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미친 아버지, 아버지를 응징한 아들, 그러나 결국 닮고 말았던 부자지간 2009/02/26

딸기21 2018. 10. 5. 15:49

광기의 파괴력은 광기 소유자가 가진 권력의 크기와 기하급수적으로 정비례한다. 

쉽게 말해 센 놈이 미치면 다치는 사람이 억수로 많아진다는, 그런 이야기다.

 

광기의 대상이 자기 마누라라면? 분명 아름다운 사랑은 맞다. 그런데, 왕이 자기 부인에게 미치면 이상한 결과들이 많이 나온다. 

당 현종과 양귀비를 보라. 현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마누라가 먼저 죽었는데도 잊지 못하는 바람에 자기 인생도 망친 왕이 있다. 

 

광기가 낳은 최고의 건축물 타지 마할. 저 타지 마할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친 황제 ‘샤 자한’의 이름도 함께 유명해졌다.



일본이 중국에 쳐들어가겠다고 조선에게 길 좀 내달라다가 조선부터 쳐들어갔던 1592년, 북인도를 지배하던 무굴제국 황실에선 귀염둥이 왕자가 태어났다. 50년이나 무굴제국을 통치했던 인도판 영조 임금, 뛰어난 황제 악바르의 세번째 손자였다. 

악바르 할배 황제는 귀여운 손자에게 ‘쿠람’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쿠람의 별자리는 최고 영웅 티무르의 별자리와 같았다고 한다. 스펙으로만 보면 구준표도 저리가라다.

 

술을 너무 사랑했던 황제의 아버지

 

악바르의 아들, 그러니까 쿠람의 아빠인 자한기르는 자식들로 속 좀 썩었던 사람이다. 당시 무굴제국의 가장 큰 반대파는 라지푸트란 동네의 대장 만 싱이란 군주였다. 자한기르는 큰 아들 쿠스라우를 만 싱네 집으로 장가를 보냈다. 좀 싸우지 말고 사돈을 맺어 잘 지내보자, 그런 전략,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즐겼던 그 전략이었다.

 

그런데 왠걸, 아들 쿠스라우는 장인과 코드가 이상하게 맞아떨어지더니 아버지 자한기르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아버지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켰던 쿠스라우는 전투에서 져서 황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어차피 황제 자리를 이을 것인데 그걸 못참고 일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권력이란 모르는 법. 황제 자리가 꼭 큰아들에게 가라는 법은 없다. 늘 형제간의 암투는 벌어진다. 그 힘든 토너먼트를 거치느니 바로 아버지를 쳐서 황제가 되자는 것은, 공정상으로는 지름길이었겠으나 확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아들의 쿠데타를 진압한 아버지 자한기르는 아들 쿠스라우를 죽이지 않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자한기르 잔인하기로 소문난 황제였지만 그래도 아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처리라고 하겠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자한기르에게 인생 최고의 파트너는 술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자한기르는, 술만 먹으면 뭐가 되는 황제였다는 점. 지나친 음주로 정신 건강을 해쳤는지 그는 굉장히 잔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치를 떨었을 정도였단다.

 

이 자한기르에게 기쁨을 준 아들이 바로 세째 아들 쿠람이었을 것이다. 정복자였던 아버지 악바르의 뒤를 이은 자한기르도 정복사업을 벌였는데, 이게 잘 이뤄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세째 아들 쿠람이 데칸 정복의 고비가 되는 승리를 거뒀다. 자한기르는 너무나 기뻣던 모양이다. 아들 쿠람에게 새 이름까지 만들어줬다. “너는 이제 ‘세계의 황제’다!”

세계의 황제, 그래서 쿠람의 새 이름은 ‘샤 자한’이 되었다. 멋진 이름 아닌가?

 

인도판 광해군과 인목대비 이야기

 

아들에게 멋진 이름을 붙여주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자한기르는 잔인하고 술을 퍼마셨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척 낭만적인 면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챌 수 있다. 실제 그는 사랑에도 낭만적이었다.

 

자한기르는 한 페르샤 여자를 좋아했는데, 이 여자는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남편 직장 부임지에 따라가버렸다. 그런데 그 뒤 여자의 남편은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과부가 된 페르샤 여자는 자한기르의 황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달 만에’ 자한기르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고 한다. 황제의 부인이 되면서 이 페르샤 여자의 이름도 ‘누르 자한’ 곧 ‘세계의 빛’으로 바뀌었다. 역시 낭만적인 이름이라 하겠다. 

