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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건축 10회] 뉴욕 새 명물 계기로 본 건축계 스타 계단 이야기 2009/05/07

딸기21 2019. 5. 27. 17:08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한 도시 안에 여러가지 시간, 여러가지 장면이 있는 도시가 좋은 듯합니다. 옛 시간의 켜가 도시 안에 여전히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볼거리가 자꾸 등장하는 도시. 한 도시 안에서 여러 시간, 여러 문화, 여러 표정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도시말입니다.
 
뉴욕은 어떻습니까? 도시 역사 자체는 젊어도 새로운 매력을 계속 업그레이드 해 사람을 불러 모으는 도시 같습니다. 세계 건축의 흐름을 선도하는 이 뉴욕에 새로 들어선 건축계의 화제 건물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건물의 높이는 불과 5미터. 그러니까 2층 슈퍼마켓 건물만한 아주 작은 건물입니다. 건축가도 초짜 신인들, 미국 사람도 아닌 호주의 젊은 건축가, 그것도 한국 출신의 건축가입니다. 그런데도 뉴욕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인 타임스퀘어 더피 광장에 들어섰고, 바로 세계적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너무나 기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건물입니다.   


무엇 같으십니까?  
이렇게만 봐서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고속터미널 매표 창구 같지는 않은가요?  

비슷합니다. 뉴욕의 TKTS 부스, 그러니까 공연티켓 판매소입니다. 당일 공연 뮤지컬 티켓을 절반값에 파는 종합 매표소랍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로에 티켓판매소겠죠. 중요한 국가적 건물도 아닌 매표소가 세계적 유명건물이 된 겁니다. 왜? 
  
그럼 조금 떨어져서 찍은 사진을 보겠습니다. 

 



정말 아주 간단한 구조입니다. 티켓파는 창구 12개가 줄지어 있는 단순한 모양입니다. 시원시원한 유리 구조가 좋아보입니다만 뭐 요즘 저런 건물이 한둘인가요. 
그런데 왜 유명해졌느냐, 그건 이 건물이 앞에서 보면 이렇지만 그 뒤를 보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렇게. 
 



건물의 진짜 모습은 계단이었던 것입니다. 붉디 붉은 계단.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더욱 예뼈집니다. 모양은 계단입니다만 실제로는 벤치입니다.누구나 오가다가 앉아서 쉬고 가는 도시의 쉼터입니다.



이 티켓판매소는 그냥 재미있자고 계단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뉴욕은 공연 문화의 메카입니다. 저 곳은 브로드웨이가 바라 보이는 곳으로 싼 값에 공연을 즐기려는 전세계 공연팬들의 집결지입니다. 그 곳에서 누구나 배우처럼 레드카펫을 밟아볼 수 있게 건물을 레드 카펫으로 만들어 펼쳐 놓은 것입니다. 빌딩 숲 속 작은 쉼터,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쉼터인거죠.
 


 
기발한 아이디어 탓에 이 건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힘들게 탄생한 건물입니다.

티켓판매부스야 어느 나라든 정식 건물이라기보다는 간이 건물처럼 간단하게 뚝딱 짓기 마련입니다. 저 건물 이전의 뉴욕 TKTS도 그랬답니다. 9년 전인 지난 2000년, 뉴욕시는 새로 티켓부스를 지어보자고 아이디어를 공모합니다. 전세계 31개국 631명이 도전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채택된 1등 안이 호주의 존 최 & 타이 로피하의 저 건물 아이디어였습니다. 존 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출생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10월16일 개장일에 참석한 존 최의 사진입니다
 
저 건물은 구조는 간단한데 짓는데는 8년이나 걸렸습니다. 중간에 공사비가 올랐고(대부분 공공 발주 건물들이 짓다보면 건축비가 껑충 뜁니다. 몇배씩 늘어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뉴욕시의 주머니 사정도 안좋아졌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좀 너무 오래 걸렸네요.
 



