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家의 매력

카메라의 세계2-가수 비가 니콘 모델인 이유는? 2007/10/05

딸기21 2018. 6. 19. 19:27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불리는 것들이 있다. 자동차와 오디오, 그리고 카메라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어른들을 매혹시키는 장난감으로 꼽힌다. 


토이카메라 홀가. 디카와는 다른 아날로그 필카의 독특한 느낌을 원하는 층들에게 인기를 모으는 틈새 카메라다.


자동차는 매력적이지만 너무 비싸고 덩치가 커 여러 대를 가져보는 즐거움을 맛보기가 99.99% 사람들에겐 불가능하다. 오디오도 자동차보다는 덜하나 덩치와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자동차처럼 타고 다닐수도 없고, 카메라처럼 들고 다닐 수도 없다!


반면 카메라는 크기가 작아 보관도 쉽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마련하고 즐길 수 있는 어른용 장난감이 됐다.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장난감, 카메라


앞글에서 썼듯 카메라는 어떤 기계 제품보다도 주인과 교감한다. 얼굴에 비벼대는 휴대폰도 카메라처럼 사람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가격은 비슷해도 휴대폰은 사람들에게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반면 카메라는 소장품으로 대접받는다.


왜 그럴까? 사람이 직접 조작해서 결과물을 뽑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카메라는 ‘추억’을 담아주기 때문일 것 같다. 오랫만에 앨범을 꺼내면 사진들에 담긴 추억과 함께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지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고급 카메라 하셀블라드 h3d. 3900만 화소에 가격이 3천만원 이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메라를 아끼고, 점점 관심 쏟다 보면 자기 정체성의 상징처럼 고르게 된다. 카메라에 더욱 빠진 이들은 자기가 고른 메이커에 충성심을 발휘하며 ‘니콘빠’ ‘콘탁스빠’ ‘펜탁스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란 정말 묘한 녀석이다.


그런데, 항상 필름만 쓰던 카메라가 디카로 바뀌면서 카메라도 소모품처럼 되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그렇다는 말이다. 디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란 것의 매력을 알려주었지만, 반대로 기계 자체는 오히려 가전제품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건 묘한 아이러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로모카메라 같은, 화질은 떨어져도 느낌이 독특한 카메라에 다시 눈길을 돌리고, 또 잠시 잊었던 필름카메라의 매력에 새삼 눈뜨게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익힌 10대나 20대 젊은층들이 오히려 필름카메라의 ‘불편한 맛’ ‘독특한 맛’을 발견하곤 필름 카메라로 가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다.


예상못한 우연한 효과가 새로운 재미를 주는 로모카메라.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개구리눈 로모카메라.


사진이란 취미나 이미지의 미학을 떠나 카메라란 기계 자체에 대한 관심 측면에서도 에전 필름카메라들은 재발견 되고 있다. 지금의 카메라들과는 다른 기능적 디자인의 매력도 한몫한다. 클래식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 카메라들은 이제 더욱 매력적인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전 카메라가 비쌌던 탓에 수동 카메라들은 ‘있는 집’에서나 갖는 물건이었다. 지금 40대 이상에게 수동카메라는 결혼같은 계기를 통해 정말 큰맘 먹고 사는 로망의 물건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도 언젠가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마음먹는 것이 이른바 수동 카메라였다.


그런 카메라들이 지금 DSLR로 진화한 것이지만, 그런 정서와 감성까지 고스란히 함께 계승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카메라 업체가 가지는 아이덴티티에 동화되고 매혹되며 심지어 숭배까지 하는 카메라 소비자들의 습성만큼은 그대로 이어졌다.


사진 못잖게, 또는 사진 이상으로 사진기란 기계 자체에 매혹된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정말 가장 아름다운 기계다. 산업디자인 예술품이자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계다. 거기에 각 메이커의 이름이 지닌 느낌이 더해진다. 가령 롤라이35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카메라 이마에 새겨진 롤라이란 글자가 주는 그 매력은 다른 어떤 카메라도 대신 못하는 특별한 그 무엇이다.


