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데보라 카, 그녀를 다시 보여다오 2007/10/20

딸기21 2018. 6. 22. 10:04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을 주는 뉴스가 있다.

지난 주 뉴스 가운데에선 영화배우 데보라 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내게 그랬다. 워낙이나 영화를 좋아했던 탓에 노배우들이 떠나는 소식이 내겐 성장기 한 시절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록 한 순간의 감상일뿐이지만 마치 그 시기의 추억도 배우와 함께 떠나가버리는 듯하다.

데보라 카의 소식에는 잠시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데보라 카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늘 은근하게 좋아한 배우였다. 워낙 오래전의 이름이어서 그가 살아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향년 86살. 아름답던 여배우의 80대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했지만 언론들은 친절하게도 그의 미모를 듬뿍 담은 전성기적 때 사진들로 골라 실었다.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여신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겠다는 선의로 받아들였다.

(# 정확한 표기는 ‘데버러 커’가 맞지만 그렇게 쓰면 왠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교열에는 맞지 않아도 그냥 익은대로 이번 글에만 ‘데보라 카’로 쓰겠다.) 

데보라 카는 분명 당대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어찌보면 여배우스럽지 않은 여배우였다. 물론 배역 탓이었겠지만 깔끔하고 우아한 영국 여자, 또는 새침한 전문직 여성같았다. 은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신이란 느낌은 비교적 덜했다. 그렇지만 그는 ‘소리 없이 강한’ 여배우였다.  

처음 이 데보라 카란 배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오로지 외모! 때문이었다. 워낙 어릴 적에 ‘추억의 명화’로 접한 탓에 그의 연기나 캐릭터는 물론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단아하면서도 기품있어 보이는 외모가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데보라 카는 발레리나 출신으로 갸날프면서도 늘씬한 몸매여서 옷걸이가 좋은 스타로 꼽힌다. 공식 키는 170센티미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요즘도 그렇겠지만, 당대의 유명 여배우들의 외모는 비현실적일만큼 만들어낸듯한 이미지들이 많다. 그래서 데보라 카나 잔 모로처럼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튀지 않는 여배우에 끌리는 편이었다. <왕과 나> 등에서 카의 모습은 언제나 단정했다. 그래서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데보라 카는 비비안 리나 오드리 헵번처럼 너무 인형같아 사람처럼 안보이지도 않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소피아 로렌처럼 부담스럽지도 않았으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 지나 롤로브리지다처럼 왠지 얼굴이 과장된 것 같지도 았았다.

훗날 영화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이 여배우가 <주말의 명화>에 나오는 유명 영화들의 단골 배우란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모처럼 부음 기사로 그의 출연작들의 면면을 보니 화려한 출연 이력이 어느 배우 못잖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데보라 카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국내 올드팬들은 미남의 대명사 로버트 테일러와 함께 나온 <쿼바디스>(1951)를 떠올리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영화속 데보라 카가 다른 영화에서와는 달라보여 별로 였고 오히려 피터 유스티노프가 먼저 떠오른다.

요즘 신세대들이 데보라 카의 필모그래피를 본다면 다소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왕과 나> <흑수선> <러브 어페어> <카지노 로얄>까지. 같은 이름 영화나 드라마들이 있어 마치 오래되지 않은 작품들로 오인할 수 있는 탓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왕과 나>는 물론 오만석과 구혜선이 나오는 요즘 상영중인 SBS 사극 드라마가 아니며, <카지노 로얄>은 지난해 개봉했던 007 시리즈 21탄이 아니다. <흑수선>은 한국 영화에도 같은 이름의 영화가 있어 혼동의 우려가 있는데, 당연히 데보라 카의 출세작인 1947년작 <흑수선>이다. 이 영화에서 데보라 카는 수녀역으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기며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데보라 카와 율 부리너가 나오는 <왕과 나>는 물론 타이의 왕과 영국인 가정교사 사이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원작의 1956년 영화다.

