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바벨2세', 다음은 `마즈'가 나오길 2007/01/29

딸기21 2018. 6. 6. 10:37

정말 오래간만에 <바벨2세>가 돌아왔습니다.

한 출판사가 최근 이 만화를 다시 펴낸 덕분에 저도 20여년만에 이 만화를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한겨레> 1월29일치 참조)


<바벨2세>는 기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한국에서 만화란 장르의 사회사를 볼 때 아주 독특한 코드를 부여받은 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한국 만화산업의 문제점, 인식수준, 그리고 생산방식 등이 그대로 투영된 만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60년대 비교적 풍성하게 무르익었던 한국만화는 70년대 일본만화의 공습을 받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만화가 수입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 시기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만화란 것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바벨2세>의 경우는 ‘김동명’이란 가공의 이름을 작가로 적었습니다. <유리의 성>과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정영숙’이란 이름을 달고 나왔구요.


여기에 아예 일본만화를 다시 우리나라 작가들이 똑같이 베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국내 작가의 이름이 달려 있었지만 역시 원작이 일본 것임은 숨겼습니다. 저작권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그 이전에 일본에 대한 문화배격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시면 이해가 잘 안되실겁니다. 어떻게 국내 작가가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껴서 다시 만화로 선보였을까요?

그것은 당시 붐을 이루기 시작한 이른바 ‘소년지’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기 초등학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일반적으로 구독하던 <소년 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이 기사로 절반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채우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일본만화를 수입 못하니까 아예 작가들에게 일본만화를 베끼라고 주문했던 겁니다.


한 원로작가에게 들은 이야깁니다. “편집부에서 책을 하나 던져줘요. 그리고 그대로 그리라고 하는거지요. 그때는 다 그랬어요. 문제라고는 생각했지만 다들 그러니 뭐라고 의문을 달수도 없고, 또 일감을 잡지사에서 받으니 저희야 따질 것도 아니고...” 


실제 이두호 선생 등 일부 작가들은 그 시절에 대한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교수로 계시는 이두호 선생이 <소년중앙>에 그렸던 <무지개행진곡> 같은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부모님이 실종되어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린 일곱 남매의 자립 드라마인데, 원작은 일본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기현상은 비단 작가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작가들이 약자여서 강요당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도 피해자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베끼라고 시켰던 당시 잡지사들의 마인드가 독자를 속인 가장 큰 주범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속에서 한국만화로 둔갑했던 대표적인 만화가 <바벨2세>였습니다.  그래서 <바벨2세>가 일본만화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많은 만화팬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일본 만화라는 것을 알고 봐도 재미있을 만화였는데, 이를 숨겼으니 이해를 하더라도 속은 느낌이 들 수 밖에요. 결국 해적판과 베낀 만화를 강요당했던 시절의 풍경이 엉뚱하게도 <바벨2세>란 일본 만화에 녹아든 셈입니다.


좌우지간 저 역시 당시를 생각하면 먼저 <바벨2세>를 떠올리던 ‘바벨2세 키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진작 이 만화가 다시 나와주길 기대했는데 이번에 정식 한국어판으로 나온 것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중간에 두 차례인가 출간은 되었는데 정식 한국어판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리고 널리 유통되지도 못했구요. 그런 점에서 이번이 다시 한국독자들과 제대로 만나는 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바벨2세>를 본 소감은 이렇습니다.

첫째, 역시 좋은 만화는 세월을 초월하는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예나 지금이나 만화들이 독자를 우려먹는건 여전하구나, 란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바벨2세>는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만화 최고의 차이점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악역 ‘요미’라는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바벨2세>를 기억하는 30~40대들은 주인공 바벨2세 못잖게 인상적인 악당 요미를 선명하게 떠올립니다.

요미는 바벨2세와 비슷한 운명을 지닌 존재입니다. 바벨탑을 만든 외계인의 후예로 이 첨단 문명의 주인이 될만한 자질을 지닌 우수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바벨탑은 자기 주인으로 바벨2세를 택합니다. 요미가 못나서가 아니라 바벨2세가 더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바벨2세 못잖은 능력을 지닌 요미는 그래서 더 바벨2세와 치열하게 승부하고, 바벨2세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 씁니다. 마치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더 기억에 남듯 <바벨2세>에서도 요미는 주인공 이상으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런 멋진 캐럭터 덕분에 바벨2세가 세월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다음은 두 번째, 어린 시절에는 미처 몰랐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보고 나니 <바벨2세>에서 전에 못봤던 것들을 느끼게 된 점도 있습니다. 바로 ‘우려먹기’의 문제입니다.

