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스피커를 조각하는 화가 이김천 2007/02/09

딸기21 2018. 6. 6. 10:40

어른 키만한 시커먼 소리통이 세 구멍으로 <수재천> 가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장중한 선율이 작업실 전체를 휘감고 돌아와 귓전을 울려댄다. 장단이 바뀔 때마다 유닛은 제 몸을 떨며 소리를 뿜고, 그 가락따라 귓속 달팽이관도 함께 떨린다. 이윽고 집박이 ‘짝’하는 소리.


“이번에는 퉁소 한번 들어보시죠.” 이김천(42) 화백은 연변의 퉁소명인 신용춘의 음반에서 <평안도 시나우>를 골랐다. 경쾌한 북도 음악이 은근히 심박수를 올린다. 화실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음악으로 귀를 씻고 나니 스피커가 다시 보였다. 처음 본 순간에는 신사처럼 근사해보였던 소리통이 유심히 들여다보니 츄리닝 입은 동네 아저씨처럼 ‘널널한’ 모습이었다. 유닛에 달린 나팔같은 혼(horn)은 종이로 만든 것인데, 뜯어져 너덜너덜하기까지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 큼직한 녀석이 이김천씨가 직접 만든 것이란 사실이.


충북 음성 문암리에 있는 이김천 화백 작업실에 있는 스피커는 만든 회사가 없으니 이름도 없다. 이씨가 세번째로 만든 스피커란 뜻에서 ‘3호’라고 부르기로 하자. 늘 혼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음악과 훨씬 친한 경우가 많다. 이화백도 그렇다. 동양화가고, 국악을 즐기는 그에게 음악은 작업의 동반자다. 당연히 늘 오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래도 의아할 노릇이다. 아무리 그래도 개와 꽃이 어우러진 해학적 그림으로 이름난 중견화가가 난데 없이 스피커를 만든다니, 도대체 무슨 소릴까.



2004년, 화가 이씨는 음성에 있는 사찰 가섭사에 제법 오래 살러갔다. 탱화도 그려야겠고, 새로운 계기도 삼아야겠고 해서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못내 아쉬운 게 생겼다. 절이라고 해서 스피커를 들고 가지 않았더니 큰 소리가 고파 귀가 허기져 살 수가 없었다. 재미삼아 종이를 오려 조그만 미니 스피커에 혼을 달았다. 그것만으로도 음이 놀랄 정도로 증폭됐다. 신기했다. 그림을 잠시 잊고 인터넷을 뒤져 스피커 도면을 구해 제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스피커 만드는 재미가 조각하는 맛마냥 재미있었다. 그냥 스피커가 아니라 ‘미술적인’ 스피커로 방향이 절로 정해졌다.


고물 뜯어다 웅장한 소리통으로


가섭사 주지 삼묵 스님이 그걸 보니 좋았다. 스님도 오디오파일(오디오 애호가)이었기 때문이다. 주지 스님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건네며 이씨의 작업을 도왔다. 점점 소리도 좋아지고, 점점 모양도 신기해졌다. 공장에서 찍어 만든 각지고 깔끔한 스피커 대신 골판지며 합판쪼가리를 붙여 비정형으로 만든 스피커가 탄생했다. 공학적으로 설명하긴 불가능해도 분명 소리는 더 부드러워졌다. 가섭사에서 나와 음성에 삶터를 잡은 이씨는 이후 계속 스피커에 매달렸다. 기자를 맞았던 3호는 그 초기에 만든 작품이다.


