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2008년 최고의 추리소설은? 2008/12/30

딸기21 2018. 9. 14. 15:53

‘그날’이 왔다. 세밑에 즐기는 혼자만의 이벤트날이다. 올해 지하철이란 공간을 즐겁게 해준 최고의 출퇴근 파트너, 2008년 내맘대로 추리&미스터리 소설 베스트 뽑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가 대상은 ‘올해 읽은, 올해 나온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중에서 내가 읽은 책‘만을 대상으로 한다. 왜 이런 책은 읽지도 않아서 빠뜨렸냐고 항의할만한 책이 있다면 주저말고 가차없이 알려주시길. 


올해 최고의 여성 탐정-엽기 말괄량이 삐삐, 리스베트 살란데르


지난해 쓴 ’2007년 추리베스트‘에서 언급했듯 2007년은 오쿠다 히데오를 만나 행복한 해’였다. ‘인간적인 중년 남성’이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의 소설이 페미니즘 관점에선 좀 트집 잡힐 구석이 있을지 몰라도 그 재미에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경찰 기자 출신이라니 기자로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올해에는 유럽과 미국의 기자 출신 작가들이 행복하게 해줬다. 2008년을 정의하자면 ‘스티그 라르손과 마이클 코넬리를 만난 해’라고 하겠다. 물론 기자라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같은 기자를 절망하게 만드는 기자들이라고나 할까. 남들은 이런 소설도 쓰는데 난 도대체 뭐냐, 그런 절망감과 열등감을 잔뜩 안겨준, 그러나 밉기는커녕 반다운 이야기꾼들이다.


스웨덴 기자 스티그 라르손은 노후 대책을 위해 3부작 소설 <밀레니엄>(아르테 펴냄)을 썼다고 한다. 그가 바라던대로 이 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스웨덴에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 됐고, 세계 수십개 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됐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 갑자기 죽는 바람에 막대한 인세는 한푼도 써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생무상 이전에 예측불가라고나 할까.

국내에서는 어땠을까? 적잖게 팔렸고, 독자평도 다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재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팔렸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엔 미안한 말인데 표지가 안티 수준이다. 표지에서 강한 ‘시대착오적인 미학의 포스’를 느껴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도전했다. 

결과는? 앞서 말했듯 만나서 즐거웠던 책이다. 


 


 

표지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책을 고를 때, 특히 소설을 고를 때 왠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요령은 있다. 뭐냐하면 여러권짜리 소설은 거의 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곧, 여러권짜리 소설이면 거의 안심하고 읽을만하다는 이야기다.

 

뭔 뻔한 소리냐고? 책을 냈을 때 안팔리면 가장 손해보는 사람은 저자가 아니다. 책을 낸 출판사다. 저자보다 훨씬 더 책을 만드는 비용을 많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 값의 10% 정도만을 인세로 받는 것이며, 출판사가 나머지 부가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책 중에서도 가장 리스크가 큰 책이 소설이다. 소설은 읽는 재미를 위한 책이지 책 그 자체로는 쓸모나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어서 안팔리면 끝장 나는 아이템이다. 그러니 출판사로선 여러권짜리 대형 소설을 펴낼 때는 실로 고민하게 된다. 안팔리면 타격이 훨씬 커지는 탓이다. 그런 고민에도 여러권짜리 소설이 나왔다면 이는 출판사가 기본적으로 재미에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재 <밀레니엄>은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 이어 2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까지 나왔다. 이 시리즈 최고의 매력포인트는 단연 여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다. 

리스베트는 스웨덴의 국민 캐릭터 ‘말괄량이 삐삐’가 심한 학대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자라나면 아마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독특한 아가씨다. 빼빼 마른 발육부진 몸매에 보호관찰 대상에다 한정치산자인 사이코다. 한마디로 또라이 언니인데, 대신 그에겐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 바로 세계 최고의 해커인 컴퓨터 실력이다. 그 사람의 컴퓨터를 보면, 기록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리스베트는 컴퓨터 해킹 실력 하나로 남의 컴퓨터를 몰래 드나들며 거대한 비리와 끔찍한 범죄를 풀어낸다.