롤라이35.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카메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렌즈를 카메라 몸체에 밀어넣는 디자인은 당시로선 무척이나 파격적고 혁신적이었다. 1966년부터 1982년까지 20여년 동안 생산되며 20여종이 나왔을만큼 인기를 누렸다. 중간에 원가 절감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는데, 그래서 ‘메이드 인 저머니’가 ‘메이드 인 싱가포르’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특히나 카메라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이나 기능의 미묘한 차이를 소유자들이 자기의 개성과 철학의 차이로 받아들이며 선택하기 때문에 더욱 제조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소비자들은 그런 선택기준을 뒷받침하는 나름대로의 기준과 이유를 강하게 주장한다. 이처럼 기기를 전문가 못잖게 꼼꼼히 따지고 구매하며, 같은 메이커 사용자끼리 취향을 공유하며 나름 논리를 만들어내는 소비자들의 행태는 다른 소비재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각 메이커별 동호회는 물론 인기 모델별 동호회가 활발하게 조직되어 있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믿는 카메라 구매의 기준과 철학은 지금 카메라 시장 판도와 각 기업들의 위상을 결정짓는다. 카메라팬들의 취향을 보면 시장을 읽을 수 있고, 카메라의 진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카메라에 대한 각 메이커별 유저들의 믿음은 지금 카메라 시장을 지배하는 믿음과 그 믿음을 강조하는 기술들을 반영한다.


남자니까 니콘, 일등 캐논, 감성의 펜탁스, 후지의 색감


가령 니콘이나 캐논, 펜탁스 팬들에게 소니는 카메라 회사가 아니라 가전회사일뿐이다. 반면 디카와 함께 생겨난 소니팬들에겐 소니의 오렌지색 렌즈 테두리와 알파 마크는 다른 카메라와는 다른 소니의 자존심이다. 미놀타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최첨단 카메라가 소니라고 소니미놀타팬들은 굳게 믿는다.


캐논 팬들에게 캐논이란 브랜드는 그 어떤 카메라보다도 앞선 기술력의 상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표준을 만들어내는 업체, 업계 1위란 위상, 그런 것들이 캐논의 자랑거리다. 디지털카메라의 심장인 촬상소자를 만들어내는 몇 안되는 업체이자, 1:1 풀프레임 바디를 독주해온 업체가 캐논이란 점이 캐논 팬들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캐논 이외의 카메라업체 팬들에게 캐논의 힘은 기술력이 아니라 ‘마케팅능력’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의 상황을 잘 보고 알맞게 치고나오는 제품 기획력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늘 캐논에게 따라다닌다. 


이는 캐논 특유의 ‘상술’로 평가받는 제품 출시전략 때문이다. 보급기는 보급기답게, 중급기는 중급기답게 내는 탓이다. 늘 한 두가지 최신 기능을 의도적으로 제외해 싼 모델을 사는 이들을 아쉽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쓰다보면 아쉬워 상위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하게 만든다고 캐논을 비난한다.


반면 캐논 특유의 화사하고 맑은 발색은 인물 사진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니콘의 경우 흔히 투명한 느낌이 지나쳐 ‘시체 색감’이라고 놀림받는다.


두루 무난하게 쓰기에 너무나 좋은 캐논. 특히 인물찍기에 좋은, 대신 싼 것 사면 기능이 조금은 부족한 캐논. 그럼 그 최대 라이벌 니콘은 어떤가.


니콘은 누가 뭐래도 필카 마지막까지 최고의 카메라 회사였다. 예리한 니콘 특유의 사진은 보도용으로 최고였다. 사진 최고의 프로들인 사진기자들의 사진기는 언제나 니콘이었다. 적어도 2000년대 전까지는.


그러나 디카로 바뀌면서 포토샵같은 후보정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자유자재로 보정하게 되면서 니콘의 그런 사진 특징은 빛을 잃었다. 반면 예전 보도용이나 전문가용으로 쓰기에는 약점으로 평가받던 캐논의 화사한 사진은 디지털 시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사람 찍기에 좋고, 보도용으로 쓰려면 약간 보정만 하면 되니까. 거기에 디지털 시대에 발빠르게 대처한 전자기술이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신문사 카메라는 모두 캐논 일색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니콘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인가? 아니다. 판매 1등이 아닐 뿐이다. 고유의 정체성은 엷어지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캐논 못잖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리고 캐논에겐 없는 독특한 니콘만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남아있어 보다 강하게 마니아를 빨아들이는 힘을 유지하고 있다.


