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거리의 속살-가로수와 거리가구 2006/09/01

딸기21 2018. 6. 5. 18:20

안녕하세요? 구본준 기잡니다.

처음 이 글방을 열었던 것은, 글방 이름대로 `스트리트 퍼니처', 그러니까 `거리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구인 거리가구에 대한 관심을 높여 거리 가구가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그래서 우리 거리가 보다 아름담고 정겨운 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지요.

그런데 제 게으름으로 정작 거리가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지난 주말 거리로 나갔습니다. 바로 청계천으로요.

 

청계천으로 나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청계천은 바로 지금 우리 거리가구의 수준, 그리고 우리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의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서울시가 가장 많은 신경과 예산을 써서 정비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거리의 가구들이, 그것도 가장 최신의 것으로 설치되었고, 다양한 디자인 실험이 펼쳐진 곳이 바로 청계천입니다. 

 



이날 코스는 청계천이 시작되는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출발해
오른편, 그러니까 청계천을 왼쪽으로 끼고 그 옆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주욱 청계천이 끝나는 신답부근까지 걸어가는데, 꼭 3시간이 걸리더군요.
그렇게 돌아본 이야기를 앞으로 몇차례에 나누고 섞어서
이 글방의 주제인 '스트리트 퍼니처'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이야기할 거리 가구는 바로 '가로수'입니다.
 
자, 이제 청계천을 따라 걸어가봅니다.
보통 청계천은 아래 개울가로 내려가 걷는 게 상식이지요.
하지만 그 위로 걸어가면 어떨까요?
생각보다 불편합니다. 그것도 상당히.
 
보시다시피 인도의 폭이 너무 좁습니다.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정도입니다.
걷고 싶은 거리, 걸어다니면서 여유를 즐기는 거리가 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어보입니다.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절로 듭니다.
 
더욱 걷기 힘든 점은,
청계천의 그 수많은 다리들를 만날 때마다 
매번 오른쪽 건널목을 건넌 뒤,
다시 직진 건널목 건너고,
또다시 왼쪽으로 건널목 건너야
걷던 청계천 옆 인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매번 `ㄷ'자 행보롤 해야 합니다.
 
좌우지간 이렇게 청계천 종주에 나서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청계천을 지켜주는 가로수들이
'이팝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팝나무란 나무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어떤 나무인지는 몰랐는데
이번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참고로 이팝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잠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이고 낙엽수 되겠습니다.
보기가 좋아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데,
이렇게 가로수로도 많이 쓰는 나무입니다. 
크게 자라면 20미터에 이르는데 아주 큰 것 중에는 이런 큰 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그래서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도 상당하더군요.
그런데 이름이 왜 이팝나무일까요?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연꽃으로 뒤덮인 모습이 쌀밥 같이서
이밥, 곧 이팝나무가 된 거라고 합니다.
이 합천 오도리 이팝나무에는 전설이 있다고 해요.
이 나무에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는 것이지요.
이팝나무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것은
전국 다른 곳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다.
 
이팝나무 이파리는 이렇고,
 

자료출처: 네이버

 

꽃은 이렇게 생겼네요.
 

사진출처: 네이버


그러고 보니 정말 하얀 쌀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 꽃이 좀 길어서,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종이 아니라
동남아에서 먹는 인디카종, 곧 알락미 비스무레 해보입니다.
좌우지간 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나무 전체가 쌀밥을 뒤집어쓴 것 같아 보인답니다.
찾아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바로 이렇게요.
 

자료출처: 네이버


자, 다시 청계천 이팝나무로 돌아갑니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면, 그야말로 이팝나무를 원없이 마주칠 수 있습니다.
다 자라면 20미터에 이른다고 하지만, 아직은 2미터를 좀 넘긴 젊은 나무들입니다.
조금 더 자라고 청계천 돌길에 세월의 더께가 좀 더 낄 때 쯤이면
행인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줄 것 같습니다.
 
이 이팝나무 밑둥을 정비하는 쇠판들의 모양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원래는 이렇게 생긴 보호판이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바뀝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두번째 것이 더 귀엽더군요.
 


잠깐 옆길로 새야 겠습니다.

 
이 가로수 밑둥에 대는 보호 쇠판도 일종의 '거리가구'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자꾸 변해왔습니다.
 
예전 것들은 그냥 쇠창살 모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직도 가장 많구요.
그리고 요즘 것들은 위의 것 처럼 쇠 부분이 넓어지고 구명 부분이 작아졌습니다.
 
예전 보호판들은 간혹 재밌는 과거의 흔적들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길 가로수 보조물을 하나 보시겠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동그라미 안에 `나라사랑 나무사랑'이라고 써있습니다. 

구호가 넘쳐나던 70~80년대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예전에는 정말 이 '나무사랑' 구호들이 정말 많았죠.
그 때는 눈길을 어디로 돌려도 이런 구호들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표어나 구호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 이렇게 숨은 그림처럼 남아있는 것들이 있답니다.
이른바 '거리가구'들이 이처럼 동시대를 담는 매체이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좌우지간, 이 가로수 보조물도 거리가구라는 것,
그리고 이런 거리가구의 핵심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디자인'에 있습니다.
이 가로수 보호쇠판을 발전시킨 디자인 하나 소개합니다.
가로수 둘레를 감싸는 의자로 만든 보조물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어갈 수 있고,
운치도 있으니 일석 이조 되겠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심가의 가로수 벤치입니다. 
 


지금까지 이 보조물들은 거리의 재떨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가로수와 그 동료인 이 보조물들이 담배꽁초 없는 깨끗한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날이 빨리 오겠죠?
 
그런데 이 기나긴 거리를 걷다보니,
이팝나무들이 몇그루나 되나 궁금해지더군요.
 
자세히 나무 주변에 달려있는 시설 표지들을 살펴봤더니
실제 나무마다 번호가 순서대로 붙어있었습니다.
중간쯤 갔을까, 문득 궁금해서 번호표를 봤더니 9백 몇번째 이팝나무였습니다.
 무작정 따라 걸으니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청계천 인도도 어느새 끝에 다다랐습니다.
맨끝 이팝나무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번호는 1441번.
오늘 하루 한 500그루의 이팝나무를 마주친 것이군요.
이팝나무와 안면을 터 즐거웠던 하루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청계천 나들이 두번째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거리가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