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건축가 김원의 도전-성냥갑 아파트 그만! 2008/01/25

딸기21 2018. 8. 12. 13:52

건축계 중진인 건축가 김원(64)씨가 40년 건축 인생에서 최대 도전에 나섰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재개발사업 아파트 설계를 맡은 것이다. 제조업 공장부터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국내 전시장까지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해온 그가 아파트를 설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국악당, 통일연수원, 주한러시아대사관 등을 설계한 그는 굵직한 대표작들을 제쳐 놓고 “옥인동 아파트가 건축가로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선 건축가 김원씨.

그동안 국내에서 유명 건축가가 아파트를 설계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사와 대형 설계법인들이 제품 찍어내듯 시공사 주문대로 ‘공장’식으로 설계해왔다. 그러다보니 우수한 건축가들은 아파트 설계에서 배제되었고, 건축가들도 시공사 맘대로인 아파트 설계를 외면했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환경의 중요성과 전통건축의 장점을 강조하며 국내 아파트 건축문화를 가장 강하게 비판해왔다. 온나라를 파헤치는 건설만능주의를 주도하는 ‘토건마피아’, 이들과 연결된 일부 공무원들, 그리고 토건마피아들의 광고로 먹고사는 언론이 결합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토건마피아론’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 그가 옥인동 아파트 설계를 맡은 것은 자신이 옥인동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옥인동이 재개발되기로 하면서 단독주택인 그의 집도 헐리게 됐다. 김씨는 옥인동의 환경과 역사성, 주민공동체를 살리는 재개발을 주민들에게 제안했고, 주민 동의를 얻어 설계를 맡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평생 살게 될 아파트다.

그가 구상한 아파트는 ‘아파트답지 않은 아파트’다. 높이는 불과 5층, ‘남향 100%’도 아니다. 십자형 구조로 모든 가구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남산을 바라보게 했다. 태양열을 쓰며, 빗물을 모아 세차나 청소에 쓰는 빗물저장소와 수돗물 일부를 다시 쓰는 중수도를 만들고, 공기가 통하는 바람길도 내려 한다. 기존 재개발과는 전혀 달라 일부 주민들은 분양 가구수가 줄고 부담이 커진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태양열 등을 쓰면 관리비와 유지비가 적게 들어 장기적으로는 더 저렴하다고 설득했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저층 주택 지대인 옥인동에서 고층 아파트는 재앙입니다. 남향으로만 지으려면 기다란 아파트가 되는데, 그러면 인왕산 계곡 맑은 공기가 제대로 흐르지 못합니다. 경관이 좋은 자연 환경, 그리고 조선 중인 문화의 주무대였다는 역사성이 앞으로 옥인동 주민들에게 ‘재산’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논의 끝에 그의 구상을 바탕으로 한 옥인동 1구역 재개발 정비계획안은 동의를 얻어 최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통과했고, 이르면 내년 봄 공사를 시작한다. 김씨는 이 아파트가 재개발과 아파트 건축에 새로운 대안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장악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동안은 짓기만 하면 팔리니까, 자기가 살 집을 사는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 목적 가수요가 많았으니까 그랬던 거지요. 이젠 국민들이 토건마피아들이 만들어낸 그런 획일적 건축에 질릴 대로 질려 있어요. 환경을 주민 커뮤니티를 담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는 아파트를 건축가들이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결국 재개발 조합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