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귀엽고도 얄미운 토토로의 집, 그리고 둘리마을 2008/03/10

딸기21 2018. 8. 24. 15:47

일본은 세계적인 만화와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도쿄에서 쉽게 가볼만한 만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명소는 선뜻 찾기 힘들다.


만화전문서점 만다라케가 만화팬들에겐 명소로 꼽히지만 외국인들이 가볼만한 관광코스로 보긴 힘들다.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관련 명소가 거의 없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지브리미술관이 등장했다. 이후 이 곳은 단숨에 도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명소가 됐다.


재미있어도 남는 아쉬움과 얄미움-지브리미술관

 

지브리미술관은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사 지브리스튜디오가 운영하는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들에겐 제법 매혹적인 곳일테고, 보통 관광객들에겐 1000엔이란 입장료가 그리 아깝지는 않은 무난하게 가볼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지브리미술관은 도쿄 인근 도시 미타카에 있다. 인근 기치조지에서 미타카로 이어지는 이노카시라공원을 따라 걸어가도 좋다. 숲이 울창한 공원을 가로질러 제법 가다보면 지브리미술관이 나온다. 아니면 중간에 빠져나와 찻길 옆 공원 담벼락을 따라 조용한 주택가와 숲이 어우러지는 길을 따라 걸어도 된다.


울창한 나무 속에 가려서 지브리미술관은 처음에는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용 건물로 오해하기도 쉽다. 그렇게 조용히 길가에 숨어있다.


지브리미술관 입구. 입장객 수를 조절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매하고 시간 맞춰 가야 한다.



옆에서 보면 웅장한 성채 같기도하고, 기묘한 요새같기도 하다.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모양이 아니라 지하로 깊게 중간을 파고 내려가고, 지상부는 모양이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건물이다. 규모에 집착하지 않고 작아도 아기자기함을 최대한 강조해 재미있게 공간을 구성했다.




건물 또다른 입구 경비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커다란 토토로 인형이다. 경비실 아래 동그란 작은 유리창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토토로>의 또다른 인기 캐릭터인 동글이검댕먼지들이 들어있다. 건물 아랫쪽 여기저기 달려있는 이런 동그란 유리창속에는 모두 검댕이먼지들 인형들이 숨어있다.




여러 각도에서 본 지브리미술관 모습. 한거번에 전체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건물 겉모습도 독특하지만 거의 모든 볼거리는 그 내부에 있다. 아쉬운 점은 내부에선 철저하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환상의 세계를 비밀스럽게 숨겨놓고자하는 나름의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이 좋아서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사진을 못찍게 하는 점은 무척이나 야박하게 느껴졌다.




몰랐던 것처럼 슬쩍 안에서 찍은 사진 하나. 독특한 내부 구조가 눈길을 끈다. 미야자키 하야오스런 깔끔함, 동화느낌, 색감 등이 잘 조화를 이룬다.


사진을 찍도록 마련된 곳은 옥상에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거신병 로봇 조각인데,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좋은 사진 촬영지다. 유일한 사진 촬영지니까. 너도 나도 한 컷씩 로봇과 한장 찍고, 그 뒤에 있는 <라퓨타>의 비행석 모형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 허무하지만 짧아서 인상적인 촬영공간이다.




미술관 최고의 인기 공간은 바로 직영 카페다. 조각 케이크와 이것저것 먹을 것을 파는 카페인데, 외관과 인테리어를 무척이나 동화처럼 꾸며 여성들이 딱 좋아하게 되어 있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세심한 신경을 쓴 부분들이 많다. 화장실이며 작은 표지판 하나하나 따로 디자인해 맞춘 것들이어서 동화속 세상에 온 느낌을 확실하게 강조해준다.




