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길거리 벤치도 예술이 된다? 2006/03/02

딸기21 2018. 6. 5. 16:52

‘거리의 가구’도 예술이 될까요? 


됩니다. 다른 어떤 예술품보다도 더 주목받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결론을 내리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디자이너 겸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가 만든 파리 지하철 입구입니다. 아르누보 예술사조의 대표적 이미지로 꼽힐 정도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자료출처: 네이버


뭐 대단치 않다구요?

음, 그래도 이게 세계 모든 디자인 및 건축교과서에 실리는 디자인사의 걸작입니다.

식물 덩쿨처럼 보이는 저 이미지가 바로 ‘아르 누보’란 건데, 이 아르누보하면 바로 기마르란 작가가 대표선숩니다. 그리고 기마르의 대표작이 바로 이 지하철 입구 되겠습니다. 거리의 가구 ‘스트리트 퍼니처’가 예술이 된 대표사례입니다.


자, 그러면, 아주 훌륭한 예술가가 거리의 가구를 만들면 어떨까요? 

정말 훌륭한 공공의 기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옆나라 일본의 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일본 도쿄의 최고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록폰기 힐스에 있는 의자입니다.

록폰기 힐스는 일본 문화의 중심지로,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는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넵니다.


이 의자를 만든 사람은 ‘우치다 시게루’(1943~)란 분입니다. 의자의 이름은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 >. 우리말로 하자면 ’제가 드릴 건 사랑밖엔 없네요‘ 뭐 이런 뜻이겠지요.


이 의자의 이름은 사실 아주 유명한 재즈곡 제목입니다. 루이 암스트롱 버전이 가장 유명하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보면 의자가 왠지 재즈 선율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매끈매끈 만져보고 싶어지는 의자, 구불구불 보기만해도 재미난 의자, 그래서 그 굴곡에 따라 한번 앉아보고 누워보고 싶은 의자. 그런 의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거리를 지나다니는 재미가 더해지지 않을까요?


이 의자를 디자인한 우치다 시게루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스타 디자이너입니다. 

사실 일본이 지금처럼 선진국이 된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직업을 꼽으라면 단연 ‘디자이너’를 꼽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일본의 멋진 공예품, 전자제품 등을 만들어낸 주역이 바로 디자이너들이지요. 


이 우치다 시게루란 양반의 출세작은 ‘프리폼 의자’란 겁니다. 뭐 영어로 써놓으니까 거창해보이는데 보면 “아 그거”하는 그런 의잡니다. 의자인데 속에 베개처럼 겨같은 것이 들어서 앉는 사람이 대강 앉으면 되는 그 의잡니다. 실제 쌀겨가 들어가는 일본 베개에서 착안해 만든 의자입니다.


좌우당간 이 의자로 유명해진 뒤 시게루는 세계적 디자이너로 30여년 동안 일본을 대표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만든 의자가 바로 저 <사랑말곤 드릴게 없네~>라는 저 의잡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 의자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재는 다르군.’ 오랜 세월 쌓은 연륜으로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난초그림이랄까, 그 경쾌한 단순함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일본에 가면 꼭 저 의자에 앉아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중요한 점은, 저렇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거리의 가구, 곧 ‘스트리트 퍼니처’로 일본 도쿄 번화가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런 작가에게 도쿄 록폰기 구청이 돈을 대서 벤치를 놓지는 못하겠지요. 저 벤치를 놓는 돈은 일본 재벌인 모리란 기업에서 댔습니다. 


이 모리라는 회사는 예술품으로 품격을 높이는 마케팅의 최우수 사례로 경영학에서 늘 거론되는 회산데요, 자기네 건물 안에 미술관(http://www.mori.art.museum/english)을 만들어 히트쳤습니다. 58층짜리 건물 꼭대기 7개 층이 모두 미술관인데, 이런 위치에 미술관을 만든 전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모리미술관 관장이 2004년 우치다 시게루 같은 유명한 작가들과 함께 록폰기 힐스에 공공미술을 설치해 거리를 폼나게 하자는 프로젝트를 벌였습니다. 그 때 벤치를 만들어 록폰기 힐스에 설치한 것 가운데 대표작이 이 의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록폰기 힐스에는 이 의자말고도 다른 ‘예술가표 벤치’들이 더 들어섰지요. 우치다 시게루의 이 의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벤치에 예술의 향기가 덧씌워질 때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버스정류장 벤치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서울시내 버스정류장 의자들 가운데 그런 벤치도 한 두개 쯤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