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서울의 중심에서 촌스러움을 외치다 2008/02/05

딸기21 2018. 8. 12. 14:23

여기, 들어선 지 얼마 안되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먼저 모습을 보시지요.


 

하얀 돌 조형물 중간에 까만 돌 네모판이 있고 그 안에 한자로 ‘효’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형물 모양 자체도 한글 ‘효’ 글자 모양입니다.



이 조형물은 서울 중구청 앞 광장에 들어선 ‘효 헌장탑’입니다. 중구가 ‘효도 특구’임을 알리고, 효 헌장을 소개하려고 지난 11월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당시 그 소식을 전하는 신문기사에서 저 조형믈을 봤는데, 그 모양새가 무척이나 ‘복고풍’이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중구청 앞에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조형물을 직접 본 뒤 제가 받은 느낌은 다섯 글자였습니다. ‘요즘 세상에!’.


최근 들어 디자인과 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공공 기물이나 조형물들의 수준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 조형물은 그런 흐름을 홀로 거슬러 70년대 구호를 외쳐대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촌스러운 조형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중구, 서울의 중심에서 촌스러움을 외치다


왜 남들이 정성껏 마련한 저 조형물을 비난하느냐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 조형물을 제가 감히 촌스럽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모양새 때문이 아니라 저 탑을 세운 취지와 과정이 심히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선 저 디자인의 수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그건 ‘취향의 차이’로 여겨질 수 있기에 넘어가겠습니다.)


저 헌장탑을 세운 목적은 분명 효 헌장을 알리고, 효도를 잘하자고 사람들이 자극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 헌장탑을 보면 그런 목적보다는 오히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구청장의 자화자찬이란 목적 말입니다.


중구가 효도 특구가 된 것은 누가 지정해준 것은 아니고 스스로 지정한 것입니다. 중구가 낸 보도자료를 보니 서울시 전체 노인인구 비율은 8%인데 중구는 11.2%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고 하네요. 그래서 중구는 지난해 10월 ‘효 실천 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위원장은 당연히 중구청장입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효운동을 할만도 하고, 또 취지도 좋다고 하겠습니다. 여기까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효 실천 추진위의 고문이라는 인사들의 면면이 흥미롭습니다.


김종필, 이현재, 이수성 전 총리, 박성범 국회의원, 오영교 동국대총장, 장경순 전 헌정회장, 임방현 헌정회 부회장, 이문식 대한노인회 중구지회장, 김장환 민주평통 고문 등이 고문을 맡았다고 합니다.


박성범 의원이 들어간 것은 이해됩니다. 중구 국회의원이니까요. 김종필 전 총리도 중구에 사는 중구 주민입니다. 동국대 총장도 동국대가 중구에 있으니 이해됩니다.


그런데 왜 이헌재, 이수성 전 총리가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헌정회는 왜 전직 회장과 현직 부회장이 모두 들어갔는지? 헌정회가 효도 전문가 집단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엔 이런 분들 이름을 많이 넣고는 하니 넘어가겠습니다.


문제는 저 조형탑의 ‘꼴’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니 저 조형물은 중구 구청장, 그리고 별 효도 전문성이 없어보이는 고문님들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읽혔습니다.



효헌장탑 옆에는 효 헌장탑 못잖게 이 커다란 동판을 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동판에 쓴 내용을 보면 ‘헌장탑을 만들며’란 취지 부분은 달랑 두 줄입니다. 나머지 아래 대부분 글씨들은 모두 고문 등의 명단입니다.


게다가 저 대단해 보이는 동판은 나중에 추가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효헌장탑 자체에 저 명단을 새겨놓았는데 굳이 옆에 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탑 뒷면을 보시죠.



의아한 것은 왜 이렇게 저 고명하신 이름들을 헌장탑 자체에도 새기고, 그 옆에 또 따로 동판을 만들어 세웠냐는 겁니다. 조형물에 명단을 새겼는데 뒷쪽이어서 잘 보이지 않자 따로 동판을 만들어 세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공공조형물들은 많이 발전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관공서 조형물에서 벗어나 전문 작가들이 만들기도 하고, 시민들이 만지고 걸터 앉게 만들어 거리 가구 역할도 하게 합니다. 그런 변화들이 2000년대 이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구의 저 헌장탑은 예전 관이 만들던 지루하고 딱딱한 조형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중구에선 여러가지 반론을 대실 수도 있을 겁니다. 우선 저 조형물에는 중구청 돈이 하나도 안들어갔습니다. 저 조형물은 5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한국효도회에서 작가를 선정해 모 교수님을 골랐고, 예산도 모두 효도회쪽에서 댔다고 합니다. 중구에선 저 헌장탑을 중구의 예산 한푼 안들이고 중구청앞에 놓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단체 돈 5000만원을 들인 작품에 중구청장과 위원회 고문들 이름을 펑펑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 효도회는 왜 자기네들이 그 큰돈을 쓰면서 모든 생색은 중구 혼자 내도록 해주었을까요? 너무나 너그러운 단체여서일까요? 그래서 더 궁금합니다. 효도회는 저 5000만원을 어디서 마련했는지 말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너그러운 돈이 많다니 놀랍습니다.


