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이런 호텔 보셨나요?-한옥과 현대건축은 어떻게 만나왔나 2007/09/27

딸기21 2018. 6. 17. 13:34

안녕하세요? ‘종합일간지 유일의 건축 담당 기자’ 구본준입니다.^^


농담처럼 말씀드렸습니다만 건축만 따로 맡는 신문기자는 현재 저 뿐입니다. 다른 신문은 다들 미술과 함께 하는데, <한겨레>는 미술 담당과 별도로 제가 건축 기사를 맡습니다.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의미를 두시진 마시길.


좌우지간 건축 기자로서 종종 건축 이야기를 올리겠다는 말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건축이야기 포스트 하나 올리고자 합니다.


최근 건축계의 ‘화두’를 굳이 꼽자면 아마도 아마도 한옥이 가장 먼저 꼽힐 겁니다. 최근 건축계의 한옥 이슈는 좀 의도적인 붐 측면도 있긴합니다만 어쨌든 한옥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습니다. 덕분에 최근 한옥이란 건축양식을 어떻게 현대적인 도시공간과 삶속에 살릴까 시도하는 건축 사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초기 한옥을 개조한 사무실에 이어 요즘에는 한옥 동사무소와 한옥 유치원, 한옥 치과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옥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경주 보문단지 안 ‘신라 밀레니엄 파크’에 지난 5월 문을 연 라궁이란 호텔입니다. 그리고 건축계의 관심은 당연히 이 새로운 호텔로 쏠렸습니다. 



지금까지 한옥을 개조해 숙박시설로 만든 적은 있어도 처음부터 호텔을 한옥으로 지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호텔 건축에 한옥을 접목시키는 시도는 부산의 웨스틴조선비치나 코모도호텔 등이 있었지만 모두 한옥적인 디자인을 건물에 집어넣은 ‘한옥느낌 디자인 호텔’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라궁은 새로운 시도라고 하겠습니다.


하필이면 경주에 간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바깥에서 찍지 못하고 처마밑에서 찍는 바람에 사진이 영 엉망인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라궁은 건물 2개 동이 하나로 이어지며 네모꼴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라운지와 식당이 있는 2층 건물이 입구이며, 객실이 주욱 늘어선 회랑 건물이 이어집니다.


객실 바깥쪽에는 연못을 두어 누마루에서 물을 바라보게 꾸몄습니다. 건물 가운데  네모 마당은 일부러 텅 빈 채로 놓아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마당과 주변 복도가 긴 회랑식 객실 건물이 주는 적막한 느낌이 이 건물의 매력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종묘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요. 고요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효과를 냅니다.

 

라운지와 식당이 있는 입구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2층짜리인데 긴 열주가 인상적입니다. <라궁>을 설계한 건축가 조정구(40, 구가건축 대표)는 사찰 요사채 건축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따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건물 가운데 빛우물 겸 중정 겸 연못을 뒀는데  이 공간이  외관보다 더 매력적입니다.


구가건축 제공


이 건물을 지나면 객실 건물로 이어집니다. 객실 건물은 긴 복도가 인상적입니다.



객실은 모두 16개입니다. 객실 형태는 4가지로, 누마루가 있는 ‘누마루형’, 마당이 있는 ‘마당형’, 그리고 2가지 ‘복합형’입니다. 투숙객들이게 인기가 좋은 것은 ‘누마루형’이고, 종업원들이 꼽은 맘에 드는 객실은 ‘마당형’이었습니다.


원래 건축주인 삼부쪽의 구상은 너른 터에 띠엄띠엄 한 채씩 객실을 산재시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설계를 맡은 조정구씨가 이를 하나의 복도로 연결하는 집중구조로 가자고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이 건물의 특징인 긴 회랑식 구조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도 개별 객실들이 분절되기 때문에 기존 전통족인 한옥에서 볼 수 없는 구조도 보입니다. 아래 사진같은 공간처리가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구가건축 제공


그러면 이제 객실로 들어가보시죠.


<라궁은> 객실 하나하나가 별채로 이어지기 때문에 객실문이 곧 대문입니다.



각 방은 2~3개의 방, 마루, 마당 또는 누마루로 구성됩니다. 우선 거실입니다. 방의 유형별로 각 거실이며 방, 침실 등 사진을 모아서 소개합니다.

 

우선 거실입니다. 



다음은 안방입니다.



침실입니다.



이 호텔 최고의 특징은 객실마다 모두 설치한 돌로 만든 노천 온천욕 욕조입니다.


몇개 방은 실내에 있는데 돌로 만든 욕조는 공통입니다.



