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문화재가 꼭 아름다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2008/06/25

딸기21 2018. 9. 10. 17:26

제목으로 감은 잡으셨겠지만 바로 이것이 문화재입니다. 문화재란 사실을 알고 봐도 ‘정말 문화재 맞어?’라고 물으실 법 합니다.

문화재 맞습니다. 이번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경북 김천의 부항지서 망루입니다.


슬픈 역사가 낳은 가슴 아픈 유적들


그러면, 이 허물어져 원래 무엇이었는지 짐작도 어려운 망루의 흔적은 왜 문화재가 된 것일까요? 힌트. 계절과 역사로 한번 짐작해 보시지요.

정답은 6.25 관련 등록문화재입니다.




저 부항지서 망루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뒤 주민들이 콘크리트로 직접 만든 방어시설입니다. 주민들이 경찰을 도와 북한군 게릴라들의 침투를 막는데 기여한 유적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그 흔적조차 알기 어렵게 방치되어 있지만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귀중한 유적이라고 하겠습니다.


24일은 문화재 관련 뉴스가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하나는 수중 문화재를 발굴하는 잠수부 아저씨가 국보급 고려청자들을 몰래 숨겨뒀다 팔려다가 잡혀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흥미로운 내용이어서 화제가 된 뉴스였습니다. 그 뉴스에 밀리는 바람에 언론을 덜 탄 문화재 소식이 바로 이 김천 부항지서 망루를 비롯한 한국전쟁 유적 6가지가 등록문화재로 보존된다는 뉴스였습니다.


문화재청은 시기에 맞게 6.25 하루 전날 이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요즘에는 뭐든지 시기를 따져 홍보하는 것이 최선이므로 발표 시점을 이렇게 잡은 것이죠. 공교롭게 같은 날 잠수부가 고려청자를 꿀꺽하신 문화재 관련 사건이 터져 대부분 언론에서 이 뉴스는 지면 등의 사정 때문에 짧게 6건 한국전쟁 유적의 이름만 소개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어떤 것들이  지정되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소개할까 합니다.

(여섯장 사진은 모두 문화재청 제공입니다)


이 다음 문화재도 도대체 사진만으로는 뭔지 감이 잘 안오실 겁니다. 저 굴뚝 같기도 하고 기둥 같기도 한 시설물은 뭘까요?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한 경기도 연천의 유엔군 화장장 시설입니다.


1952년, 연천에선 전선이 결정되기 전에 최대한 고지를 많이 확보하려는 쟁탈전이 격렬하게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전한 많은 유엔군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주검을 제대로 챙기기도 힘들어 결국 저 화장장을 지어 화장했습니다. 수많은 외국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 땅인 저 곳에서 한 줌 재로 변했습니다. 저 화장장은 휴전 직후까지 사용된 생생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경북 칠곡의 왜관 철교입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유엔군 주력부대와 북한군의 격전이 벌어졌는데, 미군 제1 기병사단이 저 다리 기둥 사이를 폭파해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후 수리해서 아직도 다리는 잘 쓰고 있습니다. 


저 다리는 전쟁의 유적으로서의 가치도 큽니다만 다리 자체도 근대 철도교 중 드물게 장식이 화려하고 100년 넘었어도 보존상태가 좋아 교량사와 철도사적 가치도 큰 귀중한 다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파주에 있는 영국군 설마리전투비입니다. 1951년 4월22일부터 25일까지 이곳 설마리계곡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와 박격포대 소대원이 1개 사단 규모의 중국군에게 분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전투가 벌어진 뒤 5년 뒤인 1956년 6월, 한영 양국군은 당시 산화한 영국군을 추모하기 위해 이 전적비를 세웠습니다.


남은 2개의 한국전쟁 등록문화재는 모두 제주도에 있습니다. 먼저 제주 옛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입니다. 이 곳은 일제 시대에 지어져 광복 전까지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1946년 육군 제9연대가 창설되면서 훈련소 지휘소가 되었습니다.




아래 건물은 옛 해병훈련시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해병 3~4기들이 이 곳에서 훈련을 받고 인천삭륙작전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생활 공간 외에 세면장, 구령대가 남아있어 당시 훈련 상황을 볼 수 있는 자료 가치가 크며, 한국 전쟁의 상징적 의미도 간직한 건물로 평가받아 이번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게 되었습니다.




저 등록문화재 6건은 비록 문화유적이 되었지만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문화유적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여전히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고, 이산가족들과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재는 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만 지정되고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아프기에 더욱 기억해야 할 것들도 문화재가 됩니다. 한때 고통스러웠던 역사적 사건이나 시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런 유적들은 없애버리자는 의견도 많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없앤다고 역사적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오히려 보존해서 기억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이 문화재를 관리하는 분야에선 공통된 의견입니다. 일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서울 시청 건물을 시민들은 헐어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아도 문화계에선 한결 같이 보존하자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를 증언하는 저 6가지 유적들은 그 모양만으로 보면 대부분 허름하고 낡고 평범하며 실제 부서져 쓸모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런 것도 문화재가 되는지 오히려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다고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들일 겁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전쟁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실 모든 분들의 가슴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왜 이리 헷갈려?


이 등록문화재란 말을 뉴스에서 들으면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명확하게 등록문화재가 뭔지는 많은 분들이 모르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잠깐 설명 드립니다.


문화재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매장문화재, 국제협약에 의한 세계유산 등이 있습니다.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중 법으로 지정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 명칭이 다른 대안이 없어보이기는 해도 참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지정문화재란 말이 행정관청 중심적인 명칭 같고 무엇보다도 말의 운치가 없어보이기 때문입니다. 좀 멋있는 대안 용어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친숙한 국보, 보물, 사적, 민속자료 같은 것들이 여기 들어갑니다.

이 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장과 시도지사가 지정합니다.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면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사가 지정하면 시도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가 됩니다.


그럼, 등록문화재는 뭘까요?


등록문화재 역시 그 이름만으로는 뭔소린지 알 수 없는 대표적인 문화재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등록문화재는 무조건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시면 훨씬 더 이해가 쉽습니다.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로 근현대에 만든 건조물이나 기념할 만한 시설물들입니다. 아주 오래되진 않았어도 기념할 것들, 가령 김구 선생이나 장욱진 화백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살았던 집 같은 것들이 문화재가 될 때 이 등록문화재로 됩니다. 역시 이름이 좀 산뜻하진 못한 듯합니다. 이런 행정적 냄새나는 이름말고 좋은 이름 어디 없을까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유네스코가 인정해 등록한 문화재입니다. 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에는 3가지가 있는데,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문화+자연)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세계유산은 몇개일까요?

모두 14가지입니다.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실테니 다 알아보죠.


세계문화유산은 창덕궁, 수원화성,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경주 역사지구, 고인돌 유적입니다.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입니다.

세계무형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입니다.


그리고 이 14가지 뒤를 이으려는 잠정목록으로 9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보은 삼년산성, 공주 무녕왕릉, 강진 도요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안동 하회마을, 월성 양동마을, 남해안 공룡화석지, 제주도 자연유산지구,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이랍니다.


원이 뭐냐고 궁금하실 분도 있으실텐데 왕세자나 왕세자비의 묘를 원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