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서울 구경, 여기부터-한국에만 있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2009/01/10

딸기21 2018. 9. 16. 16:40

건축에 문득 관심이 생겼다면, 그래서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건축물을 하나 하나 찾아가보고 싶다면 어디부터 가면 좋을까? 농담삼아 ‘국내 유일의 일간지 건축 담당 기자’라고 말하고 다녔더니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시곤 한다. 건축을 좋아하는 분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내겐 아주 반가운 질문이다. 

 

건축은 친구같은 문화 장르다. 다른 장르보다 훨씬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음악처럼 주의 깊게 들어야 할 필요도 없고, 책 처럼 작품 하나 보는데 몇시간씩 걸리지도 않는다. 다만 발품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러나 발품 팔지 않고도 볼 것이 이미 우리 주변엔 얼마든지 있다. 서울이란 얼마나 큰 도시이며, 얼마나 건물이 많은가. 그럼 어디부터 가볼까? 그게 문제다. 건축물은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건축과 친해지는 가장 쉬운 건축답사 1번 추천지-정동으로 가세요


개인적으로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건축물의 장르는 ‘종교 건축’이다. 종교건축은 모든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는 건축물이다. 지금껏 남아 있는 세계 각국의 유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건축물이자, 가장 사랑받는 건물이 종교건축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정성껏, 가장 아름답게 짓기 때문이다. 종교건축의 목적 자체가 그 종교가 얼마나 좋은지 감동을 주자는 것이다. 


우리 서울에도 온갖 종교 건축물들이 있다. 국내 주요 종교의 모든 본부가 서울에 있으니 그 건물들도 다 대표선수들이다. 천주교는 명동성당이 있고, 불교는 조계사가 있고, 천도교는 수운회관이 있고, 개신교는....본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정동교회와 근사한 영락교회 등이 있다. 이 건물들 가운데 뭐가 가장 아름다우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름다움의 종류들이 저마다 다른 탓이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의 목적대로 건축과 친해지려고 찾아가볼 만한 종교건축물을 꼽자면 바로 이 건물을 먼저 권하고 싶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건축답사 1번 코스로 여기만큼 괜찮은 곳도 없을 것 같다.


사진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정동 덕수궁 돌담길과 붙어있는 저 성당은 바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영국 종교 성공회가 지은 아름다운 성당이다.


많은 이들이 이 성당을 잘 알고 사랑하고 있지만 의외로 이 성당을 직접 찾아가본 사람들은 적은 편이다. 서울 한복판이어서 교통도 좋고(지하철 1호선 2호선 시청역 3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5분 거리), 주변에 다른 볼거리도 많다. 

 

서울에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봤다면(이 순서대로 보는 것이 좋다), 다음에는 종묘를 봐야 하며(개인적으로는 종묘를 더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묘도 봤다면 그러면 이제 이 성공회 성당으로 가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제 아름다운 그 성당으로 가보자.

 

로마네스크, 한국에선 한국법을 따르다

 

일단 저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다른 성당들과 달리 포근하고 정겹다. 아니, 만만하고 귀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품위가 있다. 왜 그럴까? 저 건물의 모양이 이미 그렇게 정감있고 부드러운 건축물로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건축용어로 바꾸면 ‘고딕 대신 로마네스크 양식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뾰족탑이 없는 성당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건축적으로 뛰어난 성당이나 교회든 아니든, 이상하게도 이 땅에서 기독교 건물들은 한없이 뾰족해진다. 그게 바로 고딕이다. 고딕이 하늘를 찔러댄 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려는 자연스러운 종교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보기에도 장엄함은 물론이다. 고딕은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건축이다. 다른 동력과 기계가 없던 시대, 오로지 인간의 힘 만으로 지어낼 수 있는 극한의 건축을 우리는 유럽의 고딕 성당에서 본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고딕은 비인간적인 느낌마저 줄 수 있다. 그런 고딕처럼 높지 않으며 고딕처럼 딱딱하지 않은 건축, 그러면서도 폼은 잡아줘야 하는 건축이 로마네스크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이 바로 한국에 있는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성당이다. 명동성당처럼 웅장하고 뾰족한 성당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에게 저 성당이 좀더 포근하고 귀엽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로마네스크여서 예쁘고 중요한 것은 전혀 아니다. 재미없는 공부하듯 ‘성공회 성당=한국 최초의 로마네스크’식으로 외울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성당이나 교회보다 이상하게 만만하네, 그리고 정겨운데?’라고 직접 만나서 느껴보는게 중요하다. 