저 조형물이 중구가 만들었든, 중구가 기증 받은 것이든 저 조형물을 설치하게 된 과정, 그리고 설치한 장소 등으로 보아 저 조형물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중구청입니다. 한국의 수도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도심이며 가장 역사가 오랜 중구를 대표하는 조형물로는 제가 보기엔 수준 미달입니다. 


조형물은 모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이 사랑하게 되는 조형물이라야 합니다. 시민들이 조형물을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관심가질 이야기가 얽힌 조형물은 절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여기 덩치만 보면 아주 조그맣고 전혀 화려하지 않은 조형물이 있습니다.



저 동상은 1923년 일본 도쿄대 우에노 교수가 받아서 기르게 된 ‘하치’란 개입니다. 교수는 하치를 너무나 사랑했고, 하치도 매일 교수가 기차를 타는 시부야역까지 따라가 주인을 배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수는 강의 도중 갑자기 쓰러져 숨지고 맙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개 하치는 시부야 역을 떠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렸다고 합니다.(영화 <하치 이야기>를 보시면 이 충견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하치가 주인을 기다렸던 시부야역 북쪽 입구 광장에 저 조형물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하치의 이야기를 저 동상을 통해 전해들으며 칙칙하고 우중충한 시부야역 광장을 조금이나마 애정어린 눈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하치 동상은 그래서 시부야의 명물이 되었고,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애용하는 ‘살아있는 조형물’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일본 만화 <시티헌터>에는 살인청부업자에게 저 동상 위에서 꽃을 들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려 골탕을 먹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중구청의 효 헌장탑과 저 하치 조형물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이 분명 무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 조형물을 만드시는 분들이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좋아할만한 것이라야 조형물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집에 혼자 놓고 즐길 조각품이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공공조형물이기 때문입니다.


중구가 진정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조형물을 세우고 싶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찾아 그 이야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기리는 조형물을 기획해야 할 것입니다. 저 효헌장탑이 촌스러운 이유는 시민들이 아니라 중구청장만 감동할 수 있는 조형물이기 때문입니다.


똘똘한 지방 공무원, 조형물로 하나로 세계를 놀래키다


중구청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구청 공무원이 무슨 엄청난 힘이 있는 줄 아느냐”라고 말입니다. 또는 “너무 지나친 기대를 한다, 수준 높은 조형물은 국가가 해도 잘 안 나온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상을 높게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실제 높은 이상을 조형물에 담아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이 조형물입니다.



저 조형물은 <북쪽의 천사>라는 작품입니다. 영국의 유명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영국 게이츠헤드란 곳에 있습니다.


흔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모양의 대형 조형물로 세가지를 꼽습니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리오 데 자네이로에 있는 예수상,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저 <북쪽의 천사>입니다. 자유의 여신상과 리오의 예수상이 비교적 오래된 명물들인데 견줘 저 북쪽의 천사는 사실상 생긴지 10년 정도 된 새로운 조형물입니다. 그만큼 빨리 유명해진 것입니다.


저 북쪽의 천사는 ‘도시를 살린 조형물’로 유명합니다. 낙후되어 있던 인구 20만의 영국 소도시 게이츠헤드가 초대형 공공미술품인 저 북쪽의 천사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이 몰리고 도시도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게이츠헤드와 뉴캐슬 사이의 아무런 볼만한 것이 없던 평원에 들어선 북쪽의 천사는 영국을 대표하는 공공미술로 평가받습니다.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실로 거대한 조형물입니다. 날개 길이만 54미터로, 제트비행기 크기만합니다.


처음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커 공공조형물로 적합치 않다는 비판도 많았고, 전혀 천사처럼 보이지도 않는 쇳덩어리에 왜 돈을 쓰느냐는 비난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직접 가본 사람들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너른 평원에 저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는 느낌은 아주 새로웠고, 묘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제 세계 각국에서 저 천사를 만나보러 관광객들이 게이츠헤드에 찾아가고 있습니다.


