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31

폐허를 느끼고 싶을 때 부암동으로 가라 2008/03/31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문득 부암동으로 갔다. 역사의 흔적, 망가진 곳이 주는 묘한 분위기, 허물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부암동에 있다. 부암동 동사무소 옆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바로 이 집터다. 저 커다란 나무와 가꾼 정원이 어우러졌던 시절에는 무척이나 괜찮은 집이었을텐데 휑하게 방치된 마당은 이미 마당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집터는 온통 잡초들이 우거졌고, 동네 사람들의 간이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저 썰렁한 빈 마당이 바로 국어 시간에 들어봤을 문인 현진건이 살았던 집터다. 현진건(1900~1943)이 누구인가. 호는 ‘빙허’. 허공에 기댄다는 멋진 호다. 와 그리고 를 우리에게 남겨준 작가. 그의 소설들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

세운상가 이슈에 끼어든 개그맨, 서울 중구청 2008/03/25

70년대 풍경 그대로 남은 대림아파트 대림아파트는 70년대 아파트만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아파트를 나서기 전에 마주친 몇몇 풍경들은 이제는 홀로 남아버려 귀중해진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줬다. 바로 이런 장면들이다. 먼저 대림아파트 경비실의 모습. 건물 내부에 합판으로 지은 저런 경비실은 요즘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 뒤로 복도에는 오락기들이 늘어서 있다. 대림상가 입주 업체들이 내어 놓은 것들이다. 줄지어선 오락기 사이로 식당 아주머니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이 복도에서 정말 예전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는 다방을 만났다. 이름은 ‘세운나 다방’. 왜 세운나 다방일까? 세운가 다방도 있었던 것일까? 쓸데 없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쉽게도 들어가서 물어보지 못하고 답사..

세운상가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2008/03/24 

옥상에서 만나는 놀라운 풍경 세운상가의 가장 꼭대기 13층 옥상에 올라가보면 일단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옥상에서 먼저 만나는 이상한 풍경을 지난 뒤 바로 극적인 전망과 마주치면서 절로 나오게 되는 기분 좋은 탄성이다. 먼저 옥상문을 열면 거대한 옥외 광고판 내부로 나오게 된다. 광고판 속에는 거의 폐허 수준의 옥탑방이 철제 광고판 뒷면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현실에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광고판 속을 지나 이제 진짜 옥상을 만날 차례다. 좁은 계단을 열고 나오자마자 만나는 이 독특한 풍경을 거쳐 훤하게 뚫린 옥상으로 나가면 일순간 시야 전체가 확장되는 것처럼 속까지 시원한 놀라운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운데 긴 전통건축물이 들어있는 거대한 숲, 조선최고의 성지 종묘다. 사진이 작..

사라지기 전에 세운상가에 가다 2008/03/22

날씨가 그야말로 화창했던 20일 오후, 드디어 세운상가 답사를 다녀왔다. 오랫 동안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던 답사였다. 게으름과 바쁨 탓에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내 이날 숙제를 마치듯 답사를 마쳤다. 세운상가는 계획대로라면 멀지 않은 미래 철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 상인들과 충돌이 끝나지 않아 정확한 공사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40년 동안 버티고 있었던 이 거대한 회색 괴물이 이제는 사라진다는 점이다. 30년 가까이 이 건물을 지나다니며 보아왔음에도 그 내부를, 그 전체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마침 도시의 풍경을 기록해온 단체 문화우리에서 곧 떠나게 될 세운상가를 기록한다고 해서 함께 따라나섰다. 이렇게라도 돌아봐두지 않으면 앞으로 이 문제적 건축물을 ..

도쿄의 골목에서 만난 일본스러움 2008/02/28

‘저건 뭐지?’무척이나 날빛이 강했던 지난 여름 어떤 날, 도쿄 에도구 기요스미시라카와 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이었다. 평범한 주택가의 흔하디 흔한 골목길 구석에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늘 속에 조그만 물체 하나가 숨어있었다. 처음에는 까만 비석인줄 알았다. 아끼던 개가 죽어 묻기라도 했나, 혼자 궁금해서 들여다봤다. 뜻밖에도 기념비였다. 30센티미터나 될까한 아주 작은. 적혀있는 글은 ‘사도 포장완성기념’. 자기 집 앞 길을 시멘트로 포장한 기념비였던 것이다. 재미있었다. 도시 전체로 보면 공사 같지도 않은 공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공사였겠는가. 그걸 저런 작은 기념물로라도 기념하려는 서민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소중한 일들을 자기 스..

