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삼성, 현대, 롯데...기업의 운명 가르는 위기관리 능력 2007/11/02

딸기21 2018. 6. 26. 16:53

화불단행(禍不單行). 나쁜 일은 늘 한꺼번에 생긴다. 사람에게도, 그리고 기업한테도 마찬가지다.


2006년 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롯데월드의 사례는 위기가 다시 또다른 위기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흐름을 보여줬다. 롯데월드는 2006년 3월 6일 20대 직원이 놀이기구를 타다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위기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후 롯데 쪽이 근본적인 사고수습보다는 은폐에 급급하다는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고, 롯데 쪽은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무료입장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무료관객이 몰려들어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롯데월드는 더 큰 화를 자초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뀐 기업환경 속에서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위기경영에 주목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3월 무료입장 행사를 벌이다. 부상 자가 속출한 롯데월드 사건 현장. =<한겨레>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롯데월드 사건은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업에는 언제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평판이 극과 극으로 엇갈릴 수 있고, 나아가 기업의 존폐가 결정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롯데월드 건은 ‘인터넷 세상’이란 새로운 기업환경 속에서 기업이 처한 위기나 사고가 거의 생중계 수준으로 전달되는 현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기는 한번 벌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기업의 대처에 따라 상황 전개가 바뀔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기회로 반전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경영학 서적에 단골로 인용되는 미국의 거대기업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이다.


존슨앤존슨은 1982년 대표상품인 감기약 ‘타이레놀’에 누군가가 독극물을 집어넣어 이를 복용한 소비자가 숨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벌어지자 존슨앤존슨은 바로 사건 전모를 언론에 그대로 공개하고, 타이레놀 약병 3100만개를 전격적으로 회수해 폐기하는 한편 약병을 이물질을 넣지 못하게 바꿨다.


위기 대응따라 추락 혹은 도약


이 과정에만 존슨앤존슨은 2억4000만달러(우리돈 2400억원)를 쏟아부었다. 또한 사건 발생 직후 홍보실에 전화회선을 늘려 수천 통의 문의전화에 일일이 대응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소비자들은 회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문제점에도 최선을 다하는 기업, 믿을 만한 기업으로 인식했고, 시장점유율은 반년 만에 회복됐다. 특히 사건 발생 초기에 언론에 정확한 정보를 밝혀 음해성 소문을 차단한 것은 최선의 전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미국 9·11 테러 당시 금융회사 모건스탠리가 보여준 위기대처 능력도 “역시 모건스탠리”란 호평으로 이어진 경우다. 세계무역센터에 본사를 두고 있었던 모건스탠리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면서 본사가 없어져 버렸지만 단 하루 만에 정상운영을 재개했다. 모건스탠리는 사전에 치밀하게 위기관리 체제를 구축해놓았고, 테러가 발생하자 비상대피 책임자가 직원들을 지휘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였다. 모건스탠리가 이처럼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9·11 테러사태 8년 전에 세계무역센터에서 일어났던 폭탄테러 이후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모의훈련을 해왔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모건스탠리는 오히려 기막힌 홍보효과를 거뒀다.


911테러는 당시 무역센터에 입주해있던 기업들에게도 치명타를 입혔다. 모건스탠리는 이 위기를 잘 대처해 오히려 모건스탠리의 우수함을 입증하는 기회로 승화시켰다.



반면 위기상황에 잘못 대처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경우는 훨씬 더 많다. 미국 기업 엑손과 일본의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우는 두고두고 기업이 위기관리를 잘못한 사례로 지적당하고 있다.


미쓰비시 결함 숨기다 쇠락


1989년 석유재벌 엑손의 유조선 발데스호가 알래스카 부근에서 좌초해 엄청난 해양오염이 벌어졌다. 이 사고 당시 엑손은 사고 발생 1주일 뒤에야 언론에 공개했다. 여론은 싸늘했다. 그리고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엑손이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분노가 이어졌고, 엑손은 얼굴에 먹칠하고 말았다.


사상 최악의 환경 참사였던 엑슨 발데스호 사건.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 엑슨은 이 사건으로 기업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일본의 4대 자동차메이커 가운데 최악의 위기를 겪었고 지금까지 회복에 급급한 처지다. 미쓰비시가 이런 부진에 빠진 주된 이유로 바로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 꼽힌다.


