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사진가 2008/05/12

딸기21 2018. 9. 3. 11:51

개를 찍는 사진가가 있었다. 

그가 찍은 개 사진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다시 보면 그의 사진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바로 ‘눈높이’였다. 그는 개의 눈 높이에서 개를 바라봤다.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개처럼 낮은 곳에서 개를 바라보며 찍었다.




우리는 자기 눈높이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나 십몇센티미터만 눈높이가 달라져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계단 한 칸 위에서 본 세상은 한 칸 아래와는 전혀 다르다.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키 작은 사람의 시야와 괴로움을 키 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작은 눈 높이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안다. 조금 몸을 낮춰 아이 눈 높이로 바라본 세상이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사진작가는 아예 눈 높이를 개의 눈 높이로 낮췄다. 그의 사진에 사람들은 웃고, 감동했다. 사진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묘한 슬픔이랄까, 때론 조롱 같기도 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눈높이를 사진으로 체험하면서 작고 왜소한 개의 처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런 여러가지 이전에 그의 사진은 일단 웃겼다. 그런 것을 굳이 안느껴도 좋았다.




개의 눈높이로 찍은 사진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웃긴 사진가, 그가 바로 엘리엇 어윗이다. 엘리엇 어윗은 지금 우리 시대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사진가로 손꼽힌다.


그는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열 한 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어윗은 할리우드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이미지와 사진을 접했다. 그리고 서른살에 에드워드 스타이켄과 로버트 카파를 만난다. 사진에서 카파와 스타이켄이란 이름은 축구에서 마라도나와 펠레 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어윗은 본격적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고, 1953년 드디어 매그넘포토스의 회원이 된다.


매그넘포토스는 또 뭔가?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진가들이 모여 만든 세계 최강의 사진가 그룹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등 20세기 사진계의 수퍼스타들이 모여 매그넘을 만들었다. 이후 극소수 정예회원들만 받아들여 사진의 역사를 주도했다. 어윗은 3년 동안 매그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었으며, 1980년대에는 홈박스오피스(HBO)사에서 영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것도 18편이나. 무슨 영화였을까? 코믹 사진의 달인답게 당연히 코미디 영화였다.


그는 웃기고 부담없는 사진으로 다가가서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웃겨서 가벼워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어윗은 개 사진 말고 인물 초상 사진에도 달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찍은 인물 사진을 보면 역시 웃음, 미소, 독특함이 배어나온다. 




맞다. 바로 그 사람, 아놀드 슈월제네거다. 1977년, 그가 보디빌더로 전성기를 달리던 그 시절이다.


어윗이 찍은 유명 스타의 사진으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사진은 바로 이것이다. 그가 많이 찍었던 그 모델, 마릴린 몬로의 독사진이다. 1955년작.




그가 찍은 유명한 사람 중에는 이 사람도 있다. 이제는 팝스타 같은 아이콘이 되어버린 20세기의 전설, 게바라다. 1964년에 찍었다.




어윗말고도 여러 유명 사진가들이 게바라를 찍었다. 그 중에서도 어윗의 사진은 특히 게바라가 매력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내 눈에는 너무 예쁘게 찍어 약간 상업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이 어윗 풍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의 사진 최고의 미학, 특징, 강점은 역시 ‘유머’다. 그의 작품 중 웃기는 것은 하도 많아서 다 나열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혹시 더 보고 싶으신 분들은 어윗 홈페이지에 들러보시면 좋겠다.




그의 웃기는 여러 사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래의 이 사진이다.


그 유명한 고야의 그림 <옷 입은 마하 부인> 그리고 <옷 벗은 마하 부인>의 두 초상화 앞에서 벌어지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1995년, 스페인 마드리드.




그러나 어윗표 유머의 압권을 보여주는 사진은 바로 이 것이다.


어윗의 코믹한 여러 사진들 중에서도 베스트 3위 안에 들어갈 법한 사진다. 나 역시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는 웃겨서 뒤집어졌다. 일단 보시라.




얼핏 보면 왠 아주머니가 가슴을 드러낸 망측한 사진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닌 것을 알게 되고, 절로 웃게 된다. 사진의 제목은 <맞은 편>. 어윗이 1957년 니카라과의 마나과에서 찍은 사진이다. 연출인지, 우연인지 지금도 궁금한 작품이다.


매그넘 모든 회원들의 사진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사진화보집 <매그넘 매그넘>은 매그넘 회원들이 각자 다른 회원들의 사진 중에서 대표할만한 것을 6점씩 골라주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진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 엘리엇 어윗의 사진을 골라준 사진가는 페르디난도 시아나였다. 그는 “엘리엇의 (그 수많은) 사진 중에서 6장만을 고르라는 것은 고문이었다”며 그 중 한 장으로 위의 저 니카라과 아주머니 사진을 골랐다.


노골적으로 웃기는 사진으로는 이런 것도 있다. 


도대체 어윗에겐 가는 곳마다 이런 웃기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런 장면이 그에게만 귀신 같이 보인단 말인가? 