 

<밀레니엄>은 또한 다른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읽는 것과는 또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이 시리즈는 술술 읽게 되는 이야기의 힘 그 자체가 세다. 처음에는 과연 재미있을까 확신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중간쯤 이르면 그 때부터는 그야말로 단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읽게 된다. 여기에 라르손의 따듯한 문체도 한몫을 한다. 다루는 범죄, 또는 성범죄의 수준과 내용이 무척 끔찍, 짜증나는 수준인데도 불쾌함을 느낄 여지가 없이 그냥 죽죽 진도가 나간다.

 

최고의 신인 남성 탐정-동서양 사고의 장점들만 갖췄다, 에라스트 판도린

 

2008년을 열흘도 안남긴 시점에서 전혀 새로운 러시아 탐정을 만났다. 바로 <리바이어던 살인>의 주인공 에라스트 판도린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폭탄을 퍼부어댈 때, 세계 모든 사람들은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고. 어린 시절 꿈의 세상으로 인도해주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였던 그 도시, 바그다드는 모든 세계인의 마음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면 세계 모든 추리팬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시공간은 어디일까? 


꼽자면 19세기 중후반의 유럽, 정확히는 파리와 런던이다.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추리소설의 영웅 ‘셜록 홈즈’와 ‘루팽’이 홀약하던 바로 그 시기와 장소다. 그리고 이 시기보다 나중 사람이지만 당시 귀족사회를 지나치게 흠모해 자기 소설의 시공간으로 늘 애용했던 애커서 크리스티의 영향도 빼놓을 수없다. 비록 애거서 여사의 시대착오적이고 계급주의적인 가치관은 좀 짜증나지만 말이다.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의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바로 이 매력적인 시기를 다시 되살려낸다. 잘난척하지만 속은 텅텅 빈 귀족들, 동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아둔한 인종주의자들, 대책없는 신분 원칙에 충실한 돌쇠같은 하인들이 지금 우리 관점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촌극을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중요한 재미로 작용한다. 아쿠니는 홈즈와 뤼팽이 대결했던 바로 그 시절 유럽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서 당시 사람들을 사정없이 비꼬며 새로운 탐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쿠닌이 창조해낸 에라스트 판도린은 국내에서 거의 처음 만나는 러시아 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장르문학의 저력은 만만찮은데,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나이트 워치> 등이 간간히 국내에 소개됐을 뿐이다. 이번 에라스트 판도린이 나오는 <리바이어던 살인>과 <아자젤의 음모>는 정말 모처럼 국내에 선보인 러시아 추리소설이라고 하겠다.

 



이 두책은 한꺼번에 나와 무엇이 먼저인지 처음에는 좀 헷갈린다. 따로 따로 읽어도 전혀 상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출판사에서 독자들을 위해 순서를 붙여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발표 순으로 하면 <아자젤의 음모>가 먼저이고, <리바이어던 살인>이 나중이다. 

올해 최고의 신인 탐정으로 꼽을만한 에라스트 판도린은 두 책에 모두 나오는데, 그 설정이 전혀 다르다. <아자젤의 음모>에선 막 수사 업무를 시작하는 풋내기 수사관이다. 반면 <리바이어던 살인>에선 일본 근무를 명령받아 아시아의 끝으로 향하는 외교관으로 나온다. 

