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키스하고 싶어지는 도시, 그곳 최고의 광경 2013/08/12

딸기21 2024. 3. 14. 14:26

아름다운 도시에서 만난 풍경들

 
이 아름다운 도시의 분위기에 연인들은 절로 취한 모습이었다.
고풍어린 도시, 아름다운 다리, 그리고 밤. 이 세가지가 어울린 곳에서 연인들은 그들만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진=김명기

 

피렌체.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말하면 좋을까?

아마도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아 아름다운 도시라고 해야겠다.
이탈리아 대부분 명소들이 그렇듯 피렌체의 하늘도 푸르디 푸르고, 그 아래에선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사진=김명기

 

저 하늘이 아니어도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하늘 아래 도시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다.

 

사진=구본준

 

그리고 밤이 되면 피렌체는 낮 못잖게, 그리고 낮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꼭 봐야할 것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우선 윗 사진 오른쪽, 피렌체 전경을 찍으면 무조건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거대한 대성당을 빼놓을 수 없고, 왼쪽으로 성당과 마주보며 우뚝 솟아있는 베키오궁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것들이 아닌 소소한 것들도 아름다웠다.

 

 

 

 

 

사진=김명기

 

명품 브랜드 구치의 본사가 있는 도시, 가죽 공예의 본산으로 꼽히는 도시답게 화사한 신발 색깔들도 눈길을 끌었고,

 

사진=김명기

 

오랜 세월이 배어 있는 이런 돌바닥도 아름다웠다.
 
특별한 것이 굴러다디듯 모여 있는 이 도시, 피렌체가 자랑하는 세계적 명물들 속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남자를 기리는 조각상이었다. 아니, 그 조각상 주변을 감싼 묘한 분위기였다.
 
이탈리아가 가장 존경하는 이 남자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가 산타 크로체 성당이다.

 

 

이 아름다운 산타 크로체 성당은 성당인 동시에 묘지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위인들이 이 곳에 모셔져 있다.
그 면면들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아는, 인류사에 남은 진정 위인들이다.

르네상스의 간판 미켈란젤로, 저 유명한 마키아벨리, 과학의 영웅 갈릴레오,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 로시니까지...

그래서 이 성당은 위인들의 묘를 모아놓은 프랑스의 판테온처럼 ‘피렌체의 판테온’으로 불리는 묘지 성당이다.
 
그리고 이 성당 앞에는 이 위대한 영웅들의 도시가 가장 내세우는 인물의 조각상이 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피렌체가 낳은 수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피렌체는 유독 이 인물을 가장 상징적인 성당 앞에 조각상까지 세워 기리고 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독수리마저 올려다 보는 인물. 치열한 정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본 인물이다.

 

 

그 정신을 조각상은 잘 드러내고 있다. 돌로 빚어도 형형한 눈빛으로 그는 저 거대한 성당을 뒤로 하고 어딘가를 바라본다.
 
이 사람이 바로 단테다. 피렌체가 낳은 이 위대한 사상가, 또는 예언자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이끌었다.
그의 작품 <신곡>은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지만) 인류의 고전이 되었고, 라틴말을 쓰던 시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 그는 이탈리아의 정신적 지주이자 위대한 조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무덤은 비록 이 성당이 아니라 라베나에 있지만, 피렌체는 그를 자기 도시의 대표로 꼽고 있었다.
 
단테의 이 조각상은 분명 대단했고, 훌륭했다.
그러나 내가 사로잡힌 동상은 이 동상이 아니었다. 그 조각상 역시 단테를 조각한 것이지만 이 조각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골목 안에 있어 더 아름답고 경쾌한 동상을 만나다
 
진정 아름다웠던 그 조각상은 단테의 생가에 있었다. 수백년된 집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골목길 중간에 있는,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그냥 `집 같은 집‘이 단테의 집이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돌을 쌓아만든 그 느낌은 실로 매력적이었고, 위대한 인물이 살았던 집이란 점에서 그 분위기는 범상찮았다.
 
그리고, 이 집의 주인공 단테의 얼굴이 여기 있었다.
 

 

조각은 실로 작았다. 집 벽에 튀어나온 부재들 중 하나인 양 작은 돌 받침 위에 작은 흉상을 올렸을 뿐이었다.

 

사진=김명기

 

산타 크로체 성당 앞의 젊고 예리한 단테와 달리 생가 앞 단테는 나이들고 피곤에 지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 조각상과 크기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소박했다.

그러나 그래서 더 이 흉상은 마음을 움직인다.  
흉상이 된 단테는 이번에도 정면이 아니라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꿈꾼 새로운 세상을 응시하고 있으리라.

 

 

조각을 작게 만든 것은, 이 좁은 골목 안에 맞게, 그리고 성당처럼 크지 않은 생가 건물의 규모에 맞게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상을 벽에 붙여 올리는 처리는 실로 경쾌했고, 옆으로 살짝 틀어 올린 그 감각이 멋졌다. 산타 크로체 성당 앞, 아폴론 같은 젊고 웅혼한 영웅의 얼굴이 아니라 고뇌하는 스승의 얼굴처럼 묘사한 조각가의 생각도 와닿았다.
 
돌의 질감이 잘 살아나는 벽, 그리고 역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길바닥, 옆에는 오래된 우물까지 있는 그윽한 골목에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저 동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

 
그리고 저 동상 아래에 눈길이 꽂혔다. 절로 그리고 눈이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구본준

 

누군가 이 위대한 인물에게 꽃을 바쳤다. 바닥에는 헌화대가 따로 없었기에 그는 그냥 꽃을 돌바닥에 놓았다.

 

 

비가 내려 색깔이 더욱 짙어진 돌바닥 위에서 꽃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냥 꽃가지를 놓은 것이 아니라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에 줄지어 바친 꽃. 꽃을 하나 하나 떼어내 저 움푹한 모서리에 맞게 정성껏 놓았다. 누가 가져온 꽃이었을까. 알 수는 없었다.
 
그냥 붉고 노란, 그리고 송이가 작은 평범한 꽃이었지만 저 꽃을 줄세워 모서리 면에 놓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화려하고 근사한 화환보다도 저 꽃이 더 아름다워보였다. 꽃을 바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인데, 저 꽃을 놓은 이는 놓는 방법도 아름답게 디자인해 놓아두었다.

 

 

큰 기대를 않고 찾아간 단테의 생가는 예상 이상으로 소박했다. 그러나 피렌체에 머문 짧은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보여줬다. 조각은 작았지만 근사했고, 그 아래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은 조각 이상으로 기억에 남았다.
 
오랜 세월 빛바랜 돌 벽, 그 울퉁불퉁한 느낌과 잘 어울리는 아담한 단테의 흉상. 그 아래 역시 반질반질한듯 오돌도돌한 돌 바닥. 그 위에 남아 있는 물기, 그 벽과 바닥 사이에 줄지어선 꽃...
 
그 모습은 연인들에게 키스하고 싶어지게 하는 이 도시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