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국가대표 벤치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2007/09/18

딸기21 2018. 6. 17. 11:42

Quiz.

침대는 ( ? ) 입니다.
그러면 의자는 ( ? ) 일까요?

정답은 무엇 같으십니까? 광고에 따르면 침대는 `과학'입니다. 

의자는? 바로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가 의자입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창의적인 형태를 실험할 수 있는 소재가 의자입니다. 현대 디자인사의 주요 걸작들에는 그래서 의자들이 많습니다.의자를 보면 디자인사가 보인다고 할 정도입니다.

거리가구, 곧 `스트리트 퍼니처'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의자입니다. 거리는 알맞은 부대낌이 있어야 활기가 차고, 그런 부대낌 속에서 잠시 쉴 곳이 있어야 여유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거리는 의자가 제대로 있어야 사람 살만한 거리가 됩니다. 의자가 있어 앉아서 쉬고 싶어지는 거리라야 제대로 된 거리, 문화와 사람이 흐르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서울 벤치들은 어떨까요? 아직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서울시도 그걸 모르지는 않지요. 그래서 의자 좀 제대로 해보려는 듯 합니다.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청앞 광장에서는 `의자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서울 거리와 공원에 들어설 의자들 디자인을 시민들에게 공모 받아 뽑은 것들,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부탁한 디자인을 시민들에게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사흘 동안 열린 전시회에는 모두 22개 디자인의 36점의 의자를 선보였습니다. 현장에서는 투표도 받았습니다. 표를 많이 받은 의자들을 뽑아 앞으로 서울시 역사박물관이나 청계천 등 주요 장소에 설치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의자란 디자인의 고갱입니다. 또한 거리 가구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서울 한복판에 놓일 의자는 곧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거리 가구 수준과 디자인 수준을 대표하는 의자가 될 것입니다. 서울을 대표할 의자 후보들은 어떤 것들인지 한번 보시죠.

안성모 <시티 프레임>


네모틀로 풍경을 잘라서 바라보면 친숙하던 도시 풍경이 달라 보일 수 있겠죠. 그래서 제목이 <시티 프레임-서울 다시보기>입니다. 전문가인 초청작가 안성모씨의 작품입니다.

유이화 <아이비 체어>


제목 그대로 담쟁이 모양으로 만든 의자입니다. 단순하되 분명한 모양새가 특징입니다. 다만, 엉덩이가 좀 큰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드네요.^^

최진호 이주현 <트리 벤치>


이 의자는 시민이 낸 아이디어 의자입니다. 의자에 화분을 달았습니다.

유미리 장지혜 <하우 두 유 싯>


"어떻게 앉아보시렵니까?"라고 묻습니다. 경쾌하게 각을 꺾었는데, 실용적일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오준식 <서울 하트> 앞모습


속을 비워 아주 가벼워 보입니다. 벤치라기보다는 거의 소파같은 모습이죠?
그런데 이 의자의 이름이 <서울 하트>랍니다.
왜 하트일까요?


겉으로 보아서는 모르실 수 밖에 업습니다. 하트 무늬가 새겨진 것도 아닙니다.
저 의자는 뒷모습을 보면 궁금증이 풀립니다.


<서울 하트> 뒷모습


모서리를 깎아내니 하트가 생겨났습니다. 생활속에서 찾은 작은 발견을 가볍게 보아 넘기지 않고 디자인 모티브로 삼은 점이 인상적이네요. 연인들이 특히나 좋아할 듯 합니다.

허무종 <플러스 라이트>


무척이나 독특한 의자입니다. 철사를 구부리듯 모양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 윗부분에는 등을 달아 가로등 기능도 갖췄습니다. 오래 앉아있기는 좋지 않아보입니다만 파격적인 디자인은 분명 눈길을 잡아끕니다. 이번 공모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래 의자도 기존 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외관이 흥미롭습니다.

이창석 차성호 김현미 <통>


기둥에 나온 수평 기둥에 천을 끼워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가운데 기둥은 가로등도 됩니다.

