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경비실의 반란?-인상적인 경비실 건축 2009/03/03

딸기21 2018. 10. 10. 14:15

대학로의 이면도로, 동숭동에서 이화동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은 묘한 것들이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길이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낙후된, 그래서 정겨운 옛 건물들과 틈틈이 들어선 상업공간들이 어떻게 서로를 품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공존하는 듯한 곳이다. 여러 층위의 시간들과 디자인, 건축양식들이 짬뽕이 된 그 느낌이 다른 골목들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다른 곳에서였다면 큰 길가에 있을 법한 굵직한 건물들도 이 안쪽길로 들어오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사무실 이로재나, 국민대 디자인센터 같은 것들이 이 뒷편에 숨어있다.


경비실, 전통건축을 입어보다

 

모처럼 혜화역 1번 출구 앞 가장 큰 골목길로 이 이면도로를 걸어봤다. 혜화역 1번출구 쪽 큰 골목으로 모처럼 걸어가봤다. 전에 없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경비실이다. 근래에 본 가장 인상적인 경비실이다. 




저 전통 벽돌건축형 경비실은 대학로의 터줏대감인 동숭아트센터 경비실이다. 잿빛 벽돌을 쌓고 꽃담처럼 모양을 내서 한옥 담장과 잘 어우러진다. 내부 시설은, 살짝 보니 외관처럼 좋지는 않았으나 외관만은 보기에 좋았다.


예전에는 왜 못봤을까? 아니, 너무 오랫만에 대학로에 와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저 담장과 경비실의 디자인과 조화는 괜찮은데, 그 앞에 있는 조형물이 예상 이상으로 조악해서 같은 디자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것.

앞에 있는 조형물을 보자.

 



앞쪽의 기둥은 전통건축의 모양낸 장식굴뚝을 본뜬 것이다. 문양을 넣고 그럴 듯하게 모사한 것까진 좋은데, 그 위에 세워놓은 한 낭자의 조형물이 심하게 ‘깬다’. 

잘 만들어서 왜 저렇게 마지막에 화끈하게 통일성을 망가뜨렸을까? 

 

남의 건물을 보면서 혼자 ‘씰데없는’ 여러가지 추측이며 궁리를 해본다. 골목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한몸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곳이다. 이 공간에서 만나는 것들을 괜히 살펴보고 생각해보고 하는 것은 묘한 재미가 있다.


나는 경비실 건축이 재미있다

 

남들은 참 할 일 없다고들 하지만, 내 취미 가운데 하나는 저런 경비실 사진을 찍는 것이다. 저 위의 두 사진은 폰카여서 무척 구린 점을 양해해주시길.


그런데 왜 경비실을 찍고 다니냐고?

경비실도 내 보기엔 어엿하고 중요한 건축물이다. 요즘 건물들만 아니라 옛날 전통 건축물에도 간혹 경비실이 있었다. 관청 건물이나 주요 인사의 집들이 그랬다. 옛날 지방 고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객사에는 수직사라는 이름의 경비건물이 딸려있기도 했다. 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에도 경호인력 건물로 수직사를 따로 뒀다. 운현궁 앞마당 입구쪽에 있는데, 똑같은 한옥이어서 모양으로는 쉽게 구별되진 않는다.

물론 일반 가정집에는 경비실이 따로 있진 않았다. 그래도 그 기능을 하는 공간은 당연히 있었다. 예전 한옥에서 경비실 개념의 공간은 솟을대문 옆에 있는 행랑채라고 할 수 있다. 하인들의 방이 아예 대문에 붙어있었다.

 

내가 경비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경비실이 귀여운 미니어쳐 건축이기 때문이다. 미니어처는 다 귀엽지 않은가. 사람은 아기가 귀엽고, 개는 강아지가 예쁜법. 뭐든지 줄여놓으면 귀엽고 눈길이 간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잘 지은 건물의 디자인 컨셉대로 작게 지어 붙여놓는 경비실들은 본 건물 못잖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경비실이 아주 드물다는 거.

 

이런 부속공간들은 대부분 본 건물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경비실스러운 디자인으로 허접하게 짓는 곳들이 많아 아쉽다. 그래서 부속공간을 같은 디자인으로 통일성을 추구해 지은 건물들을 보면 나혼자 높은 가산점을 주곤한다. 


대표적인 건물이 서울 서대문의 경찰청 건물이다. 경찰청 건물은 1세대 최고 스타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것으로, 부속건물도 본건물과 같게 원기둥 디자인 컨셉으로 통일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당시 건물들은 그 당연한 것을 잘 안하던 시절이어서 경찰청의 부속 건물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경비실을 만나면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내 나름으로 즐기는 도시건축 감상인데, 그 재미가 아주 솔찮다. 한가하고 쓸데 없는 취미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괜찮은 경비실을 발견하면 왠지 그 동네의 숨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갑다. 경비실이란 공간에도 신경을 썼을 건축주의 정성을 헤아리게 된다. 웅장한 빌딩 건축 못잖게 골목 속 귀여운 경비실 하나가 우리가 사는 도시에선 더 소중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