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한국 독자 농락하는 위험한 책 <삼국지> 2008/07/30

딸기21 2018. 9. 11. 15:49

아마 많은 삼국지 애호가들은 화를 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볼 수록 <삼국지>는 위험합니다. 특히 자라는 어린이들에겐 더욱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삼국지>는 분명 재미있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삼국지>는 분명 부작용이 지나치게 큰 책입니다. 책 그 자체와 그 내용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문제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는 겁니다.

 


삼국지 장삿속 출판사들 해도 너무하다

 

이번 <적벽대전> 개봉으로 출판사들은 신나서 <삼국지> 마케팅에 들어갔습니다. 티켓을 나눠주기도 하고 특별 할인도 해서 삼국지 판매량은 확실히 늘었다고 합니다. 양대 삼국지인 <이문열 삼국지>와 <황석영 삼국지> 판매가 예년보다 60% 이상 늘었답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삼국지>는 분명 출판시장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출판사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도대체 삼국지가 몇 종이나 나왔을까요? 집계조차 어렵습니다. 제가 대충 훑어본 것만도 40여종 정도 되었습니다. 잠깐 나열해보면, <이문열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삼국지 강의> <고우영 삼국지> <정비석 삼국지> <본 삼국지> <작가 김홍신이 쉽게 풀어쓴 삼국지> <장정일 삼국지> <원본 삼국지> <삼국지연의>(김구용) <비본 삼국지>(진순신) <조성기 삼국지> <검궁인 삼국지> <박봉성 삼국지> 등이 있습니다. <한권으로 읽는 삼국지>와 <하룻밤에 읽는 삼국지>도 나왔습니다. 



고우영 삼국지의 명장면 중 하나인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베는 장면. 삼국지의 재미는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부작용의 독성도 더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어린이용 삼국지들은 더욱 많습니다. <이문열 이희재 만화 삼국지> <황석영 이충호 만화 삼국지> <고우영 어린이 삼국지> <삼국지 구비동화> <뚱딴지 만화 삼국지> <졸라맨 만화 신삼국지> <슈퍼 만화 삼국지> <만화 전략 삼국지> <청소년이 꼭 읽어야할 삼국지> <천하통일 어린이 삼국지> <천하영웅 삼국지> <만화 영웅 삼국지> <어린이 삼국지> 등에 <저학년 삼국지>, <한권으로 보는 저학년 삼국지>까지 있습니다. 여기에 <삼국지 한자 천자문> 같은 파생 책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다양한 욕구에 맞게 다양한 책들이 나와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삼국지>의 경우는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출판사들이 중복출판을 하고 있습니다. 중복 출판도 이런 중복 출판이 없습니다.

 

처세서를 논술교재, 필독서로 권하는 나라

 

독자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삼국지>를 사게 만든 주범은 분명 출판사들입니다. 출판사들이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지나치게 과장해 강조해왔고, 이런 마케팅이 사람을 거의 세뇌하다시피해서 지금 우리 독서시장에서 삼국지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삼국지 장삿속의 최고는 <이문열 삼국지>를 낸 민음사라고 하겠습니다. 민음사가 <이문열 삼국지>를 논술 시험 필독서로 광고하면서 <삼국지>는 순식간에 수험서처럼 탈바꿈합니다. 실제 이에 힘입어 <이문열 삼국지>는 모두 1700만부나 팔렸고, 민음사는 해마다 가만히 앉아서 100억원씩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삼국지>가 논술교재로 좋은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입시 만능인 한국에 먹히는 카피 하나로 사람들을 현혹했을 뿐입니다. 삼국지가 논리력이 아니라 감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차라리 수긍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삼국지>를 읽는 것이 수험생들의 논리력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저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므로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참으로 위험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인들이 삼국지를 많이 읽는 것은 삼국지를 처세의 코드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세상은 모략과 암투, 음모와 배신으로 살아가는 삼국지속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고는 못하지만 그런 진짜 세상사는 이치를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로 포장해서 권하는 것일 뿐입니다. 

 

조조 같은 간신은 그래서 성공했지만 역사에선 패자여도 유교적 가치를 따른 유비를 주인공으로 평가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누구나 조조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역사를 새로 썼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로만 보면 유비는 중국 변방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실패한 야심가였을 뿐입니다.


<적벽대전> 중 조조의 모습. 조조는 지방 토호 수준이었던 유비와는 세력이 비교가 안되는 중요한 역사인물이다. 그런데 왜 <삼국지>는 유비를 조조에 맞먹는 영웅으로 고른 걸까?