 

이 성당에는 그렇게 정겹고 만만하게 느끼게 만드는 이유가 들어있다. 


우선 웅장한 고딕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로마네스크란 점이 첫번째 이유다. 그 다음으로는 벽돌 건물 특유의 분위기다. 벽돌 건물들은 다른 소재 건물들보다 훨씬 사람들에게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또다른 이유가 더 있다. 바로 ‘한국화된 로마네스크’이란 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문화와 어울리고자하는 로마네스크라고나 할까?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성공회 성당 안에는 한옥 건물들이 공존한다. 저 한옥들과 저 성당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다른 서양식 건물들과 달리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지붕에 있다.

 



자세히 보면, 성당의 지붕들이 우리 한옥의 기와지붕이다. 위로 솟은 두 기둥탑 지붕과 가운데 돌출된 반원 부분 지붕이 마치 한옥 정자 지붕처럼 생겼다. 반면 양쪽 어깨부분 지붕은 서양식 빨간 기와지붕이다. 한 건물 안에 동서양 지붕양식이 동시에 ‘짬뽕’이 되어있다. 


아래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에는 더욱 분명하게 지붕의 조화가 드러난다.


사진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십자 모양을 이루는 줄기 지붕은 서양식 빨간 기와 지붕이고, 네 모서리 돌출된 기둥과 반원형 부분의 지붕들은 모두 한옥 기와 지붕이다. 그래서 뒷편 한옥 기와와 잘 조화를 이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붕 아래 튀어나온 돌 장식들도 모두 한국식 처마를 디자인했다. 그래서 이 성당은 그냥 휙 지나가면서 봐도 어딘가 한국적인, 적어도 서양건물 특유의 이질감이 줄어든 느낌을 준다. 그 이유가 바로 이렇게 한국 전통 건축의 디자인을 성당안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적인 디자인을 담은 저 성공회 성당은 주변 한옥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


성당 건물 옆에는 한옥 건물이 두 채, 벽돌 건물이 한 채 있다. 아주 전통적인 한옥, 그리고 아래 사진처럼 벽돌로 변형한 한옥이다. 그 옆 건물은 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건물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새를 뽐내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이 성당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옥, 서양 성당, 현대 건물이 잘 어울리는 이 풍경도 이 성당의 중요한 매력포인트이자 이 곳을 첫번째 답사코스로 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건물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건물이다


성당 구경은 반드시 내부를 돌아봐야 한다. 성당에 갔는데 안을 보지 않았다면 선보러 가서 얼굴만 보고 대화를 안하고 돌아오는 것과 같다. 성당은, 안에 들어가라고 만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건축이란 것이 빛으로 폼내는 것이고, 성당은 그런 빛의 예술을 가장 추구하는 건축물이다. 


그럼 우리 서울의 성공회 대성당 안은 어떨까.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다른 성당들과 달리 내부가 아주 화려하지 않다. 단아하다. 그리고 정갈하다. 하얀 벽, 그리고 나무 지붕 구조가 단순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저 끝에 보이는 성소가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로 손님을 맞는다. 성소 부분만 은은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깔로 물들어 그윽함이 풍긴다. 그리고 그 보랏빛살 속에 황금 모자이크가 빛난다. 공간은 크지 않아도 그 안에 많은 표정들이 있다. 건축의 감동은 크기순이 아니란 걸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럼 성당의 앞쪽에서 입구쪽을 보자.

 



웅장하진 않아도 근사한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성탄절때 마련한 예수 탄생 장식물이 귀엽다. 초가집 모양이어서 더욱 소박해보인다. 귀여운 샹들리에가 도드라져 보이는 천정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향한다. 그리곤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일까?




바로 작은 아치가 귀여운 창문이다. 그 창문의 창살에 절로 눈이 가게 된다. 


서양식이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 창살이다. 성당 한국 전통 건축의 디자인은 녹아들어 있었다. 한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바로 창살의 디자인을 말이다. 한옥 창호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미니멀하다. 


성당을 설계한 파란눈의 건축가는 한국의 건축에서 그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세살로 창을 냈다. 그 안목과 마음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절로 느끼게 된다. 조용히, 그냥 눈짓만으로도 이야기하는 건축, 그런 건축물은 드물다.


아름다운 지하성당을 놓치지 마세요


성당의 바깥과 내부까지 봤으니 구경은 끝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곳이 더 있다. 성공회 대성당에서 꼭 봐야 할 곳은 지하. 지하에 성당이 하나 더 있다. 이름도 지하성당이다.