니콘의 디자인 하이라이트인 바디의 빨강 포인트는 니콘만의 무기다. 까만 바디를 가로지르는 빨강색 세로줄, 또는 디지털 바디 손잡이 위에 새긴 빨강 삼각형. 그 삼각형 하나 때문에 니콘을 고르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니콘의 유명모델 F4. 왼쪽 그립 부분의 빨간 줄은 이후 니콘 디카의 빨간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니콘 디자인의 상징이다. 니콘의 유명 모델 F3과 F4는 특히 20세기 산업디자인계의 슈퍼스타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지아로가 세운 이탈디자인은 자동차디자인에서 최고 업체로 군림했는데,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여기에 ‘남자는 니콘’이란 다분히 비논리적이면서도 결정적인 통념이 있다. 니콘의 주력 모델인 d80의 광고모델이 가수 ‘ 비’인 것은 그냥 단순하게 나온 선택이 아니다. ‘남자는 니콘’이란 니콘 사용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남성적 매력이 강한 비를 내세우는 것이 니콘이란 회사에겐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상큼한 여성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한다는 것은 니콘에겐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 없다.


하나 더, 니콘은 캐논보다 소비자에게 더 친화적이란 평을 듣는다. 캐논처럼 보급기나 중급기라고 기능 일부를 빼지 않고 화소수만 적을뿐 고급 기능을 그대로 집어넣는 것(물론 이건 펜탁스나 올림푸스도 마찬가지다)이다. 이는 캐논팬들을 공격하는 니콘팬들의 철학적 무기다.


그럼 다른 회사들은 어떨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캐논과 니콘의 독과점이 더욱 강해진 탓에 사람들은 카메라 회사가 예상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올림푸스와 펜탁스가 있다. 


올림푸스는 ‘다른 카메라’다. 디자인도 그렇고 저장매체도 늘 혼자 튄다. 소니처럼. 또한 기술적으로는 나름 ‘포써즈’ 진영의 맹주다(물론 따라온 업체는 파나소닉 밖에 없지만). 이름값으로 먹고사는 캐논 니콘에 대항하다 보니 같은 값에 더 기능을 많이 넣어 팔아야 하는 숙명 탓에 가격도 ‘착하다’! 동급 모델 가운데 언제나 가장 기능이 많은 편이다. 먼지떨이도, 손떨림도 팍팍 넣어주어 다른 업체들이 따라오게 만든 회사가 올림푸스다. 


소형화 경령화에 올림푸스만큼 집착하는 회사도 없다.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DSLR’, 이게 꼭 좋은 거라곤 못하지만 여성 사용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올림푸스의 예전 주력모델 E-330. 올림푸스의 DSLR E시리즈는 라이브뷰 등 소비자 편의기능을 경쟁사보다 먼저 도입했다.


그러나 카메라 기계적 성능을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올림푸스의 ‘포써즈’(설명 길게 하면 복잡하니까 대충 넘어가겠다)는 분명 의심거리다. 다른 카메라들보다 이미지를 기억하는 판대기 크기가 작으니 사진이 본질적으로 화질이 떨어지지 않겠냐, 라고 폄하한다. ‘한번 써보고나 말해라’고 맞받아치지만 써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그게 늘 올림푸스팬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러면 이제 한때의 강자들이었던 펜탁스와 코닥을 보자.


카메라광들은 우스개로 이렇게 말한다. “장인정신 하면 펜탁스. 그러다 회사가 넘어갔지만.” 코닥은? “장인정신 하면 코닥. 그러다가 DSLR 사업 접었지만.”


시장 점유율을 보면 틀림업이 실패했다. 마이너 업체로 전락했으니. 그러나 골수 카메라팬들은 호평하는 회사, 그게 바로 코닥과 펜탁스다.


펜탁스 팬들이 늘 내세우는 것은 ‘감성’이다. 펜탁스는 감성적인 카메라란 것이다. 카메라란 게 원래 감성으로 가지고 놀자는 물건인데 왜 굳이 거기에다 더 감성을 논하는가. 그건 펜탁스가 늘 진한 발색으로 대표되는 강한 색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보정으로 원하는 색감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이전에 카메라 고유의 색감을 따진다. 필름색감, 로모색감, 그리고 펜탁스색감까지 미묘한 그 차이 때문에 돈을 쓴다. 