 

물론 두 책 모두 판도린의 멋진 활약과 추리로 사건이 풀린다. 그러나 개인적 취향으로 평가하자면 진짜 매력적인 판도린은 <아자젤>이 아니라 <리바이어던 살인>의 판도린으로 평하고 싶다. 서양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동양적 사고로 남들보다 사람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판단하는 훨씬 업그레이드 된 판도린이 등장한다. 그래서 <리바이어던 살인>을 <아자젤~>보다 훨신 강추한다. 바다위 호화 유람선이란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범인을 찾는 고전적이면서 늘 흥미로운 상황에, 홈즈 못잖게 어떤 것을 처음 보더라도 척척 추리로 맞춰대는 안락의자형 탐정을 21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다! 


<리바이어던 살인>은 또한 등장인물별로 돌아가며 화자와 관점이 바뀌는 구성도 독특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치도 무드도 없는, 그래서 더 매력덩어리인 판도린이 척척 사람들의 모습만보고 추리해나가는 모습이 최고의 재미다. 

반면 <아자젤의 음모>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잘 만든 19세기판 007 같은 범죄수사소설이다. 우연이 자주 등장하는 19세기 모험물의 특징을 잘 재현했지만 대신 그 한계까지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 오히려 독자들에겐 시대착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워보인다. 를 보다가 <검은별 탐정>의 바베크를 만나는 느낌이다. 


결론은, 판도린을 만나려면 <리바이어던 살인>이 강추라는 것.

 

느끼하지만 미워할 수없는 속물 변호사-반가운 마이클 코널리




스웨덴 기자 스티그 라르손에 이어 올해 나를 즐겁게 해준 기자 출신 소설가는 마이클 코넬리다. 

예전에 한번 그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지만 인기를 못얻고 절판되고 말았다.  제임스 패터슨처럼 미국에서 인기가 대단한 작가라도 국내에선 제대로 소개가 안되거나 책이 나와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코널리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하겠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처음으로 법정스릴러에 도전한 책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로 한국 팬들과 모처럼 다시 만났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는 한마디로 탄탄하고 즐거운 소설이다. 가장 큰 매력은 생생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이다. 잘지만 티 안나는 반전도 좋고, 반전을 신경쓸 필요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흐름 자체가 킬링타임용으로 일급이다.

일단 설정 자체가 재미있다. 주인공은 범죄자들을 주로 변호하는 속물이다. 그런데 아주 제대로 못된 최악의 의뢰인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범죄자였는데 한술 더떠 변호사를 꼼짝 못하게 옭아매 협박을 해댄다. 제대로 변호를 못하면 자기가 망하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면 사건이 뒤바뀌게 되는 진퇴양난의 위기. 우리의 느끼하면서도 명민한 변호사가 멋지게 판을 뒤집어 분노의 어퍼컷을 날린다는 그런 이야기다. 미국 특유의 법정 대결 장면도 수준급이다.

 

비행기 탈 때 권하고 싶은 책들

 

광고 글귀가 좀 걸리는 책이 있다. 충분히 잘 팔릴 좋은 책이기에 과장 광고가 아쉬웠던 <임기종료>다.

 

일단 출판사의 카피는 이렇다. ‘미국 FOX-TV의 인기 드라마 ’24‘를 탄생시킨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빈스 플린의 데뷔작이자 히트작.’  미 대통령의 임기종료 시점을 1년 앞두고 일어나는 고도의 정치적 음모와 그 음모의 중심에 선 살인사건, 그리고 정부의 숨겨진 비리를 다룬 작품이다.‘


두 문장 중에서 뒷문장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첫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면 최고 인기 미국드라마 <24>를 쓴 사람이 바로 빈스 플린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럼 아니냐고? 아니다. 


빈스 플린은 시리즈는 특공대원 미리 래프의 활약을 그리는 미치 래프 시리즈를 썼다. 출판사는 ’24를 탄생시킨 작가‘라고 책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쓰고는 책 안에서야 비로소 이렇게 써놓는다. ’(빈스 플린의) 미치 래프 시리즈가 FOX-TV의 히트 드라마 <24>에 큰 영감을 주었음은 모든 독자들이 아는 사실이다.‘ 

진짜 그가 24의 스토리를 썼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영감을 주긴 줬다는데 도대체 그걸 누가 알겠는가. 미국 독자들도 모를 법한데 말이다.

