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누가누가 많이 죽이나-람보에 대한 몇가지 2008/03/03

딸기21 2018. 8. 24. 15:36

<람보4>가 개봉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람보와 실베스터 스탤론, 그리고 록키에 대한 생각에 잠시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록키>와 <람보>라는 두 시리즈 영화에 얽힌 80년대의 추억들이 순간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갔다. 아직 새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여러가지가 궁금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분들이야 <람보> 시리즈를 오만한 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골빈 영웅 영화로 비판하시지만, 그래도 뭐 어쩌랴. 맘에 안들어도 이미 그 시절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는데. 영화니 그러려니하며 보고 웃어 넘기면 그뿐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몇명이나 죽일까?


4편을 보고온 김소민 기자에게 소감을 물었다. “잔인해요”. 그말을 들으니 이번 4편에선 람보가 몇명이나 죽일까 궁금했다. 람보는 늘 전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


<람보1>에서 람보가 죽인 사람 수는, 뜻밖에도 1명!, 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치게 만들거나 실컷 골탕을 먹였을 뿐이다. 전쟁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안고사는 퇴역군인의 분노를 그렸던 1편은 1명만 죽였어도 그 내용은 설득력이 있었다. 


람보1편의 실베스터 스탤론, 순박한 전직군인의 모습이 물씬 풍긴다. 이때까지는 드라마였던 람보 시리즈는, 이후 게임 수준으로 변한다.


람보가 적들을 일방적으로 때려부수는 전자오락 캐릭터 수준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2편에선 단숨에 58배나 늘어 58명을 요단강 너머로 보냈다. 찌르고 쏘고, 잘도 죽여댔다. 

황당 허접코드로 훨씬 더 달려나간 3편에선 시리즈 영화의 하방경직 법칙에 따라 람보가 죽인 사람 수도 당연히 늘었다. 이번에는 78명. 느낌상 2편보다 2배는 죽이는 것 같았는데 20명 밖에 안늘은게 의아할 정도였다.


이번 4편은? 


일부 자료를 보면 83명설이 가장 많다. 그러나 어떤 자료에선 236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 오차가 너무 커 영화를 봐야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좌우지간 왠만큼 죽여서는 관객들을 놀라게 할 수 없으니 1분에 1명꼴로 죽여대는 모양이다. 

 

<람보>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죽이는 사람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꼭 떠올릴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이름부터 람보와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인 영화 <못말리는 람보>다.


화살 대신 닭을 쏘는 황당한 패러디 영화 <못말리는 람보>. 전편 <못말리는 비행사>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나, 어처구니 없음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런대로 볼만하다.


주책없는 코미디의 명가 에이브러햄스 가문의 히트작인 이 영화는 근육질 전쟁 영웅들이 자신은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절대 죽지 않으면서 남들은 쉽게 쉽게 잘도 죽이는 것을 비꼬는 패러디 명장면을 집어넣었다.


람보의 패러디 영웅으로 분한 찰리 신이 기관총을 적들에게 난사하는데, 죽는 적의 숫자가 디지털 글꼴로 계속 올라가는 장면이다. 100명을 넘어서면 <코만도> 살인기록 경신!, 이어 <토탈리콜> 살인기록 경신!하는 식으로 기록돌파 글귀도 나온다. 어처구니없지만 기억에 남는 유명한 비꼬기다.


누가누가 많이 죽이나-영화 속 살인 기록은?

 

그렇다면, 가장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영화는 어떤 영화였을까?


이 물음은 영화팬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수준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논제다. 그리고 세는 사람마다 숫자도 조금씩 변한다.


다음은 모 네티즌의 집계다. <람보3>의 사망 숫자가 앞 통계와 다르지만 믿어보자.

<람보 2> 67명

<코만도> 81명

<퍼니셔> 91명

<람보 3> 107명

<이퀼리브리엄> 118명(크리스천 베일이 죽인 게 118명이고 다 합치면 236명이라고 함)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이하드2>를 꼽는 이들은 이 영화에서 몰살 당하는 경찰특수부대와 추락하는 비행기 승객 등등을 합치면 죽는 사람 숫자가 300명이 훨씬 넘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순수하게 주인공이 죽인 적들 수로만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팬들은 <킬 빌>이 최고라고 말한다. 우마 서먼이 숭덩숭덩 베어죽인 야쿠자만 수십명이라는 것이다. 한쪽에선 200명은 족히 죽이는 <첩혈속집>이 더 많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인기드라마 <24>의 주인공 잭 바우어를 꼽는 분들도 있다. 거의 연쇄살인범 수준으로 적을 죽여가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좀비나 괴물까지 합쳐야 된다는 사람들은 좀비들을 가차없이 쓸어버리는 <레지던트 이블>을 우선 꼽는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역시 괴물 오크들이 수천 수만 단위로 죽는 <반지의 제왕>에게는 밀릴 수밖에 없다.  