 

새 결혼하고 마음이 안정된 탓이었을까, 자한기르는 좀더 열심히 술을 마셨던 듯하다. 그래서 황제 업무는 거의 마누라 누르 자할이 했다고 한다. 

이 누르 자할은 상당히 경영능력이 좋았던 모양이다. 국가 운영에 눈뜬 누르 자할은 옆에서 술만 먹으면서 시들시들해진 남편 황제를 보면서 미래를 위한 전략을 세운다. 황제의 막내  아들 샤르야르, 그러니까 우리의 샤 자한의 동생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고, 이 샤르야르를 통해 자기 권력을 이어가자고 계획을 짰다. 

‘자기 남편의 아들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낸다’는 말이 무슨 막장 드라마 출생의 비밀을 꼬고 또 꼰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옛날 황실들은 다 저랬다는 거.

 

당연히 아버지의 최고 심복이자 계승자 1순위였던 쿠람 샤 자한은 열이 받는다. 아버지에게 따져봤으나 이미 누르 자할 치맛폭에 싸인 아버지는 총기를 잃었고,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왕위계승권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아버지랑 원수가 될 뻔했다. 결국 오랫 동안 제국을 떠돌며 아버지와 화해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 자한기르는 세상을 떠난다. 세째 아들 샤르야르는 재빨리 황제에 올랐다고 선포한다. 누르 자할의 노림수는 맞아떨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샤 자한, 결코 만만치 않다. 바로 장인에게 찾아가 한판 승부를 벌이자고 권했다. 그럼 장인은 누구냐, 의붓엄마 누르자한의 남동생인 아자프 칸이었다. 샤 자한은 아버지의 부인과 싸우기 위해 아버지 부인의 동생인 장인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말이다. 

그럼 장인은 자기 동생의 의붓아들과 합세해 동생과 맞붙었다는 이야기? 

원 참 복잡하기도 하다. 좌우지간 제국 군대가 샤 자한을 지지하고 있었으므로 승산은 높았고, 샤 자한은 도박에 성공했다. 

 

인도 무굴제국의 권력쟁탈전은 바로 이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황실 온 가족이 황제의 자리를 놓고 암투와 전쟁을 벌이는 콩가루 황실가족 권력 쟁탈전 중계같은 영화 <황후화>.

 

 

샤 자한은 아버지의 부인이자 정치적 라이벌인 누르 자할을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 자한기르의 무덤 옆에 유배시켜 평생 무덤을 돌보게 했다. 

그런데, 의붓아들 왕이 의붓 엄마 왕비를 유배하는 장면,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같지 않은가? 바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광해군이 정치적 라이벌 제거를 위해 유배시켰던 인목대비는 결국 모진 인생 버티며 살아남아 광해군이 왕위에 쫓겨나 자기 아래 무릎 꿇는 것을 봤지만, 샤자한이 유배한 누르 자할에겐 그런 반전은 없었다. 평생 남편 무덤을 지키다 숨졌다.

 

샤 자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그의 가족사를 늘어놓은 것은, 이 양반의 심리와 집안 특성, 유전자 성향 등을 미리 좀 알기를 바라서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기 쉬우며, 미운 사람을 오히려 닮게 되며, 권력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게임은 늘 되풀이된다는 것을 샤 자한과 그의 가족들은 온몸으로 보여주며 역사에 남겼다.

 

그럼 ‘세계의 황제’가 되라는 알콜중독 아버지의 염원을 담고 권좌에 오른 우리의 샤 자한은 과연 어떤 황제가 되었을까? 

술 문제에선 아버지를 능가했다. 아버지가 술로 망하는 것을 본 그는 평생 술을 멀리했다.

그리고 저 타지 마할을 남겼고, 자기 이름도 남겼다. 그 이야기는 그러나 결코 아름답기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거.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샤 자한, 광기를 건축으로 폭발하다

 

샤 자한의 마누라는 뭄타즈 마할이었다. 