또한 이 건물은 간단해보이는 그 구조 때문에 오히려 짓기가 훨씬 어려웠다고 합니다. 저 붉은 계단 벤치는 500명 정도까지 올라가는데, 그 아래 구조는 아주 가볍고 투명한 유리입니다. 가벼운 유리 벽으로 그 무게를 지탱하려면 최신 공법이 필요했다는 거죠. 저 밤에 불이 들어오는 루비같은 계단은 발광다이오드(LED)라고 합니다.  그리고 티켓 판매 창구의 냉난방은 땅속 100미터 넘게 파이프를 박아 끌어올린 지열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국내에 소개한 건축잡지 <플러스>의 기사를 보면 시공 담당자의 말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유리로 건축물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운반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겁니다. 전체 건물 부분을 미리 다 만들어 이리로 옮겨와서 조립했다고 합니다. 워낙 붐비는 뉴욕 한가운데여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답니다.  
어쨋든 건물은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정성들여 등장했고, 뉴욕의 명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전망좋은 자리는 무료”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가장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에 들어서는 건물답게 훌륭한 아이디어로 뉴욕이란 도시에 새로운 매력포인트를 더했습니다. 건물은 그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좋은 아이디어 사람들을 위한 아이디어는 모두가 공감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건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건축의 매력포인트, 감상포인트-계단

저 매력적인 티켓판매소를-물론 가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면서-새삼 건축에서 ‘계단’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바로 지금이라도 드레스를 차려입은 우아한 서양 여인네가 난간을 어루만지며 내려올 듯한 계단입니다. 서양 건축물의 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나요?
실제 계단은 무척이나 낭만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도시 속 계단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는 공간이 됩니다. 이 계단처럼요.
 



정말 아름다운 계단입니다. 당연히 사랑 받고 유명해지겠지요. 비슷한 계단으로 하나 더.
 


정말 까마득하군요. 너무 높아서 오히려 ‘그래, 내가 한번 걸어 올라가 주마’하고 도전하고 싶게 만들 듯 합니다.  
 
이런 관광 명소급 계단으로는 이탈리아의 ‘스페인 계단’이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듯 합니다. 
 


계단은 그 자체로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선 건물 내부에서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만약 건축가가 쓰는 사람을 생각않고 불편하게 계단을 만들면 그 건물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똥개훈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미학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계단 하나 잘 만들면 건물의 운치와 멋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단은 건축 디자인에서 정말 쉽지 않은 부분이자 디자인의 측면의 승부처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건축사의 주요 작품 중에는 건물 자체보다도 더욱 유명한 계단이 많습니다. 건축가들의 스타일과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 계단인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도서관의 계단입니다. 계단계의 슈퍼스타입니다. 좀 멋을 낸, 그러나 눈이 휘둥그레지게 화려하지는 않은 분위기있는 계단처럼 보이는데 그 구석구석 디자인이 재미있고 동그랗게 처리한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비례 등이 절찬을 받아 건축사에 올랐습니다. 특히 가운데 동그란 계단 가장 자리에 물결 말리듯 말아놓은 부분이 참 귀여운데, 사진으로 잘 안보이는 게 안타깝네요.
 
미켈란젤로는 워낙이나 건축가로 유명했기에 이 계단말고 다른 유명한 계단도 여럿 남겼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캄피돌리오 광장도 계단이 유명하지요.
 


서양건축사에 남은 다른 유명한 스타 계단으로는 이 계단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별 대단치는 않아보인다구요? 다른 계단과 그저 조금 달라보이는 것일 수 있어도 그 조그만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저 계단은 문화재급 계단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그 사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계단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이런 건축사적 의미의 계단들보다도 모양이 독특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계단들이 유명하겠지요. 대표적인 계단 건축의 스테디셀러이자 인기 스타가 돌돌 말린 나선형 계단들입니다. 


나선형 계단 계의 간판 스타, 로마 바티칸박물관 계단입니다. 

나선형 계단의 현대 버전 최고 스타는 역시 구겐하임미술관이죠. 돌돌 돌아가는 계단따라 작품을 감상하게 되는데, 그 구조상 그림이 삐뚤빼뚤 엇나가게 걸리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바로 그 계단이 건물의 컨셉 자체인 유명 계단 건축입니다.
 