내 마음의 보석이 된 그 곳 2007/11/17

눈 앞에 정말 갈색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갈색 도시 한 가운데에서 옥빛 모스크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코발트빛의 진정한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문명길에 꽃처럼 피어난 오아시스 도시는 그림 같은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난 역사와 자연, 철학과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철없는 스물네살이었던 나는 사막 도시에서 잠깐이나마 어떤 본질적인 것과 조우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몇 번 안되는 순간이었다. 1992년 2월, 러시아에서 연수중이던 나는 충동적으로 중앙아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턱대고 러시아로 날아갔지만 연수 1년이 되도록 미래의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기도 괴..

초록빛이 묻어나는 정원-기요스미테이엔 2007/09/25

지난 여름, 도쿄를 방문하면서 개인적으로 세웠던(?) 목표가 있었다면 ‘가능하다면 하루 1시간 정도 짬을 내 도쿄 시내의 정원이나 공원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갔던 곳 가운데 하나가 ‘기요스미테이엔’(淸澄庭園), 그러니까 기요스미정원이었다. 도쿄 시내 동편인 기요스미시라가와에 있는 작지만 제법 유명한 정원 공원이다. 정원을 찾아간 날은 무척이나 햇빛이 강했다. 워낙 빛이 강하면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모두 하얗게 보이듯 사물들의 색깔이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빛은 오히려 그런 강한 빛 속에서도 제색을 낸다. 그런 초록빛을 담뿍 머금은 곳이 바로 기요스미 정원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향연은 없지만, 오로지 농밀한 초록빛을 흠뻑 즐길 수 있는 곳, 그 초록빛을 눈에 새기고 올 ..

도쿄 최고의 찻집-호수속 섬에서 즐기는 전통차 2007/09/07

왼쪽으로는 어시장과 항만 장비들이 보이는 부두, 다른쪽은 거대한 초현대식 빌딩들의 숲. 그리고 그 사이 바다위에 초록빛 섬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도쿄에서 가장 큰 일본 전통 정원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마리큐온시테이엔'은 도쿄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1654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즈나는 스미다강 하류가 바다와 만나는 이곳을 매립해 섬을 만들었다. 작은 바닷물길이 둘러싸는 인공섬에 별장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정원 안에는 너른 꽃밭과 잔디밭을 깔고, 야트막한 동산도 세웠다. 그리고 섬 가운데 커다란 연못을 만들어 그 안에 다시 작은 섬을 들였다. 다른 정원에선 볼 수 없는, 물때에 따라 바닷물이 들어오는 연못이 섬 안에 탄생했다. 어느새 300년 넘게..

우리에겐 거북한, 하지만 산책길로는 최고인 메이지진구 2007/06/26

이달 초에 일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어라곤 가나조차 못읽다보니 당연히 통역분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위원으로 일본 소식을 전해주시는 황자혜씨가 통역을 맡아 도와주셨습니다. 황 위원 덕분에 인터뷰를 잘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해질녘 하라주쿠 부근이었는데, 황위원이 도쿄에서 어디를 가보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건축과 조경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더니, 황 위원이 바로 부근에 그런 곳이 있다며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황 위원이 추천한 ‘그곳’은 바로 ‘메이지진구’(明治神宮)이었습니다. 황 위원은 “일본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의 입장에서 일본의 잘 가꾼 도심 산책길로 메이지진구만한 곳이 없다”고 추천했습니다. 신사란 ..

사진을 뒤지다 찾은 신기한 학교 이야기 2007/06/21

하드에 들어있는 사진들을 정리하다보면 문득 뜻밖의 사진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올해 찍은 사진들을 지우고 정리하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진들을 찾았습니다. 설날 직후였던 올해 1월4일, 저는 ‘한국의 글쟁이’란 시리즈 때문에 대전 카이스트에서 정재승 교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사진 기자와 함께 대전에서 서울로 오던 도중, 경기도 화성 동탄에 들렀습니다. 이 곳에 있는 동탄초등학교 신리분교에 들러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교수님 인터뷰에 이어 갑자기 시골 분교에 갔느냐구요? 사진기자들은 하루에도 여러건의 사진 취재를 합니다. 거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갖가지 사진을 하루에도 수백장씩 찍는답니다. 저와 동행했던 김경호 기자도 이날 대전 취재를 마친 뒤 이곳 동탄초 신리분교에 들러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