게이츠헤드의 사례는 잘 만든 조형물 하나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와 게이츠헤드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조형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보여준 게이츠헤드 공무원들의 자세는 분명 우리가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별볼일 없던 게이츠헤드란 작은 지방 소도시에 이 세계적인 조형물이 들어서게 된 출발점은 게이츠헤드 의회 공무원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진짜로 실현되게 된 과정에는 오랜 세월 쏟아부은 헤아릴 수 없는 노력과 정성이 녹아 있습니다.


게이츠헤드 의회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도시의 상징이 될 공공조형물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채택된 뒤 작가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고장의 역사가 될 그 작품을 당연히 ‘세계적인 작가’에게 맡기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명품을 구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유산 차원에서 책임감있게 선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 작가를 고르고자하는 기획력 자체를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유명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도 치밀하게 진행했습니다. 게이츠헤드 의회는 영국 최고의 미술관인 테이트갤러리, 요크셔 조각공원 등 유명한 미술관련 단체들에게 제안서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조각가 앤터니 곰리가 제안한 의견을 골랐습니다.


작가로 선정된 앤터니 곰리는 세계적인 미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그 작품 자체의 기술적 완성도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 놓이는지, 그리고 그 장소와 어떻게 작품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합니다. 곰리는 그렇게 장소성과 미술을 결합시키는 독특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대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곰리는 그런 자세를 최대한 보여주었습니다.



곰리는 1994년 먼저 자기 몸으로 모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한 뒤 게이츠헤드 중학교 미술선생님과 교장선생님에게 이 작업에 대한 계획을 설명합니다. 작품이 들어설 지역 분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돋보입니다. 


2년 뒤인 1996년에는 훨씬 정교해진 모형이 나옵니다. 의회 공무원들은 단순히 게이츠헤드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뉴캐슬과 영국을 대표하는 명물이란 인식하에 대형 프로젝트로 추진합니다. 그리고 1997년에 이 조형물을 만들 제작소가 결정됩니다.


이 천사를 만들기 위해 제작을 맡은 팀은 무려 2만2000시간을 할애했고, 디자인과 제도 과정에 2500시간을 소모했습니다. 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쓰러지지 않도록 천사의 발 아래로 콘크리트 165톤을 20미터 깊이로 설치했습니다. 천사 몸체는 눈비에 조형물이 상하지 않도록 특수 제작한 쇠와 구리 208톤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완성된 것은 1998년, 곰리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지 4년 만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가 게이츠헤드란 소도시의 지방의회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충견 하치의 동상은 좋은 이야기가 담긴 조형물은 절로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북쪽의 천사는 좋은 조형물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로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의 조형물들은 어떤가요? 영국의 낙후된 지방  소도시가 한 것을 메트로폴리스 국제도시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앞서가는 중구청이 못하겠습니까? 


중구청을 비롯한 대한민국 지자체들이 시민들에게 그런 희망을 갖게 만들어주길 바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적어도 촌스럽기 짝이 없는 지자체장 이름새기기용 조형물은 제발 만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구자, 앤터니 곰리


저 <북쪽의 천사>를 기획한 앤터니 곰리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그는 늘 사람을 소재로 삼으며 자기 몸에 석고를 씌워 작품을 구상합니다. 왜 석고를 씌우냐면, 그 석고틀로 자기 자신을 계속 찍어내는 것이 그의 작품이 됩니다. 그 석고틀이 인간의 겉과 속 두 측면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작품 콘셉트라고 합니다.



위 사진은 곰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어나더 플레이스>란 작품입니다. 리버풀의 크로스비라는 물빠지는 해변에 놓은 모습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 작품은 저 곳에서 설치된 뒤 일정 기간 뒤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 전시를 합니다. 리버풀 이후의 행선지는 뉴욕으로, 저런 식으로 세계 해번을 돌아다니는 작품입니다.


다음은 곰리의 작품으로 런던 템즈 강가에 들어선 화제작 <양자 구름>(Quantum Cloud)입니다. 철골 구조 사이로 사람 형태가 보이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게이츠헤드를 비롯한 영국의 유명 공공미술과 디자인,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디자이너 박훈규씨의 재미난 영국 방문기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를 보시면 더욱 자세히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등의 볼거리와 깔끔한 글, 빼어난 일러스트, 그리고 상쾌한 시각이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기행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