서양의 유명 성당에는 대부분 지하 공간이 있다. 땅 속이어서 규모는 작아도 그래서 또다른 느낌을 주는 장소들이다. 명동성당에도 지하 공간이 있다. 성공회 대성당의 지하공간은 이 성당의 최고 매력이기도 하다.


성공회 대성당은 건축 구경을 하러 오는 이들을 위해 이야기하면 내부를 잘 보여준다. 설명해주는 자원봉사자가 있을 때도 있다. 안을 둘러봤다면 한번 이 지하성당을 보여달라고 부탁해보자. 




1층 성당을 그대로 축소한 미니 성당이 얼마나 귀여운가. 석굴암처럼 정밀감도 은근히 밀려온다. 단순한 저 성소는 거대 성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대쪽을 보자.




저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보라. 


파이프 오르간은 늘 얼마나 큰가가 관심대상이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은 너무 커서 비현실적인 악기다. 거대하기만 한 성당처럼. 저 작고 아담한 지하성당을 울리기에는 작은 파이프오르간으로도 족하고 남는다. 작아서 오히려 더 거부감이 없는 파이프 오르간도 이 지하성당의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것이 남는다. 바닥의 저 금속판이다. 




무엇이 떠오를까?


누군가를 기념하는 장식물임은 분명하다. 그림을 보면 성공회 성직자임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왠지 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맞다. 실제 이 금속판의 아래에 저 그림속 인물이 잠들어 있다. 성당의 주요 기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덤기능이다.


저 소성당 지하에 묻힌 인물은 마크 트롤로프 주교. 대한성공회 3대 주교다. 그림 속 트롤로프 주교는 오른 손 위에 성당 건물을 들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이 아름다운 서울대성당이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트롤로프 주교의 작품이자 분신이다. 

 

건축 사랑이 지독했던 주교, 못잖게 지독했던 건축가의 만남


한국땅에 성공회를 처음 전파한 사람은 초대 주교 존 코프(한국명 고요한)였다. 1891년 그는 지금의 영국대사관 부근에 한옥집을 하나 사서 선교를 시작했다. 한옥과 성공회가 친해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1914년부터 성공회는 서울에 제대로 된 서양식 성당을 세우기로 한다. 20년 넘게 전도해서 어느 정도 한국땅에 자리 잡았으니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지독하게도 어렵고 고생스러운 노정의 시작이었다.


건축비를 마련하고 구상하는 과정은 길고 길었다. 제대로, 꼼꼼히를 외쳤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성당 건축을 지휘한 사람이 바로 저 3대 트롤로프 주교였다.


트롤로프 주교는 새로 짓게 될 성당이 진정 한국땅과 하나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빨리 짓기보다는 제대로, 그리고 신중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 가장 중요한 건축가를 당시 영국에서 일급 종교건축가로 인정받던 거물급을 불렀다. 


주교는 건축가에게 왜 이 성당이 중요한 지, 어떠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편지를 썼다. 당시 편지를 보면 트롤로프 주교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성공회가 한국 땅에 뿌리박으려면 토착 문화와 어울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도 그런 점이 중요하다고 편지에 쓰고 있다.


그래서 아서 딕슨은 한국땅을 밟게 된다.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 제물포까지 배로 3달을 걸려 도착했다. 그렇게 오라고 부른 주교도, 찾아온 건축가도 한고집들 하는 사람들이자 건축에 목숨건 사람들이다.


아서 딕슨은 자신의 작품이 들어설 한양의 정동이란 공간, 그리고 조선의 건축문화를 살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옥이란 건축, 그리고 정동의 스카이라인과 어울리려면 뾰족한 고딕은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담하고 포근한 로마네스크양식이 채택된 것은 그의 깊은 고민과 배려의 산물이었다. 조선의 전통문화와 어울려야 한다는 주교의 의식, 그리고 건축가의 이해심은 한국식 기와지붕과 전통 창호 디자인의 창문으로 건물에 남았다.


마침내 성당이 준공된 것은 1926년, 트롤로프 주교가 구상을 한 지 10년도 넘게 지나서였다. 그러나 진정한 완공은 아니었다. 성당은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었지만 미완성으로 일단 문을 열었다. 자금이 모자랐던 탓이다. 그래도 성당은 아름다웠고, 덕수궁과 잘 어울리면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사랑받게 됐다. 그만큼 공들인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렀다. 한국전쟁 때에는 이 성당이 총탄 세례를 받기도 했다. 성당을 지키던 성직자와 신자가 목숨도 잃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쳤던 성직자들이 끌려가기도 했고,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군부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제 성당은 단순히 성공회 신도들의 성소가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역사적 공간이 됐다.


