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도쿄 길바닥에 시선이 꽂혔던 까닭 2009/05/24

딸기21 2019. 7. 2. 18:08

길바닥에도 재미는 있을 수 있다
 

2007년이었습니다. 모처럼 도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처럼 크고 번화하고 복잡한 도쿄를 돌아다니는 동안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와 비슷한 것보다는 우리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두 도시가 워낙 비슷한 점이 많아서였겠지요. 

개인적으로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터여서 건물과 거리 풍경을 더 눈여겨 보면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신주쿠에서 갑자기 바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화점 앞 보도 바닥에 동그랗게 달려있는 맨홀 뚜껑이었습니다.
 



새삼 맨홀이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든 맨홀이 바로 이녀석이었습니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과 도쿄도의 상징인 은행잎으로 디자인한 맨홀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건물보다도 오히려 이런 작은 곳에 숨어있는 일본스러움을 발견할 때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실감하는 듯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 맨홀 주변의 다른 맨홀들도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벚꽃 은행잎 디자인 맨홀은 저 모양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맨홀도 저 디자인의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대신 크기가 좀 더 작고, 그래서 디자인도 약간 달랐습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녀석이 있었습니다.
 



맨홀 뚜껑에도 디자인 통일성을 추구하는 ‘패밀리 디자인’을 도입한 모습이 재미있어 이후 출장 기간 동안 길거리로 자주 눈이 향했습니다. 벚꽃 맨홀은 신주쿠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긴자에서 본 것은 또 다르면서도 비슷했습니다.
 


 
역시 긴자에서 본 다른 버전.
 


 
맨홀이라고 하면 늘 똑같은 것, 눈길 둘 필요없는 칙칙한 시설물의 일부로만 여겼던 터여서 저 벚꽃 맨홀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거리가구’(거리가구란?)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랬겠지요.
 
그 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일본에는 다양한 맨홀이 있었습니다. 하도 많아 다 소개하기 어려운데 차분하고 은근한 것으로 하나 더 소개합니다. 도쿄의 노량진 수산시장이랄 수 있는 쓰키지 시장 바로 앞에 있는 전통 공원 하마리큐온시테이엔에서 본 맨홀입니다.
 



저 벚꽃 시리즈 맨홀들을 보고 서울로 돌아온 뒤 썼던 글이 바로 ‘맨홀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였습니다.
 
지난해, 촛불시위가 한창이었을 때였는데 문득 뉴스에서 맨홀이 나오는 기사를 접하고, 일본에서 봤던 맨홀을 떠올리며 썼던 글이었습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디자인 취향이 다르듯 맨홀도 다 다르며, 그런 맨홀도 훌륭한 문화가 아니겠느냐, 뭐 그런 글이었습니다.

당시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는데, 새삼 놀라고 말았습니다. 일본을 여행한 관광객들 중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일본의 인상적인 맨홀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한 서양 관광객은 ‘일본, 그곳에선 맨홀도 예술이 된다’고 적고 자기가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더군요. 
 
사실 일본의 맨홀이 좀 특이하고 색다르긴 하지만 예술이라고 평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맨홀 하나에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저 역시 마찬가지지만-이 감동하는 것을 보고 저는 다시 한번 놀랐던 것입니다. 조금 더 신경써 만든 맨홀 하나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대사 역할까지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맨홀에 관심을 갖게 만든 이 벚꽃 맨홀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을 뒤늦게 발견(?)해 그래서 2년 뒤인 이제서야 짧게 포스팅해봅니다. (실은 사진을 정리하던 김에 끄적거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겠습니다.)
 
어찌됐든 그 출장 뒤로 저는 우리나라에는 어떤 예쁜 맨홀이 나오지 않나 길바닥을 자주 쳐다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맨홀들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는 것을 알 수 있게되었습니다. 컬러 맨홀들이 제법 등장하고 있고, 독특한 이미지를 넣으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잠실에서 본 맨홀을 소개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보시는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맨홀은 그 기능만큼이나 모양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밟고 다니는 쇳덩어리에 디자인과 문화가 연결될 때 맨홀은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이자, 시민들에게 재미를 주는 벗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바라보게 되는 맨홀, 귀여워서 웃음짓게 되는 맨홀들이 한국의 길바닥을 장식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