은근히 웃기면서도 시적인 사진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진으로는 바로 이것. 플로리다 키스 제도란 곳에서 1968년 찍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어윗의 작품으로는 이런 것도 있다. 무슨 하이틴 로맨스 소설 표지 그림처럼 좀 작위적으로 보여서 내 맘에는 별로인데, 그래도 보편적인 강력한 힘은 분명 세긴 세다. 이런 사진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여러 사진들이 있다고 해도 역시 어윗이라고 하면 역시 개 사진이 트레이드 마크다. 개는 그에게 인간 못잖은 주제다. 물론 모든 사진을 개의 눈높이로 찍은 것은 아니다.


그는 개 사진집도 여럿 냈다. 그가 1974년 펴낸 첫 개인 사진집이 바로 개 사진 책이었다. 그 첫 사진집의 제목은 <Son Of Bitch>, 그러니까 <개자식>이었다.




2000년 뉴욕에서 찍은 사진. 




저 올려다 보는 녀석의 표정을 보라.


참, 어윗은 여성의 다리를 무척 좋아한다. 개와 여성의 다리만 찍은 사진이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 웃긴다고 생각하는 개 사진 하나 더.




하도 개를 잘 찍다보니 어윗은 개를 이용한 광고사진도 찍은 적이 있다. 주류업체 광고였는데, 개들이 그 회사 술을 보고 아주 환장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개그맨들을 보면 알겠지만 남을 웃긴다는 것은 결국 관찰력에서 나온다. 어윗이 웃기는 것은 그가 피사체를, 인간을, 개를, 그리고 광경을 정말 세밀하게 들여다보기에 가능할 것이다. 어윗 스스로도 자신은 남을 웃기는 사진을 찍는 것이 좋고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더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윗이 그렇게 웃기는 자기 사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그가 결코 비판처럼 가벼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다른 매그넘 작가들은 사회성과 시사성, 그리고 저널리즘의 무게가 팍팍 묻어나느데 어윗은 안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벼워서 훨씬 쉽고 부담없이 사진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과, 가벼워서 별로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래도 공통점은 ‘가볍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웃기는 것이라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무거워 보이는 것이, 당위적인 것, 진지한 것, 정답이 보이는 것은 실은 뻔하기 쉽다. 그래서 뻔한 진지함은 찍기도 쉽다. 반면 웃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웃기는 것은 절대로 예상 가능해서는, 뻔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남들에게 유머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 않는가. 


어윗이 자신이 웃기는 사진을 찍는 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웃기는 사진이 아니라 무거운 사진, 묵직한 사진에도 달인이다. 그의 사진 중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고발 사진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인 바로 이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저 사진은 1950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찍은 것이다. 백인들과 유색인종의 차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저 사진은, 보고만 있어도 슬퍼진다. 인간이란 참 더러운 동물이다. 어윗은 그래서 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웃기는 면과 저런 진지한 면, 두가지 면이 모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어윗을 좋아한다.


또한 어윗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사진으로는 이런 것들도 있다.




엄마가 아기를 바라보는 정겨운 모습을 잘 포착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사진이다.


어느새 어윗은 현존 매그넘 작가 중 최고령이 됐다. 여든살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유머는 잔잔해진 편인데 대신 대가들 특유의 툭툭 기교 부리지 않는 듯, 그러나 본질을 짚어내는 사진이 되어 가는 듯하다.


어윗은 자기 얼굴 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공식 프로필 사진을 유치원 나이 때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을 쓴다.  그렇다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렇게 소개하고도 공개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하다. 어윗은, 바로 이렇게 생겼다.




어째 사진을 찍은 장소가 낯익어 보인다?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이다. 지난해, 어윗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기적으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항의 집회인 수요 집회 모습을 취재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사진기자가 어윗의 의뭉스럽기도하고, 귀엽기도(죄송)한 표정을 잘 잡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어윗은 왜 저기서 사진을 찍었던 걸까.


어윗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여성’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그가 한국을 주제로 찍은 작품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이 재미난 사진작가 어윗이 찍은 한국 사진이 올 여름, 한국팬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어윗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그 전시회는 놀랍게도 어윗만큼 유명한 작가들이 어윗말고도 19명이나 더 참가하는 초대형 전시회다. 오는 7월4일부터 8월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매그넘 코리아> 전시회다.


매그넘 코리아는 <한겨레> 창간 20주년 기념사업으로 매그넘 회원 50여명의 절반 가까운 20명이 한국이란 나라를 주제로 삼아 새로 찍은 신작 2400점 가운데 400여점을 골라 보여주는 전시회다. 어윗은 현대 사진계의 전설적인 존재들인 쟁쟁한 후배 마틴 파, 엘라이 리드, 스티브 매커리, 르네 뷔리, 알렉스 웹 등과 함께 한국 사회를 들여다봤다. 이들 작가 20여명은 한겨레신문사의 초청으로 지난 1년 동안 한국을 각각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어윗은 무엇을 찍었을까? 살짝 귀띔하면 어윗의 기존 작품세계의 연장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수요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미리 만나본 그의 사진은 할머니들이 슬픔을 이겨내는 밝은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달 쯤 뒤면 어윗을 비롯해 세계 최고 사진가 20명이 찍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전시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팬의 한 명으로 전시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그의 잔잔한 유머가 빛나는 사진 한 장 더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