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초록빛이 묻어나는 정원-기요스미테이엔 2007/09/25

딸기21 2018. 6. 17. 11:46

지난 여름, 도쿄를 방문하면서 개인적으로 세웠던(?) 목표가 있었다면 ‘가능하다면 하루 1시간 정도 짬을 내 도쿄 시내의 정원이나 공원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갔던 곳 가운데 하나가 ‘기요스미테이엔’(淸澄庭園), 그러니까 기요스미정원이었다. 도쿄 시내 동편인 기요스미시라가와에 있는 작지만 제법 유명한 정원 공원이다.


정원을 찾아간 날은 무척이나 햇빛이 강했다. 워낙 빛이 강하면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모두 하얗게 보이듯 사물들의 색깔이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빛은 오히려 그런 강한 빛 속에서도 제색을 낸다. 그런 초록빛을 담뿍 머금은 곳이 바로 기요스미 정원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향연은 없지만, 오로지 농밀한 초록빛을 흠뻑 즐길 수 있는 곳, 그 초록빛을 눈에 새기고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정원속에 들어있는 아기자기한 볼거리는 어찌보면 사소한 것이리라.


들어가자마자 연못 풍경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기요스미 정원은 실은 그리 넓지 않다. 정원 자체도 연못과 그 주변길 정도다.


그러나 차분히 그 주변을 돌아보다보니 의외로 정원이 넓게 느껴진다. 


그 속에 살짝살짝 숨어있는 매력 포인트들을 발견하다보면 돌아보는 시간도 제법 길어진다. 빨리 돌면 20분에도 가능하지만 찬찬히 보려면 1시간도 부족할 수도 있다.



정원의 진정한 주인공은 앞서 말했듯 초록빛 그 자체다. 초록빛을 그대로 담는 연못 역시 마찬가지로 초록빛이다. 그 속에 또다른 주인공인 돌들이 있다.



기요스미 정원은 일본을 대표하는 재벌 미쓰비시 창업자가 19세기말 만든 정원이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기암괴석을 가져다 꾸민 것으로 유명하다. 배를 소유하고 있던 미쓰비시가는 정원 바로 옆 스미다강으로 돌을 운반해 정원에 놓았다고 한다.


돌을 좋아해 큰 기대를 했지만 중국의 정원석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고 차분한 돌들이 많았다. 과장된 모습이 부담스런 중국 태호석과 달리 외려 더 여유롭게 즐길만했다.



정원 곳곳에 물과 땅을 잇는 다리는 모두 이런 너럭돌로 만든 징검다리들이었다. 평범한 듯 후덕해보이는 돌들이어서 강한 이미지는 아니어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운치가 있다.



연못 뒤로 보이는 건물들 덕분에 오히려 정원은 더욱 빛나 보인다.


도심속에 이런 공간이 있어 얼마나 소중한가. 살면서 좋은 정원 하나 남기는 것, 그게 보통일이 아닌 이유다.



연못 물 위로 솟아있는 돌에는 어김없이 거북이들이 올라가 볕을 쪼이고 있었다. 붉은귀 거북일까? 원래부터 일본산은 아닐텐데, 진짜 연못의 주인은 거북이인듯했다. 오리와 백로, 다른 숨탄것들도 제법 있었지만 거북이만큼 강렬한 포스는 없는 탓에 거북이 세상이었다.


돌 하나에 떡하니 올라 저혼자 즐기고 있는 놈을 하나 만났다. 얼굴 생김새가 궁금해 똑딱이지만 되는만큼 줌으로 당겨보았다.



녀석도 눈치를 챈 모양인다. ‘저 인간은 뭐냐’는 투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얼굴을 정면으로 보자 코 모양이 왠지 거북이가 아니라 개처럼 보였다. 뭐든지 들여다보면 미처 몰랐던 생김새가 들어있다.



정원을 따라 돌다보면 예전 가정집이 있었던 터가 나온다. 빼어난 정원은 그대로 남았으되, 공간을 지배하던 주인이었을 건물은 사라졌다. 그 느낌이 묘하다.


집터에는 창포 꽃밭과 벤치가 남았는데, 그 호젓함이 쇠락한 자리가 주는 역설적인 아름다움 같은 것을 전한다.



정원의 핵심 아이콘은 연못 위 인공섬에 지은 ‘료테이’(凉亭)이다. 연못을 파고,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정경을 즐길 정자를 만드는 것이 일본식 정원의 특징이다. 물론 중국과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거기에 우주선처럼 보이는 석등을 설치하는 것이 일본식이다.



아쉽게도 저 정자, 료테이는 입장이 안된다. 이름대로라면 저 정자에서 시원하게 연못을 즐길 수 있을텐데. 정자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어떨까 궁금했지만, 무언가 아쉬움으로 남겨놓고 나가는 것도 이 정원을 즐기는 법이려니 하고 오후 일정을 위해 떠났다.


나오는 길, 망막을 물들이는듯한 초록빛과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다른 계절에 이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에는 또 어떤 철에 여기를 찾아갈 일이 생길까?


굳이 뒷날 다시 찾아가지는 않아도 우연히 지나가다 다시 한번 방문하는 것이 이 곳과 다시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