이 <라궁>은 삼부토건이 운영하는 신라밀레니엄파크 내부의 숙박시설입니다. 삼부쪽이 처음 이 건물을 기획한 콘셉트는 일본의 전통 여관인 료칸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료칸은 일본 전통 건물에 하루 묵으면서 일본 전통 옷을 입고 일본 전통식 목욕을 해보고 일본 전통식 음식을 맛보는 문화체험의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건물은 호화판이 아니어도 가격이 몇만엔에 이를 정도로 고급입니다.


<라궁>은 그런 관광 숙박시설을 한국화하자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전통 한옥 건축법으로 지었고, 각 방마다 온천을 즐길 수 있게 욕조를 넣었습니다. 운영방식도 료칸처럼 하루 2끼 아침과 저녁 식사값이 숙박비에 포함됩니다. 


(숙박비는 아침 저녁 식비가 포함돼 제법 나갑니다. 2명이면 1인당 15만원, 3명은 1인당 14만원, 5명은  1인당 12만원입니다. 5명 이상은? ...방을 하나 더 잡아야 한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건축의 관점에서 돌아볼 차례입니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개별 객실 하나하나가 집 한채처럼 구성되며 이 구조가 중첩되는 점입니다. 건축가는 도시한옥을 건축적 모델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도시한옥’은 뭘까요? 건축에서 도시한옥은 단순하게 도시에 있는 한옥을 넘어 ‘1900년대 이후 도시에 들어선 보급형 한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서울 북촌 가회동 등에 있는 한옥들이 대표적이지요. 가회동 말고도 보문동이나 서대문 등에도 제법 많았는데 이제는 가회동을 빼고는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도시한옥은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문화재 한옥’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재 한옥에 견줘 수준이 낮은 ‘집장수 한옥’이라고 낮게 평가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축가 조정구씨는 이런 도시한옥이 분명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근대 도시가 들어서면서 새로와진 도시환경과 근대적인 삶에 맞춰 한옥이 스스로 진화한 것이 도시한옥이라는 것이죠. 그런 장점을 현대 한옥 건축으로 담아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왜 라궁의 건축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좀 사전 정보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건축판에서 한옥에 대해 진행되어 온 이슈를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한옥에 관한 건축계의 관심은 한옥을 현대건축이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가 주를 이뤄왔습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되면서 한옥은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한쪽에서 한옥을 전근대적인 주택이라고 때려부수는 사이, 현대 건축가들 사이에선 한옥의 미학을 살려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한옥을 현대건축에 접목시키는 시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정부에선 또 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군사정권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현대 건축에 한옥을 차용하는 방식을 강요하며 공공 건물 등을 이런 새로은 콘크리트 한옥으로 지었습니다. 또는 공공건물에 한옥식 디자인을 넣도록 요구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현대 건축의 콘크리트 공법 그대로 가면서 모양새에 한옥 디자인을 차용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한옥이 아니라 ‘한옥처럼 생긴 현대건축물’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입니다.



이 민속박물관은 큰 논란을 불렀던 건물입니다.


건물 모양을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건물 윗쪽 나무탑 모양 부분은 전통 문화재인 법주사의 팔상전을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아래부분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의 모습입니다. 


이 건물은 정부가 건축주가 되어 1960년대 설계를 공모했습니다. 그때 공모할 때부터 팔상전과 불국사 같은 우리 유명 건축물들의 모양을 건물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건축계는 분노해 발끈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명 건축가들이 모두 공모를 하지 않고 보이코트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나라를 대표할 박물관을 짓는데 정부가 자기 맘대로 디자인 기준을 정한 것은 건축에 대한 몰이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문식 발주가 건축의 미학과 상식을 해치는 것이며, 또한 이런 식의 한옥 차용은 거의 놀이공원 건물 수준의 마인드로 접근한 것이지 국가를 대표할 박물관 건물의 컨셉으로는 맞지 않다고 건축가들은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때니 그런 고차원적 논의가 통했을리 없지요. 정부는 계획대로 저 ‘조립형 디자인’을 밀고 나갔습니다.


다음은 또다른 한옥 디자인 차용 콘크리트 건물인 서울 어린이회관 건물입니다.



어린이회관은 당시 제법 많이 지어졌던 70년대식 콘크리트 한옥 디자인 건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처마나 주포 모양을 내고 건물 겉에는 옅은색 페인트를 칠한 것이 이 건물들의 특징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런 건물을 좋아해 많이 들어섰다고 하고, 그래서 ‘육영수 한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건축계의 평가는? 음, 무척 싸늘합니다. 콘크리트로 한옥 모양만 따른 짝퉁 건물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사진상으론 괜찮아 보이나요? 실제로 보시면 좀 ‘깹니다.’ 제 보기엔 전통 건축을 현대 건축의 문법으로 재해석할 때 반드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지닐 수 밖에 없고, 저 건물이 그런 중간 임무를 맡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건물이 한옥과 현대건축의 만남에서 또다른 논란을 불렀던 건물입니다.