그래서 펜탁스 사용자들은 “펜탁스는 누가 권해서 펜탁스로 오지 않는다. 펜탁스를 쓰는 사람은 알아서 펜탁스로 찾아온다”고 말한다. B형이 많이 쓰는 카메라란 속설도 있다. 개성 강하고 감성적인(나쁘게 말하면 잘난 맛, 튀는 맛에 사는) B형 사용자들이 특히 많다는 비공식적인 추정이 나돈다.


펜탁스의 빅히트 모델 LX의 기념 한정판 골드 버전. 펜탁스는 기술면에서 시장을 선도했던 업체다.


펜탁스는 카메라 본질적인 면에서 분명 칭찬받을 구석이 있는 회사다. 기술적으로 보면 지금의 싱글렌즈리플렉스 시스템의 틀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회사다.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붙은 기술을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이 선보였다.


소비자 중시 측면에서 보면 더욱 고마운 회사일 수가 있다. 펜탁스는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의 렌즈들을 거의 대부분 지금 디지털 바디에 쓸 수 있게 했다. 다른 회사들은 펜탁스처럼 호환성을 높이지 않았다. 치사하게 말이다. 결국 디카로 바꾸면 렌즈 교환비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펜탁스 사용자들은 거의 그런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됐다. 장롱속에서 30년전 아버지가 썼던 필카 렌즈를 찾아도 거의 대부분 지금 쓰는 아들의 디카에 끼워 쓸 수 있다. 이런 정책은 팬들에겐 큰 즐거움을 줬다. 오래된 수동렌즈를 디카 바디에서 수동으로 촛점 맞춰 쓰는 맛이다. 수동렌즈를 저렴하게 중고로 쉽게 사서 써볼 수 있는 맛은 펜탁스팬들의 자랑이다.


코닥은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든 회사다. 카메라보다는 필름의 역사를 만든 이름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필카 시절의 상당히 초기부터 코닥은 좋은 보급형 카메라들을 많이 내놨다. 최고급 바디는 아니었지만 코닥 카메라는 늘 가격 대비 성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싸고 좋은 카메라란 뜻이다. 물론 필름 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지만.


디지털 카메라 방식이 등장할 때 주도했던 업체가 바로 코닥이었다. 그만큼 기술력에서도 앞섰고, 지금도 앞선 편이다. 촬상소자를 만들어내니까. 


그러나 제록스가 컴퓨터 운영체계를 먼저 만들고 놓고도  정작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했듯이 코닥도 자기가 차려놓은 새로운 시장의 과실을 전혀 따먹지 못했다. 왜? 그건 기존 거대기업들이 가지는 딜레마다.


제록스가 새로운 거대시장 품목을 개발하고도 이를 상용화하지 못했던 것은 기존 복사기 사업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오지도 않은 컴퓨터 세상에 관심 쏟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안주하다가 결국 놓친 것이다.


코닥도 마찬가지였다. 필름이란 거대 시장이 있는데 굳이 디지털로, 그것도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를 새로 도전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서 이처럼 ‘안정적인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결국 코닥은 선발주자였으면서도 스스로 후발주자가 됐다. 코닥이 다시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캐논 등이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뒤늦게 달려들었으니 잘 될 턱도 없었다. 초기에는 그래도 코닥은 DSLR도 만들며 시장에서 제법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지금 코닥이 DSLR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코닥이 2003년 발매했던 DSLR ‘Pro 14N’. 1:1 바디여서 캐논 1Ds와 함께 가장 고급형이었다. 불과 4년전 모델인데 지금은? 일부 코닥팬들말고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비운의 모델로 멸종되고 말았다.

 

코닥의 디카 사업은 똑딱이 디카만으로 축소됐다. 똑딱이들도 늘 싸다. 성능은 좋다. 그건 카메라회사란 이미지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수십년 넘게 카메라를 만들었는데도 코닥이 카메라 회사란 느낌이 안드는 것은 참 이상한 부분이긴 하다.


코닥의 필름 라이벌 후지필름도 카메라를 만든다(사실 아그파도 카메라를 만들었었다!) 조인성이 나오는 선전으로 후지가 카메라도 만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졌다. 보급용 똑딱이도 좋은 평을 듣는데 후지필름 카메라는 코닥과 달리 DSLR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고 봐줄 수 있다). 바로 후지필름의 ‘S 몇 Pro’ 시리즈다. S1pro에서 지금 S5pro까지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후지의 바디들은 니콘의 것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온전히 후지것은 아니다.


