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기자

구본준 기자 사망, 온라인에는 ‘애도 물결’

딸기21 2018. 6. 5. 17:59

정상근 기자 

2014년 11월 13일


한겨레 구본준 기자, 국내 유일의 건축전문기자이자 만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기자. 책을 사랑했고, 우리에게 좋은 책을 만들어준 작가. 그가 12일 이탈리아에서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습니다. 


그의 트위터에는 그의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추리동화 짓기, 골목길에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그리고 건축 만화 스토리 쓰기. 세 가지 꿈 중 하나라도 언젠가는”이란 글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니 울적한 목요일입니다. 


SNS에서는 애도의 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 언론계 선후배들 모두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했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글을 보며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있었음을 드러냈습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뒤늦게 만난 벗, 한겨레신문 구본준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 삶이 뭔지 알고 있던 사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 따뜻한 자유주의자. 얼마 전에도 웃으며 통화했던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suhcs) 

“술을 마셨다. 구본준,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가 하고 싶다고 말했던, 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생각하며, 너무나 원통해서 울었다. 마감할 원고를 넘기고, 다시 술을 마신다. 세상은 불공평하다.”(@lotusid) 

“기자들이 사랑한 기자, 문화계 인사들이 사랑했던 기자…. 그리고 한겨레 독자들이 사랑했던 기자였던 한겨레 문화부 구본준 기자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네요. 타임라인에 애도의 글이 많은 것을 보면 많은 분들이 얼마나 그의 글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는….”(@songcine81) 

 
  
▲ 구본준 한겨레 기자
 

“글 쓰는 이들 중에 구본준 기자님을 롤 모델로 삼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메인 분야를 가지고 애정을 가진 분야로의 확장. 조직과 개인 브랜드의 공존. 역할로 기존 판에 영향을 주었던”(@miocious) 


“구본준 기자님…. 올해 봄, 땅콩집에 대한 영상 과제 때문에 연락 드렸었는데 평범한 대학생인 우리를 흔쾌히 만나주셨었다.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1시간도 안 되는 인터뷰에도 성실하게 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었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an38nie)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도 페이스북을 통해 애도의 글을 남겼습니다. “아주 성실하고, 자기 색깔이 있는 기자였다. 미술을 하다가 건축 쪽에 눈을 돌려, 직접 한 건축가와 용인에 땅콩주택을 짓고 <두남자의 집짓기>란 책을 써서 한때 땅콩주택 붐을 낳은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가 집념이 강하고 일도 무엇이든 좀 무리할만큼 열정이 있는 걸 알기에 좀 우려스러워 ‘몸도 좀 잘 추스르고’라고 말해줬던 것 같다. 모처럼 손까지 잡아가며 얘기하며 왠지 마음이 짠했는데, 이리 되다니. 황망하기 그지없다.” 


만화계에서도 애도의 글이 잇따릅니다. 만화가 강풀씨는 트위터에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이란 글을 남겼고 “만화계에도 중요한 분인데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도 눈에 띕니다.


아직 젊은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이들도 많습니다 “신해철씨도 그렇고 장르문학을 사랑하고 아껴주시던 고마운 분들인데 애통하고 비통하네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트윗을 올리셨던데 믿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일했던 전 현직 한겨레 기자들은 얼마나 상심이 클까, 구본준 기자의 죽음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 “구본준 기자의 부고…. 마왕에 이어 참 어이없는 이별이다. 내 또래의, 각 분야에서, 사회 모순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진단 사실이 참 안타깝네” 등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구본준 기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 나는 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내게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그냥 하는 어떤 것.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글은 월급이자 생활이었고, 한편으로는 숙제이자 의무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내가 쓴 글이 인쇄가 되어 나온 것을 보는 것은 여전히 신비로운 순간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