 

광고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이 책은 킬링타임 파트너로는 제법 괜찮다. 내용은 앞서 말했듯 세계최강 권력의 핵심 미국 대통령을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격전이다. 책은 두꺼워도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진행이 빠르고 이야기 흡입력이 세다. 물론 이런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액션영화를 보듯 시원시원하게 진도는 나가는 대신 결말은 좀 기존 익숙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 

그래서 특별한 기대나 생각없이 무료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앞서 소개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와 함께 기차나 비행기를 오래 탈 때 들고 탈만한 책으로 권한다. 대신 그윽한 깊이는 기대하지 말 것.

 

그래도 기본은 해주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미야베 여사

 

이제 일본 추리소설을 조금이라도 즐기려면 이 두사람은 피하기가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다. 지난번에 언급했듯 ’많이 써줘서 고마운‘ 작가들이다. 그럼 올해 두 거물들의 책들은 어땠을까?

 

 



‘미미여사’ 미야베 미유키는 최고 걸작 <모방범>의 속편격인 <낙원>으로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허나 <낙원>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나쁘진 않은 수준이라고 하겠지만 <모방범>이 왜 걸작인지 다시 확인하게 하는데 그쳤다. <레벨7> 역시 기본은 보장했지만 지난해의 <나는 지갑이다>처럼 신선하진 못했다. 헌책방이란 공간을 살인의 현장으로 설정해 흥미를 끈 <쓸쓸한 사냥꾼> 역시 마찬가지.


히가시노 게이고도 올해는 기본 유지에 충실했다. 물론 게이고의 기본은 다른 작가들이 최고 수준이다. 그가 놀라운 점은 과연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이렇게 설정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하게 시작해놓고서 신통방통하게 이야기를 정리하는 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올해에도 여러권이 줄줄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게이고의 이런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책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기억을 잃어버린 여자가 한 남자와 무의식속 등장하는 집을 찾아가 추리에 추리를 해보니 그 집에서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설정이다. 

그럼 유령? 결말은 책을 읽어보시길.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에겐 그의 초기작 <동급생>이 뒤늦게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것이 더욱 반가운 소식일 듯하다. <동급생>은 앞서 출간된 게이고의 데뷔작 <방과후>처럼 학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틴에이저들 세계의 이야기다. 

 

 



일본의 중고등학교도 우리 못잖게 억압으로 훈육하는, 그래서 성장기 학생들에게 많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괴로운 곳이다. 자기가 사귀었던 야구부 매니저 여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그 죽음에 의문이 있음을 알게 된 남학생이 겪게 되는 이야기다. 항상 스포츠를 소재로 즐기는 게이고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또한 사회적 의제와 문제를 다루는 일본 추리소설의 저널리즘적 강점과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성장소설에 가까운 이 책에서 게이고는 교사에 대한 증오를 그대로 드러낸다. 


게이고의 또다른 책 <방황하는 칼날>은 뻔한 복수극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읽을만 했고,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너무 고전적, 전형적인 것 같다가 역시 마지막에 한번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점이 게이고스러웠다. 


 <아름다운 흉기>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만드는 게이고의 힘은 여전하나, 그래도 게이고 것 치고는 범작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제서야 선보인 추리소설사의 고전들

 

