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한국인의 원초적 조형성-목조각가 이상배를 아시나요 2006/04/19

딸기21 2018. 6. 5. 17:14

충북 음성.

저는 그곳을 이번에야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음성이 다른 지역보다 명승지가 적은 탓인지 가볼 기회가 없었었지요.

지금까지 `고추'를 떠올리곤 하던 음성을 찾아가본 것은 인터뷰 때문이었습니다. 화가 이김천 선생을 만나러 간 겁니다.

 

이김천 선생은 동양화를 새롭게 그리시는 분입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탱화도 많이 그리십니다. 그리고 전시회도 여남은 차례나 연 중견 화가지요.

일단 이김천 선생 그림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쾌하고 힘이 넘칩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초기 화풍인데, 화사한 꽃밭을 무대로 개와 사람이 누워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지하철 신촌역의 시청방면 플랫폼 맨 뒷쪽에 가면 이김천 선생 그림을 크게 복사해 기둥에 프린트한 것이 있습니다)

 

궁금하실테니 이선생 그림 하나 소개합니다. 98년작 <개랑 논다>란 작품입니다.

 


이김천 선생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번에 마침 인터뷰할 `꺼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인지 뵐 수 있는 기회다 싶어 음성으로 찾아갔지요. 이번에 뵌 결과 여러가지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우선 그 이름입니다. 이김천. 이금천도 아닌 이김천이라니 궁금할 수 밖에요. 경북 김천의 그 김천일까?

답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제가 김천에서 태어났대요. 그래서 그렇게 지으셨답니다. 조금 무책임하시긴 하지요?ㅎㅎㅎ"

흠. 역시 그랬군. 그럼, 두번째. 왜 개그림이냐는 거였습니다.

"어느날 제가 기르다가 죽은 개가 꿈에 나왔어요. 그 다음부터 개를 그린 겁니다."

명쾌한 그림만큼이나 이유도 명쾌했습니다.

 

그럼 왜 이김천 선생을 인터뷰 했나구요? 그건 비밀입니다.

(조만간 저희 북섹션 ,<18.0>에 기사로 쓸테니 기다려주세요. 재밌는 일을 하시거든요.)

 

좌우지간, 이렇게 이선생을 만나 하루 죙일 음성에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선생님이 내려온 김에 음성에 숨어계시는 `고수'들을 꼭 만나야 한다면서 몇 분을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바로 나무조각가 이상배 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상배 선생님 댁은 음성이 아니라 옆 충주더군요.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충주의 은자 고수이지요)

 

이상배 선생 댁은 온통 집안이 나무 조각 천지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현대적인 이미지들이었습니다.

저는 이선생 작품을 보면서 현대화가 `클레'가 떠올랐습니다. 사물의 아주 기본적인 꼴을 관통하는 느낌이랄까. 경쾌함, 유머러스함, 그런 것들이 작품에 들어있었습니다.

이김천 선생은 이상배 선생 작품을 보면서 `한국 미술 조형성의 가장 원초적인 유전자를 갖추고 있다'고 평하시더군요. 제 보기에도 수긍이 갔습니다.

댁 마당에는 돌조각들도 있었는데, 일단 작업실 입구에 있는 녀석 하나 소개합니다.

 

 

자, 이녀석입니다.

얼핏 보면 괭이같은데, 정확하게 무언지는 모르겠더라구요. 그 표정이 무척 오묘합니다. 세로로 보실까요?



정말 간단한데도 표정이 엄청나게 풍부합니다. 그리고 그 모양새가 우리 엣 돌장승이니 벅수니하는 것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 간단한 몸체 위에 머릿돌 하나 떡 올려놓은 품새가 얼마나 경쾌합니까.

이녀석을 보곤 어찌나 탐이났는지 모릅니다. 가져봤자 놓을 마당도 없는 주제에 말입니다.

 

이상배 선생의 작품은 인사동 모 가게에서 팝니다. 그런데 그 벌이는 사실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선생이 미술판에서 높게 평가받을 배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선생은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답니다. 그저 나무깎는 것이 좋아서, 그 손재주가 뛰어나서 혼자서 미술을 한 것이죠. 그런데 한 번 배운 적이 없는데도 그 디자인 감각이 놀랍습니다. 작품들을 보곤 아주 취할 정도였습니다. 평범한 쟁반이며, 소반인데 그 속에 담긴 디자인의 힘이 놀라웠습니다. 제 사진 솜씨가 좋지 않아 찍어 못올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핑계같지만 어두운 실내여서 제 카메라로는....

 

대신 마당에 있는 돌조각들은 몇녀석 찍어왔습니다. 다음엔 요녀석입니다.

 

 

마당 가운데 재미난 녀석들이 모여있습니다.

그 표정이 보기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조금 확대해보겠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있는 것도 하나의 작품입니다.

물고기인지, 용인지, 구별은 안가는데 어찌됐든 숨탄것임은 분명해보입니다.

 

옆에 있는 조각 하나 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사진이 좀 후진 점을 양해해주시길.

이 조각은 특히나 실물로 봐야 그 `아우라'란 것이 매혹적입니다. 저 표정이 정말 함축적이거든요. 웃고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슬픈 표정 같기도 하고...

 

선생 댁을 나와 돌아오는 길, 이김천 선생이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이상배 선생같은 고수들이 이렇게 숨어 계시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제가 감히 그림그린다는 말을 하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상배 선생, 진짜 고수더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