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17

올겨울 놓치지 말아야할 전시가 있다면 2010/01/30

다른 이들도 그랬겠듯, 나 역시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이 작품 사진을 보고 바로 그의 팬이 되었다. 뭐랄까, 정말 말 없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얼굴이었다. 이란 작품 제목과 권진규란 작가의 이름이 그냥 뇌리에 박혀버렸다. 감수성 예민한 10대 고등학생이었기에 더욱 저 작품에 반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저 작품 사진을 봐도 늘 똑같은 울림이 느껴졌다. 언제나 조각가는 권진규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자코메티를 봐도, 로댕을, 부르델을 봐도 권진규처럼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진 않았다. 나중에 이 작가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았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으니 최고로 인정받으며 성공한 작가였으리라 막연하게 추측했는데, 그에 대해 나온 글들은 권진규를 `비운의 천재' `비극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아바타보다 더 보고 싶은 사진 전시회 2010/01/22

벌써 꽤 오래전이다. 취재를 마치고 같이 돌아오는 신문사 동료 사진기자가 지갑을 여는데 낯익은 사진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흙바람 속에서 힘들게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찍은 유명한 저 사진이었다. 처음 저 사진을 봤을 때 눈길이 꽂힌 곳은 당연히 저 작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대여섯살이나 되었을까, 가혹한 환경에 괴로워하면서도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묘한 표정에 잠시 빠져들었다. 그 다음 부모로 보이는 두 어른의 얼굴이 보였다. 두건으로 눈 코입을 가린 얼굴에서 유난히 강인하게 빛나는 눈빛이 나를 압도해왔다. 그 뒤로 저 사진을 볼 때마다 뒤처져 따라오는 돌아선 마지막 등장인물은 어떤 표정일지 궁금해하곤 했다. 사진의 역사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 영웅들 중에서도 상당히 앞자리에 이름을 올릴 이가 ..

전시장이 이래도 되나요?-황당해서 재미있는 전시회 2010/01/20

틀림없이 전시 안내 글이 붙어 있습니다. 서울 홍대앞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입니다. 카운터에는 안내 담당자도 앉아 있고..., 그런데 안에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전시장에 전시하는 것이 없어 순간 당황하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전시장 안으로 빨간 줄들이 쳐져있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저 빨간 줄들은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뭘까요? 스피커에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리들이 나옵니다. 휘잉거리는 차가운 겨울 바람 소리, 가끔 새 우는 소리,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잡담... 이 전시회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소리'를 전시하는 전시회입니다. 이른바 `사운드 아트'입니다. 올해로 3회를 맞아 착착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서울국..

청와대 옆 여관에 도대체 무슨 일이? 2009/09/27

도대체 이 이상하게 칠한 건물은 뭐냐 서울에서 가장 꽃으로 아름답게 꾸민 길이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청와대로 올라가는 효자동길이다. 청와대 가는 길이니 연중 꽃들로 아름답게 치장해놓는다. 괜찮은 커피집, 작은 쌈지공원, 미술관 등이 나오는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경복궁의 서쪽문 영추문이 나온다. 통의동에 살았던 시인 이상이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한다'고 읊었던 그 동네, 의 `마지막 골목'이라고 했던 그 골목쯤이다. 바로 그 영추문 맞은편 골목에 도대체 뭔가 싶은 건물이 등장한다. 뭐지? 저 요란뻑쩍지근한 건물은? 간판을 보니, 여관? 뜻밖의 역사를 지닌 80년 된 보안여관 정부 기관들, 교육기관들, 그리고 고급 주택가가 섞여있는 통의동에 여관이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기 쉽다. 그리고 여관이 ..

성폭행을 응징한 역대 최고의 복수는? 2008/07/09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끔찍한 명화를 뽑는다면?아마 이 그림이 1위가 되지 않을까. 사실감 넘치는 ‘살인의 순간’에 절로 오싹해진다. 한 여자는 침대 위에서 발버둥 치는 남자를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고, 또 한 여자는 남자 머리를 붙잡아 목을 쓱쓱 베고 있다. 칼이 이미 목의 절반을 지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기 일보직전이다. 그림 속 여자를 보면 살인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작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을 베는 여자는 칼질을 하면서 몸을 뒤로 빼고 있는데, 끔찍해서가 아니라 피 튀는게 싫어서인 것이 틀림없다. 팔 소매를 이미 걷어부친 것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듀엣으로 목을 따고 있다는 것이 이미 이 두 여자가 의도된 킬러임을 알려준다. 저 그림속 살인하는 여자 이름은 유디트다. 유디트에게 ..

