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세종대왕 동상도 낙하산에 재탕 삼탕을 한다? 2009/06/02

딸기21 2019. 9. 10. 15:52

너무나 친숙한 곳, 서울을 넘어 한국의 상징거리인 광화문 세종로입니다.
 


지금 이곳은 한창 공사중입니다. 조만간 광장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표공간이 광장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섭니다. 국가대표 광장에 들어설 국가대표 동상인데, 그럼 그 만드는 과정도 국가대표급일까요?
한번 들여다보시죠.
 
우선 광화문 광장 예상 조감도입니다.
 


저 광장 중간에 10월 쯤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섭니다. 정확한 장소는 이렇습니다.


저 가운데 사이트라고 한 부분이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설 곳입니다.
이제 동상 모습입니다.
 


서울시가 고른 디자인이 바로 저 안입니다. 5명의 작가를 선정해 안을 받아 그 중에서 당선작을 뽑은 것입니다.
 
세종대왕 동상의 크기는 아래 기단부까지 합쳐 9.5미터입니다. 기단 3미터에 동상 자체 키는 6.2미터라고 합니다.
서울시 공식설명 추가합니다. “눈높이를 낮춰 백성들과 소통하는 대왕의 이미지를 표현”.
 


뒷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저 뒷모습에도 공식명칭이 있습니다. ‘부국강병의 장’입니다.
저 줄기둥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부조로 새길 예정입니다.
 
동상 모습 일단 더 보시겠습니다.
 


동상 자체를 좀 더 들여다보죠.


저 동상 기단 옆쪽에는 한글 자모를 새긴 띠를 두릅니다. 훈민정음 당시 글자꼴로 창문을 만들어 동상 내부에 한글 모양 빛이 비치게 한답니다.


저 동상의 세부를 보실 차례입니다.


동상 앞에는 다른 조형물도 세웁니다.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를 설치하는데, 강화유리로 씌워 만든답니다. 그리고 저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을 상징하는 기구들은 샘물 속에 들어가는군요.

왜 샘물인지 궁금합니다. 원래 저런 곳에는 물을 채운 공간을 만드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이유는 있더군요. “샘이 깊은 물에서 흘러나온 물처럼, 세종대왕의 높은 덕이 흘러넘침을 상징하는 연못”을 조성하는 것이 서울시 공식 발표입니다.
 
그럼 동상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놓일지 아셧을테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일단 저 계획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구석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을 왜 만드나?

 

아니, 위대한 세종대왕을 동상으로 만든다는걸 문제 삼는 것이 제정신이야? 라고 화내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세종대왕 동상을 왜 만드냐는 겁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 동상이 ‘리바이벌’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덕수궁에 가보신 분들은 세종대왕 동상이 덕수궁 안에 있는 것이 기억나실 겁니다. 박정희 시절, 애국선열 동상을 만들기 위해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 등이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친숙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도 이 시기 만들어졌죠.


그때 세종대왕 동상도 상당한 돈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들어놓고는 마땅히 둘 곳이 없자 세종대왕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덕수궁에 방치하듯 대충 가져다 놓고는 손을 털었습니다. 
 


모양이 이번 것과 아주 똑같죠? 금빛이 좀 덜할 뿐, 거의 포즈가 그대로입니다.
 
그럼, 그때 잘 만든 그 동상을 쓰면 될텐데, 왜 또 만드냐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당연합니다. 그런 의견에 서울시가 거부 이유를 밝혔습니다. 덕수궁 동상은 너무 작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이 저 덕수궁 것 말고도 또 있는 겁니다. 서울 여의도공원에 이미 또 세종대왕을 만들어 모셨습니다. 옛 516 광장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세종대왕상을 만든 것입니다.
 


여의도 세종대왕이십니다. 저기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당연하죠. 잘 보이는데 있어야 알 수가 있겠죠. 

그럼 저 동상은 만든지 얼마나 되었느냐, 1999년에 만들었으니까 10년밖에 안되었습니다. 돈을 얼마나 들었을까요? 20억 정도가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러면 덕수궁 동상 대신 이 동상을 광화문에 가져다 놓으면 되겠네, 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은 그런 논의과정을 전혀 접하지 못했습니다만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그것도 안된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도를 보면 서울시가 구성한 위원회가 여의도 동상에 대해 “작품성도 떨어지고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럼 그 때 작품성이 떨어지는 동상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서울시였습니다.


