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최민식의 사진-저항할 수 없는 힘 2007/12/01

딸기21 2018. 7. 2. 16:18

모처럼 방 정리에 나섰다. 온갖 책과 자료들 탓에 방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어서 왠만한 정리로는 티도 안난다. 하지만 정리는 정리 자체로 효용이 있는 법. 정리란 행위가 생활속 작은 의식이 되어 자료와 마음과 기억에 새롭게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정리가 즐거운 까닭이다. 게으른 자가 모처럼 한순간 부지런떨며 자화자찬하는 꼴이지만.

 

자주 보지 않는 책들을 기약없는 유배보내려고 상자에 쌓다가 본 지 10년은 족히 넘은 큼직한 책을 ‘발견’했다.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집 <HUMAN> 가운데 한 권이다. 모처럼 다시 만난게 반가워 책장을 잠시 넘겨보면서 잠시 최민식의 사진에 취했다. 한참만에 본 그의 사진의 여운에 빠져 인터넷을 뒤져 찾은 그의 사진을 여기 올려봤다.

 

▲ 최민식, 1965년 경남 언양 장터.

 

언제 봐도 그의 사진은 강력하다. 보는 이들은 저항할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순간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힘이다. 

그 힘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그의 사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난 뒤에는 그 강력함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그 센 사진을 보기가 편치 않았고, 봐도 일부러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그의 사진이 뿜어내는 인력에 끌려갔다가, 잠시 멀어지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언젠가는 다시 그의 사진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만큼 힘센 사진이 또 있을까. 이번에도 또 최민식 사진의 힘에 굴복한다. 책을 넣으려다 다시 있던 자리에 놓아 두었다. 몇년 뒤 다시 꺼내보기를 기다리며.

 

<휴먼>은 최민식 선생의 사진작품집을 대표하는 연작이지만, 대형화집이어서 일반인들이 보기엔 좀 부담스럽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책들이 2000년대 들어 제법 나왔다. 그의 사진이 팬시한 탁상달력으로, 그리고 사진에세이집으로도 나오는 것을 보면 참 새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 최민식, 1965년 부산 영도교 부근.


문득 다시 그 세디 센 사진을 들쳐본 김에 예전에 썼던 최민식 선생의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출간 기사를 소개한다. 최민식이란 작가와 만나기에 가장 무난하고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보다도 글이 위주지만 그의 사진을 조금이나마 맛보기에 좋다. 

최민식 작가의 글은 그의 사진보다 서정적이지만 그 힘은 사진 못잖게 ‘세다’. 그래서 본질적이다. 그는 사진의 대가이자, 대단한 글쟁이다.

 

아래는 2004년 썼던 기사다.

 

▲ 최민식, 1965년 대구역 앞에서.


“유럽인이 만든 작은 사진기에 미국 코닥 사의 흑백필름을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1950년대 중반부터 이 땅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가 카메라라는 도구를 눈에 들이댔을 때 망막을 통해 들어온 피사체는 바로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그렇게 50년 동안 최민식씨는 사진을 찍었다. 소재도, 주제도 언제나 ‘사람’이었다. 사람 가운데에서도 못사는 사람, 밥굶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찍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이 ‘가난한 사람’, ‘평범한 서민’들은 그를 사진기자나 특수기관원으로 알고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간첩으로 신고하기도 하는 순진하고 때론 어리숙한 사람들이다. 그의 사진에는 노인네의 깊고 진한 주름의 떨림이, 남루한 이웃들의 절을대로 절은 땟국물이 그대로 묻어난다.


▲ 최민식, 1963년 부산 영도. 아이의 눈을 가려주는 저 손이 눈을 잡아끈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계의 ‘대부’격인 최씨의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 지난 96년판에서 80여점의 사진이 바뀌고 여남은 편의 새 글을 담아 새로운 얼굴로 다시 나왔다. 

서울 이외의 모든 곳이 변방인 우리 문화풍토속에서 평생 부산을 터전 삼아 멋드러지고 화려한 사진 대신 처절하도록 사실적인 사진에만 천착해왔기에 사진계 안에서의 위상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이 원로사진가의 예술세계를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사진이 좋아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평생 사진가로 살아온 인생역정과 리얼리즘 사진만을 추구하는 예술철학을 최씨가 직접 들려준다. 


▲ 최민식, 1957년 서울 용산역.


책속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인생은 고해’임을 웅변하고 있다. 사진 아래 찍힌 작은 연도표시를 보지 않으면 모두 50~60년대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의 모습같지만, 뜻밖에도 상당수는 바로 얼마전까지의 우리들 모습이다. 

 

엄혹했던 시절 그의 사진이 국가의 위신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사진집 가운데 세 권이 판매 금지 당했고, 한 권은 열네쪽이나 잘려 나가기도 했다. 외국에서 작품전 초대를 받아도 여권을 받지 못했고, 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여러번이었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등산가처럼, “인간이,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찍은 사진인데, 비뚤어진 권력에게는 자신을 욕하는 것같이 비뚜로 보였던 것이다.


▲ 최민식, 1968년 부산.

 

최씨는 “내가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에도 천 마디의 외침과 절규가 배어 있으면 한다”고 말한다. 실제 그의 사진은 처음 보는 순간에는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꿰뚫듯 망막을 친다. 그러나 곧 절규 이후의 묘한 정적같은 잔잔함, 그리고 서글픈데도 아름다운 역설적인 영상미가 눈을 감싼다. 그래서 ‘괴로운 바다’ 같은 서민들의 삶은 순간 ‘아름다운 호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서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담아 그들의 주어진 삶의 의미를 작품화한다. 그곳에는 허튼 수작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하는 절대적인 빛이 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최민식 작가의 사진 중 하나.


▲ 최민식, 1968년 부산 자갈치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