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저 거대한 댐에 담겨있는 또다른 것들 2009/04/15

딸기21 2018. 11. 27. 14:40

소양강댐에서 읽어보는 현대사 코드들

 

한국의 대표 댐 소양강댐은 다양한 기념 조형물들이 한꺼번에 모여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기념탑, 박정희 친필 기념비, 육영수 방생 기념비... 뜬금없이 88올림픽 개최 기념비에 최근 지은 물문화관까지.

경제개발기의 꿈이었던 초대형 다목적댐으로 그 존재 의미가 워낙 컸던 탓에 기념 조형물들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후 수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계속 개발되면서 다양한 조형물과 기념용 시설들이 하나둘씩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런 다양한 조형물들은 각각 그 시대를 담으며 이 공간에 쌓인 시간의 층위와 조형문화의 천을 뜻하지 않게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 막국수를 열심히 먹자는 취지로 떠난 춘천 나들이길에 모처럼 소양강댐을 다녀왔다. 부근에 있는 유명 막국수집 샘밭막국수에서 막국수를 먹은 뒤 산책도 할 겸 벚꽃길이 절정에 이른 소양강댐으로 향했다.   




저 좋은 벚꽃길은 아쉽게도 금방 끝나버린다. 한 5분이나 갔을까, 주자창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소양강댐이다.

개인적으로는 벌써 네다섯번은 이곳에 온 것 같다. 그래도 지난 번 방문이 벌써 10년도 넘은 듯하다. 댐에 도착하니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 있었다. 바로 이 것.




인공폭포다. 뭐 댐이 방류하는 그 시원한 장관을 늘 볼 수는 없으니 저런 인공폭포 하나 있으면 시원해보이는 느낌은 있다. 허나 뭔가 새로운 것을 항상 갖다 붙여 꾸며야 한다는 지자체의 강박도 보인다. 인공폭포란 아이템도 그렇다. 한국에선 어디가나 분수요 인공폭포다.


저 인공폭포는 자세히 보면 폭포 물줄기 위쪽에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모양 조형물들을 달아놨다. 폭포는 사실적으로 꾸며놓고 물고기 모양은 단순해 좀 웃겨 보인다. 작정하고 코믹하게 하거나 아예 물고기도 사실적으로 했다면 어떨까, 잠시 상상해본다. 


그리고 댐을 내려다 보는 이 공간의 지배자, 우뚝 솟은 기념조형물의 지존 소양강댐 준공 기념탑이 있다.




저 기념탑은 1973년 소양강댐 완공과 함께 세웠다. 70년대 기념조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탑이다. 석판을 붙인 탑 몸체에 철제 조상을 붙이는 고전적 방식이다. 


저 탑은 만든 지 벌써 36년이나 됐다. 박정희 시대가 이미 그렇게 옛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하도 훼손이 많이 되는 바람에 1996년 거의 전면 보수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보다 보수비가 많이 들었던 것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구석이라도 있지만, 이런 기념탑 하나도 잘 못만드는 날림 건설 관행이란 어이가 없다.


좌우지간 저 전형적인 70년대 기념탑은 그 모양이 80년대 기념탑의 대표격인 천안 독립기념관의 상징 ‘겨레의 탑’을 떠올리게 한다. 70년대 탑과 한 번 비교해보자.




겨레의 탑은 한국의 주요 탑들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높이가 51미터나 된다. 파리 개선문보다도 2미터가 더 높다. 자세히 보면 저 두 탑 사이 공간 너머로 뒷산 꼭대기가 절묘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일단 겨레의 탑은 저 소양강댐 기념탑과는 디자인과 만듦새 면에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발전한 듯 하다. 10여년이란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저 탑이 놓인 독립기념관 겨레 광장이 작정하고 기념조형물로 승부하려 한 곳이어서 그 상징인 겨레의 탑에 더욱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인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 여부를 떠나 두 탑은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 우선 외곽선 모양이 그러하고, 탑신 두개가 합장하는 듯한 모습이 빼닮았다. 기념탑이란 그 성격상 뾰족한 기둥이 본질이어서 단조롭기 쉬우나 우리나라 기념탑들은 대부분 너무 비슷비슷한 점들이 상당히 불만스럽다. 기념탑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듯 흡사하다. 탑 디자인을 고르는 주체들의 미의식과 문화의식의 한계 탓이다. 


소양강댐 탑보다 겨레의 탑이 나아졌듯 이후 한국의 기념탑들은 발전하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깝게도 별로 안그렇다. 비슷한 특색없는 탑들이 계속 나왔다. 퇴보한 듯한 탑도 많다. 




