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마징가의 아버지를 만나보세요 2007/07/15

딸기21 2018. 6. 11. 15:19

“과연 한국분들이 저를 알까 싶었어요. 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밟으면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가 누구인지 알까 궁금했습니다.”

 

지난 12일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마징가Z>의 아버지 나가이 고(永井豪·61)는 옆나라이지만 외국인 한국 영화제에서 자신을 주제로 하는 ‘나가이 고 특별전’이 열리는 것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12일 개막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그는 영화제 기간 내내 한국에 머물며 영화제 기간 열리는 특별전 ‘나가이 고와 로봇대전’에 참관하고 국내 팬들과 만난다.

 

 

<마징가Z>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등의 로봇만화로 한국 만화팬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나가이 고는 1960~70년대 일본 만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당시 최고 인기작가로 활약했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최고의 ‘만화왕국’이 되는 과정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본만화계 초기 슈퍼스타인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꿈꾼 그는 60~70년대 최고 인기만화가였던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어시스턴트로 만화계에 입문한다. 그리고 1967년 파격적인 개그만화 <파렴치학원>으로 데뷔해 일본만화계에서 일대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마징가Z>같은 슈퍼로봇물들, 그리고 <데빌 맨>같은 심오하면서도 폭력적인 다크 히어로물, <큐티 하니>같은 미소녀전투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히트작을 쏟아니며 일본 만화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환갑을 지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경이로운 작가이기도 하다.

 

입국 다음날인 13일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만났다. 하얀 재킷에 알록달록한 무늬와 색깔이 도드라지는 셔츠를 입은 나가이 고는 나이에 견줘 무척이나 패셔너블했고, 그래서 더욱 젋어보였다. 작은 체구에 온화한 미소, 그리고 잘 다듬은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예의바름이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도 조근조근했고, 번역을 통해 들었지만 말투는 특히 겸손했다. 과연 파격적인 설정에 폭력적인 악의 세계를 탐구해온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국의 국제영화제에서 선생님 특별전을 하는 느낌이 어떠십니까.

한국분들이 저를 아실까, 오면서도 궁금했습니다. 첫날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으며 들어가면서 환대를 받으면서도 과연 저를 아는걸까 믿기지 않았습니다.
 
-70년대 한국에서 <마징가Z>와 <그렌다이저> 등의 애니메이션판이 방영되어 많은 만화팬들과 만화가들이 선생님 작품을 보고 자랐습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고 영향받은 한국 작가들이 많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쌓여가고 한편으로는 오리지날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데즈카 오사무에게 영향받아 만화가가 된 것처럼 한국의 후배 만화가들이 제 작품에 영향을 받는 것,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마징가와 조종사 가부토 고지(한국명 쇠돌이). 마징가는 일본 만화 최초로 사람이 탑승해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한국에서는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 심리가 강해 선생님의 주요작인 <데빌맨> 등은 거의 대부분 소개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만화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데빌맨>과 <바이올런스 잭> 두 작품입니다. 제 로봇만화들보다 더 열심히 그린 작품들이고, 제 대표작입니다. 이 두 작품은 현실적이면서도 정치성 등과는 동떨어진 작품입니다. 스토리는 현실적이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적이지 않은 만화죠.

 

<데빌맨> 코믹스 표지


-만화가이면서도 영화에 관심이 많아 실제 영화를 연출하신 적도 있으신 걸로 압니다.

영화 심사위원이 된 것이 이번이 4번째입니다. 1988년 프랑스 아보리아츠환상영화제에도 심사위원으로 갔었고, 2004년 일본 유바리영화제 때에는 심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 때 한국영화에 대상을 주었습니다(웃음). 제가 직접 비디오용 영화 3편을 연출했습니다. 극장 개봉용 영화보다 적은 비용으로 찍는 영화들로,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제트마징가> <마징사가> 등 마징가 시리즈들은 미완인 것들이 많습니다.(<마진사가>는 6권까지, <Z마징가는> 5권 1부까지 나오고 후속편이 안나오는 상태다)

<마진사가>는 내년이나 내후년 재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징가Z>는 (마무리는 지었지만) <데빌맨>과 동시에 연재하느라 신경을 덜썼고, 그래서 아쉬워하는 작품입니다. 내년 <마징가Z> 자체를 새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게타로보>. 나가이 고 작품으로는 거의 몇 안되는 국내 정식 소개작이다.


-선생님이 만드신 거대로봇들을 보면 메카닉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저는 로봇을 디자인 할 때 사람과 닮은 점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너무 기계적이면 안좋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가 되기 전 거대 로봇 만화들을 보면서 사람이 들어가서 조종하면 참 재미있겠다 생각해서 사람이 들어가는 디자인을 한 것인데 반응이 좋았던 것이죠. 

 

-선생님 작품에선 주인공들 못잖게 ‘아수라 남작’ 등 악역들이 독특하고 인상적입니다. 악역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으신가요?

여러가지를 상상합니다. 내가 악당이 되면 어떤 악당이 될까, 뭐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캐릭터를 만들다보면 생각이 나는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아수라는 장난치듯 그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캐릭터입니다. 남자 얼굴을 대칭으로 갈라놓고 그리다가 나온 캐릭터지요. 


