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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임석재 교수의 거대한 자료실 2007/02/16

2년쯤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이화여대 건축과)를 만났는데, 근황을 묻자 “서재를 구해 책들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궁금했습니다. 책이 얼마나 많기에 서재를 따로 마련해야 했을까요. 임교수는 옮긴 서재도 옮기자마자 자료로 가득찼다며 빙긋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찾아가서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일, 임석재 교수의 광주 아파트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무려 28권의 책을 쓴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건축글쟁이, 그 글쟁이의 서재를 찾아간 것은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연재 기사 열아홉번째 글쟁이로 임석재 교수를 선정한 것이 제가 임교수 댁을 찾아가게 된 경위입니다. 물론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서재 구경 욕심도 있었구요. 임교수의 서재는 ..

雜家의 매력 2018.06.06

극장의 세계1-진짜 소리를 들려주는 공연장을 만나고 싶다 2007/02/12

지휘자는 돌연 지휘를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객석에 앉아있던 건축가에게 말했습니다.“프랭크, 잘 관리하겠습니다.”그 순간, 건축가의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2003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를 울린 지휘자는 로스앤젤레스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이었습니다. 로스 앤젤레스의 명물이 된 새 랜드마크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개관을 앞두고 처음으로 연습을 해본 살로넨은 너무나 좋은 소리를 내는 공연장을 얻게 된 데 감격해 게리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던 것이었습니다. 겉모습 이상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새 공연장을 잘 관리하겠다는 말 이상으로 건축가를 기쁘게 해줄 말이 또 있을까요. 지휘자, 건축가를 울리다 아름다운 월트..

雜家의 매력 2018.06.06

스피커를 조각하는 화가 이김천 2007/02/09

어른 키만한 시커먼 소리통이 세 구멍으로 가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장중한 선율이 작업실 전체를 휘감고 돌아와 귓전을 울려댄다. 장단이 바뀔 때마다 유닛은 제 몸을 떨며 소리를 뿜고, 그 가락따라 귓속 달팽이관도 함께 떨린다. 이윽고 집박이 ‘짝’하는 소리. “이번에는 퉁소 한번 들어보시죠.” 이김천(42) 화백은 연변의 퉁소명인 신용춘의 음반에서 를 골랐다. 경쾌한 북도 음악이 은근히 심박수를 올린다. 화실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음악으로 귀를 씻고 나니 스피커가 다시 보였다. 처음 본 순간에는 신사처럼 근사해보였던 소리통이 유심히 들여다보니 츄리닝 입은 동네 아저씨처럼 ‘널널한’ 모습이었다. 유닛에 달린 나팔같은 혼(horn)은 종이로 만든 것인데, 뜯어져 너덜너덜하기까지 했..

`바벨2세', 다음은 `마즈'가 나오길 2007/01/29

정말 오래간만에 가 돌아왔습니다.한 출판사가 최근 이 만화를 다시 펴낸 덕분에 저도 20여년만에 이 만화를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1월29일치 참조) 는 기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한국에서 만화란 장르의 사회사를 볼 때 아주 독특한 코드를 부여받은 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한국 만화산업의 문제점, 인식수준, 그리고 생산방식 등이 그대로 투영된 만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60년대 비교적 풍성하게 무르익었던 한국만화는 70년대 일본만화의 공습을 받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만화가 수입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 시기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만화란 것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의 경우는 ‘김동명’이란 가공의 이름을 작가로 적었습니다. 과 는 ‘정영숙’이란 이름을 달고 나..

거리의 속살2-난간의 미학 2006/09/04

거리에 놓인 구조물인 ‘거리 가구’(스트리트 퍼니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난간입니다.난간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지표이자, 안전을 위한 보호장치입니다.이런 기능 이외에도 도시의 주요한 난간에는 간혹 숨은 기능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답니다. 지구방위사령부...까지는 아니지만 군사적 기능을 갖춘 난간도 있지요. 잘 알려진 성산대교 난간입니다. 성산대교 그 난간을 자세히 보시면, 반달모양 아치 중간에 구멍이 뽕뽕뽕 뚫려 있습니다. 한 아치당 9개씩 구멍이 뚫렸는데, 이 구멍이 사실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달리는 차들이 바깥 구경하라고 뚫은 게 아니라, 유사시에 포격을 위한 구멍이란 것이지요. 한강을 타고 들어오는 적들을 막기 위한 포대인 셈입니다. 이런 특수한 기능을 하는 난간을..