미쓰비시는 2000년 차량 결함이 발견돼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했는데도 이를 숨기다가 적발돼 60만대 가량을 리콜하는 조처를 당했다.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 또다시 90년대 중반 팔았던 주력 차종에 결함이 발견된 것을 숨기고 몰래 수리한 것이 또다시 들통나면서 소비자들의 믿음을 잃어버렸고, 2004년 한해에만 일본내 판매가 40%나 줄어들었다. 미쓰비시자동차의 이야기는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하면 결국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내 기업들은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안전사고나 부실공사 사고가 많은 건설업계에서는 위기를 잘 막은 모범사례로 지난 93년 벌어졌던 부산 구포 열차참사를 지금까지 예로 들고 있다. 구포 사고는 부산 구포역으로 들어오던 기차가 지반이 꺼져내리는 바람에 뒤집어져 78명이 목숨을 잃었던 초대형 사고였다. 사고 원인이 부실공사로 말미암은 인재로 드러나면서 당시 삼성종합건설은 사장이 구속되고 영업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을 만큼 여파가 컸다.


구포 열차사고 당시 현장 모습. 위기관리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지닌 사례다.


이 사고에서 삼성의 위기대처는 초기에 정치적 대응을 하다 타이밍을 놓쳐 결국 그룹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훌륭한 위기관리 사례라는 평으로 바뀌었다. ‘구포역 사건’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지만, 부실시공 장본인이 ‘삼성’이란 사실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건설업계나 대기업 홍보맨들 사이에서는 삼성의 대외홍보능력을 잘 보여주었던 경우로 손꼽는다.


하지만 삼성도 늘 위기대처에 능했던 것만은 아니다. 삼성이 그룹 창립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던 지난해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초기 대응에 실패해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옛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엑스파일) 논란이 한창이던 2005년 9월 미국으로 출국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다섯달 만인 2006년 2월4일 밤 휠체어를 탄 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한겨레>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오너 일가가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됐다는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뒤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의혹에 대한 시인이나 사과 대신 법논리를 앞세워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비난여론에 불을 질렀고, 삼성은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과 역시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아 진정한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난을 들었다. 기업들이 흔히 말하는 “법무에서 이기고 홍보에서 졌다”고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실제 사례들이 보여주듯 위기관리의 해법은 결국 한 가지뿐이다. 초기에 빨리 문제점을 시인하고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내놓아 ‘정면돌파’하는 것이 유일한 비결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이런 답안이 잘 통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은 대부분 위기상황을 가정해 대처방안을 미리 작성한 ‘위기대처 시나리오’인 ‘컨틴전시 플랜’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위기에서는 컨틴전시 플랜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 롯데월드의 경우도 위험부담이 큰 무료입장 이벤트를 계획했다는 점, 그것도 사람이 더 몰리기 쉬운 주말에 이런 행사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기업이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


위기관리 눈뜨니 홍보맨도 뜬다


이처럼 위기관리 능력이 기업활동의 핵심역량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점점 더 위기대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또한 위기관리를 맡아주는 전문업체들도 등장하고 있고, 홍보대행사들도 위기관리 업무로 영역을 넓혀 기업고객들을 찾아나서고 있다.


재무와 운영, 투자와 정보기술 등 분야별 최고책임자를 두고 있는 교보생명이 2005년 최고위험관리자(CRO)를 신설했고,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2006년 초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다고 밝히면서 ‘리스크 담당 책임자’를 부회장급으로 임명했다. 다른 대기업들은 아직 위기책임자를 두지 않고 있거나, 대언론 책임자인 최고홍보책임자(CCO)가 위기관리에서 대외관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부쩍 홍보 출신 최고경영자들이 많아지고 있고 홍보책임자의 직급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구조와 관련이 깊다. 특히 한번 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돌발상황에서 대외홍보력의 중요성을 실감해 위기관리를 겸하는 홍보조직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홍보인력들 스스로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존재근거와 사내 입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삼성그룹 홍보조직은 ‘엑스파일’ 사건 직후 여론 무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한때 문책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이후 그룹인사에서 대부분 승진하면서 물갈이설을 일축했다. ‘형제의 난’으로 최악의 위기를 거친 두산그룹은 2005년 당시 김진 홍보실 부사장을 사장 겸 두산베어스 사장으로 승진시켜 ‘홍보맨 CEO’를 배출했다. 홍보맨 출신 경영자로 유명한 최한영 현대자동차 상용사업담당 사장 역시 옛 현대그룹 시절 ‘왕자의 난’ 당시 정몽구 회장의 대변인으로 위기상황에서 활약하면서 승진가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