한옥 디자인을 현대건축의 문법으로 차용한 또다른 사례인 전주시청입니다.


전주시청은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현대건축사조는 한옥이란 한국의 전통건축과 묘한 관계를, 잠시 맺습니다.


1970년대 후반, 국내 건축계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옵니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주제는 ‘대중에게 가까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르 코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이 이끈 매끈하고 절제된 모더니즘 건물들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건물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 장식성도 살리고, 또 값도 싸게 해서 짓자는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기존 모더니즘 건축은 깔끔하고 단순하며 고급지향적인 경향을 보여줍니다. 온갖 잡다한 장식을 다버리자, 그리고 형태를 최소화, 추상화하자는 겁니다. 미니멀리즘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으려면 그런데 오히려 돈이 더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료가 좋아야 단순한 미학도 폼이나거든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반대로 싸게, 이해하기 쉬운 건물을 지향했습니다. 이런 경제성은 당시 주요한 경쟁력처럼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할 때 논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옥을 본뜬 거대한 건물인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을 봅시다. 이 건물을 짓는데 한옥으로 지으면 100억이 든다고 치죠. 그런데 콘크리트를 써서(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 지으면 절반값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당시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이 전주시청 건물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나왔습니다. 1980년대 들어섰을 때는 국내에서 비교적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생명은 길지 못했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들은 힘을 잃고 맙니다. 그 미학에 대한 평가도 아주 비판적으로 흘러갔습니다. 이 전주시청도 지금은 디자인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키치적이라는 것이죠.


건축 흐름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평가란 것이 참 예상 이상으로 급하게, 그리고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콘크리트 건물로 한옥 디자인을 가져다 붙이는 현대건축물들은 80년대 이후로는 거의 시도 자체가 중단되었습니다. 한옥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불편한 집에서 불편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집으로 재해석됩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소유할만한 집으로 인기가 좋아집니다.


북촌 한옥에 대한 평가도 좋아집니다. 전통 구법을 충실히 따르는 장인들에게는 싸구려 집장수 한옥이지만, 남아있는 것이 이집들 밖에 없으니 중요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북촌 한옥들의 역사적 위상이 커졌고, 이 지역이 문화적 특수지구로 떠오르면서 이 한옥들을 사서 개조하는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앞서 말씀드렸던 살림집뿐 아니라 한옥을 상업공간이나 공공공간으로 쓰기 위한 리노베이션 작업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인 혜화동 동사무소 모습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이런 흘러온 커다란 흐름 속에서 현대건축이 한옥을 차용하는 식이 아니라 ‘아예 예전 한옥 구법으로 가자, 대신 현대적 기능을 담도록 하자’며 돌아간 것이 바로 한옥호텔 라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식 콘크리트 건축으로 대변되는 현대건축의 눈으로 굳이 한옥을 ‘해석’ 또는 ‘재해석’하려 하지 말자. 굳이 서양건축의 눈으로 한옥을 새롭게 풀이말고 한옥 그대로를 바라보고 지금에 맞게 짓자. 이런 인식이죠.


이것도 역시 새로운 해석이라면 해석이겠지만 무조건 ‘한옥이란 전통’을 현대적 해석하자는 강박을 벗어던진 점은 분명 새로운 인식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수십억원을 들어가는 호텔을 한옥으로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은 건축주의 결정도 돋보이는 점입니다.


물론 라궁은 많은 아쉬움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못마땅했던 점은 실내 디자인이 전체적인 한옥 건축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점이었습니다. 부대 설비, 가구들, 각종 장식물, 침구류 등의 디자인이 한옥 건축 컨셉과 통일성을 가졌다면 더욱 고급스러워 보일 것 같았습니다. 이런 부분은 이곳이 특급 호텔을 지향하는만큼 더욱 중요한 문제인데, 아직은 그런 작업을 하는 토털 코디네이션까자 나아가지 못한 듯해 아쉬웠습니다.


전문가들은 과연 라궁이 모델로 삼은 도시형 한옥이 그렇게 질높은 건축이었느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습니다.


물론 종합적인 평가는 이제부터입니다. 일단 한옥도 호텔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점은 신선합니다. 다른 건축적 의미들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앞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