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만화도시 부천의 풍경들 2008/01/19

딸기21 2018. 7. 22. 20:08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도시는?


누가 뭐래도 정답은 부천이다. 문화적 특색이 강하지 않았던 부천은 90년대 중반 스스로를 ‘만화도시’라고 이름 붙이며 만화의 메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조금씩 만화에 대한 것들로 도시를 채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만화 주인공 조형물을 만들기도 했고, 리에 만화 주인공 이름을 붙이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둘리에게 부천시민 주민등록을 발급하기도 했다. 이런 홍보와 함께 만화 관련 인프라를 갖추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부천은 서서히 만화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초기 부천에 들어선 주요한 만화 관련 기관은 만화정보센터와 만화박물관이었다. 그런 공공 학술 관련 기관들에 이어 이제는 업체와 산업지원기관 등 산업분야 주역들이 부천에 터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부천에서 만화도시다운 풍경을 일상적으로 마주치기는 힘들다. 그러나 조금씩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부천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부천시가 시도하는 ‘만화 캐릭터’ 관용차가 대표적이다.  

 


 

부천시는 최근 시가 소유한 버스와 소형차에 1차적으로 캐릭터 ‘빼꼼’을 도색해 시험 운영에 들어갔다. 만화도시란 이미지 창출을 위해서다.


‘빼꼼’은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머그잔을 타고 여행을 하는 북극곰이다. 빼꼼을 고른 것은 빼곰을 만든 알지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부천시가 운영하는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관 입주업체이고, 빼꼼을 홍보에 활용하기로 협의했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이 만화 관용차에 대한 반응을 보고 다른 캐릭터들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빼꼼 업체가 입주해있는 원미구청 바로 맞은편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관은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장진영, 최규석, 임석남 등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부터 이제 막 만화에 입문한 작가까지 20여개팀 81명의 만화가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다. 이밖에 길찾기와 허브, 바우나무 등 만화를 주로 내는 출판사들과 캐릭터나 문구 등 만화와 연결되는 업체들도 이곳에 입주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곳이 만화가들이 모여있는 곳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만화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고, 재미있는 글귀들도 많이 써있다.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주 계단 벽에는 만화가들의 숙명일 수 밖에 없는 ‘마감’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 있어 인상적이다.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를 그려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는 마감이란 것을 놓고 서로 줄다리기하며 피말리는 애증의 관계다.


만화를 담당하는 만화잡지 기자들은 이 마감에 울고 웃는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원고를 보내지만 예전에는 인쇄소 기계를 정지시켜 놓고 작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원고를 받아 인쇄소까지 총알처럼 달려가곤 했다. 놀기 좋아하는 만화가들이 작업을 미뤄놓고 놀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앞에서 도끼눈을 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편집자들의 일 가운데 하나다.


이런 풍경은 일본에서는 더욱 심한데, 일본 만화계 용어로 ‘통조림’이란 것이 있다. 마감 늦고 게으른 만화가들에게 편집자들이 취하는 최후의 수단이자 궁극의 수단으로, 두 세명의 편집자가 작업실을 지키며 작가가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놓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방식이다.


거의 착취나 인권 침해 아니냐고?


뜻밖에도 이 통조림은 작가들이 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게으른 작가들이 스스로 이런 강한 압박을 요청하는 것이다. 미리미리 그리면 될텐데 마감이 도대체 뭐길래.


다음은 복도 풍경이다.



이 지원센터말고, 업체들이 입주하는 또다른 건물이 부천에 있다. 역시 원미구 춘의동에 있는 테크노파크란 고층 건물이다. 사무용 빌딩인 동시에 아파트식 공장이다.


이 건물에는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이 있는데, 이 기관에서 만화관련 업체들을 심사해 임대료 혜택을 준다. 다른 사무용 빌딩과는 비교가 안되게 싸다. 값비싼 애니메이션 장비도 갖춰져 있어 관련 기기들을 개별적으로 따로 살 필요 없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장점도 있다.


이 건물 역시 곳곳에 만화 이미지로 가득하다.


일단 엘리베이터부터 튄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커다란 전시용 만화 프린트로 착각하고 지나칠 정도다.


업체들이 입주한 내부 복도에는 업체들이 주요 상품들 이미지를 붙여 놓았다. 젊은이들에게 인기 좋은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 정우열씨의 <올드독> 이미지가 보인다. ‘올드독’은 1년 전까지 <한겨레> 책섹션에 ‘올드독의 고충상담실’ 코너로 연재되어 인기를 누렸다.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과 경기영상위원회가 있는 9층은 오렌지색으로 벽을 꾸미고 태권브이를 그려놓았다. 다른 공공기관 사무실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닐까. 만화는 분명 세상을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