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지고 놀기

한국에 스카웃된 일본의 만화서점맨! 2007/07/24

딸기21 2018. 6. 12. 16:21

안녕하세요? 근무시간에 만화를 봐도되는 구본준 기잡니다. ‘만화’ 를 담당하거든요.^^


얼마전에 만화 전문서점에 다녀왔습니다. 올 봄 문을 연 서울 상도동 ‘코믹 커즐’이란 서점입니다. 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만화전문출판사 학산문화사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사실 국내에는 의외로 만화전문서점이 적습니다. 서울에도 홍대앞 한양TOONK 등 몇곳 되지 않는데, 코믹커즐이 새로 생겼으니 만화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이 서점을 찾아간 것은 이 곳에 ‘새로 오신 점장님’이 독특한 분이란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만화전문매장 전문가를 학산문화사 황경태 사장이 직접 스카웃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하러 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분이 일본에서 스카웃 되었다는 노다 마사토 부장입니다. 일본 서점맨이 한국에 스카웃됐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만화전문매장은 일반 서점과 어떻게 운영 방법이 달라야 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우리 나이로 마흔살인 노다 부장은 서글서글한 인상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며, 좋아하는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전문인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코믹커즐은 얼핏 보면 그냥 만화가 많은 서점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매장 꾸밈새가 조금 다른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피오피 광고’입니다. 피오피광고는 ‘point of purchase advertisement’의 약자입니다. 흔히 ‘판매시점광고’라고 해석하는데, 이 해석이 오히려 더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매장에 내놓은 광고물’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 서점에서는 만화의 내용과 관련된 아이디어 피오피를 직접 만들어 매장을 꾸밉니다. 만화 책꽂이 중간에 뭔가 다른게 있어 들여다보면 이런 수수한 피오피들이 숨어있습니다. 그걸 보는 것도 서점 돌아보는 재미라면 재미입니다. 한번 그 실제 사례들을 보시지요.



서점 중간에 왠 프라이팬? 하고 절로 돌아보게 만드는 피오피입니다. 프라이팬 안에 들어있는 만화라면, 당연히 ‘요리만화’겠지요? 맞습니다. 요즘 인기 좋은 일본 요리만화 <밤비노> 코너입니다.



피아노만화 <피아노의 숲>을 꽂아놓은 책꽂이는 피아노 건반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야구 만화 <크게 휘두르며>는 야구장 전광판 모양 피오피가 제격이군요. 이 만화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을만큼 인기가 좋습니다. 특히 스포츠 만화인데도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은데 그런 내용을 그대로 피오피에 활용해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로 일본 최고 만화가로 등극한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만화 <베가본드>는 워낙이나 유명한 만화죠. 이 유명한 만화를 아직도 못봤느냐고 대놓고 시비를 거는 듯한 피오피를 달았습니다.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이 서투른듯 오히려 눈길을 끄는 효과가 납니다.

 


이번에는 만화 <캠퍼스> 피오피입니다.



윤준식 작가의 <베리타스>는 피오피만봐도 그 인기를 알 수 있습니다. 서점이 피오피를 두개나 붙여놓은 것을 보면 잘 팔릴만한 만화라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만화를 고르는 데 힌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이키가미>란 만화를 저는 보지는 않았지만 피오피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24시간이란 한정된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란 것을 알 수 있겠네요. 미국드라마 <24>가 떠오르는데, 그만큼 재미있을까요? 보신 분께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피오피들이 모두 노다 부장이 도입한 것들입니다. 직원들과 함께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반응은? “재미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점에 취직했는데 마치 미술시간에 공작 수업하는 것 같아 재미가 쏠쏠하고 지루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른 피오피들도 올리는 김에 소개합니다.



만화 <교도관>. 소재에 맞게 감옥 모양 피오피를 덧붙였다.



워낙 인기좋은 개그만화 <아즈망가 대왕> 추가합니다.


그러면 이런 피오피들이 진짜 효과는 있는 걸까요? 목적은 뭘까요?


“그냥 지나갈 것을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액센트 효과를 위해서에요. 일부러 손으로 만드는 것이 쳐다보게 만드는 데는 더 효과적입니다. 인쇄물로 말끔하게 만든 광고물은 오히려 매장 풍경의 일부로 여기고 지나치기 쉽거든요.” 


한 구석에는 종이로 특별히 만들어놓은 ‘점장 추천작’ 만화 코너도 있었습니다. 노다 부장은 웃으면서 되묻습니다. “이러면 한번 더 보고 싶지 않으세요?”  


이 피오피 방식은 아주 간단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일겁니다. 

노다 부장이 스스로 개발한 것으로, 일본 곳곳의 만화매장으로 퍼져나간 기법이라고 합니다. 노다 부장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의 대형 서점 체인인 준쿠도 매장의 만화 코너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원래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서점에 입사한 뒤 자연스럽게 만화 매장을 맡게 되었다고 하네요. 


만화를 팔면서 어떻게 하면 만화를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해서 시도한 것이 이런 손수 제작한 피오피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를 도입했을 때, 놀랍게도 피오피 이전보다 매출이 2배 가까이 올라갔답니다. 그 뒤 다른 서점들도 따라 도입했고, 노다 부장은 만화 서점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그가 관리하던 대형 서점 준쿠도의 만화매장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학산문화사 황경태 대표가 직접 스카우트를 제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산문화사 황경태 사장은 노다 부장을 데려오기 위해서 세번이나 찾아갔답니다. 이른바 ‘삼고초려’인 셈이죠. 


황 사장은 “처음 일본에 가서 만화 매장을 보고 무척 부러웠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만화매장은 꼭 “도서관 같았다”고 평했습니다. 만화란 꿈과 환상을 파는 상품인데, 만화 서점은 그런 맛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피오피가 인상적이었고, 그 전문가인 노다 부장을 스카웃했다고 합니다. 호기심 많은 노다 부장도 새로운 시장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마음이 끌려 흔쾌히 수락했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만화 시장을 넓히고 싶다는 말에 끌렸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건너왔죠.” 


노다 부장의 지론은 만화 서점은 만화 서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니아부터 가벼운 만화팬까지 모두 원하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 우선 목표랍니다. 


그러면 그가 한국에 와서 느낀 한국과 일본의 만화문화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어른이 만화를 잘 안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죠. 대상 연령 높은 만화들도 있는데 잘 몰라서 못읽는 것 같아 아깝습니다. 반면 어린층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열심히 만화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만화의 기세와 대담함은 한국만화가 앞서는 것 같고요, 섬세함은 일본만화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가 꾸민 코믹커즐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위치도 번화가가 아니어서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 이외에는 한가한 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만화가 널리 인기를 끄는 것도 아니어서 운영이 만만치는 않아보였습니다. 어려움을 물어보니 “만화의 뼈대가 되는 잡지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노다 부장은 한국 만화에 대해 희망적인 의견을 내놨습니다.


“어린 만화팬들이 많으니까요. 일본에서는 서점 영업 시작 전부터 줄을 서는 경우는 드문데, 여기서는 오픈 전에 기다리는 손님도 있어서 놀랐어요. 20년전 일본만화 전성기 때 어린 독자들을 연상시킵니다. 지금은 일본이 워낙 만화의 나라지만 20년 전에는 일본도 어른 독자들이 적었어요.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태도도 한국 팬들이 더 열성적이에요. 그래서 한국 시장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늘 묻는 것이 있지요. 바로 목표, 포부 같은 것들입니다. 노다 부장의 목표는?

“매상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만화의 즐거움을 알게 되도록 꾸미고 싶어요.”


만화서점맨의 꿈 답지 않습니까?