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거리의 속살2-난간의 미학 2006/09/04

딸기21 2018. 6. 6. 10:32

거리에 놓인 구조물인 ‘거리 가구’(스트리트 퍼니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난간입니다.

난간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지표이자, 안전을 위한 보호장치입니다.

이런 기능 이외에도 도시의 주요한 난간에는 간혹 숨은 기능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답니다. 지구방위사령부...까지는 아니지만 군사적 기능을 갖춘 난간도 있지요.


잘 알려진 성산대교 난간입니다.


자료출처: 네이버


성산대교 그 난간을 자세히 보시면, 반달모양 아치 중간에 구멍이 뽕뽕뽕 뚫려 있습니다.


한 아치당 9개씩 구멍이 뚫렸는데, 이 구멍이 사실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달리는 차들이 바깥 구경하라고 뚫은 게 아니라, 유사시에 포격을 위한 구멍이란 것이지요. 한강을 타고 들어오는 적들을 막기 위한 포대인 셈입니다. 


이런 특수한 기능을 하는 난간을 빼면, 서울 시내 거리가구로 설치된 난간들은 대부분 안전용 보호장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워낙 거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그 기능 못잖게 거리의 미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먼 우리 서울 시내 거리 난간들은 어떤 모습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우리 공공미술과 디자인의 현재 모습을 대변하는 청계천을 먼저 가보시겠습니다.


청계천의 기본 난간입니다. 살이 세로로 나있는 단순한 디자인인데 대신 곡선미를 추가해 비교적 깔끔하고 산뜻합니다. 이 세로무늬 난간은 주로 청계천 앞쪽에 설치돼있고, 뒷족에는 가로무늬 난간을 놓았습니다. 아래 사진이 가로살 난간입니다.


청계천에 달린 난간은 이 두가지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간단해서 모던한 느낌을 줍니다. 유치하지 않고 지나치게 장식을 해서 촌스럽지도 않지만 어딘가 좀 심심한 게 사실입니다.

21세기 한국 공공디자인을 대표할만한 것으로 놓았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러면 청계천의 명물들인 스물두개 다리들의 난간은 어떨까요.


단조로운 청계천 기본 난간 대신 다양한 재질, 다양한 디자인의 난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품평은 보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먼저 광통교 난간입니다.


자료출처: 네이버


광통교는 복원한 다리여서 색이 바랜 옛 화강암 부분들과 새로 만들어 아직 새하얀 부분들이 섞여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두 부분 색깔이 비슷해질 듯합니다. 우리 건축 전통의 돌난간 디자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난간 기둥들의 모양이 정겹고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칩니다. 이렇게 난간을 받치는 작은 기둥을 서양에서는 ‘밸러스터’라고 합니다.


광통교의 들머리에는 새로 만든 석조 난간이 거리와 이어집니다. 거친 화강암에 부조로 형상을 새겼는데 역시 아직 너무 새것이라 색깔이 누렇지 않습니다. 조금더 더러워지면 제 느낌이 살아나겠지요.


광통교는 청계천의 두번째 다리입니다.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도 화강암 돌다리인데, 너무 새것이고 디자인도 광통교보다는 덜 전통적이어서 다리 모양새는 영 광통교만은 못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다리들은 돌다리들이 아니라 ‘첨단’ ‘모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들이어서 난간 역시 첨단 소재나 현대 디자인을 내세웁니다.


청계천의 스무번째 다리 무학교는 유리로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맛은 좋은데, 어째 좀 불안해보이긴 하지요. 게다가 문제는 이렇게 깨질 경우 영 안전도가 못미더워지는 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난간 살 디자인은 역시 전통 문양에서 따온 것들이 독특한 맛은 없어도 무난하고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청계천 영도교의 난간처럼요.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면을 네모꼴로 분할하는 무늬는 우리 창문이며 조각보 등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의 대표 이미지라고 하겠습니다. 어디에 써도 우아하고 질리지 않는 검증된 우수 디자인이 아닐까요.



마전교는 다리 모양도 그렇고 난간 모양도 모두 무난합니다. 워낙 다른 다리들이 튀는 디자인들이어서 차분하고 질리지 않아 좋습니다. 정겨운 느낌을 주는 벽돌건축물 특유의 느낌이겠지요. 


전반적으로 볼 때 청계천과 청계천 난간들은 제겐 그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을 대표할만한 공간이라면, 그에 걸맞게 거리가구들도 따라줘야 할텐데, 급하게 온갖 다리들을 설계하다보니 꼼꼼하게 검토하지 못한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시내에 설치된 일반적인 거리 난간들은 어떨까요?


대부분 스테인레스 제품들이어서 이른바 ‘메탈 컬러’가 지나치게 강합니다. 또 모양도 거의 엇비슷한데 모양보다는 기능 위주로 디자인을 잡았고, 때로는 디자인을 집어넣어도 좀 과장된 것들이 많은 듯해 아쉽습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스테인레스 난간입니다.



스테인레스는 녹이 안스는 대신 보는 재미를 주기에는 적합치 않은 소재입니다. 그리고 스테인레스가 주는 생활속 느낌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식당에 갔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스텐레스 컵을 주는 식당들, 어떻던가요? 좋은 재료이긴 한데 싸구려 느낌을 연상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게 스테인레스의 잘못은 아니겠지요.


서울 시내 난간들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이 한가지 있습니다. 윗 난간 옆에 있는 신문로 난간입니니다. 스테인레스라는 현대적 재료의 차가운 물성을 감소시키려는 듯 문양을 집어넣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역광으로 찍어 잘 안보여 죄송한데요, 난간 기둥 위 동그라미 부분 속에 태극문양을 넣었습니다. 이 태극문양은 다른 난간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대문 구청 부근의 난간입니다.

태극을 넣는게 무작정 우리 상징이니 강박적으로 집어넣는게 아니라 좀 예쁘게, 폼나게 집어넣어 자연스럽게 거리와 어우러지면 좋겠습니다.


참, 태극하니까 떠오르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잠깐 옆길로 빠져 보고 오겠습니다.

 


태극기선양회.....뭐 그런 단체 건물은 아니고,

경동시장 부근 한약재 파는 건물로 기억합니다.

태극기를 내 건 것이 아니라 건물 외벽 자체에  거대한 태극기를 그렸습니다.

건물주가 애국심이 무척 강하신 분인 모양입니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와 난간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 난간이란 것이 별것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서울 시내 난간들이 무척 예쁘다면 아마 우리 기분도 달라질 겁니다. 예쁘고 귀여운 난간, 기대어 사진찍고 싶어지는 난간들이 많아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외국에서 맘에 들었던 난간 하나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난간입니다. 거리에서 화단과 인도를 분리하는 펜스에 가까운데요, 사진으로는 제 모습이 잘 안보입니다만 자세히 보면 무척 공들인 공예품같은 난간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작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난간도 있습니다.


난간은 공간을 분리하는 도구입니다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종종 난간에 기대게 됩니다. 걷다가 힘들고 지칠 때 잠깐 기대기 좋은 난간, 그런 난간을 만든다는 것은 공급자보다는 소비자를 위한 마인드가 먼저 필요하겠죠.


별 대단한 모양새는 아니어도 그렇게 앉기 좋게 만든 난간을 파리 소르본 거리 이면도로에서 만났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아이디어가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