<왕과 나>의 유명한 춤장면. Shall we dance? 이 영화에선 서양 여자옷을 처음본 아이들이 데보라의 다리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치마가 저렇게 넓게 펼쳐지나 궁금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데보라 카와 율 부린너는 이 영화에 이어 <여로>(1959)에서도 다시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007 시리즈의 번외편이었던 <카지노 로얄>(1967)은 007 정식 시리즈에 안끼워주는 영화로, 데보라 카는 요원으로 나온다. 이 때 이미 40대였다. 데보라 카에겐 중요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생각난 김에 소개를 하고 넘어가겠다.

<카지노 로얄> 포스터. 우디 알렌이 뽀송뽀송하다!

(# 가끔씩 당대의 톱스타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영화들이 나오곤 한다. <캐논볼>처럼. 그런데 이렇게 스타로 출연진을 도배한 영화치고 크게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 1967년작 <카지노 로얄>이 대표적인데, 출연진만 보면 정말 빵빵 그 자체다. 데이비드 니븐에다가 오슨 웰스(!), 우디 알렌에 윌리엄 홀덴까지. 장 폴 벨몽도까지 나온다! 이뿐만 아니다. 단역으로 피터 오툴과 재클린 비셋도 들어갔다. 

문제는 감독도 무려 5명이나 되었다는 것. 사공이 많다보니 내용이나 밀도는 말도 안된다. 그냥 유명한 사람들 계속 나오네, 하며 보는 게 낫다.)  

데보라 카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면 아마도 <러브 어페어>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러브 어페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 커플이 나온 1994년작 로맨스 영화를 떠올릴텐데, 이는 3번째 러브어페어다. <러브 어페어>는 1939년, 1957년, 그리고 1994년 등 무려 3번씩이나 만들어진 할리우드의 인기 레퍼토리다. 데보라 카가 주연한 <러브 어페어>가 바로 2번째 것이다.

지금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사진을 찍는 미국인들을 보면 ‘케리 그란트와 데보라 카처럼’이라고 말하는 세대와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처럼’이라고 하는 세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에서 다시 만나는 상항 설정은 3번째 <러브 어페어>는 물론 다른 영화인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1993)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애틀의...>에 이 1957년작 <러브 어페어>가 잠시 등장하기도 하며, 이 57년작의 장면들과 비슷하게 꾸민 장면들도 여럿이다.

<러브 어페어>의 케리 그란트와 데보라 카. 94년작에서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과 비교해보라.

이 밖에도 그가 출연했던 영화로 아주 성공은 안했지만 그래도 추억의 명화로 노상 틀어주곤 했던 <풍운의 젠다성>(=<젠다성의 포로>)도 빼놓을 수 없다.

부음 기사 속 데보라 카에게는 자극적이거나 광고같은 카피를 좋아하는 서방언론들 답게 화려한 수식어가 이것저것 붙어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모국인 영국 BBC의 표현이었다. “성공적인 영국의 수출품”으로 그를 평가하고 “‘영국의 장미’가 졌다”고 애도했다. 그러고 보니 영국하면 떠오르는 여배우는 의외로 많지 않은 듯하다.

또 하나 더, 매체들은 달라도 데보라 카의 부음기사에는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키스신의 주인공’이란 칭호도 빠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바로 그 명장면 탓이다. 데보라 카가 영화에서 보여준 거의 유일한 파격적인 장면이었을텐데, 영화사에 남는 장면이 되다보니 데보라 카는 곧 이 영화속 충동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곤 한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의 바로 그 장면. 버트 랭카스터와 해변에서 키스하는 모습이다.

“위대한 오스카의 패배자”라는 칭호도 모처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아카데미는 종종 이상한 똥고집으로 존심을 세우곤 한다. 가장 상식을 무시한 사례는 개인적으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올해 평생공로상을 주는 것으로 ‘면피’를 한 것을 꼽고 싶다. 할리우드 영화를 빛내주었건만 미국인이 아니면 아카데미는 늘 외면한다. 그리고는 모리꼬네 경우처럼 결국 조금 있으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라는 독설도 듣는 평생공로상으로 때운다. 그 어떤 여배우보다도 길고 강한 생명력으로 기복없이 오랫 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데보라 카에게도 그랬다.