이 탑을 보자. 광주 망월동 묘역 5.18민주항쟁추모탑이다. 그 의미나 규모 면에서 겨레의 탑 못지 않고 소양강댐 탑보다는 훨씬 중대 중요한 탑이라 하겠다. 높이도 40미터나 된다. 97년 완공했으니 90년대 기념탑 중에서 가장 중요한 탑 중 하나다.


그러나, 모양새는 저 모양이다. 


뭐 좋구만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아무런 감동도 못느끼겠다. 직접 가서 보면 비례나 공간 배치가 코믹할 정도다. 저걸 고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저 탑이 시대적 상징이 될 만하다고 보는가? 광주를 대표할 이미지로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광주의 저 탑은 시대가 지난다고 기념조형물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는 환상임을 잘 보여준다. 


관이 고르는 조형적인 것들은 늘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 독립기념관의 ‘골때리는’ 캐릭터가 그러하며,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캐릭터 해치는 참 어이없었다. 각종 기념 조형물들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들을 비롯한 관료들은 자신들이 고른 유치찬란한 기념조형물과 캐릭터들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다시 소양강댐 주변을 돌아보자.




기념탑 뒤로는 역시 전형적인 70년대식 기념비가 관람객을 맞는다. 디자인이나 글씨를 써 붙인 스타일이 그 시대의 흐름을 잘 담고 있다.


다른 중요한 국가 시설물들 보다도 소양강댐은 한국민들에게 중요한 경제개발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상징(착공을 그 때 했다)으로 당시 교육과정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외우다시피 해야 하는 댐이었다. 그 탓에 사력댐, 중력댐, 다목적댐 등의 용어를 초등학생들도 일찌감치 접했던 시절이었다.


실제 저 댐을 지을 당시 소양강댐의 규모는 상당했다. 이집트의 애스원 댐이나 중국의 싼샤 같은 초거대 댐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최고 최대의 댐은 늘 소양강이었다. 그 사업을 주도한 박정희가 얼마나 뿌듯해 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 기념비는 박정희가 갔던 곳에는 어김없이 만들었던 개발독재시기의 상징이자 증거물들 중 하나겠지만 다른 곳들 기념비보다 박정희는 훨씬 더 뿌듯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저 기념비는 지금 또 다른 방식으로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뭐 저리도 삼엄하게 스테인레스 난간을 만들어 사방을 둘렀냐는 것이다. 실로 ‘깨는’ 울타리다.


저 기념비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또 다른 기념비가 나온다. 




역시 70년대를 고스란히 증언하는 듯한 기념비다. 앞서 박정희 친필 기념비처럼 촌스럽게 사방에 울타리를 쳐놨다.


저 기념비를 지금에 읽는 것은 참 재미있는 생활문화사적 체험이다. 일단 영부인을 내세워 국민 계몽적인 온갖 사업을 시도하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저 당시 주요한 사회적 표어로는 ‘둘만 낳아 잘기르자’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가 있다. ‘사람은 자연보호~’는 예상보다 일찍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공헌한 표어다. 저 기념비의 내용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그럼 기념비 내용을 들여다보자. ‘여사님’ 등의 어투가 일단 지금으로선 낯설고, ‘10만 마리’가 아니라 ‘10만미’라고 표현한 부분 등이 언어의 변화를 또한 보여주고 있다. 가장 재미있는 점은 저 문장의 띄워쓰기가 완전히 자유롭게 줄의 여유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는 점.


소양강댐의 기념비 시리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조금 더 가면 또다른 기념비가 나온다. 88올림픽 기념 호돌이 동상을 곁들인 기념비 맞은 편에 앞서 기념비들보다는 훨신 소박하고 그러면서 아주 기념비 스러운 크지 않은 기념비가 있다.




단 세 글자만 화끈하게 새겼다.  ‘담수비’. 

박정희 글씨처럼 보이는데 미처 확인을 못했다. 모양도 무척 단순하다.

물을 담았다는 말로도 익히나 바닷물이 아닌 육지물 담수를 뜻하는 것이리라. 물을 모았다는 뜻일 것이다.


왜 저런 기념비를 세웠을까? 댐 만드는게 물 모으자고 하는 건데 촌스럽게 그걸 따로 돌에 써서 만들었다고 생각되어 지금 보면 웃길 수도 있다.

요즘 세대들에겐 잘 와닿지 않겠지만 보는 나로선 이곳의 다른 기념비들보다 훨씬 눈길을 끈 기념비였다. 조형물들이 자기 시대를 담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까닭이다. 