추리소설은 그 장르적 특성상 연보순대로 봐주어야 할 명작 고전들이 존재한다. 가령 에드가 알란 포의 <도둑맞은 편지> 같은 고전들, 그리고 그 뒤 추리소설 황금기를 여는 셜록 홈즈 시리즈 등을 먼저 읽는 것들이 거의 필수적인 과정처럼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동안 홈즈와 뤼팽, 포와로를 제외한 고전의 탐정 영웅들을 모두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추리 강국 일본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에도가와 란포의 걸작들도 그동안 출간되지 못했는데, 올해 드디어 한국에서 정식 출간됐다. 다른 일본 추리소설사의 유명 작품들이 속속 선보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들은 지금 읽으면 그 시대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지난 세기초, 게다가 일본이란 장소여서 지금 우리와 너무나 다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읽다보면 왜 에도가와 란포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인지 알게 된다. 독특하고 다양한 실험적 설정들은 오히려 지금 작가들보다도 신선하며, 트릭과 암호에 기울인 열정은 지금 보기에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젠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일본 추리소설 최고 스타작가 중 한 명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국내에서 나온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을 정도로 올해 인기를 모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여성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은 점이다. 기괴한 분위기, 극단적 설정, 변사투의 문장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괴담풍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이 작품이 이정도 호응을 얻었다는 점은 일본 추리소설이 많이 소개되면서 이런 분위기에 한국 독자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싫은 사람들에겐 아주 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그리 거부감 없이 장르적 특성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상한, 너무나 일본적인...그리고 너무 잔인한 게 매력인

 

기괴함을 앞세우는 이런 류의 일본추리물의 극단을 보여주는 소설이자,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책이 <도구라마구라>다. 

 


이상하게 쓰려고 작정한 이 설명 불가능 소설을 펴낸 출판사의 용기가 우선 놀라웠다. 비록 비록 책을 읽는 과정은 괴롭고 난해했지만 이런 책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 출판시장의 폭이 넓어진 점이 반가웠다. 내용은 그야말로 설명 불가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 그 시절의 광기, 추리소설 특유의 극단적인 설정, 거기에 계속 바뀌어서 정신없는 진행과 그 시절의 고전적이기 짝이 없는 문체... 한마디로 인내심을 시험하는 미스터리물이라고 해야겠다. 올해 읽은 가장 몽환적인 미스터리 <평양의 이방인>도 독특하긴 하나 괴상하기로는 이 책에 게임도 안된다. 




두 책 모두 그 독특함은 대단하지만, 솔직히 읽으라고 권하기는 좀 힘들다. 알아서 판단하시길. 본인이 아주 마니아코드 취향이라면 도전하시길.

 

한편, 올해 새로 만난 반가운 캐릭터로는 우선 오츠이치의 의 주인공을 꼽고 싶다. 

요즘에는 연쇄살인범이 연쇄살인범들을 잡아족치는 <덱스터> 시리즈처럼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유행이다. 물론 우리의 전문가들은 이런 설정에 그럴듯한 해석을 내려주곤 한다. ’법이 처리 못하는 범법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처벌보다 피의자 보호에 더 주안점을 둔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불만을 표출한다고 보기에는 사실 덱스터는 너무 즐겁고 귀엽다. 오히려 살인의 이런 게임적 속성을 강조한 것이 독자들에겐 더 와닿을텐데 말이다.

좌우지간 <고스> 역시 괴물같은 주인공을 앞세운다. 살인마 본성을 숨기고 사는 한 고등학생이 주변의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살인마 특유의 감각으로 범죄자를 찾는다는 설정이다.


 


<고스>가 독특한 것은 내용은 잔인한데 이상하게 상큼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충격 잔인 베스트 미스터리가 <살육에 이르는 병>이었다면 올해는 단연 <고스>와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라고 하겠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제목이 길기도 하다)는 추리물은 아니지만 잔인함과 기괴함의 매력을 잘 살린 엽기소설 모음집이다. 잔인함의 강도는 오히려 <고스> 이상이라고 하겠다.

 

<고스>는 또한 올해 최고로 재수없었던 미스터리로, 19금 판매 조처를 당하는 바람에 장사를 망쳤다. 그런데 정작 글보다 훨씬 잔인한 그림이 나오는 만화 <고스>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왜? 