저 구겐하임 미술관이 보여주듯 실제 계단은 건축에서 중요한 디자인 핵심요소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해외 유명 건축물 중에서 계단과 관련된 것으로는 건물 전체가 계단인 이 건물이 있습니다. 현대건축 걸작으로 자주 꼽히는 건물인데, 좀 극단적인 듯해 개인적으로는 별로 당기지는 않는 건물입니다만 계단 이야기니 꼭 소개해야 할 듯 하네요.
 



그러면 국내의 유명 계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건물 내부가 하나로 뚫려 있고 그 사이에 자유롭게 계단과 길이 놓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중진 건축가 유걸씨의 경희대 건축전문대학원입니다. 
 

▲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겐 이런 기묘한 계단보다는 아무래도 나선형 계단이 인상적이겠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많은 분들이 꼭 사진을 찍어가는 유명 계단인 리움미술관 계단입니다. 마리오 보타의 작품입니다.

이 사진은 블로그  futurelsy.egloos.com  에서 퍼왔습니다. 아주 잘 찍은 사진입니다. 


이런 나선계단의 또다른 변형으로 이 건물도 유명합니다.
 


 
외국 유명 건축가그룹 MVRDV의 작품인 이 건물은 건물 전체가 계단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각도에서 본 모습이 인기 사진 포인트입니다.
 


미노구노님의 사진( http://blog.naver.com/minoguno )입니다. 저 각도로 보면 이 사진만 봐서는 무엇을 찍은 것인지 맞추기조차 어려울 듯하네요. 무척 아릅답습니다.
 
이처럼 계단이 유명하거나 계단이 중요 컨셉이 된 유명 건물들은 국내에도 여럿 있습니다. 먼저 현대건축의 명작으로 늘 꼽히는 고 김수근의 서울 원서동 공간사옥 안의 계단입니다.
 


삼각형으로 말리는 다른 건물들에선 보기 어려운 독특한 계단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근사하지만 실제 다니기에는 무척 좁고 불편한 계단입니다. 한 유명 건축가는 저 계단을 보면 수도 없이 커피잔을 날라야했을 여직원의 고통을 떠올리게 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건물 전체가 대지의 구릉 속으로 들어가고, 그 사이에 거대한 계단이 자리잡은 새로운 컨셉의 건물 이화여대 새 캠퍼스도 계단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물입니다.
 


계단 이야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될 듯한 계단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아마 여기나온 모든 계단들 보다도 유명한 계단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영화 전공자들에게는 말이죠. 그 유명한 영화의 고전 <전함 포툠킨>을 상징하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계단입니다.


저 계단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생과 사가 엇갈리는 그 순간을 연출한 에이젠스타인의 감각과 미학은 수많은 후배 영화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예들은 이 계단 장면을 오마주하곤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언터쳐블스>의 계단 총격신입니다. 쏟아지는 총격전 속 쓰러지는 총잡이들, 그 총알 사이로 떨어지는 유모차, 아기가 들어있는 유모차를 놓치고 경악하는 엄마, 총을 쏘다가 그 모습을 보고 아기를 위해 몸을 던지는 남자... 미국 영화이니 물론 계단은 시카고 유니온역 계단이 등장합니다. 나중 <총알탄 사나이>가 다시 이 장면을 또 패러디하기도 했죠. 그 오리지널이 저 웅장한 오데사의 계단이었습니다.
 
계단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이 포스트의 요지는 건축에서 계단은 예상 이상으로 중요하며, 멋지고 훌륭한 계단들이 있다는 것이지만, 세상 사는데 뭐 그런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계단이란 한 장소에서 또다른 장소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생활속 묘한 공간입니다. 그 속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추억이 깃들이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계단은 사람들에겐 소중한 쉼터이자 추억의 공간, 상념의 공간으로 마음속에 자리잡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계단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내 마음의 계단’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