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미친 작가, 현대미술의 여왕이 되다 2007/11/13

딸기21 2018. 6. 26. 17:09

“안양이 엄청 바뀌었어. 공공미술 작품들이 아주 볼 만해.”


지난달 말, 미술 담당 임종업 선임기자께서 찍어오신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5743.html ) 작품 사진을 함께 보면서 신문에 나갈 것을 고르는 중이었습니다.  땅에 처박힌 UFO, 안양의 하늘을 응시하는 돈키호테, 울긋불긋 예쁜 거리 의자…, 임 선임기자 말씀처럼 재미난 작품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안양에 들어선 여러 공공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낯익은, 그래서 반가운 작품을 하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유치해 보일 정도로 강한 원색, 점박이 강아지들이 역시 점박이 꽃을 바라보는 조형물이었습니다.

 

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작품 같기도 하고, 팬시상품처럼 귀여운 느낌이 묻어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무척 그로테스크하게도 보입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점박이 무늬를 했을까, 절로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모든 작품에 땡땡이 점을 찍어대는 바로 그 작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Yayoi Kusama)의 작품입니다.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한 화랑에서 마련한 전시회에서 독특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다시 그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두번째로 열렸는데 그 때는 아쉽게도 못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인기만화 스누피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만 선보였던 이색전시회 ‘스누피 라이프 디자인전'에서 오랫만에 그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사진 구본준


역시 온통 점박이 무늬이죠? 당시 전시회에는 3가지 스누피 작품을 전시했는데, 나머지 스누피 하나 더 소개합니다.


사진 구본준


우리가 잘 아는 스누피입니다만, 구사마 야요이식으로 점박이 버전이 되니까 확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점을 찍는 것만으로도 사물은 변화합니다. 이런 점찍기는 구사마 야요이의 창작세계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구사마 야요이는 아주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어도 늘 흥미로운 작가였는데 그동안 국내에선 좀처럼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참 잊고 있다가 올 여름 모처럼 구사마 야요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 그의 작품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니 반가웠습니다.   


구사마 야요이는 사실 무척이나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를 잘 아시는 분들이야 익히 아는 이야기겠지만 그를 잘 모르는 분들께서는 아마도 이 점이 궁금하실 겁니다. 그는 왜 이렇게 점박이 무늬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우선 그의 사진부터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의 모습을 봐야 그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땡땡이 무늬를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모습일까? 한번 상상해보셨나요? 


바로 이분입니다.


무슨 코스프레 하시는 할머니냐구요? 


구사마 야요이는 작품이 경쾌하고 요즘 감성에도 잘 맞아보이는 느낌이어서 젊고 발랄한 작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시듯 나이가 좀 있으십니다. 많은 분들이 저 사진을 보고 ‘범상치 않은 포스’를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안보고 저 사진부터 봤다면 ‘이거 뭐하는 여자야’라고 놀랄 듯도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 옷차림, 그리고 머리 스타일... 옷 역시 땡땡이 무늬입니다.


그럼 다른 사진입니다.


 

포스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땡땡이 옷은 물론 여전합니다.


이분의 독특한 차림을 한장 더 소개합니다.



앞 사진들을 볼 때까지는 반신반의 했는데, 이 사진까지 보니 확신이 드신다고 느끼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이 작가 이거 제대로 싸이코구나” 란 생각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입니다. 구사마 야요이는 속되게 표현하면 ‘미친 작가’입니다. 실제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 옷차림, 점만 찍는 강박증은 그래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노릇입니다. 어떻게 저 작가는 정신이 이상한데도 작가가 되었을까요?


사진으로만 보면 구사마 야요이는 무척이나 ‘웃기는 작가’처럼 보이지만 그는 만만한 작가가 아닙니다. 구사마 야요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광기는 무엇인가, 그가 미쳤다면 미친 작가의 작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또 뭔가, 아니 예술의 세계에서 무엇이 미친 것이고, 무엇이 정상인가. 그의 인생과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되묻습니다.


구사마 야요이의 대표적 시리즈 호박. 호박에 줄을 긋는게 아니라 점을 찍는다.


사진이 보여주듯 그는 나이가 많습니다. 1929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벌써 여든살이 된 할머니 작가입니다. 그는 미술에 대한 통념과 가치관이 모두 바뀐 20세기 현대미술이 낳은 작가입니다. 그가 만약 19세기 사람이었다면 그는 ‘평범한 미친 여자’로 일찍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켰고, 그 덕분에 20세기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 현대미술가로 구사마 야요이처럼 유명한 작가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닥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구사마는 아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은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치명적인 병도 함께 가지고 태어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정신질환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딸에게 정신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심하게 꾸짖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강압적인 어머니 밑에서 구사마는 더욱 고통을 겪었고, 이후 평생 그 아픔을 잊지 못했습니다. 부모란 때때로 자식에겐 치명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가족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맞지 않았던 대신 창작과 운명적으로 짝지워졌습니다. 그를 사로 잡은 ‘환상’과 그 환상에 대한 강박이 그로 하여금 창작에 집착하게 만든 것입니다. 겨우 10살때부터 구사마 야요이는 물방울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환영 속에서 물방울 무늬가 나타나 그가 보는 모든 것에 물방울 무늬가 새겨진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평생 그는 물방울, 점, 동그라미란 땡땡이 무늬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기는 그에게 창작을 부추겼고, 동시에 정신병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는 창작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진로는 미술로 이어졌습니다.


