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쉽고 재미있는 건축입문서 4권 2006/05/03

딸기21 2018. 6. 5. 17:42

<문제> 

예술가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예술 장르는?


정답은 ‘건축’입니다.

건축은 한 마디로, ‘남의 돈으로 하는 예술’이지요.


프랭크 게리의 유명한 ‘해체주의’ 건물. 건축은 남의 돈 갖고 해야 하는 예술이다.



건축이 예술이란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그 이유는 우리 건축 풍토 때문일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들이 건축을 예술로 느낄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건축이란 부동산의 다른 이름일뿐이거나, 또는 건설이란 개념속에 갇혀있습니다. 대충 그까이꺼, 하는 식으로 집을 지어서 20년은커녕 10년만 지나도 헐고 다시 짓는 풍토속에서 건축과 예술을 이야기하기조차 쑥스러울 노릇입니다.


물론 아주 일부, 극히 부자들에게만 건축이란 예술을 ‘소유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경우에도 예술이 잘 안나옵니다. 

돈을 대는 건축주가 시키는대로만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정이 이렇다해도 분명 건축은 예술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건축이 ‘부자들의 예술’인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건축은 오히려 다른 예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감상의 민주성’이랄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일단 미술을 먼저 봅시다. 


미술은 소유의 측면에서는 가장 비민주적인 예술입니다. 미술이란 본질적으로 작품을 소유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미술작품을 도록이나 화보로 감상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진품은 아니지요. 


음악은? 미술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비싼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도 돈 만원만 주면 시디로 사서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끔 라디오에서도 거저 들려줍니다! 물론 진짜 현장에서 생으로 즐기려면 돈이 훨씬 더 들지요. 그래도 음악은 미술과는 달리 장르 자체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점은 영화도 비슷합니다.


그러면 건축은 어떨까요?


분명 건축물은 등기부 등본 상으로는 어느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대신 건물 그 자체는 누군나 보고 즐길 수 있지요. 그 안에는 들어가보기 어려워도. 예술 작품으로서의 건축물은 감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공개된 공간에 지어지면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한때는 임금님만 보고 즐기던 건축물도 이젠 모두의 것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잘 지은 건축물은 그 자체가 바로 공공예술품이 됩니다. 


건축가 이일훈씨의 인천 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왼쪽)과, 김개천 교수의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한국 현대건축 가운데 주목받은 사례들이다. 왼쪽 공부방은 저소득층 지역의 건축적 질서에 순응한 점이, 오른쪽 절집은 현대적 사찰 건축의 우사한 시도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건축이 전체 예술 분야의 하나로 갈래가 나뉘었지만, 사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예술이 건축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건축 자체가 하나의 종합예술이었던 겁니다.


가령 회화의 경우만 해도 건축의 일부일뿐, 그 것이 독립된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그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정의 그림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당이란 건축에 종속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조각? 당근 마찬가지지요. 건축을 장식하는 꾸밈새의 일부일뿐, 조각품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르네상스 이후 ‘예술’이란 개념이 생기면서 미술이 독립했고, 다시 ‘조각’이나 ‘회화’란 개념이 생기면서 분화된 것이죠.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샙니다만, 사실 그 이전의 ‘아트’는 기술로 취급당했습니다.

중세에는 회화나 조각은 손재주였기 때문에 직업의 등급이 머리재주로 하는 일보다 낮았습니다. 머리로 하는 일들을 그 당시에는 ‘자유학예’라고 불렀습니다. 이 자유학예가 지금 예술보다 높았던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르네상스가 되면서 예술이론가들이 회화나 조각도 존경할 일이라고 주장해서 지금처럼 근사해보이는 지위를 주었답니다.  


르네상스 때까지만해도 예술가들의 지위는 그냥 뭐 그랬습니다. 조각가는 석공조합에, 화가는 약종상조합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냥 ‘기술자’인 거죠.


화가가 왜 약종상조합에 들어가냐구요? 그건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물감(안료)를 약방에서 팔았거든요.


실제 조각가들이 예술가로 신분상승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일이었고, 이 르네상스 최고 스타인 미켈란젤로도 살아 생전 그런 신분상승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교황  바오로3세가 이 미켈란젤로를 정식으로 석공조합에서 해방시켜 주셨던 겁니다. 그리고 지금 말하는 ‘예술가’가 된 거지요.


좌우당간, 여기서 하고픈 말은, 건축이란 게 모든 조형예술을 통합한 거대예술이었다, 이겁니다. 실제 우리가 유명한 화가나 조각가로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등의 인물들도 당시 개념으로 보면 건축가들입니다. 건축가이면서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그랬던 겁니다.