데보라 카의 초년 중년 노년 사진.

오죽하면 ‘위대한 패배자’란 말까지 들었을까. 데보라 카는 아카데미상에 데보라 카는 6번 후보로 올랐지만 한번도 트로피를 받지 못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아카데미는 1994년 데보라 카에게 공로상을 주는 것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오스카를 안겼다. 일흔세살에 공로상을 받았으니 그나마 일흔아홉살에 받은 모리꼬네보다는 나은 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그가 6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는 점이 놀랍다. 남자 배우들보다 수명이 짧은 여배우로 이렇게 여러번 후보에 오른 배우도 드물다. 그만큼 꾸준했고, 항상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장수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점에서 데보라 카는 오히려 더욱 당대의 여배우란 호칭을 들을만 했다.

그가 훌륭한 연기자였음을 나는 나이가 들고서야 비로소 알게됐다. 그는 외모만으로 뜬 배우가 아니라 분명 훌륭한 배우였다. 아직도 강한 인상을 주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키스 장면은 바로 그런 데보라 카의 열정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욕정에 불타는 알콜중독 유부녀로 나온 데보라 카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 장면이 이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지 않았으리라.

물론 어렸을 적에는 이 영화속 데보라 카가 내가 아는 그 데보라 카가 맞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서 더욱 데보라 카가 좋아졌다. 그렇게 변할 수 있기에 데보라 카는 훌륭한 배우다.

실제 데보라 카는 미국으로 건너와 모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다양한 역할을 맡았던 영국과 달리 늘  같은 역할만 시키는 할리우드 시스템 때문에 차분하고 조신한 역만 집중적으로 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답답해하면서도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1953년 이 영화에서 데보라 카는 저 키스신으로 상징되는 숨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어느새 서른줄을 넘겼을 시점이었다. 바로 이렇게 변신할 수 있는 연기력을 입증한 덕분에 데보라 카는 인형처럼 예쁘기만한 여배우들과 달리 오래도록 영화계를 누빌 수 있었다.

기사를 다시 보니 데보라 카는 1921년 생이라고 적혀 있다. 꼭 할머니뻘이다. 1920년생인 외할머니와 같은 세대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배우도 데보라 카다. 데보라 카는 나와 외할머니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는 끈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왕과 나>를 할머니와 같이보면서 할머니는 50년대의 추억에,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만든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에 빠졌다.

왜 요즘은 이런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틀어주지 않는 걸까? 늘 그게 궁금하다. 텔레비전 주말의 영화는 기껏 거슬러 올라가야 90년대, 심지어 80년대 것도 잘 안해준다. 옛날 영화들만 이 가지는 독특한 느낌을 만나본 지 너무나 오래다.  그렇다고 비디오 가게에서 빌릴 수도 없다. <황야의 무법자>는? <내 이름은 튜니티>는? <핑크 팬더>는? <대탈주>와 <하이눈>은? 

지난해 개봉했던 로맨틱 코미디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카메론 디아즈의 몸매도, 차분하게 변신한 잭 블랙의 모습도 아니었다. 1930년대 영화부터 모두 빌릴 수 있는 미국의 비디오/디브이디 대여점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좋아했던 시절 영화, 할아버지 할머니가 즐겼던 예전 영화들을 요즘 세대들이 빌리는 장면을 보며 무척 부러웠다. 

나와 아버지가 한 영화를 떠올리며 같이 즐거워 하고, 내 아들이 내가 좋아하던 1980년대 영화를 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또한 살아가는 작은 행복이 아닐까.

문득 데보라 카의 소식을 들으며 요즘에는 영화가 세대별로 단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미국처럼 온갖 영화들을 시시콜콜 다 비치한 대여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방송국들이여, 데보라 카가 활동하던 그 시절 영화를 틀어달라. 아주 가끔이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