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이화여고가 부러운 까닭 2008/04/15

딸기21 2018. 9. 2. 20:08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장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담길이라면 어디일까요?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덕수궁 돌담길에서 조금만 더 정동쪽으로 올라가시면 아주 인상적이고 예쁜 또다른 담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입니다. 바로 이화여고 담길입니다.

 



저 보기 좋은 돌담이 이화여고 담장입니다. 역사가 오랜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담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다른 돌담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랫부분입니다. 

돌담 아래 시멘트 구조 부분이 울긋불긋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부분은 경사로를 따라 점점 넓어지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투박하고 정감어린 돌담 아래 칙칙한 시멘트 담이 맞닿는 구조여서 전통의 정취가 그윽하려다 말수도 있는데, 저 그림이 들어가 정말 독특한 담이 되었습니다.

 



저 담에 그려진 그림은 정식 공공미술 작품입니다. 이름하여 <담꽃>. 작가는 김대성씨입니다만 계원조형예술대학과 이화여고 학생들이 참여한 모두의 작품입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로 지난 가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면서 느끼셨을텐데, 저 담에 핀 꽃 그림은 아주 선명하지 않고 좀 희미하게 보일겁니다. 그 이유는 저 작품은 분필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이화여고의 저 예쁜 담이 반가웠던 이유는 서울에서 예쁜 담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600년 역사도시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전통 담장을 만날 곳은 궁궐 주변을 빼면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현대식 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담을 굉장하게 꾸밀 필요도 없을 것이고, 담으로 예술할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라도 좋고 따라 걸으면 정겨운 담들은 정말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바쁘다보니 담을 별로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담이라는 것 하나에도 참 많은 것들이 담겨있을지 모르거든요.

 

담이 담고 있는 것들

 

담이란 것은 참 묘합니다. 여기는 내땅이니 들어오지 마시오, 라며 가로막는 배타적인 구조물인데도 잘 꾸며놓은 담을 보면 정겨워집니다.  

특히 우리 전통 담들은 그 자체로 미술품처럼 예쁘고 정답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담이 가장 예쁘다고 하면 주관적이기 짝이 없지만, 제눈에는 우리 담장이 가장 멋져 보입니다.

 

한국은 분명 ‘담이 예쁜 나라’입니다. 

우리 담은 궁궐처럼 담이 정말로 방어용인 곳을 빼면 대부분 사람 키를 넘지 않습니다. 사적 공간임을 알리고자 할 뿐, 남의 눈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성껏 담을 가꿉니다. ‘꽃담’이란 일반명사까지 생겼을만큼 담은 전통 건축에서 주요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경복궁 자경전 돌담.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꽃담은 예쁜 벽돌로 무늬를 만들어 꾸민 담입니다. 우리 꽃담의 대표선수는 역시 경복궁 자경전 꽃담입니다. 창덕궁에 있는 낙선재 꽃담도 일품입니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저렇게 멋드러지게 꽃담을 짓기는 어렵지요. 기와조각, 그러니까 와편을 이용해서 모양을 내는 꽃담을 세우기도 합니다.

기와조각 담장인 와편 담장은 우리 전통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멋진 부분입니다. 와편담장에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데 흙으로만 담을 쌓으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기와를 넣어 지탱하는 힘을 키워준 것입니다. 

 

충남 아산 외암리민속마을 돌담.



소박한 돌담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돌담이란 것이 대충 턱턱 줏어온 대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도 나름 엄청나게 과학적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돌 사이 틈과 구멍이 있어 바람과 물이 쉽게 빠지고 드나들며 물기가 얼고 풀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돌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쌓습니다. 삐뚤빼뚤하게 쌓는 게 아니라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는데, 직선으로 쌓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곡선이 공학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쌓은 것입니다. 그래서 돌담은 ‘숨어있는 조상들의 지혜’로 종종 꼽힙니다.

 

외암리 민속마을 돌담길. 각종 식물들이 어우러져 더욱 예쁘다.



이 정겨운 돌담들은 이제 정말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이 2006년엔가 전통 돌담길이 잘 남아있는 곳들을 골라 문화재로 지정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어버리면 개발 등을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화재를 보존하면 복덩어리가 되는 풍토가 빨리 정착돼야 풀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담이 보여주는 빼어난 상상력

 

우리 전통건축 담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멋진 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전통 정원의 백미라고 하는 전남 담양 소쇄원의 담입니다. 

소쇄원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이자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맨 윗쪽 계곡에 세운 담입니다.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담을 쌓으면서도 담장 아래를 자연석으로 괴고 길을 터서 계곡물이 흘러내려가도록 했습니다. 물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해서 수구문이라고도 합니다. 저 담 하나만으로도 소쇄원은 우리 건축문화재의 보물이 될만합니다. 

저 담은 아이디어 못잖게 생긴 것도 무척 멋집니다. 윗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왼쪽 계단식 담장을 한번 보시죠.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담은 우리를 비춘다

 

저런 담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꼭 전통 담이 아니어도 예쁜 담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긴 매끈하게 잘 만들어놔도 낙서에 광고지만 붙여대니 그것도 문제이긴 문제입니다.

 

담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땅의 소유 경계를 가르는 구조물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크고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거리의 인상이 지저분하느냐, 깨끗하느냐는 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시에 담은 중요한 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벽화며 그래피티 운동 등은 담이 있어서 생겨난 문화예술이라고 하겠습니다. 

 

담이 예쁘면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도 풍요로워집니다. 예쁜 담길을 걷는 정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겁니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생각해보시죠. 덕수궁 내부 공간보다도 그냥 그 담따라 걷는 길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화여고 담장은 담 하나만 바뀌어도 학교는 물론 거리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담은 휴식처이자 예술의 무대가 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담은 우리를 담습니다. 담 안쪽으로는 주인만의 것이지만, 바깥으로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은 도시의 인격입니다. 담을 보면 우리가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기대고 싶은 담, 따라 걷고 싶은 담이 늘어나주면 좋겠습니다.

 


# 아쉽게도 이화여고의 예쁜 담 작품은 담을 고치면서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밴 흔적을 남겨놓았어도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