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기자

모든 세상사 호기심 넘쳤던 글쟁이 ‘천국’이 궁금했을까2014-11-13

딸기21 2018. 6. 5. 18:04
<한겨레> 구본준 기자. 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제공
<한겨레> 구본준 기자. 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제공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기자 구본준입니다.’

<한겨레> 구본준(46·사진) 기자는 블로그나 책의 자기소개란에 늘 이렇게 적었다. ‘땅콩집을 지은 건축전문기자’로 유명했지만 사실 그는 만화, 출판, 가구, 음악, 여행 등 훨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글을 전문성 있게, 때로는 가볍고 재미있게 적어 올리는 그의 블로그와 트위터는 늘 많은 친구와 이웃들로 북적였다.

지난 12일 오후 멀리 이탈리아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건축문화재 보존과 복원과정’이라는 단기교육과정에 참여해 마지막 베네치아 취재 일정을 거의 마친 참이었다. 일행과 밤까지 어울리고 호텔방으로 돌아간 그는 아침이 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현지 의사는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구 기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주연 건축평론가는 “스스로 ‘일간지 유일의 건축전문기자’를 자부해온 구 기자는 건축 저널리스트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했다”며 “꾸준한 노력과 저력으로 구본준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그의 기사와 의견이 건축계 안에서도 통용될 정도로 나름의 입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 기자와 건축계가 앞으로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구 기자가 건축가 이현욱씨와 함께 두 집이 마당을 공유하는 ‘땅콩집’을 지으며 쓴 <두 남자의 집 짓기>를 출판한 도서출판 마티의 정희경 대표는 “그는 ‘땅콩집’을 널리 알리는 차원을 넘어, 건축을 공학 또는 예술로만 접근하는 우리 현실에서 건축을 문화이자 생활로 바라보는 길을 열었다”며 “대중에게 건축을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말했다.

에스엔에스(SNS)에도 애도글이 넘쳐나고 있다. 그의 생전 관심의 폭만큼이나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각계각층이다.

만화가 강풀씨는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이라는 글을 남겨 그를 추도했다. 육아 멘토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서천석씨도 “좋아하는 작가이자 뒤늦게 만난 벗, 구본준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 전에도 웃으며 통화했던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라며 고인을 기억했다.

구본준 기자는 1995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문화부 등을 거치며 기동취재팀장, 기획취재팀장, 책지성팀장, 대중문화팀장 등을 두루 맡았다. (본인이 늘 농담했듯) 대학 전공인 중문학을 빼고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기자였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문화’였다. 그는 문화전문기자의 길을 걷는 데 대한 자부심이 늘 넘쳤다.

그는 대다수 신문기자들이 종이신문에만 코 박고 있던 시절, 블로그를 만들고 책을 쓰면서 대중들과 교감하려고 애썼다. 전문성을 더 쌓겠다며 국내 연수에 들어간 올해도 부지런히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그는 <한국의 글쟁이들>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 <서른살 직장인 책 읽기를 배우다>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들은 13일 한겨레신문사와 언론재단 관계자 등과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했으며 현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서울로 고인을 모실 예정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