죽는 숫자로만 따지면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들이 단연 1등이란 논리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는 <혹성탈출>,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이 공동 1등으로 많이 꼽힌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리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진정한 1등이란 반론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으며 치고 올라갔다. <혹성탈출>이나 <은하수...>는 지구가 멸망하지면 몇명이 생존자로 살아남으므로 한명도 남김없이 지구가 멸망하는 <지구를 지켜라>가 결국 최다사망 영화란 논리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맞서는 네티즌들은 <스타워즈>가 최고라고 최후의 일격을 먹인다. 행성이 두 개씩 폭발하므로 지구 하나 터지는 영화들과는 게임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람보에 리처드 크레나가 없다니!

 

람보 영화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이 있는 다른 등장인물이 트로트먼 대령이다. 람보를 훈련시킨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다. 이 트로트먼대령은 특수부대원을 호령하는 군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문약해보이는 캐릭터여서 오히려 더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 역할을 맡아 1편부터 나왔던 리처드 크레나가 이번 4편에선 사라졌다. 이 노배우가 2003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리처드 크레나는 젊었을 때 제법 인정받은 배우였던 모양이다. 오드리 헵번, 카트린 드뇌브, 알랭 들롱 등과 함께 한 영화들도 있다. 40대 이상 영화팬들에겐 80년대 초반 인기가 높았던 <보디 히트>에서 캐슬린 터너의 남편 역할로 나왔던 배우로 기억될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주책없는 코미디 대마왕 레슬리 닐슨(<총알탄 사나이>의 그 흰머리 경찰 주인공)과 함께 나온 <롱 풀리 어큐즈드> 같은 영화가 그가 나온 영화로 떠오른다.


그래도 영화팬들에겐 람보의 트로트먼 대령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리처드 크레나가 맡은 트로트먼 캐릭터 피규어. 리처드 크레나와 생김새가 전혀 안닮았다.


트로트먼대령은 1편에선 시골 마을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람보를 설득하러 오며 등장한다. 2편에선 복역중인 람보에게 특수임무를 맡기러 온다. 3편에선 더욱 비중이 커져 람보에게 아프가니스탄에 특수임무를 권유했다가 거절당하자 자신이 직접 전장에 간다. 그러다가 적들에게 붙잡히고, 그바람에 람보가 그를 구하러 떠나게 된다.


크레나를 구출하는 람보. 아프가니스탄 실상을 알리겠다며 찍은 <람보3>은 완성도 면에서는 거의 최악이었다.


그럼 4편에선 도대체 트로트먼 대신 누가 람보에게 적들과 싸우라고 권한단 말인가?


자료를 보니 선교사 사라 역을 맡은 줄리 벤즈라고 한다.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잔인하면서도 웃기는 소설 원작 드라마 <덱스터>에서 주인공 덱스터의 애인으로 나오는 바로 그 여배우다. 나이가 들만큼 들긴 했어도 주름살이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배우로 연기는 괜찮다. 영화에서 과연 람보와 어떤 관계를 이룰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리처드 크레나가 없는 람보는 왠지 람보가 아닐 것 같다.


줄리 벤즈와 실베스터 스탤론.


<람보2>가 빚어냈던 풍경의 추억


<람보> 2편은 1편보다 완성도는 무척 떨어졌지만 대중적으로는 훨씬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3억달러나 벌어들였고, 국내에서도 놀라운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에선 1985년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했다. 당시는 영화관이 모두 단관시대였는데, 인기가 좋은 영화는 한 극장에서 두고두고 상영하곤 했다. <다이하드>의 경우 단성사에서 추석 시즌에 개봉해 이듬해 구정시즌까지 상영했던 기억이 난다. <람보2>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오랫 동안 극장에 걸리며 인기를 누렸다.