값이 궁금했다. 얼마나 들었나 물었는데, 이씨는 난처해하며 계속 피했다. 집요하게 물어본 결과 유닛들은 청계천에서 버리다시피하는 2만~3만원짜리 중고 스피커를 사다가 뜯어낸 것들이었다. 저음 유닛은 십몇년은 된 롯데 파이오니아 것, 중저음은 멸종된 지 오래된 상표인 삼성 ‘소노라마’ 유닛이라고 한다. “이게 소리가 아주 질겨요.” 그나마 트위터(고음용 스피커)가 몇만원 더 쓴 것인데, 국내 중견업체 삼미 제품에서 꺼낸 것이다. 인건비를 빼면 그 비용이 전부다. 설명을 들으니 3호가 다시 한번 새롭게 보였다. 전장에서 부활한 퇴역용사같은 느낌이랄까, 그 소리나 품새가 모두 용하디 용해보였다. 돈 몇만원에 솜씨만으로 고물에 생명을 부여한 이 화백이 마치 조화옹 같았다. 이 화백은 “아이고, 별것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스피커는, 공학적으로 말하면 앰프가 증폭시킨 전력을 음성신호로 만들어 방사한 음이 나오는 출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되’듯, 음은 스피커가 쏘아줄 때 진정한 소리가 된다. 오디오 기기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스피커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스피커에 맞춰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한다. 그래서 스피커를 ‘오디오의 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구조는 매우 간단한 게 스피커다. 기술도 공개돼 첨단 장비나 기술 없이도 혼자 만들 수 있는 기기다. 오디오 회사 가운데 스피커 회사가 가장 많은 까닭이다. 구조가 간단한 대신 소리의 차이도 오히려 더 엄청나다. 누구든 만들 수 있지만 좋은 물건은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것, 그게 스피커다. 골드문트, 탄노이, 포칼과 윌슨이란 이름이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갖는 의미는 자동차광들에게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이상이다. 궁극의 소리를 원하는 이들의 욕망을 부추겨 몇억원씩 꺼내게 만드는 요물. 스피커가 누구에게나 만들 길을 열어놓은 것은 분명 역설적이다.


번뇌 잊게 하는 ‘스피커 정전’


국내에서도 하이엔드 스피커를 추구하는 시도가 있다. 일명스님이 주도하는 관음음향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관음 스피커는 궁극의 소리를 추구하는데,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제품도 있다. ‘관음’이란 낱말에 소리음자가 들어있는 것이 보여주듯 불교에서 소리는 화두선다. ‘번뇌를 잊게 하는 스피커’를 향한 정진, 그것도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의 일종이 아닐까.


물론 이김천씨의 스피커는 관음음향연구원의 스피커와는 방향이 다르다. 고물속에서 피는 연꽃을 좇는다고나 할까. 그러나 두 스피커가 추구하는 바는 같다. 국악을 소화할 수 있는 좋은 스피커. 통하는 게 하나 더 있다. 화가 이씨가 좋아하는 색은 파랑색. 파랑은 관음의 색이다. 둘다 관음이란 화두와 이어진다.


이씨는 왜 스피커를 만들게 된 것일까? 답은 “오죽하면 스피커를 직접 만들겠냐”였다. 오디오광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오디오하기’가 곧 ‘돈의 문제’란 점이다. 명품 시스템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리 없는 법. 이씨는 직접 자기 손으로 소리를 향해 다가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다가가보니 스피커가 곧 화폭이고 그림선생이었다. 이씨는 그래서 설계도대로 가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간다. 바로 미술적 시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재료를 조각조각 붙여 울퉁불퉁 기묘하게 꾸민 스피커들은 그런 미학을 담고 있다. “파랑은 난반사를 좋아해요. 반사면이 울퉁불퉁한 거지요. 그런데 공장서 만든 미끈한 스피커들은 각이 져서 그런 맛이 없어요.” 2년을 스피커에 매달린 결과 “이제 겨우 ‘감’을 잡은 듯하다”고 한다. “한 10년은 해봐야죠. 스피커 전시회도 열구요.”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숨어든 이씨. 만들고 싶은 스피커는 모양도, 소리도 자연을 닮은 스피커다. 불규칙한 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돼 절대를 추구하진 않는다. “현대 기계는 잘 그린 상업적 그림같아요. 사람의 틈을 존중하는 스피커가 아니라 틈을 허용않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절대주의, 절대음감이랄까? 이런게 피곤한 말이거든요. 음이란 게 현장을 떠나면 변하기 마련인데, 너무 재현에만 집착해요. 절대 추구가 허(虛)를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돈으로 오디오를 하지만 자신은 예술로 오디오를 한다는 자부심처럼 들렸다.


절대음감, 피곤한 말이거든요


“그러면 어떤 스피커라야 합니까?” 이씨는 “오디오는 일상용품”이라고 답했다. 우리 삶의 일상용품이 우리 자연 닮은 것, 그게 그의 미학이고 스피커란 이야기인데, “거창한 게 아니라 널널해지는 것”이라며 웃는다. “널널함에도 완성도가 있는 거에요. 덜떨어진 것도 경쟁력일지 몰라요.”


이씨가 진짜 만들어보고 싶은 스피커가 있다. 그 꿈은 아마 평생 이루기 힘들 듯하다. 집 전체가 스피커인 스피커이자 집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땅 속에 유닛을 묻고 집 전체가 공명통이 되는 스피커다. “재밋겠지요?” 미소 짓는 이씨의 얼굴 뒤로 보이는 미완성작 ‘3호’가 마치 제 주인을 따라웃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