물론 <삼국지>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예찬론은 타당한 걸까요? 정말 자기 자식들에게 “삼국지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살아라”고 권할 만한 것인가요?

 

그런데도 출판사들은 민음사가 떼돈을 벌자 다들 돈에 눈이 뒤집혀 너도 나도 삼국지로 한몫 잡으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한 유명 소설가는 “어느날 갑자기 어떤 출판사에서 찾아오더니 ‘선생님은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 번역이고 뭐고 저희가 다해서 알아서 선생님 번역 삼국지로 펴내게만 해달라’고 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출판사들이 삼국지에 혈안이 되어있을 줄은 몰랐기에 무척 놀랐고, 양심에 꺼려 돌려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보다 더한 한국 사람들의 대책 없는 삼국지 사랑 

 

이처럼 삼국지가 차고 넘치는 데도 삼국지는 올해에도 쏟아졌습니다. 월북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삼국지>가 나왔고, 김홍신씨의 <삼국지>도 다시 나왔습니다. 국내 삼국지가 더이상 없다보니 중국 삼국지 관련 콘텐츠를 너도나도 수입합니다. 


올해 4월 도서출판 위즈덤이 발간한 <진유동 삼국지>의 경우 진유동이란 중국 만화가의 삼국지 만화인데, 정작 중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출판사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판한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출판사는 이 중국 만화가와 10년에 무려 10억원이란 금액으로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과연 <삼국지>가 아니었어도 이런 계약을 했을까 궁금하고 의아했고, 씁쓸했습니다. 

 

김영사가 펴낸 중국 이중톈 교수의 <삼국지 강의>를 보는 것도 씁쓸합니다. 이중톈 교수는 2006년 중국 국영 CCTV에서 삼국지를 강의하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이를 책으로 내서 중국에서 무려 500만질 넘게 팔렸습니다. 이 인세만으로 그는 지난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중국 갑부 47위에 올랐을 정도였습니다.


이 책의 한국판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삼국지는 중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삼국지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다.” 한 유명 건축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정말 낯이 뜨거웠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온 이중톈 교수는 이문열씨와 대담이며 온갖 인터뷰에 한껏 자기책을 선전할 기회를 골라서 하다가 돌아갔습니다. 출판사는 삼국지를 최대한 부풀려 현혹하고, 언론은 오히려 더 신나게 삼국지를 홍보해줬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동묘. 동묘가 어떤 곳인지 아는 서울시민은 많지 않다. 동묘는 보물 12호다. 그러나 우리나라 왕이나 위인을 모신 곳이 아니라 관우의 사당이다.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라고 한다.


관우는 중국에서 워낙 인기가 좋아 거의 신으로 격상됐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국이 아닌 나라에 관우사당이 있는 경우가 또 있겠는가. 게다가 동묘 한곳만도 아니었다. 관우를 모시는 사당으로 남관왕묘, 북묘, 서묘까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묘만 남았다.

우리나라에 남의 나라 장수인 관우 사당을 지었던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명나라 군을 이끌고 온 장수 중 진인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과우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진인은 전쟁에서 다쳤다가 다행히 완쾌가 되었는데 이게 다 관우의 음덕 덕분이라고 믿고는 관우 조각상을 만들어 혼자서 모셨다. 그런데 이를 본 명나라 다른 장수들이 돈을 보태면서 일이 커졌고, 조선 조정도 돈을 더해 사당으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 그 사당이 최초의 관우사당인 남관왕묘다.

저 동묘는 임진왜란 뒤 명나라 신종이 사진을 보내 관우의 영령이 힘이 대단해 조선을 지키는데 도움이 컸으니 사당을 세워 보답하라고 종용하며 돈까지 보내와서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라에서 관우 사당을 지으니 자연스럽게 이후 조선에서 관우숭배현상이 심해졌다. 1920년대에는 관성교라는 관우를 숭배하는 종교도 등장했다. 관우사당 중 북묘와 서묘는 조선말 고종 시대인 1883년과 1902년에 지었다는데 왜 이 시기 관우묘가 세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료를 좀더 뒤져야 할 것 같다.