그럼 뭐가 다른가? 후지의 기술이 들어가 바뀐 부분이 다르다. 후지의 이미지처리 기술로 변화를 주어서 후지의 ~프로 시리즈들은 색감면에선 펜탁스처럼 다른 색감을 낸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그 다른 색감 때문에 후지팬들은 후지카메라를 고른다. ‘역시 색감은 후지’라고 고르곤 그 색감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런 마이너 카메라업체들보다도 더 작은 카메라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카메라팬들 사이에서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그런데도 쓰는 사람들은 그 독특함을 늘 침튀기며 ‘이런 느낌 봤어?’라고 말하는 브랜드다. ‘시그마’다.


시그마는 DSLR 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모를 수가 없는 회사다. 이른바 ‘써드파티’ 렌즈 회사다. DSLR 최고의 특징이자 최고 짜증나는 대목인데, 이 카메라들은 렌즈를 같은 회사 것만 써야 한다. 니콘 쓰는 사람은 캐논 렌즈를 쓸 수 없고, 올림푸스 렌즈는 펜탁스에 끼워지지 않는다. 계속 자기네 것들만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 회사도 아니면서 렌즈만 따로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 캐논용은 물론 니콘용, 펜탁스용 등등을 다 만드는 회사들이다. 그 대표적인 업체가 시그마와 탐론이다. 카메라회사들이 내놓는 자사 전용렌즈보다 싼 값에 내놓아 큰 회사들이다.


이 렌즈회사인 시그마도 카메라를 만든다. 시그마의 디지털바디는 SD 시리즈인데, 투박한 생김새가 인상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앞서 말했듯 색감과 표현력이다. 이는 시그마만의 이미지 방식인 ‘포베온 방식’이란 덕분인데, 빛의 색깔을 인식하는 구조가 다른 카메라들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길거리 다니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이 시그마 카메라 쓰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을만큼 드문 바디지만, 가끔 접하는 이미지들을 보면 후보정 기술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정말 개성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그마 쓰는 사람들의 고충도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회사라는. 심지어 사진 기자들도 시그마가 카메라를 만든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다.흔히 말하는 ‘희귀 아이템’의 숙명이지만, 고르는 사람들에겐 그게 또 중요한 구매 이유일 것이다.


숨어있는 카메라 업체 시그마의 SD14.


왜 라이카와 콘탁스 이야기는 안하느냐고? 그러면 문제가 커진다. 마미야와 핫셀블라드, 그리고 롤라이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들 업체들은 지금 무척이나 안타까운 상황이 됐고, 골수팬들이 무척이나 민감하기 때문에 안 건드리는 것이 낫다, 라고 핑계를 대야겠다.


굳이 조금만 다루자면, 우선 콘탁스를 보라. 콘탁스를 접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메라는 묘하게 생간 미니디카 ‘i4r’ 뿐이다. 중고가가 오히려 출시가보다 비싸진 디카, 라는 수식어가 붙어 그나마 콘탁스란 이름에 에피소드 하나를 보태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이런 콤팩트 디카가 콘탁스의 본질이겠는가.


라이카는? 파나소닉이란 일본 브랜드를 통해서 계속 이름은 이어진다. 그러나 진정 라이카가 살아남아 이어가는 방식은 그렇게  ‘엇비슷한 디카’로서의 라이카는 아닐 것이다. 라이카는 올드 카메라로 팬들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숨쉰다.


콘탁스란 이름을 달고 양산된 마지막 인기 카메라 i4r. 깜찍한 디자인에 성능도 만만찮아 콤팩트 디카답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물량이 적고 단종되는 바람에 중고가가 신품가보다 오히려 더 비쌀 정도다.


그런게 카메라가 묘한 점이다. 이젠 사라진 제품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쓰이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물건이 공산품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그러면 유명 카메라 브랜드들은 어떻게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


그건 카메라계의 스타로 꼽혔던 인기모델들 덕분이다. 주요 카메라 모델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요즘 카메라팬들을 사로잡은 이런 신화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카메라의 역사와 경쟁 과정을 가장 잘 요약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곳이 뜻밖에도 우리나라에 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이다. 개인이 만든 사립 카메라박물관으로는 거의 최대 규모인 이곳에는 카메라팬들을 사로잡아온 스타 카메라들이 거의 모두 모여있다. 그 카메라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카메라들이 어떻게 부침을 겪으며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룰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