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노대통령은 우리를 공공예술가로 만들었다 2009/05/28

딸기21 2019. 8. 7. 16:07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아놓고 싶었습니다. 시민들의 갈망, 동시대 사람을 떠나보내며 울어줄 줄 아는 인정... 그런 것들이 모여 사람을 부르는 힘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점심을 먹고, 덕수궁 분향소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본 것은 예술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거대한 공공예술이 덕수궁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시청역 출구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출입구처럼 변신해 있었습니다. 계단벽은 시민들이 붙인 종이로 빼곡했습니다. 시민들이 붙여 만든 모자이크 벽화 같습니다.
 


사람들은 나눠주는 유인물에 자신들만의 시를 썼습니다. 직접 그림을 그린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공공과 소통하는 그들만의 미디어요, 작품입니다.  
 

  
덕수궁 돌담길 쪽에선 진짜 합동예술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습니다. 저 큰 화폭을 채우려면 수천번 붓질을 해야 할 겁니다. 붓질이 더해지고 더해지고 더해져서 환한 미소가 드러납니다. 하얀 학이 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곳의 진짜 주인공 예술은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온 작지만 정성스런 소품들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합동예술이었습니다.
 


스스로 고른 자신만의 언어, 자신만의 글씨, 자신만의 기획으로 만들어낸 저것들이먈로 이 곳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이 모여있는 덕수궁은 거대한 갤러리요, 거대한 퍼포먼스 아트센터입니다. 정성껏 붓글씨로 써온 저 글씨의 주인공, 당신이 거리의 서예가입니다.
 


이번 사건을 다룬 <한겨레21> 잡지 기사를 오리고, 직접 쓴 글씨를 붙이고, 직접 고른 사진을 합쳐 그러모은 아주머니, 당신의 저 작은 종이판이 우리 시대의 콜라주입니다. 
 


정성껏 글씨를 프린트하고, 사진을 붙이고, 그 이미지를 다시 정성껏 가로등에 단 당신, 당신이 시민 설치미술가입니다.
 


분향소 앞 바닥에 붙인 청테이프도 순간 공공미술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낸 추모의 열기가 흐르는 방향을 그린 우리 시대의 상형문자같았습니다. 저 청테이프를 붙인 분들, 그 줄을 묵묵히 따르는 분들, 그들이 곧 공공 디자이너입니다.
 


분향소 조문을 기다리는 줄 옆에 희망나무가 피었습니다. 종이학을 접은 그들이 시민 조각가들입니다. 그러나 저 나무는 그 자체만이 예술이 아닙니다. 그 옆에 서서 조문하는 당신들이 옆에 있어 예술작품이 됩니다. 
 


새하얀 화폭에 첫 획을 그리는 꼬마 아가씨, 참여예술에 동참한 어린 예술가입니다.
 


공중전화 박스에 조문을 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탄생시킨 당신, 새로운 소통을 지향한 미디어 아티스트가 따로 없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볼 수 있는 저 하얀 돌의자는 실제 디자이너가 만든 거리 벤치 작품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그 뒤에 정성껏 시민 여러분이 세운 국화가 작품입니다. 기존 예술과 참여하는 새로운 예술이 만나 한단계 승화한 이벤트 예술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시대의 또다른 시를 만났습니다. 
오래전 고교시절 고전문학 시간에 배웠던 고대가요 <구지가>가 떠올랐습니다.
 


그 옛날 가락국의 사람들은 거북이에게 머리를 내놓아라, 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시민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청광장 내놓아라, 내놓아라, 내놓아라...
 
살다보면 직접 가보아야 할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뿜어낸 거대한 신념과 애정, 분노와 의지의 주파수들이 심장을 뛰게 만드는 곳입니다. 
덕수궁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뜻밖의 예술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가보시길 감히 권합니다.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을 보실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