그 때는 그럼 공론도 안거치고 대강 골라서 20억짜리 동상을 뚝딱 만들었나요?
그랬다간 큰일 났겠죠. 당시에도 위원회를 만들고 몇차례 회의하고 현상 공모도 하고 심사도 거쳐서 골랐습니다. 그럼 작품성도 떨어지는 것을 고른 당시 공무원과 위원회 분들 문제가 컸다는 이야긴가요? 서울시가 저렇게 대놓고 깎아내리니 말입니다.
 
이번 광화문에 새로 만드는 동상에는 얼마가 들까요? 서울시와 전문가들은 대략 27억, 줄잡아 30억 정도를 예상합니다. 기존에 동상이 있는 인물을 10년새 두개를 더 만들며 돈을 쓰게 된 겁니다.
 


세종대왕, 정말 잘 기리고는 있는걸까?
 

앞서 두 개 동상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세종대왕 동상을 세종대왕과 상관도 없는 곳에다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덕수궁에 놓았을 때 지적이 나왔는데, 그 지적도 아랑곳 않고 서울시는 다시 한번 세종과 상관없는 여의도에 추가합니다.
그런데 그 지적에 3번째 도전합니다.


세종로는 이름은 세종로이나 세종대왕과는 관련이 없는 곳입니다. 나중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 을지로가 을지문덕과 상관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인거죠.
 
세종로니 세종대왕을 하는 것, 넘어가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시가 세종대왕을 기념하는데 신경을 썼다라면 말도 안하겠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태어난 곳은 경복궁 서쪽 인왕산 기슭, ‘준수방’이란 곳입니다. 그 위치가 어딘지는 분명치 않았는데 효자동 청와대 가는 길 중간으로 고증된 바 있습니다.
 

개미실님 블로그 ( http://blog.naver.com/roaltlf?Redirect=Log&logNo=46422464)  


그 준수방 근처에 서울시가 취한 조처는 저 조그마한 돌 기념비 하나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아마 저 동네 분들도 저 기념비가 세종대왕을 기리는 것이며, 우리동네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나셨구나 라고 잘 아시지는 못할겁니다. 언제 알렸어야 말이죠. 기념비도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 가끔 근처를 지나가보면 마시고 난 음료수 병을 올려놓기 딱 좋은 관계로 그런 용도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세종대왕 대접을 제대로 했다고는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됐든 지금부터는 세종대왕을 잘 모시기 위해 광화문에 놓겠다고 주장한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세종대왕 동상, 시대정신은 뭔가?
 

서울시가 자기네들이 20억원을 쳐들여 만들어놓고 작품성이 안좋다며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을 흠잡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대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정신이 뭔지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만든 동상은 그래서 어떤 시대정신을 추구했는지 그것도 잘 알수가 없네요. 서울시 보도자료를 뒤져봐도 세종대왕에 대한 일반적 예찬론은 있어도 어던 정신을 지금에 맞게 해석해 구현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합니다. 제 보기엔 이번 만든다는 새 동상이나, 여의도에 있는 헌 동상이나 생긴게 매한가지입니다. 일단 옥좌에 앉아서 책을 편 포즈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새 동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보이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거 말고는 다른 것을 못찾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시대정신을 추구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저 동상의 모습과 컨셉입니다. 저 동상은 전형적인 19세기~20세기 초반 권위주의 시대, 민족지상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동상 흐름을 거꾸로 되돌아가 따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동상이 주로 만들어졌던 시기가 18~20세기 초였습니다. 근대 민족국가들,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나라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동상으로 국민들을 국가에 복종하게 만드는 시각적 효과물로 동상들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 동상들 대부분이 말을 탄 개선장군, 또는 권좡 앉은 유명한 임금님들이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중요한 공공조형물들은 어떨까요?