 (** 흔히 아수라 ‘백작’으로 알려져있으나 정확하게는 ‘남작’이 맞다. 작중에서는 계속 남작으로 표기된다. <마징가Z> 애니메이션을 보면 후반부 아수라가 마징가와 싸우다 죽자, 헬박사가 장례식을 치르면서 아수라를 ‘백작’으로 추서한다)

 

마징가 시리즈의 3번째 작품 그렌다이저


-요즘 일본 후배 만화가나 만화 작품은 어떤 것을 좋아하십니까?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를 좋아합니다. 야마구치 다카유키의 <시그루이>도요. 그리고 미우라 겐타로의 <베르세르크>도 아주 즐겨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 일본 만화를 보면 개그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웃기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폭력물이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담는 등 만화 하나가 여러가지로 읽히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요즘 일본만화는 테크닉은 늘었고 내용도 점점 더 특화화되어 재미는 있는데 단면적이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요즘 일본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요즘 젊은이들 성향이 감정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동시에 감정을 단순하고 조용하게 표현하는 것도 유행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만화에도 유행이 있어 예전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얼마전 요시모토흥업이 창간한 만화잡지 <코믹 요시모토>에도 선생님 작품이 연재되는 등 여전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호기심이 강합니다. 특히 새로운 웃음에 호기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개그 프로그램들을 많이 봅니다. 
  
-(<코믹 요시모토>에) 새로 연재하시는 작품은 실제 요즘 인기많은 게이 코드 일본 개그맨을 캐릭터로 삼으셨다고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나가이 고는 동성애풍 만화를 뜻하는 ‘야오이’ 등도 그렸고, 개그만화도 로봇만화 못지않게 많이 그려왔다)

데빌맨에 나오는 주인공 친구 등 제 작품에 그런 동성애나 양성구유인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지요. 제 취향이 그런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제약 없이) 자유로운 것이 좋아 의식적으로 제가 집어 넣은 것입니다. 시대가 남녀만의 연애가 아닌 것도 용인하기 쉬운 시대가 되었는데, 저는 그걸 일찍부터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 <데빌 맨>은 70년대 작으로 지금부터 거의 40년전 작품이다. 당시만해도 양성구유나 동성애적 코드는 무척이나 파격적이고 과감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큐니 하니>. 이후의 미소녀전투물의 모델이 되어 <세일러 문> 등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데빌맨>을 실사 영화로 만들자고 할리웃에서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제안한 것이 결정단계로 올라가면 윗분들이 나이 들고 기독교 신자이신 분들이 많아 주인공이 악마인 것을 못받아들이나 봅니다.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는 가는데 최정 결정이 안되더라구요.

 

-본인의 만화 철학은?

저는 세상에 없는 것을 추구합니다. 남들이 이미 한 것이 아닌 세계를 추구합니다. <데빌맨>도 ‘악마에게도 나름대로 이유와 정의가 있을 것이다’란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런 발상이 떠오른 것은 일본의 도깨비 ‘오니’ 때문이었습니다. 후대에서 도깨비라고 하는 것들이 원래에는 주류에게 진 사람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긴자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도깨비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거죠. 서양의 사탄이란 것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사탄이 이겼다면 사탄이 신이 되는 역사도 가능한게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일본만화의 대표적 작가로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으십니다.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서구에서 일본 만화의 강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일본 만화의 매력이자 강점은 ‘무엇이든지 그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만화에는 제약이 없어졌습니다. 성적인 제약, 정치적인 제약이 없어졌고 그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자유가 있는 것이야말로 만화의 강점이지요. 제약이 적다는 것, 그것이 일본만화가 제일이 될 수 있었던 힘이고, 그걸 인정한 것이 바로 일본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나가이 고의 또다른 히트 로봇만화 <강철 지그>

 
-좋아하시는 한국 영화나 만화가 있습니까?
 

한국 영화를 좋아합니다. <무사> <태풍> <엽기적인 그녀>가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에 본 한국 영화로는 <괴물>과 <왕의 남자>가 있습니다.


 

-앞선 인터뷰 사진에서도 같은 목걸이를 하고 계신 것을 보았는데, 특별한 목걸이인가요?

(목걸이를 들어 보여주며) 오키나와 지방의 용 모양 목걸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목걸이 안에 터키석이 들어있습니다. 이 터키석이 말을 잘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에는 꼭 이 목걸이를 하고 나갑니다.(웃음)

 

■ 부천영화제 특별전 `나가이 고와 로봇대전'은?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마련한 나가이 고 원작 애니메이션은 <진 체인지 게타로보 세계 최후의 날> <큐티 하니> <마징카이저>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 <강철신 지그> 등 5편이다. 모두 나가이 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신작 영화들로, 그의 작품이 세대를 넘어 여전히 일본 문화계에서 여러 후배 작가들에게 소재나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3년작인 <마징카이저>와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은 24년만에 새로 만든 마징가제트 시리즈다. 게임용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나가이 고가 관객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어낸 마징가제트라고 볼 수 있다.

<강철신 지그>는 일본과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소개되는 최신작으로, 나가이고의 또다른 히트 로봇만화 <강철 지그>의 속편이다. 
<진 체인지…>도 역시 그의 대표적인 로봇만화 게타로보 원작에 새 주인공과 로봇을 더해 새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반면 이번에 상영하는 <큐티 하니>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연출한 실사영화란 점이 흥미롭다.

일본만화평론가 선정우씨는 이번 상영작들에 대해 “현재 일본과 유럽의 많은 애니메이션·만화 관계자들이 우리 30~40대들처럼 나가이 고의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들이므로, 마징가를 보고 열광했던 세대들이 과연 나가이 고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했는지 만나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