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사내녀석들용 그림책 한번 보세요 2008/09/16

딸기21 2018. 9. 11. 16:13

가끔 글 부탁을 받곤 합니다. 즐거우면서도 가장 난감한 원고 청탁이 ‘베스트’를 꼽아달라는 것입니다. 앞서 만화 심사이야기에서도 잠깐 언급했는데, 많고도 많은 좋은 것들 사이에서 뭘 골라내야할지 고민스럽기 때문이지요.


한달 쯤 전일까, 이번에는 어린이책을 골라달라는 글 부탁을 받았습니다. 한 어린이육아 잡지였는데, 그림책을 8권 추천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 아빠인 저로서는 아들 녀석이 좋아했던 책(물론 저도 좋아했던 책)으로 8권을 골랐는데, 예상 이상으로 고르면서 머리가 아팠습니다. 차라리 80권을 고르라고 했으면 고민스럽지 않았을 겁니다. 아들 녀석 방에서 이 책 꺼내보고 저책 훑어보면서 간신히 8권을 추렸습니다.


처음 부모가 되시는 분들은 어린이책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요즘 어린이책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뭐가 좋은지 일일이 보기도 어려울 정도죠. 그러다보니 정반대로 어린이책들은 마치 ‘수학의 정석’처럼 정해진 유명 책들의 권위가 대단하기도 합니다. 가령 미취학 어린이들의 경우라면 <달님 안녕>, <까꿍놀이>, <누가 내머리에 똥쌌어>, <강아지똥> 등 정해진 수순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범 답안’에 그래도 덜 포함되면서 우리 아들도 좋아했고 읽어주는 저는 더욱 좋아했던 미취학 어린이용 그림책들로 골랐습니다. 8살 이하 남자아이를 둔 부모님들께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고른 책들을 소개합니다. 책 나열 순서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고 녀석 맛있겠다>

미야니시 타츠야 지음, 달리 펴냄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길을 잃은 아기 공룡 안킬로사우루스.

갑자기 티라노사우르스가 나타나 “고녀석 맛있겠다”고 입맛을 다십니다.

아기 공룡은 잡아먹으려는 줄도 모르고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듭니다.

“맛있겠다”가 자기 이름이고 티라노가 아빠인 줄로 안 겁니다.

졸지에 아빠가 된 티라노는 아기 공룡을 아빠처럼 보살핍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라노는 헤어지는 슬픔을 꾹 참고 맛있겠다를 독립시키는 작전에 나섭니다.


이 책은 시원시원한 만화풍 그림도 재미있지만 거대한 공룡과 아기 공룡의 ‘관계맺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야기는 웃기는 그림체와 달리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데, 그만큼 카타르시스 효과도 큰 편입니다.


<꼬마 트랙터 맥스>

로랑 브르쥐농 글, 도미니끄 마에 그림, 한스북 펴냄


빨간 트랙터 맥스가 전시장에서 팔려 농사지으러 농촌에 갑니다.

열심히 농부 아저씨와 일하던 맥스는 그만 고장이 나서 트랙터 병원에 실려 갑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을 만들어주는 농촌 이웃들과 트랙터 같은 기계들이 얼마나 수고하는지 절로 깨닫게 됩니다.


남자 아이들에겐 이런 특수장비차들이 무척 인기 아이템입니다. <뚝딱마을 통통아저씨>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지요. 새로운 환경과 가슴떨리는 만남, 그리고 중간의 난관을 넘어 다시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맥스의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아빠는 미아>

고미 타로 글 그림, 비룡소 펴냄



백화점에 간 꼬마는 아빠를 잊어버렸습니다. 아빠인 줄 알고 달려가면 다른 사람입니다. 도대체 아빠는 어디에 계신 걸까요? 고미 타로 특유의 귀엽고 정감어린 그림의 묘미와 입체 구조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아이들의 흥미를 잡아끕니다.


아이가 미아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빠가 미아가 됐다고 한 표현이 재미납니다.


고미 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귀엽고 코믹한 이야기가 매력이죠. 어린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는 그림책들도 한 권씩 사줄만 합니다.


<다음엔 너야>

에른스트 얀들 글, 노르만 융에 그림, 비룡소 펴냄


장난감들이 의자에 줄지어 앉아 기다립니다.

가만 보면 어딘가 하나씩 고장이 난 장난감들입니다.

문이 열리고 하나씩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나올 때는 말끔하게 수리가 되어 있습니다.

앞에 기다리던 친구들이 모두 들어갔다 나오고, 드디어 내 차례!

저 문 안에는 누가 있는 걸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은 따로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일찍 일어난 아침>

라이마 글 그림, 디자인하우스 펴냄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꼬마가 가족잔치를 준비하는 할머니를 따라나섭니다.

모두 쿨쿨 자는 줄 알았던 새벽에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는지 꼬마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태양이 뜨면서 변하는 새벽의 빛깔을 화사하게 담아낸 그림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예쁜 책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재미있는 그림책이 절판이 된 듯합니다. 풍물이 인상적인 대만의 모습이 귀엽고 예쁜 그림으로 잘 묘사되어 보기만해도 즐거워지는 책인데, 다시 한국 어린이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거북이가 풍덩!>

캐스린 폴웰 글 그림, 아이세움 펴냄



거북이 열 마리가 기어갑니다.

책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거북이가 한 마리씩 사라집니다.

잘 들여다보면 앞 페이지에서 조그맣게 숨어있던 동물이 다음 장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와 거북이들과 만납니다.

거북이 열 마리로 숫자를 배우면서 도시에서는 못 보는 숲과 호수라는 자연환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호백 글 그림, 재미마주 펴냄



모두가 집을 나간 사이, 토끼가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시죠?

우리가 엿보는 줄도 모르고 토끼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혼자서 잘도 놉니다.

교훈과 재미를 앞세우지 않고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외국에서 좋은 그림책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그림책임이 분명합니다. 그림도 정겹고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아이들은 심심한 듯 정갈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아이들의 마음에 맞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끼리 가자>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보리 펴냄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책의 스테디셀러입니다. 색깔 없이 흑백 대비뿐이지만 정교하면서도 귀여운 펜그림을 보는 맛이 일품입니다.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부모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그림책일겁니다.


<또르의 첫인사>

토리고에 마리 글 그림, 베틀북 펴냄


수줍어서 인사를 못하는 아기 고슴도치 또르.

엄마와 인사 연습을 한 뒤 이웃 동물들에게 인사를 시도합니다.

과연 성공했을까요?


우리 아들도 또르처럼 수줍어했습니다.

꼬마들도 인사를 잘 하고 싶은데 수줍어서 못하는 것이라는 걸 바보 아빠인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너무너무 귀여운 또르를 보여주면 수줍은 아이들도 인사를 잘 하고 싶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