일본이 만화왕국이 되면서 일본만화들에 종종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이 ‘질질 끌면서 우려먹는 것’입니다. 이는 한 만화가 인기를 얻게 되면 막대한 금전적 이익이 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어떤 만화가 한번 뜨면, 다른 만화들보다 그 만화를 고정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생기니까 돈이 되는 동안 최대한 오래 연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만화 <드래곤볼>과 <유유백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만화는 모두 90년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함께 연재됐던 작품입니다. 특징은 잘 아시겠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겁니다. 당시 이 잡지는 사상최대의 판매부수를 기록했고, 그 일등공신인 이 두만화를 최대한 우려먹기로 한 것이었죠. 


<드래곤볼>은 만화 초반부와 후반부가 거의 한 만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릅니다. 초반에는 아주 귀엽고 동화같은 분위기로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찾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격투물로 바뀝니다. 한 적을 쓰러뜨리고 나면 끝나는게 아니라 더 센적이 나타나고, 또 새로운 적이 등장하고...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요.


<유유백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반에 귀엽던 분위기가 후반에는 점점 더 강한 적들이 등장하고 이를 물리치는 전형적인 격투만화 구도로 바뀝니다. 독자들은 지겹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보아왔던 것이고 재미도 어느정도 있으니까 계속 읽게 됩니다. 초반의 신선했던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라도 말입니다.


일본만화가 이처럼 인기작품을 질질 끄는 것은 당연히 ‘돈’ 때문입니다. 한번 작품이 뜨면 작가와 그 그림팀 모두가 만화 하나로 돈을 벌게 되니까 확실한 작품으로 오랫동안 연재하는게 수입면에서는 안정적이니까요. 여기에 만화잡지들도 이를 요구합니다. 이런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결국 만화는 몇십권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요즘 히트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면 만화가 갖고 있던 장점인 아이디어와 상황 설정은 그대로 살리돼 약점인 이렇게 질질끄는 이야기는 대폭 줄여 훨씬 산뜻하게 끝을 맺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데쓰노트>라고 하겠습니다. 만화가 너무 늘어진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반면 영화에서는 그런 욕심을 접고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의 결말이 더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미 30년 된 만화지만 <바벨2세>에서도 이런 질질 끄는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다시 이 만화를 보시면 의외로 이 만화가 굉장히 길다고 느낄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바벨2세가 요미를 물리쳤나 싶으면 요미가 다시 공격해오고, 심지어 몇차례 요미가 죽었는데도 다시 살아나 지구를 위협합니다. 모두 이처럼 연재를 계속하려고 무리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 흔적들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7권 정도에서 마무리했으면 그래도 이해해줄만 했는데, 마지막 8권 부분은 정말 너무 우려먹었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무리해서 이어가는 티가 역력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된 이 만화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특히 바벨2세를 돕는 세 조연들은 역시 멋집니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충직한 로뎀, 거대한 익룡같은 로프로스, 우직해보이는 포세이돈 모두 <바벨2세>란 만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주인공 못잖은 조연들입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액체로봇이 아무리 실감나도 로뎀만은 못하더군요.



<바벨2세>가 나온 김에 한가지 더 희망을 가져봅니다.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또다른 에스에프 걸작 <마즈>를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바람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바벨2세>가 대중적으로는 더 성공했지만 이야기의 선명성, 그리고 질질 끌지 않는 깔끔한 마무리 등의 면에서 <마즈>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마즈의 로봇 가이아-국내 번역에서는 ‘카이야’로 되었었다


<마즈>는 <바벨2세>와 여러모로 흡사한 작품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유산을 남기고, 이를 소년이 이어받아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구조입니다. <바벨2세>가 71년작이고, <마즈>는 그보다 5년 뒤인 76년 나왔습니다.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마지막 에스에프로도 유명합니다. 이후 요코야마 미쓰테루는 이런 소년용 만화보다는 역사만화에 집중합니다. 국내에선 <대망>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전략 삼국지> 같은 장편만화를 여럿 남겼습니다.


그의 마지막 에스에프인 <마즈>는 분위기는 <바벨2세>보다 더 어둡고 우울하며 더 심각합니다. 대신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더 다양하고 더 이미지가 강렬해 메카닉 디자인도 <바벨2세>보다는 한결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메카닉 디자인들은 훗날 그의 다른 작품들에 나오는 로봇 디자인의 모티브로도 쓰였습니다.



<마즈>가 만화팬들을 놀래켰던 것은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결말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공개는 안하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 결말이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웠던 만화를 꼽으라면 이 만화를 꼽겠습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미쓰테루의 걸작이라고는 하나 최고 대표작이 아니니 이 만화를 다시 만나기는 제가 생각해도 힘들어 보이네요. 일본에서도 희귀본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기대는 해보렵니다. 누가 혹시 내주지 않으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