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31

핑크 시티, 바람의 궁전에 가다 2009/03/06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인도의 붉은 사암색깔로 통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서울 델리, 그리고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와 함께 자이푸르는 인도 관광의 기본 3대 코스로 꼽힌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란 세 도시다. 자이푸르를 굽어보는 자이가르성 핑크 도시 자이푸르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성 암베르, 그리고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서 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옛성 자이가르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돌아본 암베르성을 뒤로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또다른 성 자이가르로 향한다. 암베르가 화려하고 살아있는 성이라면, 자이가르는 낡고 죽은 성, 그러나 그래서 볼만한 폐허 유적이다. 황무지 민둥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찻길로 자이가르성을 향해 올라..

남의 나라 구경은 역시 시장이 재미 2009/02/14

그 나라를 보려면 시장을 가라고들 한다. 한 나라의 서민 문화와 생활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곳이 시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뭐 그런 의미 따지기 전에 시장은 그냥 돌아만 다녀도 재미가 있는 곳이다. 개구리를 팔던 중국 이마트, 닭똥집이 반가웠던 러시아 시장 외국에서 시장을 둘러보는 가장 큰 재미는 뭘까? 외국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 그리고 우리와 같은 점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다르면서 같다. 시장은 이를 축소해서 보여준다. 인도의 시장에 구경갔다 와서 몇 나라 시장에 가봤는지 한번 꼽아봤다.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오스트리아, 베트남, 타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몇나라 안되지만 외국 시장을 ..

창피했던 기사-거리의 생로병사 2009/02/08

최근 어느 건축가분이 이 블로그를 보시고는 ‘왜 도시론은 다루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털어놓자면 내가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내 실력으론 도시란 거대한 주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서 못다루고 있는 것이다. 겁없는 어린 기자 시절, 무식해서 용감했기에 도시 문제를 다뤄보려 한 적이 있었다. 기사를 쓰고 난 뒤 깜냥을 깨닫고 도시에 관한 문제는 정말 확신이 서기 전까지 다루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뒤로 도시에 관한 기사나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 도시론 물음에 문득 그 때 글이 떠올랐다. 지금보니 거의 습작 수준이어서 쑥스러울 지경이다. 반성의 의미와 개인의 자극을 위해 기록을 해둔다. 거리의 죽살이를 통해 본 서울의 변천사… 현대화 물결에 따라 뜨고 지는 대표적 거리들 어느 날, 아무 별다른 것..

이게 음식이야, 대포야 2009/02/05

인도 음식이라고 하면 역시 탄두리, 그리고 커리와 난이다. 델리의 디펜스 콜로니 지역에 있는 인기 음식점 Swagath의 탄두리치킨이다. 국내의 인도 음식점 탄두리치킨과 큰 차이가 없다. 커리도 마찬가지. 물론 맛은 좋다. 인도 음식에서 누구나 좋아할 법한 것이 난. 커리에 찍어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담백한 맛이 괜찮다. 이 난은 좋은 화덕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다. 동네 식당에선 그래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로 치면 고속도로 휴게실에 해당할, 델리-자이푸르간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저 식당도 음식 맛은 괜찮았다. 물론 천막식 규모에 걸맞게 난은 없었다. 문제는 역시 위행. 인도 식당치고는 엄청나게 깨끗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진 오른쪽 아래 행주의 때깔을 보라. 빵굽는 아저씨가 손을 닦..

내가 ‘허걱’한 인도 2009/02/04

덜컥 떠나다 살면서 중요한 이벤트-실은 돈 드는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할 때가 있다. 아니, 고백하자면 그럴 때가 더 많다. 어느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말했다. “이번 설에 인도 가자.”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그냥, 당신하고 아들녀석만 갔다와. 난 휴가를 내야 하잖아.”아내는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내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기왕 가는 거 다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맞는 말 같았다. 그래서 1주일 뒤 같이 떠났다. 인도로. 드디어 이룬 로망 생각해보니 난 늘 인도를 좋아했다. 카레라이스도 좋아했고, 라씨도 좋고, 사모사도 좋고, 달도 좋고, 탄두리 치킨도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인도 음식만 좋아했다는 건 아니다. 내 학생시절 여행에 관한 로망은 단연 인도와 파키스탄,..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신도시 2009/02/03