거리의 속살-가로수와 거리가구 2006/09/01

안녕하세요? 구본준 기잡니다.처음 이 글방을 열었던 것은, 글방 이름대로 `스트리트 퍼니처', 그러니까 `거리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구인 거리가구에 대한 관심을 높여 거리 가구가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그래서 우리 거리가 보다 아름담고 정겨운 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지요.그런데 제 게으름으로 정작 거리가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지난 주말 거리로 나갔습니다. 바로 청계천으로요. 청계천으로 나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청계천은 바로 지금 우리 거리가구의 수준, 그리고 우리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의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서울시가 가장 많은 신경과 예산을 써서 정비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수많은 거리의 가구들이, 그것도 가장 최신의 ..

화장실 속 유혹의 기술 2006/08/08

언제부터인가 휴대폰 폰카가 기본사양처럼 되면서 때로는 술에 취해서, 때로는 맨정신에 쓸데없이 자주 이것저것 사진을 찍게 되곤 합니다.얼마전 휴대폰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두달쯤 전 찍은 사진을 하나 찾았습니다. 뭐 그리 아름다운 사진은 아닙니다. 사실은 좀 지저분한 사진이랍니다.바로 한 출판사에 갔다가 찍은 이 화장실 호소문입니다. 여성들이야 잘 아실 수 없으실테지만, 남자들(비속어로 `서서쏴'들)은 그 신체구조상 훨씬 화장실을 더럽힙니다. 바로 `잔뇨'(세상에 이런 용어도 있더군요)라는 것입니다. 쉽게말해 소변보다 칠칠맞게 몇방울씩 흘리는 것이지요.그래서 남자화장실에는 어디가나 이렇게 흘리는 분들을 다그치는 호소문들이 있습니다.가장 유명한 것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그 말이..

雜家의 매력 2018.06.05

공간과 문화에 남겨진 한 전문 기자의 소중한 흔적들 – 구본준(1968-2014)

슬로뉴스 원문 구본준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2014년 11월 12일 이탈리아에서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고 구본준 한겨레 기자는, 국내에 보기 드문 건축 전문기자이자, 동시에 만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닌 대중문화 애호가였으며, 나아가 열정적인 블로거였습니다. 고인이 그간 남긴 수많은 좋은 글을 기억하며, 그의 블로그에서 10개의 글을 다시 소개하고자 합니다.아래에 첨부한 이미지들은 구본준 기자의 각 블로그 포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건축과 공간에 관하여전통과 도시를 망치는 최고의 방법 2013년 5월 20일거리가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도시를 편리하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미감과 취향을 반영하게 된다. 그래서 거리가구를 보면 도시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 시대의 미감, 그리고 한국인의 ..

구본준 기자 2018.06.05

모든 세상사 호기심 넘쳤던 글쟁이 ‘천국’이 궁금했을까2014-11-13

구본준 기자. 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제공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기자 구본준입니다.’ 구본준(46·사진) 기자는 블로그나 책의 자기소개란에 늘 이렇게 적었다. ‘땅콩집을 지은 건축전문기자’로 유명했지만 사실 그는 만화, 출판, 가구, 음악, 여행 등 훨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글을 전문성 있게, 때로는 가볍고 재미있게 적어 올리는 그의 블로그와 트위터는 늘 많은 친구와 이웃들로 북적였다.지난 12일 오후 멀리 이탈리아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건축문화재 보존과 복원과정’이라는 단기교육과정에 참여해 마지막 베네치아 취재 일정을 거의 마친 참이었다. 일행과 밤까지 어울리고 호텔방으로 돌아간 그는 아침이 되도록 ..

구본준 기자 2018.06.05

[편집국에서] 세 번의 이별 / 김영희 2014-11-19

백세인생, 호모 헌드레드…멋진 실버 인생을 꿈꾸라는 담론과 기사가 넘쳐나지만, 나이 듦은 두려운 일이다. 죽음이 동반할 육체적 고통의 공포 탓은 아니다. 끝내 스스로 세상을 뜬 홀로코스트의 증언 작가 장 아메리가 에서 말했듯, 점점 세계와 공간에서 제거되어가는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지 두렵기 때문일 게다.이 가을, 세 번의 이별을 했다.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글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준, 세상과 늘 연결되어 있던 세 사람. 그들의 ‘살아낸 시간’을 여기 기억하고 싶다.지난달 일본의 국제정치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사카모토 요시카즈 선생이 숨졌다. 직접 딱 한 번 만났고 이메일과 편지를 주고받은 게 고작이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우연히 접한 그의 책과 논문들은 일본의 진보적 ..

구본준 기자 201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