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귀기

안양에 내려 앉은 보석 2007/12/27

딸기21 2018. 7. 19. 11:39

국내에 지은 세계적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에 있습니다.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이니 서울, 그것도 최고 번화가에 들어서는 것이 당연할 듯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건축물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았을뿐,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조용히, 그것도 서울이 아닌 곳에 들어선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안양에 있는 ‘알바로 시자홀’이란 건물입니다.


알바로 시자홀은 설계자가 건축가 알바로 시자여서 붙은 이름입니다. 전시 등 각종 문화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으로, 안양예술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통 먹고 마시는 곳으로 여기기 쉬운 ‘유원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상징적 건물로 이 알바로 시자홀을 지었다고 합니다.


자연속에 둥지처럼 들어선 알바로 시자 홀. 사진=김재경 작가

 

이 알바로 시자홀이 이름이 대통령자문 기구인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이하 선진화위원회)가 뽑는 12월 ‘이달의 건축환경문화’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이달의 건축환경문화’는 지어진 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건축물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건물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려면 적어도 지은 지 2~3년 정도는 흘러야 한다는게 정설입니다. 알바로 시자홀은 2006년 5월에 건립된 건물이니 1년반 정도 지난 건물입니다. 알바로 시자가 기본 설계를, 그리고 알바로 시자의 제자인 건축가 김준성씨가 실시설계를 했습니다.

 

디자인한 알바로 시자란 이름은 아마도 많은 분들께는 무척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유명 건축가입니다. ‘대가’란 칭호가 붙은 몇 안되는 건축가 중 한 명입니다.

 

시자는 올해 72살입니다. 그런데도 활발히 활동중입니다. 모든 예술장르 중에서도 특히 건축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에야 제대로 작품세계를 펼치는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신동’이 없다는 이야기죠. 삶, 장소, 인간, 도시, 자연 등에 대한 폭넓은 인식이 갖춰져야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올테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이 알바로 시자는 올해로 53년째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안양 시자홀 말고도 2010년 완공되는 연세대 경영대 설계도 맡아 70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건축가라 하겠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 사진=김재경 작가


이 알바로 시자 홀의 특징과 매력을 말하자면 ‘기하학적 구조의 미학’, ‘바라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디자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내부 공간’ 등등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로 느낌이 제대로 오겠습니까. 일단 어떤 건물인지 한번 보는 게 중요하겠죠. 사진은 모두 선진화위원회에서 보내준 김재경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먼저 건물 겉모습입니다.

 

사진=김재경 작가


이제 내부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내부는 기둥이 없는 단일 공간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빛과 면과 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다양한 볼거리를 연출합니다.

 

사진=김재경 작가


건축계에서는 외국 작가가 한국에 좋은 건물을 남긴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 이 알바로 시자홀을 꼽고 있습니다.(물론 모든 분들의 견해는 아닙니다.)

유명한 대재벌의 본사 사옥도 아니고 근사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건물도 아닙니다. 안양사람들도 가보지 않으면 이런 건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서울도 아닌 중소 도시에 들어선 건물이지만 미학적, 건축적 평가는 그 어떤 건물보다도 좋습니다.

 

이 건물은 지금 우리의 건축 현실과 문화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진=김재경 작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들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에 대해 마치 건축물을 명품 브랜드 핸드백 사듯 구매하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도 강합니다만 랜드마크 건물도 필요하고 유명건축가 작품이 워낙 없으니 어느 정도는 외국 거장 작품들이 더 들어와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편입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엇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견줘 외국 유명건축가들의 작품이 정말 별로 없는 것일까요?


사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없다고 느껴지느냐, 그게 참 묘한 문제입니다.


국내에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은 있으나 그 건축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물들이 적은 탓입니다. 시저 팰리,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최고로 잘나갔던, 잘나가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이미 국내에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대표 작품집에 들어갈만한 건물은 없습니다.


시저 팰리가 설계한 교보빌딩. 일본에 있는 미국대사관 건물의 복제품이다.


이 때문에 국내의 재벌들이 유명 건축가란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저자세로 설계를 부탁해 건방진 외국 건축가들의 봉 노릇을 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나 도시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존 작품들과 차별성 없는 비슷한 아류작을 콧대 높게 비싼 값으로 팔아먹는다고 많은 국내 건축가들이 분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건물이 들어설 한국 땅에 한번 와보지도 않고 슥슥 스케치해 작품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건축에서 중요한 ‘장소성’을 등한시한다는 이야깁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현대산업개발 사옥. 호평도 많지만 ‘이름값만 비싼 외국 건축가의 극단적인 장난질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그러면 알바로 시자홀은 어떻게 서울도 아닌 안양에, 그것도 예상 이상으로 저렴한 설계비를 주고도 들어설 수 있었을까요?


알바로 시자홀은 안양시가 죽어가는 안양공원을 살리기 위해 추진한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습니다. 공원입구 전체에 조각공원을 만들고 부근에 건축가와 설치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공원을 꾸미는 구상이었습니다. 전체 10만평에 예산이 29억원뿐이어서 외국건축가들에겐 건당 1200만원의 설계비를 책정했다고 합니다. 취지가 좋아 건축 대가가 기꺼이 작업을 맡은 것입니다.


건축가들은 거장일지라도, 아니 거장일수록 설계비 등에 오히려 구애를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설계비가 적어도 흔쾌히 수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로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프로젝트에 더욱 목말라하는 것입니다. 컨셉만 좋다면, 그리고 이야기만 잘 되면 얼마든지 유명건축가들도 지구 반대편 지방 도시에 자기의 작품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자홀이 들어선 안양예술공원에서도 그런 사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인계의 거장 안드레아 브란치의 경우 역시 안양예술공원에 <소풍벤치>란 공공미술작품을 남겼습니다. 취지가 좋고 흥미가 당겼기 때문에 적은 비용에 전혀 신경안쓰고 세계적 거장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입니다.


시자홀은 그런 점에서 미학적 측면을 떠나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건축은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건축이 문화이고 예술인 까닭입니다.


주말 나들이 갈 곳이 없어 고민스러울 때, 안양 나들이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서 스타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 뱀다리 하나


알바로 시자홀에 대해 더 자세하고 제대로 듣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건축평론가 이용재씨의 글을 소개합니다. 재미있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뱀다리 둘


아쉽게도 알바로 시자도 이 건물을 설계는 했지만 안양에 직접 와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시자를 만난 건축가 정기용 선생으로부터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몸이 안좋아 안양을 못가본 시자는 “안양에 가보지 못해 그곳의 향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며 시자홀에 대해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세계적 거장인데도 그의 연간 프로젝트 가운데 비용면에서는 가장 작았을 시자홀에 대해 그정도로 마음 쓰는 데 같은 건축가로서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고 합니다. 그가 한국에 성의없이 건물을 남긴 다른 외국 건축가들과 비교되는 대목이자 그가 왜 거장인지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