젊은 시절의 구사마 야요이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뒤 구사마 야요이는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를 창작으로 몰아세우는 광기와 강박관념은 다른 작가들은 따라갈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예술가로선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어린 일본 여자는 단숨에 현대 미술의 메카 뉴욕에서 촉망받는 젊은 전위작가로 떠오릅니다. 앤디 워홀,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등이 당시 그와 함께 ‘놀던’ 작가들입니다. 


그는 서른한 살에 인생에 있어 땡땡이 무늬만큼 중요한 또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환경미술 설치작품을 만들다가 볼록 거울에 비친 반짝거리는 유리공(mirror ball) 빛 무늬가 여기 저기 비쳐 무늬를 만드는 환영을 본 것입니다. 순간 그는 가슴이 쿵쿵거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을만큼 강한 자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거울처럼 대상이 비치는 반영 이미지는 그의 또다른 주제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여러가지 퍼포먼스 작업에 빠져들었습니다. 센트럴 파크 같은 공공 장소에서 해프닝을 벌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점을 찍고, 나체 모델들에게도 물감을 뿌려 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경찰이 해프닝을 저지하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구사마 야요이의 초기 작업. 물방울 무늬 작업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다.


60년대 말에는 자기가 옷을 디자인해 패션회사를 차렸는데, 무척 성공했다고 합니다. 1969년에는 옷 앞에 구멍이 두 개 뚫려서 유방이 들어나는 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 이 드레스는 무척 화제가 되었고, 실제 팔리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며 예술적 성취를 쌓았지만 정신병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점점 더 강박증에 시달리며 남들이 ‘제정신이라면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반복적인 무늬를 창작하는 일에 빠져듭니다. 이런 강박은 사실 그로서는 처절한 자기 구원의 투쟁이었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환상을 직시하고, 거기에 맞서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던 겁니다.


물방울 무늬와 인체를 접목한 작품.


그럼에도 병을 이길 방법은 없었습니다. 1973년, 구사마 야요이는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1977년에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그는 평생 정신병원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갑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작세계는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1993년에는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일본 대표로 참여했습니다. 앞서 1966년 그는 혼자서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에 가서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대표로 정식 초청을 받아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베니스 일본관에서 개인전이 열린 최초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점, 점, 점... 야요이의 작품들은 광기의 소산이면서도 현대인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의 설치작품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중첩, 반복되고 빛과 색들의 향연 속에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울 언더 더 문>.


이번 안양에 설치한 그의 꽃 조형물은 그가 만들어온 환경조형물의 대표적 형태입니다. 아래는 다른 조형물인데, 꽃모양이 이번 안양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안양 작품에는 개가 추가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구사마 야요이의 다른 환경조형물. 꽃 위에 특유의 땡땡이 무늬를 입혔다.


이런 환경조형물들은 그가 직접 제작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디자인을 하고, 그 도면을 보내주면 구매자쪽에서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안양 프로젝트도 이런 방식으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예술가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독특한 정신상태(?)와 이야기들이 물론 한몫을 했습니다. 동시에 홍보에 능한 그의 능력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는 주변에 기자가 있는지 꼭 확인을 하고,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반드시 동작을 멈추고 눈을 부릅뜨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항상 이런 표정뿐입니다. 


앞의 사진에 견줘 오히려 얌전한 모습으로 보이는 구사마 야요이. 해프닝을 늘 갈망하는 언론도 그를 유명하게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이제 그의 작품을 다시 보실 차례입니다. 그가 누군지, 그는 왜 작품을 만드는지 알고 나면 그의 작품은 좀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장난처럼 보였던 땡땡이 무늬가 슬퍼보이기도 하고,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점과 현란한 색으로 이뤄져 있어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명쾌하면서도 모호합니다. 반복되는 무늬는 강박적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때론 원초적인 생명력을 강하게 뿜어냅니다. 애벌레나 수중동물들을 연상시키는 이런 현란한 무늬들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본질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작품은 그가 연륜있는 거장임을 잘 보여줍니다. 간단해보여도 이렇게 색과 꼴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은 젊은 작가들은 결코 할 수 없는 노장들만의 힘입니다.


<자화상>


풍선은 구사마 야요이의 창작에서 중요한 기본 요소다. 거울, 옷감, 전구 등을 활용한 그의 설치작품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이번 안양 설치미술품을 보면서 모처럼 구사마 야요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미친 작가입니다. 그럼에도 광기에게 자기 자신을 빼앗기지 않고 광기와 맞서 싸우고 때론 광기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예술가로 우뚝 섰습니다. 회화만이 아니라 조각과 설치, 그리고 디자인까지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많은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소설도 썼고, 옷도 만들었고, 잡지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무라카미 류 원작의 <토파즈>)에도 출연했습니다. 루이 비통의 수석 디자이너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크 제이콥스는 그의 물방울 무늬에서 영감을 얻어 가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를 넘어 그가 젊은 시절 같이 아방가르드 작업을 했던 도날드 저드나 앤디 워홀처럼 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휘트니 미술관과 MOMA 등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든 나이에도 그는 정신병원과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브뤼셀에서 열린 ‘Dot Obsession’ 전시회 모습.


그는 미쳤지만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미쳤기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미쳤다’고 표현하지만 혹시 그는 우리가 못보는 우리 마음속 어떤 원초적인 현상을 보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광기와 예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20세기 팝아트 영웅의 작품이 이웃 도시 안양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저도 빨리 보러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