로운 이슈가 된 것 자체가 이 건물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곧 이 모든게 고도의 마케팅 작전이라고 봐야 한다는 평가다. 롯데도 에펠탑 모양은 거부당할 것을 미리 짐작했기 때문에 첨성대 등의 대안을 준비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상업자본이 승부를 걸려면 독특한 모양새가 최선일 것이다. 롯데월드가 상징하는 의미는 상업자본이 만들어낸 ‘펀(fun)한 공간’일텐데, 이번 디자인은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저급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는 비판 듣고 있지만 상업적 건물로서의 출발로는 나름대로 마케팅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건축평론가 전진삼씨) 

제대로 된 마천루가 되어다오 

초고층 건물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건축계의 오랜 논쟁 주제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집착은 ‘현대판 바벨탑’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근본주의적 지적부터 경제학적으로 비효율적이란 현실론까지 반대 주장은 다양하다. 여기에 맞서 초고층 건물이야말로 시대의 첨단기술의 증거이자 국력의 상징이니 꼭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떠나 일단 초고층 건물이 지어지게 된만큼 롯데월드 건물이 랜드마크 건물로서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건축에서 초고층 빌딩은 항상 그 시대의 건축 기술, 특히 구조공학의 결정체로서 구조미학의 대표성을 가져왔다. 그래서 건축계는 롯데월드 건물이 그런 본보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도시연대 강병기 대표는 “랜드마크 빌딩은 당대 최고의 구조공학의 결정체가 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롯데가 기술에 전념해 21세기초 세계에 자랑할만한 기술적 성과물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월간 <건축문화> 최연숙 편집장은 “88올림픽으로 조성된 스포츠 단지, 그리고 롯데월드란 위락 단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잠실이란 지역의 특성에 비춰볼 때 인근 한강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가능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건축적 맥락에서 맞다고 본다”고 평했다. 최 편집장은 “그러나 마천루는 구조 문제 때문에 다른 건물에 견줘 특히 아무나 디자인하지 못한다”며, “고층 건물일수록 디자인에 뛰어난 건축가가 설계해야 하는데 롯데월드 건물이 그런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