1996년, 성당은 새롭게 탄생한다. 미완성이었던 건물이 70년만에 원래 설계대로 완성된 것이다. 그 과정 역시 기적이라면 작은 기적이었다.


1991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대한성공회는 미완성 성당을 완공하고 싶었으나 완공할 수가 없었다. 원래 설계도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영국 관광객이 이 성당을 보고 간 뒤 자기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 이 건물의 설계도를 찾아냈다. 놀라운 발견 덕분에 성당 공사는 시작됐다. 증축은 한국 건축가에게 맡겨졌다. 김원 광장건축 대표가 1세기전 영국 건축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신축이 그토록 어려웠듯 증축 또한 지난했다. 건물을 지었던 당시 재료들을 얻을 길이 없었다. 성당을 지은 강화도 화강암을 구하기 어려워 중국 칭다오 화강암을 찾아냈다. 벽돌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비슷한 붉은 색 흙을 찾아 헤맨 끝에 경기도 화성에서 가장 흡사한 흙을 구했다. 그리고 당시 기와에 가깝도록 재래식 화로에서 기와를 구웠다. 그 덕분에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의 성당 양날개와 아랫부분을 70년 뒤 새로 지었음에도 그냥 봐서는 어디가 증축한 부분인지 쉽게 구별이 안된다. 지극한 정성은 자연스러움으로 보답한 것이다.


그리고. 성당 증축을 담당한 공사 책임자는 완공 이후 성공회 신자가 되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은, 아니 좋은 건축은 그 시대를 기록한다. 겉 모습에는 지을 당시의 스타일만을 담는 것 같지만 공간 속으로 녹아들면 시간까지 담는다. 그래서 모두의 것이 된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트롤로프 주교와 아서 딕슨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참혹함, 독재 시절 저항의 흔적까지 현대사를 관통하며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그러모아 간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겨우 80년된 건물일뿐이다. 그럼에도 저 성당은 다른 어떤 건축보다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서울대성당에는 이 건물을 위해 열정을 쏟은 여러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이야기들은 그대로 이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됐다. 건축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아름다움,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듯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저 성당을 서울 건축 나들이의 첫번째 목적지로 추천하게 된다.  


그리고, 성공회 성당 이야기


건축은 참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저 성공회 대성당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종교가 전해지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조선에 들어온 서방 종교들은 모두 서양 그대로의 고딕식 성전을 지었다. 대표적인 것이 명동 성당이다. 명동성당의 높고 웅장한 규모는 천주교의 강한 선교 지와 신념을 극명하게 시각화한 것이었다. 

성공회라고 그런 의지가 없었을까. 그러나 건축으로 드러난 방법은 저렇게 달랐다. 성공회는 조선의 토착문화와 어울리고자 했다. 성공회 최초의 성당은 지금 서울대성당터에 있던 한옥을 사서 그대로 쓴 ‘강림성당’이었다. 그리고 이후 지은 초기 성당들은 한옥의 건축을 그대로 따르며 공간을 성당식으로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강화 성공회성당이다. 지금도 잘 남아있는 강화성당은 조선의 문화에 대한 성공회 성직자들의 높은 인식과 수용자세를 잘 보여준다. 

 

이용재 건축평론가


 

강화성당은 겉으로 봐서는 성당임을 알기조차 힘들다. 차라리 절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이 조금 달라진다.

 

이용재 건축평론가. 보통 한옥에선 나무 기둥에 시구 등을 주련으로 다는데, 저 성당은 성경구절을 붙인다.


 

한옥을 처음에는 성당으로 썼고, 그리고 한옥을 개량한 초기 성당을 지은 뒤, 성공회는 로마네스크에 한옥의 유전자를 담은 서울대성당은 남겼다. 그런 점에서 저 성당은 정말 건축적으로는 위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런 식으로 다른 나라, 다른 건축과 만나는 종교가 또 있었던가.

 

조선 문화에 대해 훨씬 더 수용적인 자세를 보였던 성공회보다 강한 고딕식으로 원칙을 고수했던 기독교의 교세가 오늘날 더 번성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러나 성공회의 저런 건축관은, 오늘날 이 종교가 한국에서 왜 작지만 강한 종교로 좋은 이미지와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