독자들의 조롱 본능을 자극하는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전통은 늘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VS 막심 샤탕, 프랑스의 두 인기작가는?

 

요즘 우리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랑스 미스터리의 두 간판은 단연 중견 미스터리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그리고 신예 작가 막심 샤탕이다. 막심 샤탕은 <악의 심연> <악의 유희> 식으로 ’악의 어쩌구~‘ 시리즈들을 이어간다. 추리 과정보다는 독특한 범죄 형식과 설정이 그 핵심이란 점에서 선배인 그랑제와 공통점이 많다. 


혹자들은 이 신예스타 막심 샤탕이 이제 선배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평가는 아직은 선배가 더 대단하다고 본다. 올해 선보인 <검은 선>을 보면 역시 그랑제는 한가닥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랑제의 힘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악의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힘이다. 일단 결말이 어떻든 종반까지 치닫는 그 분위기와 속도감이 일품이어서 치밀한 반전이나 경악할 종말보다도 그 중간 과정을 읽는 과정에서 재미를 충실하게 제공한다. 이번 <검은선> 역시 절정까지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아쉬운 점은 결말이 다소 예상대로라는 점이다. 그래도 그랑제는, 분명 그랑제다.


올해 막심 샤탕보다도 그랑제의 손을 들어준 것은 샤탕의 신작 <악의 심연>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이다. 샤탕의 작품답게 깔끔하지만 너무 깔끔한데 그치고 말았다. 그의 캐릭터인 조슈아 브롤린이 이 작품에선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진 탓이라고 하겠다. 




샤탕의 신작으로는 <악의 심연>보다 <악의 주술>이 좀더 나은 편이었다. 샤탕스럽게 잘 빚어낸 깔금한 이야기였으나 역시 결말이 좀 허무하다는 약점까지 극복하진 못했다. 거미를 소재로 한만큼 거미에 대해서 묘사한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올해 최고, 최고령 신인의 깔끔한 여성적 미스터리 <얼음꽃>


추리와 미스터리의 세계는 언제나 걸출한 여성작가들이 주름잡으면서도 실은 남성작가들의 세계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남성이 더 많은 특성도 한몫한다. 지난해 국내 독자들과 만난 작가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여성 작가가 노나미 아사였다면, 올해는 단연 아마노 세츠코를 꼽으려 한다.



아마노 세츠코는 이 책이 데뷔작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것은 60살에 이르러서다. 오랜 세월 차근차근 준비해온 작가답게 데뷔작이지만 책의 구성과 문체가 완숙하다.


이 책처럼 ’서늘함‘을 주는 소설은 무척 드물다. 그 서늘함은 무서워서 느끼는 서늘함이 아니라 서늘함 그 자체다. 차가우면서도 시원하고 그러면서도 범죄의 세계에 빨려들게 되는 서늘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웠다. 여성 작가답게 주인공 여성의 심리와 행동을 설득력있게 묘사했고, 트릭과 반전도 대단하진 않지만 탄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60살이란 나이까지 꿈을 버리지 않고 정진했다는 점에서 인새의 후배로 존경을 표한다. 언젠가는 미스터리를 써보겠다는 개인적 꿈을 더욱 다지게 만들어준 작가다.


돌아와서 반가워요, <웨스팅 게임>


쑥쓰럽지만 올해 책을 한 권 펴냈다. 2006~7년 신문에 연재했던 기사를 새로 쓴 <한국의 글쟁이>란 책이다. 이 책 앞날개의 작가 소개를 쓰면서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엘렌 라스킨처럼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읽을 수있는 추리동화를 쓰는 게 꿈이다.”