 

삼국지, 근사한 줄거리 속에 숨은 중화사상의 독성

 

이렇다보니 삼국지 판매량은 엄청납니다. 삼국지 읽듯 책을 읽기만 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독서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문열 삼국지>가 1700만부, <황석영 삼국지>가 지금까지 250만부, <이문열 이희재의 만화 삼국지>가 400만부, <고우영 삼국지>는 맨 마지막 나온 자음과모음 판만 40만부에 이릅니다. 어린이용들과 만화들은 잘 판매량이 잡히지 않지만 다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삼국지가 넘치다보니 실제 삼국지를 읽느라 다른 책을 못읽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 바쁜 현대인들이 생활속에서 책을 읽을 시간은 무척 제한적입니다. 그 소중한 시간에 <삼국지>를 읽는 것이 나쁠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온 국민이 <삼국지>부터 읽어야 하는지는 정말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삼국지>의 내용이 한국인에겐 무척 위험할 수 있어서입니다. 삼국지의 웅장한 스케일을 보면서 중국은 저리도 대단한데 우리는 왜 이리 작은 나라냐고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우선 독자들은 그 스케일이 놀랍니다. 조조의 대군은 무려 100만명이며, 맞서는 유비의 촉군도 70만이었다니 입이 벌어집니다.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세계대전 수준에,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전략, 관우의 포스 등이 어우러져 독자들은 절로 그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들이 허구이거나 사실에 허구를 잔뜩 보태어 부풀린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조조, 원소의 군대가 수십만명이란 것은 당시 중국의 인구와 생산능력 등을 감안할 때 무척이나 부풀려진 과장이라는 겁니다. 그런 과장된 수치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작은 나라라는 콤플렉스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요. 삼국지는 그런 점에서 주변국가들을 무시하고 복속시키려는데 골몰한 중국 중화주의의 첨병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갈량과 맹획의 7종7금 이야기입니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 나서 맹획이란 남만왕을 잡았다는 풀어주기를 일곱찰계, 매번 패한 맹획은 제갈량에게 진정 감복해 스스로 항복하고 말았다는 이야깁니다.

이 이야기를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맹획의 남만이 베트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남만은 베트남이 아니라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 변방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국지 때문에 베트남은 주제도 모르고 아둔하게도 일곱번씩이나 초강대국 중국에 덤볐던 나라이며, 중국은 그런 바보같은 도전자를 진심으로 복속하게 만드는 대인의 풍모를 지닌 나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으로 나온 진청우(금성무). 제갈량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인물이자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삼국지 등장인물이다. 그가 남만왕 맹획을 가지고 놀았다는 칠종칠금 이야기는 제갈량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과연 진짜일까?



칠종칠금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맹획이란 사람이 있었는지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바로 읽기>를 쓴 김운회 교수는 삼국지에 적힌 대로 당시 군대의 이동속도와 지리적 거리를 계산해본 결과 제갈량의 촉군이 소설속 언급된 기간 동안 7차례 전투를 벌이기는 불가능했다고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우리가 제갈량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주를 지키기 위해 도전하는 맹획에게서 더 감동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의 영웅인 유비는 어떻습니까?


김운회 교수의 해석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유비는 실제 자기를 위해 양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자기를 가장 아껴준 여포를 저버린 자로 해석가능합니다. 또한 삼국지에서 벌어진 전쟁들은 대부분 유비가 제후들을 꼬셔서 일으킨 전쟁들이라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처자식을 버리는 자, 그가 바로 유비란 것이죠.

 

그런데 왜 삼국지는 이 유비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든 것일까요? 유목민족들에게 정복당한 치욕을 이런 이야기로 조금이나 씻으려는 한족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과장되고 왜곡된 이야기라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입니다. 유목민족 지배을 겪은 뒤에 간신히 다시 한족 나라를 세운 송나라와 명나라 왕조는 한족을 통합하려고 한족의 이상적 모델 국가로 한나라를 골랐고, 그 계승자로 유비를 영웅화했다는 겁니다.

 

물론 모든 의견은 다 진실일 수 있습니다. 정답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김운회 교수의 주장에 더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삼국지는 분명 장점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문제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국지를 무조건 필독서로만 여깁니다. 삼국지의 문제점을 감안하고 보기는커녕 삼국지를 마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교양으로, 그리고 그렇게 처세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우리의 고정관념 때문에 더욱 걱정됩니다. 굴지의 출판사가 논술교재라고 추켜올리고, 문인들을 유혹해 중복출판하고, 책을 쓴 소설가는 삼국지 홍보요원처럼 활동합니다. 

 

영화 <적벽대전> 소식에, 선물 받은 만화 삼국지를 달달 외우는 것도 부족해 삼국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아들녀석을 보면서 문득 씁쓸해진 탓에 괜히 끄적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