1985년 당시 극장 광고. 람보가 귀향도 포기하고 흥행가도를 달리느라 바쁘다는 카피가 눈길을 끈다. 여름에 개봉해 가을까지 계속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람보2>는 특히 신문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등장한 영화가 되기도 했다. 당시 조조관객에게 선착순으로 람보 오리지널 티셔츠를 나눠줬는데, 이걸 받아보겠다고 청소년들이 전날부터 밤을 새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줄이 하도 길어서 피카디리에서 시작한 줄이 한블록 지나 파고다 공원까지 이어졌다. 당시 하도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피카디리는 새벽부터 표를 팔아 아침 7시부터 한 회 상영을 늘려 영화를 틀었다.


미국을 시끄럽게 했던 스탤론의 록키 동상 이야기


세상은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자들이 만드는 것 같다. 적어도 영화같은 엔터테인먼트 업게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그 시대의 엔터테이너가 된다.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스탤론을 만든 것의 9할은 자뻑이다. 자신을 정말 잘 알기에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에 믿음이 커져 능력도 커지는 법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그걸 잘 보여준다. 록키라는 탁월한 시나리오를 쓰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걸 자신이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영화사를 밀어부쳐 주연까지 따냈고,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그런걸 보면 아무나 스타가 되고 아무나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기를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 다시 록키와 람보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그런 자뻑의 힘에서 나온다. 그런 당당한 자뻑에 사람들도 반한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쳐다보지도 않지만.


장르를 떠나 스타들은 자뻑과들이고, 자뻑끼리 알아보고 통하곤 한다. 미국의 유명한 자뻑 화가 앤디 워홀은 스탤론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 워홀도 같은 자뻑과인 스탤론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워홀과 스탤론이 이어진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흥미롭고 자연스럽다.


이 스탤론의 놀라운 자뻑 취향을 잘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 공공조각 역사에 일화로 남은 실베스터 스탤론 조각상 이야기다.


영화 <록키>에서 스탤론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계단을 뛰어오르며 하늘로 두 주먹을 불끈 쳐든다. 경기에 이길 때도 두손을 하늘로 든다. 이 모습을 만든 조각이 영화 <록키 3>에 나온다. 자뻑 스타다운 소품이다. 영화에 쓰려고 유명 조각가 토머스 숌버그에게 의뢰해 만든 6만달러 짜리 조각이었다.



그런데 스탤론은 이 조각이 너무나 맘에 들었는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을 했다. 영화에서처럼 미술관에서 자기 조각상을 건물 앞에 설치해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미술관 관점에선 되도 않는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쪽은 농담인줄 알았는지, 홍보 이벤트일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는 스탤론에게 조각을 가져가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자뻑 스타의 팬들이 우상의 자뻑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팬들이 록키 조각상을 미술관에 놔둬야 한다고 고집을 피워댄 것이다.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는 황당한 상황 전개에 놀라게 된다. 고민끝에 미술관은 타협책을 내놓아 논란 확산을 막았다. <록키3> 개봉 직후 두 달 동안만 미술관 앞에 조각상을 전시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문제의 그 동상. 자기 동상 앞에서 폼 잡는 저 기분을 스탤론말고 누가 알겠는가.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지하고 집요한 우리의 스탤론은, 90년 <록키5>를 찍고 나서 조각상을 다시 미술관 앞에 계속 놓기를 원했다. 언론활용에 능한 그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록키의 무대로 세계인들에게 필라델피아가 각인된만큼 록키라는 캐릭터가 벤저민 프랭클린보다도 필라델피아에 더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을 폈다.


필라델피아 당국은 다시 한번 황당해진다. 그러나 관광효과 때문에 완전히 록키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필라델피아 당국은 또다른 타협책을 들고 나왔다. 영화속 록키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자국을 새긴 콘크리트 판을 만들어 미술관 계단에 설치했다.


이런 논란을 낳은 덕분에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동상은 미국에선 다른 유명 조각품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이 이야기는 물론 교양상식 시험에는 절대 나올리 없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와 스타들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현대 사회에서 슈퍼스타와 미술의 관계, 그래고 미술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 시사점을 남기는 에피소드임은 분명하다. 스탤론이 비록 의도하진 않았어도 미술전문가들에게 던진 우습지만 진지한 숙제같은 이야기다.


가볍자고 쓴 글이 막판에 너무 진지해졌다. 스탤론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