다음은 중복되는 모양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가며 자유롭게 새로운 모양으로 변형이 가능한 의자입니다. 전문가 작품으로 초청작가 한태환씨의 <웨이브>입니다.

한태환 <웨이브>


다음은 건축가 권문성씨 작품입니다. 의자 이름이 아주 설명에 충실합니다. <철판망 벤치>.

권문성 <철판망 벤치>


길고 독특해보여서인지 전시장 의자들 가운데 시민들이 가장 즐겨앉는 편이이었습니다.
'저거 아주 단순한거 아냐?' `저 정도면 나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 그렇기도 하구요.
그러나 사실 저런 쉬워 보이는 디자인이 오히려 더 어렵답니다. 전문가들 디자인은 그래서 보면 엄청나게 놀랍다기 보다는 아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특징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틈 사이에 쓰레기가 들어가면 치우기 힘들 것 같은데'란 걱정이 들었습니다.

제갈재호 <클로버 벤치>


초청작가 제갈재호씨의 토끼풀 모양 벤치입니다. 왜 이름이 <클로버 벤치>냐면, 앞쪽에 있는 동그란 덩이 받침 3개가 모여 클로버 무늬를 이룹니다.

박성혜 <친구>


이 의자는 마치 어린이 놀이방에 있는 놀이기구처럼 생겼네요. 시민 공모작입니다.

아래는 실리콘에서 이름을 따온 듯한 <실리 체어>란 의자입니다. 물침대가 아니라 물방석입니다. 개구장이들이 올라 타선 터뜨리려고 놀고 있었습니다. 물론 터질리 없겠죠.

조선미 <실리 체어>


비대칭 모양 디자인이 특징인 의자입니다.
자, 이름은....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다시 초청 작가 작품을 보시겠습니다. 이름이 `진보적인 벤치'네요.
무난한 듯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핵심은 오른쪽 팔걸이 옆에 달아놓은 꽃 꽂는 부분입니다. 의자 옆에 꽃을 달아 도시를 화사하게 꾸미는 효과를 냅니다.

▲ 한경하 <프로그레시브 벤치>


아래는 초청작가 위한림씨의 <젠틀리>란 의자입니다. 이름처럼 젠틀한 모양이네요.


다른 의자도 있었지만 대충 이정도로 소개를 마칩니다.
투표 결과는 아직 알아보지는 못했는데 시민들이 전시 의자에 직접 앉아본 다음 가장 앉고 싶은 벤치와 서울에 어울리는 벤치를 골랐다고 하니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자가 가장 맘에 드셨나요?
시청 앞 광장 전시회는 끝났지만 오늘 소개한 의자들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07 공공디자인 엑스포'에서도 이 의자들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공공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또 제가 늘 강조하는 스트리트 퍼니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런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물론 긍정적입니다. 앞으로 더 활성화하길 바랍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탓일텐데, 의자들을 올려놓은 전시 공간 바닥에 새빨간 카페트를 깔아 너무 강한 색조가 감상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의자 자체의 디자인이 돋보이게 전시장을 차분하게 꾸미면 좋겠네요.

전반적인 수준은 어떠십니까? 한국을 대표할만한 벤치가 될까요?

전문가들 보다는 시민들의 작품들이 많으니 창의성에 더 주목해야겠지요. 신선하고 흥미롭딘 하지만 서울을 대표할 의자 후보감이 저 안에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물론 처음에 눈에 확 띄는 디자인이 꼭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일단은 너무 디자인을 강조한 의자들이 많은게 아니냐는 느낌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의자들을 보니 기존 한국의 거리 벤치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최근 들어 우리 거리 벤치들은 예전보다는 정말 다양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거리 벤치가 다채로워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고, 서울이 그만큼 다채로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금 부족해보이는 거리 벤치들도 상당한 게 사실입니다.