소양강댐을 완공한 것은 1973년. 전력발전에 대한 갈망과 홍수 조절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전천후답을 갈망했던 천수답의 시대였다. 지금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시절, 언제나 논에 물을 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국민들 모두의 꿈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저수시설이 가장 필수적이었다.


소양강댐은 그토록 꿈꾸던 초대형 저수시설이었다. 그 기쁨은 지금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농민들에게 자랑하고픈 심정, 그리고 해냈다는 자부심을 담아 저 비석을 만들었을 터다.


실제 소양강댐은 다목적 댐이지만 그 목적 중에서 농촌용수 공급 목적이 무척 중요했다. 총저수량 29억톤에서 용수조절능력이 5억톤인데, 농공업용 용수공급능력은 12억톤으로 비중이 훨씬 크다.


저 담수비 맞은 편에 있는 기괴한 호돌이 청동상 기념조형물은 아쉽게도 사진을 못찍었다. 그 앞에 차들을 주차해놓은 탓이었다. 소양강댐과 관련이 없는 조형물이 이렇게 한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한국 공간문화의 또다른 특징임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아쉬웠다.


그리고 몇년 만에 다시 오니 이 곳에 생긴 가장 커다란 변화가 바로 이 곳이었다. 




소양강댐 물문화관이다. 물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려주는 곳인데, 그 내용은 실로 예측 가능하며 또한 빈약하다. 알릴 것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알리기 위해 문화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 관광지에는 당연히 문화관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집부터 지어놓고 전시할 것은 없는 전형적인 전시관이다. 세상에는 참 쉽게 쓰이는 돈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으로, 어떻게든 뭔가를 지어서 관광지를 개발하는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지자체의 속성도 함께 보여준다. 


지방이라서 촌스럽게 티낸다고? 서울 청계천에도 거의 똑같이 생긴 청계천 문화관이 있다. 대한민국은 행정면에서는 모두 똑같다.

볼 것은 참 없으나 내부를 잠깐 소개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라면 한 5분 정도는 즐거워할만한 곳이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시설인 댐 개념 놀이실습 모형. 실제 물이 흐르는 중간을 막아 댐 개념을 알게 해준다. 항상 학구적인 동료 김아무개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저 물 문화관은 야외 데크가 전망대다. 그럼 이제 호수 모습 차례.



 

저 화끈한 소양강 다목적댐 이름표 역시 개발독재기의 구호 문화, 기념조형 문화를 잘 보여주는 시대적 스타일이다. 댐을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하는 수자원공사의 처절한 욕구가 실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거부할 수 조차 없이 눈을 압도하다. 한 글자 크기가 얼마나 할까?

문득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 표지판도 떠오른다. 둘 사이의 차이는 뭐고, 공통점은 뭔가? 기호와 구호의 차이는? 한번 생각해 볼 시각적 아이콘이다.


저 이름표는 또한 당시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각종 시설에 글자를 거대하게 붙여대기 좋아했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저 스타일을 북한은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참 놀라운 집단이다.



 

그런데, 저 수면 위에 뭔가 신기한 게 있다.



 

아무리 쳐다봐도 모르겠다. 궁금하다. 아시는 분들이 설명해주시면 고맙겠다.

 

그런데, 이 글 쓴 너는 왜 가장 중요한 소양강댐의 웅장한 모습은 올리지도 않고 쓸데 없는 것들만 읊어대고 있느냐고?

내 말이 그말이다. 나도 댐 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었다. 

소양강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길은 올라오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 전체에 철망을 달았다. 바로 이렇게.

 


 

실로 아쉬웠다. 안전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왜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냔 말이다. 저 댐보러 오는데 좀 감상좀 하게 배려하는 센스라곤 전무했다. 이렇게 해놓고 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래서 결국 내가 찍은 사진이라곤 댐 위에서 아래를 바라 본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글을 보실 분들이 바라는 사진 저 따위는 아닐 것이기에 자료 사진을 퍼왔다. 




평소 조용하던 댐은 물이 가득차면 이렇게 뿜어대기도 한다.




댐의 높이는 123미터. 그 아래로 비류직하삼천척이란 시구절처럼 떨어져 다시 하늘로 치솟는 물보라. 언제 한번 봐야 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저 옆의 지그재그 길을 보면 한번 꼭 걸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실제 걸을 수 있다. 특별한 날에만.




12일 열린 제3회 벚꽃길 걷기대회 모습이다. 벚꽃길에서 벚꽃을 흠뻑 즐긴 뒤 저 경사로를 따라 댐에 올라가볼 수 있다. 우리가 댐에 간 이틀 뒤에 열린 대회다. 알았다면 한번 참여했을텐데 무척 아쉬웠다. 


저 길 걸어보고 싶으신 분들, 내년에 신청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