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잊지 못할 아름다운 성, 암베르에 가다 2009/02/19

딸기21 2018. 10. 5. 15:43

당신이 꼽는 아름다운 성은 어디입니까

 

가장 아름다운 성이 어디냐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마련한 안전한 대답이 있다. 

내 대답은 수원성이다.

 

수원성 공심돈. 수원성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물들이 많아 전통 건축과 우리 성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겐 ‘성’이란 개념이 머리에 잘 박혀있지 않다. 기껏해야 남한산성 정도? 북한산 능선에 남아있는 성벽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땅의 성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에는 성이 없잖아?라고 여기기 쉽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많은 성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200개 정도의 성이 있었다. 우리 성은 대부분은 읍성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읍, 그게 성이다. 읍성은 생활과 방어를 한꺼번에 추구한 한국형 성이다. 주민들이 평소엔 성 바깥 논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성 안을 들어가 방어하던 구조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읍성은 작은 도시였다. 전국에 원님들이 있던 곳들은 다 성이었다. 읍성 안에 동헌이 있었고, 그 안에 문묘와 사직이 있었다. 전국 어디에나 말이다. 

 

그 읍성들이 사라진 것은 타의와 자의 모두에 의해서였다. 옛날 것은 모두 구질구질하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왠만하면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이었다. 많은 읍성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도 있었다. 바로 일본이란 극악한 침략자들이 읍성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접수해 완전히 병탄하기 전, 마지막 의기를 불태운 사람들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스스로 무기를 들었던 위대한 국민들, 바로 의병들이었다. 무기면에서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었지만 의병들은 곧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 비결이 읍성이었다. 동네는 동네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 지형과 읍성에 익숙한 의병들은 읍성을 이용해 일본군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이에 크게 혼쭐이 난 일본이 이후 읍성을 하나하나 때려부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지금 전국에 남아있는 읍성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나마 새로 짓다시피 고친 것들도 많다. 읍성 안에는 관아와 객사, 그리고 민가가 남아있어야 했겠지만 이젠 성벽만 남고 벌판이 되어버린 곳들이 대부분이다. 안에서 사람이 여전히 생활을 이어가는 곳은 낙안읍성이 유일할 것이다. 

 

이 읍성의 일종으로 남아있는 한국 최고의 성이 수원성, 화성이다. 

한옥 전통건축에는 왜 웅장한 성이 없어,

우리 나라 한옥들은 왜 다 비슷비슷하고 화끈하고 독특한 것은 없어,

우리 나라엔 왜 웅장하고 폼나는 성 같은 것이 없어,

라고 못마땅했던 분들이라면 한번 수원 화성을 보시길 바란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다른 한옥, 웅장한 성 건축,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몇 안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수원성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좌우지간 어찌됐든 수원성을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게 되는 것은 팔이 안으로 굽게 되는 것에 기인하는 점도 크다. 그러면 외국의 성들은 어떤가? 




‘뾰족한 외국의 성, 그림 같은 성’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저 성일 것이다. 독일 남부의 노이슈반스타인성이다.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것으로 유명한 그 성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에게 서양 성의 대표적 이미지로 확실하게 각인된 슈퍼스타급 성이다.

 

서양 성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탓에 제법 오래된 성 같지만, 문화재적 가치로 보면 저 성의 나이는 무척 젊다. 아니 어리다. 1886년에 완공했다. 그럼에도 저 성이 다른 어떤 성보다도 유명한 까닭은 저 그림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의 대명사가 안되면 이상할 정도로 예쁘다. 사진으로 보면.



 

가보신 분들은 동의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저 성은 방문했던 많지 않은 성들 중에서 거의 꼴찌로 꼽고 싶다. 외국을 돌아다니며 가장 실망했던 방문지 중 하나다.

 

예쁘지도 않고, 분위기도 그윽한 맛이라곤 없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뾰족 탑 모양 예식장을 진짜로 지은 어처구니없는 성이었다. 주변 풍광이 멋지고 한껏 치장해 사진으로 찍으면 환상이지만 내부 공간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미안한 말이지만 유치했다. 온갖 좋다는 장식으로 무작정 꾸며댄, 여러 가지 화장법으로 한꺼번에 얼굴을 떡칠한 모양이랄까. 그럼에도 사진발 하나만큼은 정말 최강인 성이다. 저 사진들을 보고 저 성이 별로였다는 내 말을 과연 사람들이 믿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별로라는 사실.

 

건축물은 건축가가 창조했다고 해도 건축주의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다. 저 성은, 그야말로 건축주의 것이다. 예쁘고 폼나는 성에 집착했던 바이에른 루트비히2세는 저 성을 짓다가 국가재정을 파탄냈다. 지금은 독일에 막대한 관광 수입을 안겨주겠지만, 건물 하나 짓자고, 그것도 모두의 건물도 아니고 저 혼자 틀어박힐 건물 지어 나라를 망친 군주라니. 그런 광기 덕분에 등장할 수 있는 건물이기에 사람들을 더 열광시키는 저런 모습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외국의 성은 어디냐, 물으신다면 ‘단연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가보면 후회 안 할 곳’으로 꼽을 수 있는 성을 이번에 만났다. 인도 북부 라자스탄 주에 있는 암베르 성이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암베르성

 

라자스탄은 델리에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이다. 라자스탄의 서울인 자이푸르는 이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델리-아그라(타지마할 소재지)과 함께 인도 관광의 필수 3대 방문지로 꼽히며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자이푸르는 델리에서 당일 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그 풍광은 델리와 사뭇 다르다. 건조한 황무지 지대가 끝없이 펼쳐지고, 중간 중간 흙더미가 솟아오른 듯한 민둥산들이 솟아있는 그런 동네다.