그만큼 라스킨은 내게 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책 <웨스팅 게임>같은 책을 쓰고 싶다. 추리라는 매력적인 형식으로 온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하나만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엘렌 라스킨의 책 <웨스팅 게임>을 내가 만난 것은 80년대 초중반이었다. 당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ABE‘란 가정용 어린이 전집에서 <샘 아저씨 유산>이란 이름으로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주인공이 청소년이란 점에서 또래로서 동질감을 느끼며 더욱 빠져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올해 또다시 출간되어 모처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거의 20년만에 다시 읽으니 역시 그의 책은 동화스러웠다. 내용을 다 알고 있어 처음 읽을 때처럼 재미있지만 않았지만 다시 나와준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웨스팅 게임>은 그 설정이 재미있다. 한 아파트가 새로 지어져 여러 입주자들이 이사온다. 그런데 그 옆에 살던 백만장자가 죽었는데 뜻밖에도 유언장에 이 아파트 입주자들 중에 자기를 죽인 용의자가 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용의자를 잡아내는 사람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준다는 것이다. 입주자들은 모두가 범인 후보인 동시에 범인을 잡아내는 탐정이 되게 된다.


동시에 죽은 백만장자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단서들을 주는데, 남의 단서를 모르는 입주자들은 말괄량이 소녀부터 귀부인까지 서로 머리를 굴리며 범인 잡기에 나선다. 


이 책은 빼어난 미스터리지만 동시에 잘 지은 동화다. 어린시절, 나는 이 결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밝고 상큼하며 코믹했던 이야기에는 의외의 여운, 그리고 이상하게 슬프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숨어있었다. 비록 남들에겐 재미가 덜할지 몰라도 내겐 언제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런대로 읽을만은 했던 책들은?




아이라 레빈처럼 묘한 작가가 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실 레빈의 책들에서 그 명성만큼의 쾌감을 얻지는 못했다. <로즈메리의 아기>의 경우 좀 허무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은 작가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레빈의 작품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을 요즘 10대나 20대가 읽는다면 좀 거리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히틀러란 역사인물이 이젠 아득한 지난 세기의 고유명사일테니까. 그러나 레빈이 이 소설을 썼던 20세기 중후반까지만해도 2차대전의 악몽은 여전히 강하게 잔존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히틀러의 잔당들이 다시 음모를 꾸민다는 이런 이야기는 허황되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상상가능한 악몽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줄거리는 아주 뻔하다. 하지만 그 흡입력은 뻔한 구조여서 더욱 명쾌하고 강력하다. 한번 잡으면 바로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한편의 영화같은 소설이다. 실제 1978년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졌었는데, 2009년 다시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선보일 예정이다. 감독은 바로 그 유행한 <프리즌 브레이크>의 브랫 래트너라고 한다니 한번 기대해봄직하다.


앞서 권한 <임기종료>처럼 비행기에서 읽기에 꼭 좋을 듯한 책이 하나 더 있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주인공이 싸그리 때려부수는 책 <추적자>다.



추리나 스릴러, 미스터리의 매력인 동시에 짜증나는 점이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궁지에 몰려 가슴 졸이게 만드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인데, 이게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노릇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적들은 강하고 잔인한데, 주인공은 늘 약하하다는 거. 그래서 간신히 이겨내게 되는 것이 때론 맘에 안들 수도 있다. 우리의 주인공이 정말 강해서 신나게 나쁜 놈들을 두들겨패고 이겨버리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추적자>의 주인공이 꼭 그렇다. 거침없이 적들을 케이오 시키는 것을 넘어서 가차없이, 시원하게, 왠만하면 그냥 죽여버린다!

그렇다고 람보식으로 무조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면 생기게 되는 약점인 ’전형성‘까지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다. 그래도 정말 불도저처럼 사건을 밀고 나가 해결해버리는 주인공, 틀림없이 매력적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섀도우>는 쉽게 평가를 내리기가 좀 어려운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 잘 판단이 안선다. 구성과 설정은 분명 독특하고 짜임새가 있다. 누가 누구이고, 진짜 자신은 누구인지 묻는다. 화자의 시점이 바뀌는 구성의  자체가 기본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 ’심리‘를 다루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좋아할 듯하다.