황제는 말했다. “우리나라 서울을 옮긴다. 시크리란 곳에 새 수도를 지어라.”1569년, 백성들은 새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주변을 돌아봐도 야트막한 산 하나 안보이는 내륙 평야지대의 유일한 구릉 위에 거대한 사원, 그리고 화려한 궁전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주위를 백성들의 집들이 둘러쌌다. 2년 뒤, 제국의 수도는 새 도시로 바뀐다. 천도를 축하하듯 제국이 치르던 전쟁도 승리로 끝났다. 시크리에 지은 새 서울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승리의 도시 시크리’란 뜻의 ‘파테푸르 시크리’로 바뀐다. 그런데, 고작 14년 뒤 황제는 다시 명령했다. “다시 서울을 옮긴다. 원래 살았던 옛 수도로 돌아가자.” 얘들아, 이 도시가 아닌갑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서울을 옮겨야 할만한 전쟁이 일어..

주먹 센 고장 벌교에서 꼭 봐야할 것들 2008/11/24

벌교는 ‘주먹자랑, 돈자랑 하지 말라’는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이제 벌교는 ‘태백산맥의 고장’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21일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이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태백산맥의 무대로 모습을 갖췄습니다.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을 맞아 벌교를 다녀왔습니다. 벌교에는 아직 소설 속 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관심이 건축이어서 벌교의 주요 건축물 중심으로 쉬엄쉬엄 돌아다녀봤습니다. 역시 벌교에서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새로 생긴 태백산맥 문학관이라 하겠습니다. 벌교를 굽어보는 제석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현대식 건물입니다. 건축가 김원씨가 설계한 태백산맥 기념관은 멀리서 보면 건물 몸통 부분이 가려 마치 탑이 두개 서있는 것 같습니다. 지형을 이용해 건물의 기념비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디자인..

덕수궁의 풀리지 않는 비밀들 2008/11/08

늦가을이 한창인 지난 금요일, 모처럼 덕수궁에 갔다. 전시 막바지인 라틴아메리카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소문 국밥집에서 점심을 10분만에 해치우고 바로 덕수궁 안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은 평일 한낮인데도 바글바글 했다. 전시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야할만큼 좋았다. 직접 볼 수 없었던 라틴 미술의 거장들, 특히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오로스코를 만나서 기뻤다. 전시를 보고 돌아나오는 덕수궁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덕수궁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묘한 상념을 되풀이해야 했다. 덕수궁은 시내 다른 궁궐보다도 방문객에게 가장 편한 궁이다. 다른 궁보다 크기가 작아서 보기가 수월하고, 다른 궁보다도 교통이 훨씬 편하다. 그렇지만 막상 가려고 하기 전에는 왠지 머뭇거리게 된다. 우리 역사에..

사창가 초토화한 나비작전의 그곳, 숨은 옛 골목을 가다 2008/11/03

도시가 나뭇잎이면 길은 잎맥이다. 사람과 물자, 문화와 정보가 길을 따라 흘러주기에 도시는 생명력을 수혈받는다. 예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건축을 소개할 때 도시를 만화에 빗댄 적이 있다. 도시와 만화는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만화의 핵심은 네모칸 안의 그림이지만 만화에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네모칸들 사이에 빈 홈통처럼 나있는 빈공간 틈새다. 이 빈 통로를 지나 한 그림에서 다음 그림컷으로 넘어가면서 장면이 연출되고 독자들은 그림과 글속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비어있기 때문에 만화를 만들어내는 이 빈 홈통의 기능은 실로 신비한 것이다. 만화와 도시의 공통점 도시에서 길이 바로 이 만화의 홈통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길은 비어있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전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존재하..

한국에서 가장 근사한 주차장? 2008/06/13

주차장이 근사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타워팰리스처럼 입주자 자동차번호별로 지정석을 마련한 주차장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차장들은 그 모양면에서는 타워팰리스부터 동네주차장까지 큰 차이가 없다. 재벌 회장집 주차장은 본 적이 없어 모르나 주차장까지 아주 근사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본 주차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주차장이라면 단연 이 주차장을 꼽고 싶다. 특이하게도 우리 전통건축 양식으로 주차장을 꾸몄다.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서울 북촌, 그러니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한옥 밀집촌에 있는 주차장이다. 근사한 전통담 사이로 주차장 입구가 나 있다. 주차장 담과 한 몸으로 길가에서 보이는 한옥 건물은 뭔가 궁금해진다. 그럼 반대쪽에서 본 모습 한장 더. 이 주차장은 길쪽 담장만 아니라 주차장 안쪽 벽도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