 

서울에서 대전 가는 거리쯤 되는 자이푸르까지 가면서 가장 인상깊은 모습은 끝없이 펼쳐지는 유채밭이다. 한쪽으론 건조한 황야가, 반대편으론 노란 유채꽃이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유채밭이 이어진다. 이른 아침 출발해 안개에 쌓여있던 유채밭이 날이 밝으며 제 색깔을 드러낸다. 인도에서 유채는 염색도 하고 기름도 짜는 유용한 작물이다. 




암베르성은 자이푸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등장한다. 

너른 평원 속에서 간혹 솟아오르던 산들이 갑자기 더 높아지나 싶더니, 저 멀리 가파른 절벽 위로 마치 만리장성처럼 달리는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저 산 등성이 맞은편 봉오리 꼭대기에 그림처럼 얹혀있는 암베르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지은 천혜의 요새다.




아랫 마을에서 저 성위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코끼리 터미널에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코끼리들이 가득했다. 어떤 녀석은 주인이 얼굴에 갖은 색칠을 칠해 중국 경극 가면을 쓴 듯할 정도였다. 코끼리 요금은 두 당이 아니라 마리당으로 받는데, 계산해보니 얼추 우리돈 1만6000원쯤이었다.




코끼리 등은 생각보다 상당히 흔들렸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이제 암베르성으로 출발.




밑에서 볼 때는 그리 가파르지 않고 멀어보이지도 않았는데 지그재그 산길로 올라갈수록 제법 경사가 느껴진다. 코끼리의 속도가 느린 듯해도 발 걸음이 넓다보니 어느새 산 위 성은 가까워지고, 출발했던 마을쪽은 순식간에 멀어지며 작아졌다.




코끼리 등위에서 뒤 돌아본 마을과 주변 산 모습.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실로 인상적이다. 대기오염이 심해 뿌연 델리의 하늘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늘이 정말 물감으로 칠한듯 파랗기만 하다.




코끼리열차가 순식간에 목적지에 이르듯 코끼리도 금세 성위에 도착했다. 계란 노른자를 풀어 칠한듯한 노란 암베르성은 아래에서 봤을 때는 전투용 요새 같았지만 그 내부는 실로 화려했다.




암베르는 라자스탄 지역을 지배했던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다. 이 암베르 성을 지은 왕은 마하라자 만 싱. 델리에 자리잡은 이슬람 무굴왕조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혼인 동맹으로 왕조를 유지시켰던 뛰어난 왕이다. 그가 만든 이 성은 너무나 아름다워 무굴의 황제가 방문했을 때 일부러 건물 일부에 덧칠을 해 수수하게 만들어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저 멀리 인도 위에서 내려온 무굴제국은 인도 최강의 왕조가 되었지만 다른 지방의 힌두 왕조들을 모두 제압하긴 어려웠다. 혼인과 위협으로 찍어누르며 이슬람과 힌두의 공존, 이민족과 인도 토착세력의 공존을 시도했다. 폭압 정치 대신 이런 무혈 유화정책을 폈기에 무굴의 황제 악바르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힘으로는 압도적인 무굴 왕조와 어찌됐든 공존을 이루며 왕조를 이어간 마하라자 만 싱 역시 그런 점에서 훌륭한 군주로 여겨지고 있다. 


암베르 성에 들어가면 너른 광장이 나오고 그 위 계단으로 올라가 위에 보이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민 문으로 들어간다. 문을 지나면 마하라자 왕의 정원이 나온다. 크진 않지만 아담해 부담이 없고 기하학적으로 공간을 꾸민 정원이다.




저 정원 옆에는 건물 내부를 각종 보석과 유리로 내부를 아름답게 꾸민 독특한 건물이 있다. 촛불 하나면 켜도 빛이 저 유리들에 반사돼 내부 전체가 환해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 좋은 점은 제법 괜찮은 카페가 건물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저 암베르성 내부에도 뒷편 산과 계곡을 내려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가 있다. 카페에서 보이는 성 뒤의 또다른 성과 성벽들, 그리고 성 아래 마을.




성 건물은 아주 크지는 않아도 요리조리 길이 꼬불꼬불 이어져 헤매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마하라자의 정원을 지나 한단계 더 들어가면 너른 내부 공간이 다시 펼쳐진다. 가운데 세워 놓은 접견실은 겉으로는 허름하지만 내부는 환한 호박빛이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암베르성의 아름다움은 한없이 파란 하늘, 그 강한 햇빛 아래 거칠어진 건물의 질감, 라자스탄의 거친 땅처럼 수수한 건축물, 그리고 그 속에 눈이 번쩍 뜨이도록 화려하게 작정하고 꾸민 구석구석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점일 것이다. 가파른 자연 지형과 그 위에 들어선 건물이 빚어내는 분위기, 그리고 공간감이 더해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내 허접한 사진이나 건조한 표현력으로 묘사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되지도 않는 글솜씨로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보다는 글 제목에 ‘잊지 못할 곳’이라고 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이 멋진 성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하루 종일 머물러도 부족할 것이다. 오래 머물지 못한 점 이상으로 아쉬웠던 것은 멀리 떨어져서 저 성 주변을 걸어다니며 성을 바라보며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크고 높은 건물일수록 마주보는 높은 곳에 퍼질러 앉아 아무 생각없이 바라봐야 제 맛인데, 외국 나들이란 언제나 사소하지만 중요한 여유를 얻기가 어렵다. 


그런 아쉬움이 가득해진 채로 성 밖으로 나선다. 다시 올 날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