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무당, 플로리스트가 되다 2007/12/13

딸기21 2018. 7. 19. 16:13

“제가 전시회를 하게 됐어요. 도록을 보낼게요.”


이번 주 초, 좋게 말하면 ‘만신’, 쉽게 말하면 ‘무당’ 인 이해경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통화라 반가웠고, 또 놀라웠다.

“전시회요?”

“꽃 전시회인데, 진짜 꽃이 아니고 종이꽃이에요. 굿할 때 쓰는 지화(紙花)로 하는 전시회에요. 쑥스럽지만 한번 놀러 오세요.”


이씨는 무당이지만 예인으로도 유명하다. 몸짓 춤꾼으로 여러 대형 무대에 초청받아 올랐다. 2001년에는 가야금 대가 황병기 선생의 창작활동 40주년 기념 공연에 올랐고,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프랑스 공연 등에도 참가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것도 주연으로. 2006년 개봉해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던 영화 <사이에서>의 주인공이 그다. 이 다큐영화는 무속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이렇게 만능인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꽃 전시회라니? 미처 몰랐던 이야기였다.


종이꽃 전시회를 여는 무당 이해경씨. 나이는 비밀.



다음날 도록이 왔다. 전시회 이름은 ‘세월의 꽃’.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도록 가득했다. 정성껏 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여 염색한 수고로움이 사진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굿에 쓰는 종이꽃을 공예로 주목해 전시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또한 굿이란 것도 보기 힘들어졌는데, 굿에 쓰는 꽃을 본 사람들이 또 얼마나 될까 싶었다.


굿판에서 꽃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품이다. 굿청(굿상)과 그 주변은 꽃으로 화려하게, 그러면서도 엄숙하게 치장한다. 굿하는 동안 화사하게 굿판을 꾸미고 나면 꽃들은 불태워진다. 한 줌 재로 되는 운명이기에 굿에 쓰는 종이꽃들은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꽃을 태우는 의미는 정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액을 담아 하늘로 보내는 의례이기도 하다. 그냥 타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주름잡아 접어 만드는 백모란.

“아니, 원래 굿 꽃을 직접 다 만드셨어요?”

“저는 그렇게 해요. 원래는 무당이 만들던 게 아니고, 화공들이 만들었어요.” 


이씨가 직접 만들게 된 것은 굿이란 것이 사라지면서 종이꽃을 만드는 맥도 끊겨가기 때문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이 돈도 안되면서 손많이 가는 일을 하겠어요. 어차피 무당은 굿판 전체를 포괄적으로 알아야 하니까 아예 직접 배워서 만든 거에요.”


그런데 해보니까 놀라웠다고 한다.


“집중하는데 최고여서 아주 좋은 수행법인 거에요. 무속인으로서 신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꽃을 싫어하는 신은 안계시니까.”


신당이 된 전시장. 굿청위로 지화가 가득하다.


인사동 모든 화랑이 새 전시를 시작하는 수요일, 아직 전시장을 정식 개장하기 전 준비 시간일 점심께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은 이미 종이꽃으로 배치를 끝냈고, 이씨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작품 하나 하나 돌아보며 설명을 들었다.


굿청 위에 오른 다양한 종이꽃들


종이꽃들은 하나 만드는 데 보통 5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염색 역시 이씨가 직접 한다. 종류는 16종 20여점. “제가 아는 것이 적어 자료들을 보고 배우러 다녔어요. 전수해 줄 분이 없어 사진만 보고 연구하기도 하면서 만들었어요.”


꽃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모란과 수국, 국화같은 실제 꽃, 그리고 굿판에서만 쓰는 상상의 꽃들로 나눌 수 있었다. 모두 황해도 굿에서 주로 쓰는 꽃이라고 한다. 이씨는 황해도 출신은 아니지만 황해도 만신 김금화 선생의 신딸이어서 황해도 굿을 한다. 


꽃들은 아주 진짜 같은 기법으로 만든 것도 있고, 상상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기법도 있었다. 진짜같은 꽃보다 굿판에서만 쓰는 꽃들의 디자인이 더 흥미로웠다. 만도산꽃, 칠성꽃, 일월꽃, 서리화 같은 상상의 꽃들은 처음 만나는 것들이었다.


하얀 만도산꽃과 오방색이 화려한 오색 만도산꽃(아래). 황해도 굿에 많이 쓰는 대표적인 꽃이라고 한다.


목인미술관은, 미술의 중심지 인사동에서도 ‘가장 간판이 예쁜 전시장’ 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처음부터 전시장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가정집을 개조한 전시장이어서 공간이 좀 좁다. 대신 위아래 동선이 복잡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특히 전시공간 외의 숨은 공간에는 상여를 치장하는 전통 나무인형을 전시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이번 전시회와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전시장과 궁합이 맞는 듯하다고 하자 이씨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 얻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인사동에 와서 전시장을 빌리려니까 안빌려주는 거에요. 무당이라고. 얻느라고 힘들었어요.”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전시인데도 무당이라고 무시당했다고 하니,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칠성꽃. 꽃을 꽂은 화분에는 흙이 아니라 쌀이 담겼다. 쌀에 꽂은 꽃.


대신 공간 구성이 재미난 목인에서 하는 덕분에 시각적으로는 훨씬 다채로워진 듯했다. 가령 이런 장면. 



작품 크기가 큰 <수국>인데, 전시장 바닥 공간에 넣어 전시한다.


꽃 말고도 또다른 볼거리도 있다. ‘괘’라는 것이다.


괘와 장발들.


사진 앞에 보이는 길게 늘어뜨리는 기둥 같은 것이 ‘괘’라고 한다. 굿청 주변에 줄을 매고 건다. 뒤로 늘어뜨린 종이는 ‘장발’인데 왼쪽부터 장군장발, 칠성장발, 감흥장발이라고 한다. 초대형 굿판인 만수대탁굿에 사용하는 장식으로 역시 끝나면 태우게 된다.


이 많은 꽃과 장식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만수대탁굿은 어떤 굿일까,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졌고, 궁금해져 물었다.


“황해도 굿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굿이에요. 연로한 부모님 모실 때 살아계실 때도 세상떠나실 때 편안하시라고 산시왕굿을 해요.”


“산시왕굿이요?”


“미리 저승가시는 길 닦는 굿을 말해요. 만수대탁굿은 만신들이 평생 세 번 치면 잘 쳤다고 할만큼 드문 굿이에요. 진짜 갑부들만 하던 굿이니까. 무려 닷새 동안 굿을 치거든요.”


그 만수대탁굿에 쓰는 꽃들이니 화려할 법도 했다.


만수대탁굿에 쓴다는 일월꽃. 색깔 구성이 정반대인 두 꽃이 쌍을 이룬다.


이씨는 원래 전시회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혼자 열심히 꽃을 만들 뿐이었는데 대구대 조형예술학과 김태연 교수가 그에게 권유했다고 한다. 우리 전통꽃 장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일반인들은 전통꽃을 구경하기 어려워졌으니 전시회를 열어 알려야 한다고 권했다는 것이다.


한번 쓰고 나면 불타는 운명인 종이꽃, 그래서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는 종이꽃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다. 12월18일까지 열린다. 문의 전화는 (02)722-5055.


전시장 모습


다양한 만도산꽃들.


수파련. 위에 연꽃과 아래 국화꽃이 하나가 된 꽃.


뱀다리-목인미술관의 예쁜 간판을 소개합니다.


비록 작아도 인사동 미술 동네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간판. 다들 이 간판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