야하고 웃겨서 더 슬픈 고발 사진들 2008/06/03

이번 글에선 미성년자 관람불가 사진을 올리게 됐다.예술이라 생각하시고 노출에 대해선 잠깐만 눈감아 주시길 바란다. 포르노냐, 예술이냐-한 사진가의 색다른 시도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아무리 봐도 사진 자체로는 독해가 쉽지 않다. 일단 보도록하자.얼핏 보면 포르노같기도 하고, 무언가 강하게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포르노라고 보기엔 너무 진지한 것 같기도 하다.도대체 저 여자는 누굴까? 저 남자들은? 노출이 세지만 틀림없이 웃기는 사진이다. 그 웃음 뒤에 묘한 무언가가 작품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슬픔일까? 사람마다 다를테니 통과하고 다음 사진으로. 역시 묘하다. 더욱 웃기는 모습이다.여자는 아까 그여자 맞다. 남자들도. 그런데 이번에 저 포즈는 또 뭐란 말인가? 등장하는 이들이 동양사람들인데 그럼 ..

천년 넘게 한국을 지킨 자이언트 부처 이야기 2008/05/26

한국 최장신 부처님은? 잠깐 퀴즈부터. 부처님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큰 부처님은 어떤 부처님일까요? 사진이나 실물로 봐왔던 불상들을 한번 머리속으로 떠올려 보시면 답이 나올겁니다. 바로 ‘미륵불’입니다. 사실 부처님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원래 부처님은 석가여래뿐이었지만, 불교가 여러 나라로 퍼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님이 생겼습니다. 미륵불도 그 중 한 부처님입니다. 그러면 미륵불은 어떤 부처님일까요.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이 된 뒤 56억7000만년 뒤에 다시 내려와 용화세상을 만드는 부처님입니다. 내려와서 설법하는 모습을 불상으로 만들어 서있는 불상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불상이 키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미륵불하면 떠올리게 되는 관촉사 은진미륵은 그 키가 18미터이고, 서울 시내에서 ..

마초, 페미니즘 미술가에 반하다 2008/05/22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났지만 경상도 집안에서 경상도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자란 나는 꼴 마초에 가깝다. 그러니, 페미니즘 미술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는 지지해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전혀 친하고 싶지 않았다.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모를 바가 아니나 그런 미술을 즐기고 싶진 않은 탓이다. 윤석남 화백 작품만은 예외였지만. 주디 시카고? 신디 셔먼? 유명하고 중요하다고 하니 작품을 보기는 봤는데, 속으로는 ‘너무 윽박지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그런 센 미술보다는 보기 편한 미술이 더 좋았다. 프리다 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출산현장을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싶은가? 마돈나는 그런 모양이다. 칼로의 그림을 사갔다니.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계 최고의 스타이자 대모격..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사진가 2008/05/12

개를 찍는 사진가가 있었다. 그가 찍은 개 사진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다시 보면 그의 사진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바로 ‘눈높이’였다. 그는 개의 눈 높이에서 개를 바라봤다.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개처럼 낮은 곳에서 개를 바라보며 찍었다. 우리는 자기 눈높이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나 십몇센티미터만 눈높이가 달라져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계단 한 칸 위에서 본 세상은 한 칸 아래와는 전혀 다르다.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키 작은 사람의 시야와 괴로움을 키 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작은 눈 높이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안다. 조금 몸을 낮춰 아이..

디자인 마법사-론 아라드를 소개합니다 2008/04/04

처음 보면 그냥 거리에 설치한 조경 구조물로 착각하기 쉽다. 화단에서 나온 묘한 것이 거리까지 이어지고 풀들이 그 모양을 따라 자라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의자다. 화단과 거리, 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의자, 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독특하고 새로운 의자임에는 분명하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 있는 저 의자는 작품 의자다. 제목은 . 다만 의자로서의 운명은 조금 불행하다. 일단 의자인줄 몰라 많이 앉아주지 않고, 또 놓인 동네 자체가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곳이다. 허나, 의자의 운명이아 넘어가도록 하고 여기서는 저렇게 자유로운 발상과 모양으로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에만 주목하자. 바로 론 아라드다. 아라드는, 지금 우리 시대 디자이너들 중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몇 안되는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