이 뭄타즈 아줌마의 작업복은 잠옷이었다. 자녀를 무려 14명이나 낳았다. 몸이 허락하는 한 자녀를 낳았던 사례가 있다면 바로 뭄타즈 마할이라고 하겠다. 그녀는 14명째 자녀를 낳다가 숨지고 말았다. 

 

아버지를 닮아 사랑에는 낭만적이었던 샤 자한은 실로 큰 슬픔에 빠졌다. 떠나간 부인을 아무리 그리워해도 그를 되살릴순 없었다. 

오르페우스처럼 울부짖던 황제는 자기가 마누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마누라의 무덤을 아름답게 지어 기리자는 것이었다. 당시 황제라면 충분히 내릴 만한 결정이었다. 그의 고조 할아버지 후마윤이 세상을 떠난 뒤 고조 할머니가 남편 후마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일찌감치 후마윤묘를 지은 바 있지 않은가.

 

“어, 타지마할이 빨간색도 있었네?” 가장자리 기둥만 없을뿐 모양은 타지마할과 쌍동이처럼 같은 후마윤묘. 타지마할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건물이다.


 

아내의 무덤을 아름답게 짓자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가 무덤을 너무나 ‘심하게 아름답게’ 짓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세상을 떠난 뭄타즈 마할이 다시 세상에 돌아와 살아야할 곳이니 낙원처럼 호화롭게 짓기로 했다.

 

뭄타즈 마할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타지 마할 공사가 시작됐다. 

연간 20만명이 이 무덤을 지으려고 생고생을 했다. 사람만 아니라 코끼리들도 고생을 했다. 건축을 맡았던 이는 이란 출신의 우스타드 이샤였는데, 그는 건축주인 황제의 광기를 알아보고 그 광기에 걸맞는 건축가적 광기로 호응했다. 제대로 장식 기법을 살리려면 뭐든지 명품 오리지날로 해야된다고 주장해서 이탈리아, 터키, 중국에서 기술자를 불러 무덤을 꾸몄다. 돈을 물쓰듯 썼음은 물론이다. 

이 짓을 시작한 지 무려 22년만에야 마침내 타지마할이 완공됐다.


타지마할 주 입구. 가운데 문 속으로 타지마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진정한 광기의 건축이다. 

샤 자한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돈을 쏟아부어 지었다. 국가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서같은 어떤 목적도 필요 없었다. 그냥 내 마누라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뿐이었다. 

뭄타즈 마할을 기리는 것말고는 아무런 쓸모도 목적도 없는 건물, 그래서 타지마할은 아름답다. 광기가 빚어낸 숨막히는 아름다움이다. 건물을 지으며 이것저것 묻고 따졌다면 결코 지을 수 없는 건물이다. 

 

효용가치만 따지면 세상에 이렇게 쓸모없는 건물도 없다. 그냥 광기에 사로잡힌 황제 저 혼자 좋자고 만든 건물이다. 그래서 이토록 지독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 타지마할에서 받은 놀라운 시각적 충격은 왜 스탕달 신드롬이란 것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건물, 그 건물을 아무 생각없이 하루 종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건물이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경험은 건축 답사상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내가 봐도 저리 아름다우니, 직접 지은 샤 자한 황제의 눈에는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겠는가. 그는 다시 한번 광기를 발동한다. 저 아름다운 무덤의 맞은편에 자기의 무덤도 똑같이 짓자고 말이다. 

그가 저 타지마할이 완성된 뒤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을 또 짓지 못하게 공사관계자들의 손을 다 잘라버렸다느니 하는 말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남기기에 충분한 광기였다.

 

할아버지에게 덤볐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 다시 덤빈 아들

 

저 타지마할을 짓는데 모든 돈을 쏟아부으니 제국의 재정은 좋을리 없었다. 죽은 엄마 묘 짓기에 미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샤 자한이 늙고 병들어 자리에 눕자 아들들의 가슴속엔 야망들이 불타오른다. 이런 야망 싸움에선 가장 강도가 센 사람이 이기게 된다. 가장 야망이 컸던 아들은 큰 아들이 아닌 세째 아들 아우랑제브였다.