왕조시대의 인물에서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 대중들 그 자신들, ‘인간’이란 보편적 존재를 주로 다룹니다. 사람 모양 동상 하나가 랜드마크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영국의 게이츠헤드 등이 대표적입니다.
 
역사 인물을 동상으로 만들어도 그 컨셉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거리고 내려오고, 권좌에서 일어나 같이 호흡하며 길이나 광장에서 대중들과 어울리는 동상들이 요즘 트렌드입니다.
 
저 세종대왕 동상은 정 반대입니다. 다른 동상들은 시민들에게 다가가는데, 광화문에 들어선다는 새 동상은 다시 권좌에 올라앉아 백성들을 굽어봅니다.


서울시 보도자료를 다시 봅니다. “눈높이를 낮추어 백성들과 소통하는 대왕의 이미지를 표헌”이라고 써있습니다. 정말일까요? 앞서 여의도 동상, 덕수궁 동상과 똑같은데, 무엇이 시대정신이고 무엇이 소통인지 도저히 해석이 안됩니다.
 

도대체 시민들과 소통을 하려는 의지는 있는가?

 

정말 중요한겁니다. 사실은 이게 이야기하려는 주제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미술품, 공공조형물을 만들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조형물 자체보다도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충돌하고 토론되고 논의되면서 모두가 그 사안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그 전체 프로세스입니다.
 
그럼 저 세종대왕 동상은 그런 과정을 거쳤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어느날 갑자기 세종대왕 동상 당선작 발표되었다는 이번 소식으로 아셨을 겁니다. 서울시가 저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최종 확정하는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2년 정도도 안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세종로에 광장만드는데 동상도 놓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세종대왕으로 정해졌다고 하고, 그 두달 쯤 뒤 동상 만들 후보작가가 선정됐가도 하고, 또 한두달 지나 당선작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 몇달 뒤엔 정말 동상이 들어선다는 겁니다.
 
제 눈에 저 동상이 아무리 맘에 안들어도 시민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저는 저 동상에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 동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을테니까요. 그러나 저 동상엔 그런 과정 전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서울시는 자기네들이, 자문위원회도 두고, 전문가들도 부르고, 시민에게 알리는 홍보와 공청 기간도 두었고, 전문가 심사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시민들과는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일이었습니다. 자기네들만 아는, 자기네 의견과 비슷한, 자기네들이 선호하는 네트워크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면 그건 공론이 아닙니다.

저 혼자만 저 동상이 이상하게 보이나 싶어 전문가들께 물었습니다. 좌도 우도 아닌 분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첫번째 전문가. “이거 바로 다음 정권서 치우겠네요. 도대체 누가 했대요?”
두번째 전문가. “요즘 세상에 이런 동상을 고르다니 외국 사례는 참고나 했나 싶어요.”
세번째 전문가. “왕조시대를 재현하려는 듯하는 점이 이상하네요. 만약 왕조시대를 제대로 재현할 것이면 육조 거리로 하는게 맞겠죠.”
네번째 전문가. “세종대왕 동상도 그 모양새가 황당한데, 저 광장 디자인은 정말 저게 맞습니까? 저건 시공업체 도안연습 수준인데요?”


그리고 문화재 전문가.

 

“아니, 세종대왕이고 나발이고 지금 광화문 복원하면서 저 앞에 월대(궁궐 앞 돌 기단부)를 만들기로 했는데 광장 도안하고는 전혀 안맞는군요. 저 광장 디자인이 문화재위원회 허가는 받았는지 의심스럽네요. 광화문과 경복궁 복원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놓고 광장도 잘 만들어야 할텐데 문화재위원회와 전혀 조율을 안하니 아마 앞으로 계속 고치는 공사가 이어길 것 같습니다.”
 
문화가 정치의 도구가 되어버리다보니 문화로 새마을 운동을 해서 대권을 노리시는 시장님들이 이어집니다. 저 동상에 대해 과연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궁금하고 걱정도 됩니다. 지금 제 생각이 모두 기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한겨레21>에 썼던 칼럼을 덧붙입니다. 참고하시길.
 