건축이 왜 예술인지는,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내외 유명한 곳을 찾아갈 때, 목적지는 거의 대부분 자연이 아니면 ‘건축물’입니다.  우리가 유명한 사찰을 찾아가는 것은 결국 그 사찰 건축물을 보러가는 것이고, 우리가 외국에서 유명한 궁전을 찾아간다면 역시 궁궐건축물을 보러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건축물을 보러 여행을 다니는 셈입니다.


이 건축란 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사람은 사는 곳의 지배를 받는데, 사람 사는 데가 곧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사는 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집다운 집으로 만들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물론 집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만,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집, 집의 교환가치에만 온 신경을 쏟는게 좀 아쉽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건축가였습니다. 자신이 거처할 공간은 직접 설계했습니다. 자기가 나무 썰고 기둥 박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향 배치와 방의 구조, 풍수적 입지 등을 모두 스스로 고려해 집을 지었다 이겁니다. 집의 넓이와 가격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수양할 곳으로서의 집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임원경제지> 가운데 ‘집’에 관한 기록만을 모아 엮은 책인 <산수간에 집을 짓고>. 어떤 곳에 터를 잡으며 어떤 집을 지을 지 고민했던 선인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지었습니다. 땅이 작으면 작은대로, 재료가 적으면 적은대로 고민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초가집일망정 자기가 원하는대로 지었습니다. 온갖 지혜와 꾀로 자기 집을 꾸미고, 필요하면 고쳐나가며 살았던게 불과 몇십년 전까지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건축가였던 시절입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현대인들은 과거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건축적 마인드를 거세당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공장에서 지어내 파는 집들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변화의 결과일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건축을 경제행위로만 만들어 장난치는 이들이 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집장사들의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소비자들에게 용인되는 것은 건축문화가 그만큼 얕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다행히 최근들어 우리의 건축문화는 조금씩 바뀌어가는 추세입니다. 예전의 권위적이던 관공서건물들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이 그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성냥갑처럼 획일적이던 아파트들도 나름대로 멋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너무 비싸져서 또 문제이지요.)


건축이란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건축가도 이젠 스타가 나올법해졌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지만 건축이란 직종에 대한 인기는 분명 높아지고 있습니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먹고 살만 해야 건축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자, 오늘 본론입니다. 그러면 건축에 대한 책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우리 건축책의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알기 쉬운 건축책들이 최근들어서야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론서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근사한 화보집은 외국 것들이 대부분이지요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시각으로 글을 쓰는 필자들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건축이란 무엇인지 재미있게 알려주는 길잡이책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책들 가운데 몇권 권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절하고 쉽게 건축이란 분야에 대해 소개하는 책으로는 서현 한양대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98년에 나온 이래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개정판이 다시 나왔습니다. 책에서 개정판이 나왔다는 것은 곧 대중적으로 검증됐다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만큼 잘 팔리는 책이란 뜻입니다. 


보통 건축관련 일반책들은 건축가들의 사변적 에세이나 기행문이 많은데, 이 책은 온전히 건축 입문서로 기획되어 나온 책입니다. 전문가가 썼으면서도 전혀 전문가가 쓴 티를 안내는 게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장점입니다. 차분하고 흥미롭게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건축의 세계를 소개하면서 건축에 대한 호감도를 서서히 높여주는 책입니다.



국내 건축학자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반독자를 위해 책을 내는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도 검증된 건축 입문서로 권합니다.


책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내용은 아주 재밌습니다. 임 교수 특유의 진지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풍성한 교양상식을 함께 가르쳐줍니다. 주요한 건축물들의 가치를 보는 법, 건축을 이끌어온 흐름들, 그리고 건축가들의 고민 등등을 옛날 이야기 듣듯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흑백이라 아쉽습니다. 대신 책 값이 비싸지 않은 잇점도 있구요. 임 교수가 현대 건축과 건축 문화에 대해 쓴 책으로는 <현대건축과 뉴 휴머니즘>이란 책이 있습니다. 제목 때문에 무척 딱딱할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건축 ‘이야기’ 책 입니다. 건축에 대해 좀더 깊이-그러나 아주 깊이는 말고 책으로 알아보고 싶을 때 적합한 책입니다.



건축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양상현 교수의 책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은 통렬하게 우리 의식에 죽비를 내리칩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문제점을 건축이란 키워드로 하나하나 ‘조져나가는’ 책입니다. 건축 현실을 비판하는 교양서인 임석재 교수의 책 <건축, 우리의 자화상>나 앞서 소개한 <현대 건축과 휴머니즘>과 함께 읽고 비교해보면 좋겠습니다.



외국 멋진 건축물들을 시원한 사진과 함께 보면서 눈요기라도 하고 싶다면?


시공사에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조너선 클랜시 지음)가 괜찮습니다. 컬러사진이 많은 책 치고는 값도 싼 편입니다. 고대 건축물부터 최근 현대건축의 주요작까지 이른바 ‘핵심 정리’가 잘 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