 

아우랑제브는 체질이 황제 체질임이 분명했다. 그는 일단 과대망상까지는 아니어도 야망이 실로 글로벌 수준이었다. 무굴제국 황제들의 조상은 인도가 아니라 저 멀리 중앙아시아였다. 그 곳을 주름잡았던 정복자 티무르의 혈통이다. 그 조상들의 스케일을 늘 흠모했던 아우랑제브는 티무르처럼 제국을 넓히고 이슬람을 널리 퍼뜨리겠다는 목표에 일생을 걸었다. 당연히 황제가 되어야만 가능한 꿈들이다. 

그는 황제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무굴 황제 집안 특유의 풍류즐기기-주색잡기-를 멀리하며 어려서는 경전을 읽고, 커서는 군사원정을 다니며 전쟁을 익혔다고 한다. 인간적으로는 참 재미없었을 듯한 인간이 아닌가. 그런 인간들이 큰 일을 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야망을 가슴이 터지도록 불태우던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 자한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결단을 내린다. 자기 아버지도 황제가 되기 위해서 내렸던 결단 말이다. 바로 황제가 되기 위해 아버지와 맞장 뜨기다. 치밀하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아우랑제브는 형들을 제치고 단숨에 황제가 된다. 그리고 황제가 된 아들은 아버지 샤 자한을 아그라성에 가둔다. 


황제 자리를 빼앗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아버지 샤 자한을 가둔 아그라성.



아들이 아버지 왕을 내쫓아 감옥에 가둔다? 또 한번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같지 않은가? 바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이야기를 빼닮았다. 

아버지가 견훤이 왕위를 물려주지 않을 것 같자 열받은 아들 신검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둔다. 견훤은 석달 만에 금산사를 탈출해 적이었던 왕건에게 투항했지만, 샤 자한은 탈출은커녕 8년을 갇혀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그라성에서 바라 보는 타지마할.


아우랑제브가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샤 자한의 8년 유배생활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 있으면 그가 갇힌 아그라성 앞을 흐르는 야무나강 건너편으로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내를 결코 못잊어 타지마할을 세운 그에게 감옥에 갇혀 타지마할을 바라만 보게 된 것처럼 가혹한 형벌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8년 동안 자기가 지은 건물만 쳐다보다가 그는 숨을 거둔다.


아버지를 증오했던 아우랑제브, 그는 아버지와 달랐을까?

 

중앙아시아 투르크 몽골의 왕 바부르가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인도에 세운 무굴 제국은 악바르 시대에 꽃을 피웠고 자한기르와 샤 자한 시대에 화려하게 성숙했다. 

그들을 이은 황제 체질 황제 아우랑제브는 정복과 확장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제국의 힘은 강대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쇠락은 절정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영토는 넓어졌어도 적들은 굴복하지 않고 아우랑제브의 침략에 맞섰다. 끈질긴 적들을 굴복시키지 못해 속앓이를 하던 아우랑제브는 우울증에 걸려 우울해하다가 죽고 만다. 

 

아우랑제브에게 부인에 대한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쳐 쓸 데 없는 건물 짓느라 나라를 혼란하게 한 아버지가 존경하고픈 아버지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싫어 내쫓았던 그 자신도 결국 아버지와 똑같은 일들을 하고 만다. 아이러니하고 묘한 인간의 속성이다. 또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도전했던 아버지처럼 아버지에게 도전해 아버지를 가뒀고, 

권좌에 앉기 위해 잔인하게 정적이었던 가족들을 처단했던 아버지처럼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형제 셋과 아들 하나, 조카 하나를 죽였다.

그러나 그가 가장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전철을 따르고 말았던 것은, 

죽은 아내를 못잊어 타지마할을 세웠던 아버지처럼 그 자신도 부인 라비아 다우라니의 무덤 ‘비비 카 마크바라’를 세운 것이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건축물이다. 그저 무덤 하나 화끈하게 지으려 했을 뿐이었겠지만 건축은 때론 알아서 시대를 담는다. 무굴제국의 역사는 그 황제들이 지은 건물속에 숨어있기도 하다.


무굴의 절정기 만들어진 샤 자한의 타지마할이 제국의 절정을 미학의 절정으로 보여줬다면, 아우랑제브의 비비 카 마크바라는 오히려 건축미학의 퇴보를 보여준다. 타지마할에 견주면 그 아름다움은 초라하며, 비레나 웅장함도 조악할 정도다. 무굴제국의 시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저 건물에 담겨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모습과 비교해보면 타지마할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