팽팽하게 대치하는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긴박감, 인질 구출 스릴러의 매력을 진하게 느껴보고 싶어하는 분들이라면 단연 <소녀의 무덤>을 권한다. 제프리 디버가 왜 잘나가는 작가일 수밖에 없는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구도는 전형적이고, 결말은 허무해도 이 책은 그 흡입력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디버는 한 수 가르쳐준다.


 


제목 자체가 <추리소설>인 이 추리소설도 올해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이다. 

일본은 워낙 추리소설 강국이다 보니 추리동호회도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추리동호회 회원들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들도 무척 많다.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 소년탐정 김전일의 에피소드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소설 <추리소설>도 추리동호회의 이야기가 얽힌다. 소설 속에 나오는 <추리소설>과 사건이 일치한다는 그런 설정으로 진범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인데 짧으면서도 인상적인 미스터리다. 재미에 비해 덜 알려진 듯해서 좀 안타깝기도 한 책이다.


이밖에 밀실 공포를 잘 활용한 <인사이트 밀>, 다른 책들과 엇비슷하면서도 독특하고 토머스 H. 쿡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심문>, 역시 토머스 H. 쿡의 작품으로 추리라는 장르에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매력포인트인지 실감하게 해주는 <밤의 기억들>, 최고는 아니어도 역시 아야츠지 유키토라고 인정하게 되는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등을 올해 읽은 것들 중에서 기본 이상이었던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최고의 코믹 의학 추리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가이도 다케루도 역시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시리즈 3부작의 2부와 3부인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네럴 루주의 개선>으로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1부, 2부, 3부의 순으로 재미가 있어 셋 중에선 3부 <제네럴 루주의 개선>이 가장 처진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처져도 가이도 다케루라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싶을 정도다. 이 책에 나오는 시라토리 같은 탐정은 일찌기 다른 추리물에선 없었다. 그저 계속 나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째 좀 별로야...실망이 더 컸던 책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해 후한 편이었던 관계로 그의 대표작급이라는 <용와정 살인사건>은 무척 기다렸던 책이었다. 두꺼운 두 권 분량이니 더욱 기대가 컸다. 

결과는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시마다 소지 특유의 기괴한 설정을 좋아하고, 또 그 속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 자체가 탁월한 소설적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미스터리로서 이번 책은 좀 짜증나는 책이었다. 너무 이야기를 꼬아댔고, 지나치게 형식과 구성에 사로잡혀 독자보다는 작가 자신을 위한 책처럼 느껴졌다.


항상 ‘이번에는 좀 재미있으려나’ 하고 집어들어 읽지만 늘 어딘가 아쉬운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여전했다. 올해 나온 그의 책 <외딴섬 퍼즐> 등도 재미가 아주 대단하진 않았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도 별 감흥이 없었던 책이었고, 기시다 루리코의 <천사의 잠>도 ‘치사성가족불면증’이란 독특한 병을 소재로 했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최고 작가들이랄 수 있는 할런 코벤, 제프리 디버, 딘 쿤츠는 각각 <페이드 어웨이>, <콜드 문>, 오드 토머스 시리즈로 나를 실망시켰던 한해였다. 물론 다들 매력적인 작품들이나 내 취향은 영 아니었다. 특히 오드 토머스 시리즈는 영화나 미드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깔끔하고 원숙했어도 딘 쿤츠는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제프리 디버의 간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최신작 <콜드 문>은 좀 용서해줄 구석이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결말에 화가 났으나, 새로 매력적인 주인공 캐스린 댄스를 선보였기에 평가를 다소 유보한다. 

캐스린 댄스는 제프리 디버가 명 캐릭터 링컨 라임에 이어 신작 <콜드 문>에서 등장시킨 여성 경찰로, 심리학 지식과 관찰 분석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어 추리하는 심문의 달인으로 이후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