동상도 낙하산 시대 [2009.05.22 제761호]
[시험에 안 나오는 문화] 지난해 말 계획 나오고는 10월에 세종대왕 동상 제막 예정…
광장 의미와 시민 바람 다 생략하고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네

오는 10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선다. 서울시는 4월16일 세종대왕 동상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쪽에 돌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옥좌에 앉은 세종대왕 동상을 올린다.
이 동상은 서울시가 새로 조성하는 광화문 광장 모습을 발표한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 광화문 광장에 새 동상을 만들면 누가 좋겠냐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더니 곧바로 올 1월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다고 발표했다. 그 다음달 동상을 만들 후보 작가들이 지정됐고, 두 달 뒤 당선작이 발표됐다. 앞으로 다섯 달 뒤에는 동상이 제막된다.

600년 도시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문화의 상징 공간이 광화문이란 걸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국가대표 공간에 들어설 국가대표 동상이 이리 쉽게 결정되고 이리 빨리 만들어진다. 광화문 광장에는 어떤 상징이 필요한가? 상징으로 동상은 적합한가? 동상을 세운다면 누구 동상일까? 그리고 어떤 모양이 좋을까? 평생 동상을 볼 시민들에겐 얼마나 충분히 알리고 의견을 들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이 빠져버렸다. 그 결과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인 동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들어선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뉴욕시는 지난해 10월 공연의 메카 브로드웨이 부근 타임스스퀘어에 공연 티켓 할인 매표소인 TKTS 부스를 새로 지었다. 불과 높이 5m짜리 이 작은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뉴욕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건물 뒷면을 공연장의 레드카펫 모양의 붉은 계단으로 꾸민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빌딩숲 속 이 작은 쉼터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은 배우처럼 레드카펫을 밟는 기분을 내며 걸터앉아 뉴욕의 정취를 즐긴다.

이 매표소 하나 짓는 데 뉴욕시가 들인 시간이 8년이다. 새로운 가치를 담는 매표소를 만들기 위해 전세계 공모를 했다. 수백여 응모작에서 한국계 오스트레일리아 건축가 존 최의 작품을 골랐고, 건물 전체를 유리로 짓는 아이디어를 공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차근차근 일을 풀어갔다. 덕분에 매표소도 건축 명품이 됐다.

세종대왕 동상은 어떤가? 서울시장은 입만 열면 문화와 디자인으로 도시 경쟁력을 높인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국가적 문화 아이콘이라는 이 동상을 만드는 데 서울시가 들이는 노력과 정성은 뉴욕의 매표소 공사보다도 덜 치열해 보인다.

더 웃기고 그래서 더 슬픈 것은 세종대왕 동상의 모양을 저런 것으로 고르는 관계자들의 취향과 수준이다. 동상은 서양에서 민족국가들이 탄생하던 18~19세기 보편화됐다. 신생 민족국가들은 국가라는 새 공동체의 통합과 국민의 복종을 이끌어내려고 국가적 상징으로 황제나 장군들의 동상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높은 좌대에 앉아 백성을 내려다보며 군림하는 동상들이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에서 시민사회 시대로 바뀐 요즘에는 동상들도 바뀌고 있다. 높은 좌대에 앉았던 동상들이 광장 아래로 내려와 시민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며 소통을 지향한다. 동상 주인공도 위대한 초인에서 시민 대중들 자신으로 바뀌는 추세다.

세종대왕 동상은 완전히 거꾸로다. 동상들이 시민 곁으로 내려오는 시대에 다시 높은 권좌 위로 올라가 앉는다. 백성들과의 소통을 중시한 세종대왕을 기린다는 서울시의 설명과도 정반대된다.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퇴행을 퇴행으로 보지 않는 서울시다. 서울시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증거를 댈 것이다. 동상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여론조사도 하고 동상 후보작을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과정을 다 거쳤다고 할 거다. 거기에는 분명 그들이 제도라고 부르는 것들이 다 들어 있다. 그런데도 결과는 퇴행 그 자체다. 왜 그런가? 동상 건립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식이 퇴행했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알리고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공공 공간인 광화문 광장에 동상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그 동상이 시민들의 문화 면역력까지 퇴행시킬 것은 뻔하다. 그런데 나서서 비판하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비판할 틈조차 없었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