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추리작가들에게 이런 작품이? 2007/04/08

딸기21 2018. 6. 11. 10:39

유명 추리 작가들의 색다른 작품들

 

이언 플레밍(1908~1964). 그 이름만 들어도 ’007’을 떠올리게 되는 20세기 최고의 스파이소설 작가로 플레밍은 일세를 풍미했다. 그가 정보부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만들어낸 제임스 본드는 1953년 첫 소설 [카지노 로열]부터 등장해 1964년 그가 숨지기 전까지 모두 14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소설로, 그리고 영화로 전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병상에서 아들에게 들려준 얘기


그렇다면 이 플레밍이 남긴 마지막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숨진 1964년 나온 소설은 뜻밖에도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현대판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이자 ‘사람처럼 말하는 자동차’  이야기였다. 바로 <치티치티 뱅뱅>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치티치티뱅뱅'. 같은 이름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첩보소설의 대명사로 007을 만든 플레밍은 이런 예쁘고 재미난 동화를 쓰기도 했다.

 

<치티치티 뱅뱅>(김경미 옮김·열린책들 펴냄)이 국내에서 다시 출간됐다. 70~80년대 어린이들에게는 이원복 교수가 그린 만화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또는 ‘치티치티 빵빵’이나 ‘뛰뛰빵빵’이란 이름으로 사랑받았던 바로 그 이야기다.

 

<치티치티 뱅뱅>은 괴짜 발명가이자 모험가인 포트 중령이 갖가지 신기한 장치를 단 마법자동차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모험에 떠난다는 것이 줄거리다. 1968년 일찌감치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2년에는 인기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2006년 대형 뮤지컬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상륙하는 등 화제가 되면서 이번에 책으로도 다시 선보인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 삽화가인 존 버닝햄의 그림을 곁들였다.

 

이 소설은 언제나 첩보물만 썼을 것 같은 대중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온가족이 함께 웃으며 볼 수 있는 해맑은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말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플레밍은 요양중에 이 책을 썼는데, 아들 캐스퍼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뼈대로 삼아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모험을 버무렸다. 그가 세계 어린이들에게 남긴 귀중한 선물이 된 이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했는지, 그리고 어린이 작가로서도 얼마나 탁월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치티치티 뱅뱅>이 보여주듯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 작가들이 모두 그들의 이미지로 인식된 장르의 책만 썼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작가가 이런 작품도 썼어?’라고 생각하게끔 전혀 다른 책을 쓴 작가들도 많다. 이처럼 유명 작가의 숨은 면모를 발견하는 것 역시 책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특히나 세계적인 추리소설의 거장들 가운데에는 플레밍처럼 ‘뜻밖의 작품’을 쓴 이들이 많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파고드는 게 주특기인 추리소설가들이 독자들에게 고정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팬서비스’이기도 하며, 때로는 ‘전공 못잖은 부전공’인 작품들도 있다. 국내에서도 70~90년대 한국 추리소설계 최고 인기작가였던 김성종씨가 역사소설 <여명의 눈동자>로 추리소설 못잖은 인기를 누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탐정소설의 대명사인 아더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셜록 홈즈만은 아니다. 고집장이에 괴팍한 성격은 같아도 비상한 두뇌로 범인을 밝혀내는 홈즈와는 달리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모험가 ‘챌린저 교수’가 있다.


챌린저 교수


이 챌린저 교수가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 <잃어버린 세계>는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가 못잖은 모험소설가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역시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남아있는 미지의 세계를 챌린저 교수 일행이 탐험한다는 것이 줄거리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 알려진 소설 <주라기 공원> 등에 영향을 미쳤다. 

코난 도일은 1912년 발표한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계속 발표했다. <잃어버린 세계> 이후에 나온 <안개의 땅> 등은 과학적 소재에 깊이 빠져들어 과학소설(SF)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에는 이 <잃어버린 세계>와 <안개의 땅> <마라코트 심해> 등이 나와있다. 

추리소설팬들에게는
 <노란 방의 비밀> 한 작품만으로도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못잖은 작가인 가스통 르루는 추리에 많은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겐 오히려 그가 추리소설도 썼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르루가 창조한 탐정인 앳된 기자 루르타비유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표작 <노란 방의 비밀>은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비밀을 푸는 이른바 ‘밀실트릭’의 고전으로 추리소설사에서 늘 걸작으로 꼽힌다.

 

체스터튼 유머 넘치는 ‘팔방미인’


하지만 정작 가스통 르루란 이름은 이 탐정소설보다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 작가로만 더욱 알려져 있다. 뮤지컬팬들에겐 그가 추리소설을 썼다는게, 추리팬들에겐 그가 오페라의 유령같은 로맨스 소설도 썼다는게 색다르게 느껴질만하다. 

가스통 르루는 또한 기자이기도 했는데, 러일전쟁 당시 프랑스 신문의 특파원으로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에서 벌어졌던 제물포해전을 취재해 르포를 남기기도 했다. 이 책은 뒤늦게 발견돼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이름으로 2006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바 있다.  


탐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깨버리는 독특한 탐정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은 워낙 팔방미인이었던 탓에 많은 글을 남겼지만, 추리 이외의 분야에서 가장 주요한 저술은 뜻밖에도 ‘기독교 선교서’가 꼽힌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 체스터튼의 <오소독시>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그가 기독교에서도 정통신앙(오소독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책이다.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를 장기로 하는 체스터튼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활용하면서 신앙을 역설한다.

 

‘논쟁의 달인’으로 불렸던 그는 친구이자 논쟁에서는 적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해 H. G. 웰스, 버트런드 러셀 등 쟁쟁한 지성들과 설전을 벌여 이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체스터튼은 독실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버나드 쇼와 웰스,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작가들을 싸잡아 이단자로 비판했고, 왜 그들이 이단이며 진짜 정통이란 무엇인지 알리고자 노력했다. 체스터튼은 언론인으로도 이름을 남겼는데, 당시 영국이 벌인 보어전쟁에 반대한 양심적 행동과 함께 인종차별의 근거였던 우생학에 동조하지 않아 훗날 많은 존경을 받았다.

 

애거사 크리스티 판타지소설도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도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들이 있었다.

국내에는 [리가타 미스터리]와 [빛이 있는 동안] 등의 단편소설집에 들어있는 심령소설이나 환상미스터리, 곧 팬터지소설들이다. 다른 추리소설들보다도 훨씬 정교한 짜임새를 추구한 애거서 크리스티가 왜 팬터지에 관심을 가졌나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만들어낸 에드거 앨런 포가 팬터지도 함께 개척했음을 떠올린다면 두 장르는 원래부터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난 도일도 만년에는 신비주의에 빠졌을만큼 추리작가와 팬터지는 묘한 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로는 꼭 6편을 썼고, 시집과 중동 체험담, 자서전도 남겼다. 국내에 소개된 이 환상소설들은 크리스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크리스티의 또다른 정신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