잠깐 한국의 거리 벤치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제가 근래에 본 아주 '기억에 남는' 벤치입니다. 서울 신문로 서울시역사박물관 앞길에 있는 거리 벤치들인데 오른쪽에는 돌 벤치, 왼쪽에는 나무 벤치가 있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저 왼쪽에 떼지어 있는 통나무 벤치였습니다.


통나무 벤치에는 한결같이 큼직하게 서울시 마크가 찍혀 있고, 정 가운데에는 뜻밖에도 한자숙어가 써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노원구 마크가 역시 아주 큼직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왜 갑자기 거리 벤치에 한자성어일까요? 분명 교육적인 점에서는 도움이 되겠죠. 기왕 의자에 앉는 것, 앉으면서 한자숙어 공부도 해라, 그런 뜻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저 노원구 마크는 무엇일까요? 저 의자들은 노원구 목공예센터에서 만든 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 한복판 중심지인 신문로에 놓이는만큼 노원구 자랑도 해야겠으니 큼직하게 노원구 마크를 전면에 찍고 옆에다가 만든 주체인 노원구목공예센터 이름도 역시 잘 보이게 써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노원구 목공예센터 분들에겐 죄송하게도 저 통나무 벤치를 본 순간 저는 착잡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의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원구에 놓아도 될 의자를 굳이 도심에 가져다 놓은 점, 지나치게 큰 서울시 마크와 노원구 마크, 의자에 굳이 한자성어를 넣어 마치 거리 벤치를 초등학생용 학습지를 연상케 만든 점 등이 사실 촌스러워 보였습니다.

거리가구는 분명 `미디어'의 기능도 합니다. 지자체나 정부가 알리려는 홍보 문안이나 구호를 스트리트 퍼니처에 부착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좋은 글귀를 써넣기도 하고, 때로는 미술품을 소개하는 액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 거리 가구에 시민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줄 만한 글을 부착하는 것은 우리는 물론 외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공원 벤치들입니다.


저 벤치는 일본 도쿄 인근의 도시 무사시코가네이의 코가네이 공원에 있는 벤치입니다. 하지만 많은 일본 공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표준형 공원벤치입니다. 저 벤치 등받이 맨 위 가운데에 보면 무언가 작게 적어놓은 판이 붙어있습니다. 저 판 부분에 일본 전통 하이쿠나 유명한 사람들이 한 좋은 말 등을 적어 놓습니다.

아래는 도쿄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원인 도쿄 기치조지 부근 이노카시라온시공원 벤치에 적힌 글귀입니다.


일본은 이처럼 거리 가구에 글귀를 붙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로등 몸통에도 종종 좋은 글을 붙여놓기도 한답니다.

아래는 일본 도쿄 인근 미타카시 가로등에 붙여 글귀를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가로등마다 서로 다른 글을 담고 있습니다. 공원 벤치처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고 차분히 들여다보면 글이 숨어있는 것을 알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한자숙어 적은 서울 통나무 벤치는 촌스럽다고 비웃으면서, 글귀 적은 일본 벤치와 가로등은 세련됐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재미를 주는 일본식의 글귀 삽입이 커다랗게 시각적으로 억압하는 통나무벤치 방식보다는 더 사용자 위주의 시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자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알리려는 글귀일겁니다. 아쉽게도 저 통나무 벤치는 시민들이 쉬는 의자로서의 기능보다 적으려는 글귀와 의자를 만든 주체를 알리려는 뜻이 더 앞선 것 같군요.

좋은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부탁 드리건대, 저런 디자인은 피하시고 좋은 뜻은 계속 이어가셔서 더욱 세련된 벤치로 노원구목공예센터의 이름을 빛내길 바라겠습니다.

서울시의 행보도 기대하며 눈여겨 보겠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정말 시민들이 앉고 싶어하는 벤치, 정감어린 디자인이 보는 맛을 더해주는 벤치를 발굴해 국제 도시 서울에 걸맞는 국가대표 벤치로 키워나가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