마지막으로 지브리에 가면 누구나 한 장 찍어오는 사진 한 컷 첨부한다. 건물 중간에 귀여운 펌프를 마련해놓았는데, 펌프질해 끌어올린 물이 흘러들어가는 물 구멍 맨홀이다. 재미있고 매력적인 모양이어서 관광객들 대부분이 저절로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지브리미술관은 분명 한 번쯤은 가볼만 하다. 동반 자녀가 있을 경우, 또는 진정 미야자키 하야오를 사랑한다면 제법 가볼만한 곳일 것이다.


그런 경우가 굳이 다른 볼만한 곳을 제쳐놓고서라도 가 볼 곳은 아니다. 물론 1만원쯤 하는 입장료가 아주 아까운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온갖 허접한 문화공간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당연히 참을만 하다.


그러나 미술관을 돌아보고 드는 느낌은 깔끔함, 그리고 그 못지 않은 얄미움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토토로가 좋아서 온 사람들이 예쁜 전시물들과 사진도 찍으면서 즐길 수 있게 했으면 더욱 좋은 추억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컸다.


지브리미술관은 또한 이름이 미술관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큰 팬시 제품 전시장에 가깝다. 각종 귀엽고 신기한 장난감 볼거리도 좋지만 미야자키의 작품에 관한 것들을 풍부하게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오로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라는 이름 때문이다. 뻔한 것을 굳이 확인하러 오는 것이고,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캐릭터를 다시 한번 색다르게 만나는 것 자체를 즐기고 돌아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이 은근하지만 강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판 지브리의 꿈 쌍문동 ‘둘리마을’


우리나라에는 지브리미술관 같은 곳이 없을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유명한 만화나 애니메이션 명소는 없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간판 캐릭터 ‘아기공룡 둘리’를 내세워 지브리미술관처럼 애니메이션 명소가 되려는 곳이 나타났다. 도봉구청이 도봉산 근처에 지으려하는 ‘둘리 만화마을’이다.


도봉구청은 이 둘리만화마을이 한국의 지브리미술관을 꿈꾼다고 밝히고 있다. 내년 공사를 시작해 오는 2011년 어린이날에 개장할 예정이다. 들어서는 장소는 쌍문동 산 41번지 근린공원터다. 

 

왜 쌍문동이냐고? 둘리가 쌍문동 주민이기 때문이다. 만화 둘리에서 얼음속에 묻혀 잠자던 둘리가 떠내려온 곳이 바로 쌍문동이다. 둘리아빠 김수정씨가 둘리를 처음 그릴 때 쌍문동에 살았다.


둘리의 호적(물론 명예호적이지만)도 쌍문동이 본적으로 되어 있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번지의 2’, 호주는 ‘고길동’, 본관은 ’도봉(道峰)’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둘리미술관 건물 디자인은 둘리 머리모양을 형상화한다는데, 둘리 입이 정문이 되는 디자인이다. 어린이도서관은 만화책을 펼친 모양으로 지을 계획이다. 이 둘리 테마존의 설계와 디자인은 원작자인 김수정 인덕대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가 맡기로 했다고 한다.


김수정씨가 디자인한 둘리문화관 기본 뼈대 아이디어. 특수강화유리로 만들어 밤에 더욱 예쁘게 보이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문화관2는 만화책 모양 디자인안이다.



둘리문화관의 건물 아이디어가 만화적이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솔직히 확실히 저런 컨셉이 좋은 것인지, 그리고 의도대로 잘 구현될 수 있을지  걱정은 좀 된다. 김수정 선생의 아이디어를 건축적으로 잘 실현해 건물이 유치해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유치찬란한 1회용 관광지는 사실 널리고 널렸다. 서울 구석 도봉산 자락까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려면 한번 와보는 곳이 아니라 여러번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올 수 있는 은근한 매력을 강하게 심어줘야 할 것이다. 


지브리는 얄미워도 돈이 아주 아깝지는 않아다. 그리고 지브리라고 하지만 우리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늘 그렇지만 이런 문화공간을 주도하는 쪽의 마인드다. 둘리미술관이 제대로 된 마인드로 지어져 한국의 지브리미술관, 아니 그 이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